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창간준비호 2014년 5월호 [특집] 특집-다른생각 다른농사 다른밥상

[ 다른생각 ]

왜, 어떻게를 묻는 것이 유기농

글 정대이

유기농업이 무엇인지 세계적으로 의견이 분분하지만, 아이폼(IFOAM:International Federation of Organic Agriculture Movements: 국제유기농운동연맹)의 정의는 현실과 이상의 조화를 보여준다. “유기농업은 토양, 생태계 그리고 인간의 안녕을 유지하는 생산 시스템이다. 생태계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자재 사용보다 지역 상황에 맞는 순환형 생산체계, 생물다양성을 근간으로 삼는다. 유기농업은 공유하는 환경에 보탬이 되도록 전통과 과학 그리고 창의를 조합하며, 참여하는 모든 사람 간의 공정한 관계와 생활의 질을 높이는 데 일조한다.”


자연과 더불어 살고자 하는 철학

국제유기농운동연맹은 유기농업을 통해 전 지구가 얻고자 하는 4대 원칙으로 건강, 생태, 공정, 배려를 제시한다. 유기농업은 자연과 더불어 건강하게 살고자 하는 철학이자 삶의 형태로 사람과 사람이 속한 생태계, 즉 너와 나, 지구 모두의 건강함을 추구한다. 또한 자연과 사람을 잇는 순환고리로, 유기농업이 지닌 역할에 주목한다. 화학비료를 사용하는 대신 토양에 양분을 주고, 미생물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풀을 심는다. 또 농업에서 발생하는 모든 동식물성 부산물로 퇴비를 만들고, 천적을 이용하는 등 생태계의 다양성을 적극 활용하여 지속 가능성을 유지한다. 지금의 농업 방식은 지구가 수억 년간 축적해온 화석에너지를 순식간에 고갈하고, 환경을 파괴하여 이를 이어받을 다음 세대에게 부담을 안긴다. 유기농업은 과거의 오랜 실천 경험과 지혜, 지역에 맞는 농업 방식을 다음 세대로 이어주고자 하는 사랑과 배려이다. 그래서 유기농업은 생산성을 가장 중요한 가치 기준으로 두지 않는다. ‘소득이 높은가?’보다는 ‘내 이웃을 지키고, 자식에게, 자식이 손자에게 물려줄 수 있는 방식인가?’를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
그러나 한국 정부에서 유기농업을 바라보는 시각은 좀 다르다. 국내에서 친환경농업법은 1997년 생산농가와 소비자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지원책을 마련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우리나라에는 1970년대 많은 농부들이 농약을 쓸 때도, 농약을 쓰지 않고 농사를 짓던 유기농 농부들이 있었다. 하지만 친환경농업육성법이 제정되면서 유기농업이 더 확장되었다. 법은 친환경농업을 “합성농약, 화학비료 및 항생·항균제 등 화학자재를 사용하지 아니하거나 사용을 최소화하고 농·축·임업 부산물의 재활용 등을 통하여 농업생태계와 환경을 유지·보전하면서 안전한 농축임산물로 생산하는 농업”이라 정의하고 있다.


단계적 접근을 위해 낮은 단계부터 접근한 한국 친환경농업법

유기농업에 대한 국제 기준과 한국의 개념 규정에는 태생적으로 차이가 있다. 한국의 친환경농업법에서 유기농업은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농업’이라면 세계적 기준은 ‘농업 생태계의 건강 유지’라 볼 수 있다. 주요 관심사 또한 한국은 ‘안전한 농축임산물의 생산’이라면 세계적 기준은 ‘지구 환경의 보호’를 든다. 우리나라에서 친환경농업 방향이 이렇게 설정된 데는 이유가 있다. 먹고 살기 어려운 시절, 먹거리를 많이 생산하는 일을 지상 과제로 세웠다. 먹을거리가 부족한 시점에서 환경과 생물다양성, 지속가능성을 논하기는 어렵다는 것이었다. 친환경농업육성법을 제정하며 정부는 처음부터 엄격한 잣대를 대서 농업인이 친환경 농업을 실천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하는 것보다 차근차근 단계를 밟고 올라가 유기농업에 진입하게 하려고 했다. 때문에 우리나라의 친환경 농산물인증제는 저농약농산물, 무농약농산물, 유기농산물 등 3단계로 세분화되어 있다. 저농약농산물은 화학비료는 권장 시비량의 1/2 이내, 농약 살포 횟수는 농약안전사용기준의 1/2 이하, 사용 시기는 안전사용기준 시기의 2배수를 적용한다. 다만 제초제는 사용할 수 없다. 무농약농산물은 유기합성농약은 일체 사용할 수 없지만, 화학비료는 권장 시비량의 1/3 이내에서 사용 가능하다. 유기합성농약과 화학비료를 일체 사용하지 않고 재배하는 농작물에는 유기농산물 인증을 부여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이런 세분화된 인증제는 국제적으로는 통용될 수 없는 기준이다. 국제 기준 유기농업은 토양, 생태계 그리고 인간, 모두를 위한 농업 방법을 추구한다. 때문에 자연에 해가 되는 자재의 사용을 엄격히 금한다. 반대로 우리는 농약과 화학비료 사용을 금한다는 수단적 방법에 집중하고 있지만 이제는 ‘왜’ 우리가 이런 자재의 사용을 금지하는지 그 근원에 눈 돌릴 때가 왔다. 때문에 정부에서 저농약인증제는 2010년 신규인증을 중단했으며, 2015년 완전 폐기한다. 정부는 장기적으로는 국제 기준에 맞춰가기 위해 무농약 인증도 폐기하고 유기농산물 인증만 유지할 계획이지만 친환경 농업에 대한 소비자와 생산자의 인식이 성숙할 때까지로 시기를 유보하고 있다.


생산자뿐 아니라 소비자의 몫

이런 면에서 유기농업과 GAP라 불리는 농산물우수관리제도는 시각 차이가 크다. GAP는 생산단계에서 판매단계까지 농산식품의 안전한 관리 체계 구축이 목적으로, 화학비료와 필요시 농약의 적정한 사용을 통해 농식품의 위해를 최소한으로 관리하는 방식이다. 반면 유기농업은 사람이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에 가해지는 위해를 최소화하며 농산물을 생산하는 방법을 고집한다. 그래서 어렵다.
우리나라의 유기농업이 비록 수단적 방법에 집중하고 있다 하더라도, 쉽고 편하게 소득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을 버리고 힘들지만 의미 있는 길을 찾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 유기농업은 ‘왜’, ‘어떤 방식으로’ 먹을거리를 생산하고, 소비해야 하는가에 질문에 대한 끝없는 답변의 철학적 과정이며, 이는 생산자만의 몫이 아니라 오히려 소비자의 몫이다. 시장논리를 벗어나 지속가능한, 내 아이가 살아갈 지구를 꿈꾸며 짓는 농사에, 그런 농산물에 정당한 가치를 부여하고 소비함으로써 동참하는 일은 생산의 다른 방식이기 때문이다.
‘생산자는 소비자의 생명을, 소비자는 생산자의 생활을.’ 이는 한살림의 모토다. 단순히 사람을 위한 안전한 먹을거리를 생산하고, 소비함으로써 농업인의 생활을 책임진다는 말이 아니다. 유기농업은 단순히 먹을 거리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옥수수를 얻기 위해 개구리를 희생하지 않겠다’는 생각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알고 북돋는 관계가 유기농업이다. 이런 철학에서 시작하는 농산물의 생산과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농사를 짓는지 알고, 감사하는 소비가 지속가능한 유기농업을 가능케 할 것이다.




↘ 정대이 님은 경기도 광주시 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로 일하고 있으며《유기농은 꼭 이루어진다》의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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