재창간준비호 2014년 5월호 살림,살림

[ 땅땅거리며 살다- 전남 부안 산들바다공동체 이정선 씨 ]

“김매는 시간이 참 좋아요”

글 김세진 편집부\사진 이득

우선 밥부터 먹자더니, 대뜸 마당으로 따라 나오라고 했다. 이정선 생산자는 장독대 옆 자그만 나무 옆에 서서 꽃을 송이째 뚝뚝 땄다. “골담초, 본 적 있어요?”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가 내민 노란 것을 삼켰다. 골담초는 입속에 들어간 주제에 기죽지 않고 자기의 향기를 내뿜었다. 이정선 씨는 마당을 쓱 훑더니 하얀색 제비꽃을 몇 송이 더 꺾었다.
부엌에 와서 그는 금방 뽑은 부추를 손가락 길이 정도로 쑹덩쑹덩 잘랐다. 사과를 얇게 저며 몇 조각 얹고 그 위에 노란 골담초를 흩뿌렸다. 거기에 맛깔장을 끼얹었다. 15년 묵은 간장에 물을 더하고 파뿌리와 양파, 마늘과 생강, 다시마, 새우, 멸치를 넣고 반시간 정도 끓여 졸였다. 이렇게 맛깔장을 미리 만들어 놓으면 요리할 때마다 적절하게 쓸 수 있다. 여기에 참기름을 넣고 참깨와 검은깨소금을 뿌리고 통후추를 갈아 넣었다. 부추 위 골담초는 잔디에 꽃이 핀 모양새를 연상하게 했다. 5분만에 만들어진 샐러드 한 접시가 금세 봄을 식탁으로 데려왔다.

 

 

10년 동안 유기농사를 지어 부드럽고 영양가 많게 가꾼 땅 2천 평을 얼마 전에 잃었다. 빌려서 농사지었는데 땅 주인이 달라고 한 것. 그럴 땐 정말 속상하지만 남은 땅에서 열심히 농사짓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양파밭에 잡초가 자라 또 김을 매고 있는 그를, 복숭아나무가 지키고 서 있다.

 




밭으로 가는 꽃길

전남 부안에서 단호박, 양파, 벼 등 다양한 농사를 유기농으로 짓는 이정선 씨의 집과 밭 주위에는 4월 중순, 꽃이 한창이었다. 저절로 자라난 것도 있고, 일부러 심은 것도 있다. 말 그대로 집 앞에 문전옥답이 있는데 그는 집에서 밭으로 가는 길을 꽃밭으로 만들어 놓았다. 힘든 농사일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다.
밭 주위에 감나무며 앵두나무, 자두나무와 모과나무, 헛개나무, 복숭아나무를 한 그루씩 심은 것도, 일하다가 여유를 가지고 꽃도 보고 열매도 하나 따 먹고 그렇게 즐겁게 일하고 싶어서다. 팔 것으로 내놓진 않지만 밭 중간 중간에 참외며 수박, 채소들을 심어, 한창 밭일을 하다가 방울토마토를 따먹기도 한다. 농약 걱정이 없으니 흙만 탈탈 털어 입에 넣으면 된다. 참을 먹으러 집으로 들어가면서 아무 채소나 쓱 뽑아 들거나, 김맬 때 나온 명아주, 비름나물, 벼룩나물 같은 잡초를 한 움큼 가지고 들어가 반찬으로 해 먹기도 한다.
먹을거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유기농 농부답게, 그는 아무리 바빠도 밥을 잘 챙겨먹으려고 한다. 거창하고 특별한 음식이 아니어도, 있는 걸 잘 활용해서 정성스레 담아 먹는다. 부모님이 농사짓느라 바빠 스스로 밥을 챙겨먹을 때에도 이정선 씨는 종지그릇까지 다 꺼내 반찬을 조금씩 덜어 그럴 듯한 모양새로 차려 먹었다. 1999년 부안으로 귀농해서 손수 집을 지을 때, 가족들은 부엌에 가장 공을 들였다. 공간을 가장 넓게 배치했고, 여느 집이라면 거실에 낼 큰 창을 부엌에 냈다. 조리대 쪽에 창을 낸 것은 즐겁게 요리하기 위해서이고, 식탁 쪽에 큰 창을 낸 것은 밥을 먹으면서 바깥 풍경을 보기 위해서이다. 밥도 즐겁게 먹는 그만의 방법이 있는데, 그건 바로 부엌을 열어두는 거다.
남편인 구장회 씨와 두 아들 모두 요리를 즐겨 한다. 식구들이 모두 모이는 주말에는 부엌이 시끌벅적하다. 남편 구장회 씨가 2년 전부터 한살림 생산자연합회 사무처장으로 일하게 되어 서울에 머무는 통에, 주말부부가 되었다. 큰아들은 디자인을 공부하다가 군대에 가 있고, 작은아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인근 도시로 나가 요리를 배우고 있다. 식구마다 주 종목이 다르다. 구장회 씨는 찌개를 맛깔나게 끓이고, 맛있는 국물을 붓고 채소와 해물을 많이 넣은 걸쭉한 볶음밥을 잘 만들어 낸다. 아들들은 좋아하는 고기나 치즈 등을 넣어, 조금 느끼하긴 해도 새로운 요리를 내놓는다. 요리는 삶을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해 어릴 때부터 부엌에 자주 드나들게 했어도, 아들들이 요리를 좋아하는 건 교육 때문이라기보다 원래 그런 아이들이 자기에게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정선 씨는 훈수를 두는 정도. 이런저런 재료를 넣어 빵 만드는 실험을 하는 아들에게, 너만의 요리법을 만들라고 격려한다. 이미 나와 있는 요리법은 빵을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너무 거창하게 포장한 것이기 때문이다. 설탕의 양을 줄이거나, 어떤 재료들은 빼도 괜찮다. 아들에게 “너만의 것을 만들고 적으라”고 한다. 가능한 자연에 가까운 요리를 하라고, 너는 빵도 발효빵을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풀 뽑고 거름 주어 짓는 농사

자연에 가까운 요리는 자연을 해치지 않는 농사의 연장선이다. 이정선 씨는 15년 전 귀농할 때부터 유기농 농사를 지었다. 막 결혼해서 울산에 살 때, 한살림 조합원 활동을 하면서 이미 유기농의 귀중함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땐 농사꾼이 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경남 고성에서 부모님이 힘들게 농사를 지으면서 가난하게 사는 걸 보고 농사를 짓지 않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고 자란 게 있어서인지 자연에 대한 감수성이 남달랐다. 도시인 울산에 살면서도 이정선 씨와 구장회 씨는 봄이면 산에 올라 1년 동안 먹을 산나물을 캘 정도로 자연을 좋아했다.
너도나도 ‘신비의 맛’이라며 ‘미원’을 쓰던 그 시절에, 본능적으로 화학조미료를 거부하던 아버지 덕에 어머니는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밥상을 차렸다. 그렇게 순연한 밥상에 길들여진 입맛이 그를 자연으로 이끌었다. 아이가 생기면서 참교육학부모회 활동을 하던 이정선 씨는 지인의 소개로 한살림을 알게 되었다. 사회운동과 노동운동에 집중되어 있던 마음이 먹을거리와 자급을 말하는 생명운동으로 가득 채워졌다.
두 사람은 노동운동을 하다가 만났다. 마산과 울산에 떨어져 직장을 다니고 있었지만 거리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1990년대 초반,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이 심해 구속이 빈번하게 일어날 때였다. 이정선 씨는 구장회 씨에게 물었다. “‘빵바라지’ 할 사람, 있어요?” 그러다 정말로 빵바라지를 하게 되었고, 오래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결혼했다.
아이들을 흙에서 키우고 싶었다. 1년 정도 귀농지를 알아보다 지금 살고 있는 부안 서당골에 정착했다. <귀농통문>에서 소개한 어느 귀농자를 만나러 방문했던 곳이었다. 이들은 아름다운 부안에 반했다. 산과 들과 바다가 모두 있는 지역이라, 한살림 부안 생산자공동체 이름도 ‘산들바다공동체’다.
이 생산공동체는 산과 들과 바다가 조화를 이루는 것처럼, 저마다의 사람들이 마치 한 폭의 풍경처럼 어울린다. 일손이 많이 필요한 일을 함께할 뿐 아니라, 여성 생산자들도 자주 모여 수다 떨고, 인근 도시로 바람을 쐬러 다녀오기도 한다. 2003년 부안 핵폐기장 반대 운동을 하면서 여성 생산자들은 삭발 투쟁을 하기도 했다. 그런 경험들이 관계를 더 끈끈하게 만들었다. 그런 만남을 예감했는지, 처음 방문했을 때부터 느낌이 좋았다. 보리수가 빨갛게 익어 아름다웠고, 바다가 가까워 어물전에 먹을거리가 많고 값도 싸서 좋았다. 인연이 닿으려고 해서인지,
마을에 하나 남은 허름한 빈 집에 살러 오기로 했던 사람에게 사정이 생겼다. 대신 이정선 씨 부부가 그 집에 살게 되었다.

 

 

 

 

 



 

 

 

 

 

 

 

 

 

 

 

 

(왼쪽 위)밥상에 달걀이 올라왔다. 사료를 먹이지 않고 길러서인지 노른자가 더 불룩하고 색이 진하면서 부드러웠다. 농사부산물을 먹은 닭의 분뇨는 거름으로 쓴다. (왼쪽 아래)여성 생산자들이 모였는데 문간에 놓인 고무신 모양새가 똑같았다. 우르르 나가면서 신발을 잘못 신고 가기 여러 번. 매직으로 이름을 쓰는 대신 꽃을 달았다. 밭일하는 신에는 하얀 꽃. 외출하는 고무신에는 분홍 꽃이 달렸다. 이 봄, 꽃신을 신고 뛰어볼까? 폴짝.

 

 

거적때기 깔고 자면서 손수 지은 집

귀농하고 5년쯤 뒤에 집을 지을 계획으로 나무를 모으고 있었지만 한동안은 엄두를 못 내고 미루다가 3년을 살던 집의 주인이 나가라고 해서 비로소 짓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어 살고 있는 지금 집은 다락방까지 있는 번듯한 모양새라, 사람들은 돈이 많이 들었으리라 짐작한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과 자연의 도움을 받아 지은 것이다. 2003년 태풍 ‘매미’ 때문에 나무들이 이정선 씨네 논 쪽으로 쓰러져 그걸 베어다 목재로 썼다. 마을에서 묘지 조성을 할 때 베어낸 나무도 얻어오고, 돌도 벽돌보다 싼 가격에 샀다.
흙 작업을 할 때는 함께 농사짓는 부안 산들바다공동체 식구들이 도와줬다. 일부 일꾼들을 쓰긴 했지만 거의 남의 손 들이지 않고 짓느라 공사기간이 3년 가까이 걸렸다. 일부를 지은 상태에서, 전에 살던 집에서 쓰던 거적때기 같은 장판을 깔고 자면서 나머지를 지었다. 여자라고 마다하지 않고 집 짓는 거의 모든 과정에 함께했다. 지붕 위에 올라가서 못질하는 건 기본이었다. 돈을 들이면 뚝딱 지을 수 있었겠지만 그렇게 천천히 지었다. 돈이 없기도 했지만 있었더라도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귀농하면서 원칙을 정했다. 직접 할 수 있는 일은 시간이 걸려도 직접 하자고. 돈으로 해결하지 말자고.

 




 

 

 

 

 

 

 

(왼쪽)집을 짓는 데 3년이나 걸렸다. 돈 안 들이고 내 손으로 짓느라 그랬지만, 덕분에 구석구석 정이 안 가는 곳이 없다. 집을 올리면서 사람과 자연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참 고맙다. 아이들의 부탁으로 다락도 냈는데,  다 짓고 보니 생각보다 집이 너무 크게 지어졌다. (오른쪽)목련이 한 송이, 푸른 천에 피었다. 주위에서 만나는 소소한 것들이 바느질 소재가 된다. 냉이와 연꽃 달팽이 등. 소소해서 좋다.

 

 

한 땀 한 땀 바느질해 손수 지은 옷

이정선 씨가 한 땀 한 땀 바느질해 옷을 만들고, 천연염색으로 천에 색을 내는 것도 그런 생각에서다. 밭일이 없는 겨울철, 옷과 가방을 만들고 수를 놓았다. 하나씩 하던 것이 이제 제법 모여서, 부안 지역 행사나 생산자–소비자 교류 행사에 내놓고 팔기도 한다. 그가 놓는 수는 참으로 소박하다. 엉겅퀴나 냉이, 연잎, 민들레, 목련 등이 소재다. 양파와 쑥, 숯이나 황토나 직접 심은 쪽으로 색깔을 낸다. 어디를 쓱 둘러봐도 쉬이 볼 수 있는 것들이 그와 만나서 작품이 된다. ‘농부와 달팽이’라고 이름 지은 가방에는 농부의 밀짚모자 위에 달팽이가 기어가는 풍경이 펼쳐져 있다.
“내가 농부라서 이런 게 눈에 보이는 것이겠죠? 각 지역에 이런 작업을 하는 농부들이 꽤 있는데 다 모여서 전시회를 한번 열어도 좋겠어요. 제목까지 생각해 두었어. ‘농부, 흙 묻은 손으로 수를 놓다’. 어때요?”
농사도 요리도 집짓기도, 옷 만들기도 뚝딱 해내는 이정선 씨를 보고 더러 “손이 예쁘다”고들 한다. 곱지는 않아도 뭐든 척척 해내는 손이 스스로도 대견하다. 눈은 게으르고 손은 부지런하다고 했던가? 눈으로 보면 하기 싫어도 막상 손을 대면 뭐든 해낸다. 때로 지역 생산자들과 인근 도시 사람들에게 바느질을 가르치는데, 수업에 가면서 미처 흙일 하느라 손톱 밑에 낀 때를 벗기지 못하고 갈 때 부끄럽기는 하지만, 그러면 어떤가? 그 손의 창조성을 보아주는, 예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데. 양파밭에 또 풀이 나, 올해 벌써 네 번째 김매기를 한다. 그이는 그 예쁜 손에 장갑을 꼈다.
“김매는 시간이 참 좋아요. 일하면서 고요해지고,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어요. 풀이 지겹고 농사가 힘들다고만 생각하면 끝이 없거든요. 김매다가 남편이랑 뽀뽀도 하고, 먼 밭에 갈 땐 손도 잡고 가요. 생산자들에게도 그러라고 해요. 즐겁게 살아야죠. 부추를 뽑아서 샐러드만 해 먹어도 이렇게 좋은데…. 순간순간 세상이 멈춘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도시 소비자들을 떠올리면, 나만 이렇게 너무 행복한 것 같아 미안할 때가 있어요.”

 




마당에서 뜯은 골담초와 제비꽃송이를 부추샐러드 위에 얹었다. 남은 꽃들은 박제가 되었다. 이정선 씨는 얼음 통을 꺼내 물을 붓고 꽃송이를 얹었다. 여름에 시원한 음료를내면서 같이 띄울 거란다. 꽃얼음차를 마시러 여름에도 들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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