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호 2014년 봄 살림,살림

[ 살림이 본 영화 <인사이드 르윈> ]

내 이야기인지, 저 가수의 이야기인지

글 송경원



“날 매달아주오. 나 죽어 사라질 테니... 얼마나 굶었는지 뱃가죽이 등에 붙었다오...” 서글픈 포크 음악이 무대 위로 번져 나간다. 어쩐지 가슴 한쪽이 울컥하다. 생소한 가사와 낯선 선율은 대개 귓가를 간질이다 이내 사라져갔지만 이번엔 다르다. 불이 꺼지고 스포트라이트가 켜지는 순간, 어두운 영화관은 1960년대 뉴욕 한복판의 포크송 무대로 바뀐다. 허름한 무대 위 낮은 목소리가 바닥에 깔리면 극장 안 관객들도 모두 함께 눈을 감고 음악에 빠져든다. 특별히 음악이 좋아서가 아니다. 비슷비슷한 노래에 무던한 목소리. 차라리 분위기에 취해서라는 편이 적절하겠다. 각자의 사연을 갈무리한 채 두런두런 이야기를 풀어놓는 음악을 듣다보면 문득 가슴 긁는 이 목소리가 내 이야기인지 저 가수의 이야기인지, 그것도 아니면 영화 속 누군가의 사연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그 순간, 가수는 어둑어둑한 선술집 무대 한곳에 조용히 관객이 앉을 자리를 마련해준다. 어색하고 멋쩍은 손길로 슬쩍 의자를 밀어준다. 거창한 미래도 전설도 아닌, 그저 지금 노래를 부르는 그가 거기에 있다. 나도 그 옆에 있다.


고통의 끝에 무엇이 있나


<인사이드 르윈>은 1960년 뉴욕 거리를 떠돌던 한 가난한 포크 가수의 방랑기다. 1960년대 미국 포크계에 잊을 수 없는 족적을 남긴 가수 데이브 밴 롱크의 사연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전기영화도, 음악영화도 아니다. 이야기가 끝나는 순간 찾아오는 습관적인 해피엔딩이 이 영화에는 없다. 코엔 형제는 실존 인물의 그림자에 매몰되지 않고 르윈 데이비스의 삶을 거대하고 신비한 우화로 탈바꿈시켰다. 삶이 어떻게 흘러갔다가 다시 돌아오는지, 노래가 어떻게 삶을 지탱하는지, 나에게 남겨진 것이 나를 어떻게 버티게 하는지. 르윈 데이비스가 겪는 며칠 동안 천변만화하는 삶의 고민 어린 순간들이 수없이 교차해 지나간다. 특별히 어떤 사건도 장대한 운명도 없이 그저, 살아간다. 그런데 힘겨운 동시에 가벼운 발걸음마다 우리가 살면서 만나게 될 고민의 순간들이 묻어 있다. 영화는 질문한다. 지금 이 순간의 고통을 어찌 버틸 것인가? 그 끝에서 마주할 자신의 모습은 무엇인가?
르윈 데이비스(오스카 아이삭)는 뉴욕 그리니치빌리지의 이름 없고 가난한 포크송 가수다. 듀오로 활동했던 파트너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 솔로로 전향한 르윈에게 길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지인이나 우연히 인연이 닿은 사람들의 집 소파를 전전하면서 잠자리를 해결하고, 음반사 사장과 단돈 몇 달러로 티격태격하며 겨울에 걸칠 코트 한 벌이 없어 추위에 떠는 신세도 처량하다. 어느 날 아는 교수님이 키우는 고양이를 데려왔다가 실수로 잃어버린 르윈은 한때 사귀었던 애인 진(캐리 멀리건)에게서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중절 수술비를 마련해야 할 처지에 놓인다. 자신이 무책임하고 구제불능이라며 몰아붙이는 진 앞에서 아무런 말을 할 수 없다. 게다가 더 막막한 건 자신의 음악적 재능에 확신이 없는 것이다.


이기적이고 철없지만 미워할 수 없는 이유





주인공 르윈 데이비스의 모티브가 된 데이브 밴 롱크는 밥 딜런에게까지 영감을 줬지만 밥 딜런에 가려 포크 음악 마니아들 사이에서만 회자되었던 음악가다. 영화를 감독한 코엔 형제는 데이브 밴 롱크의 자서전 《맥두걸가의 시장》에서 영감을 얻어 <인사이드 르윈>을 만들었다고 밝혔지만, 영화 속 르윈 데이비스라는 인물은 데이브 밴 롱크보다 훨씬 더 우울하고 지쳐 있다. 있는 거라곤 약간의 자존심과 선원 자격증, 지긋지긋한 가난뿐이다.
코엔 형제는 음악을 소재로 한 자신들의 첫 영화에서 실화의 강박에 얽매이는 일 없이 인생의 한 순간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이 자유분방한 감독들에게 실화란 좋은 단상을 제공하는 장치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덕분에 르윈 데이비스는 절실하게 오늘을 사는 감정 그 자체를 보여주는 묘한 매력의 캐릭터가 됐다.
그는 제멋대로에 무계획하며 즉흥적이고 현실에 관심이 없다. 한마디로 주위 사람들의 걱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유유자적 자신의 시간대로 살아가는 민폐 캐릭터다. 하지만 왠지 밉지 않다. 괜히 지켜주고 싶은 순진하고 순수한 인물. 비유하자면, 고양이 같다. 다가가면 멀어지고 만지려 하면 도망간다. 영화 속 르윈 데이비스를 바라보는 것은 마치 그가 잃어버린 고양이를 보는 기분이다. 그저 한 걸음 떨어져 가만히 지켜봐줘야 하는 존재. <인사이드 르윈>은 그렇게 르윈 데이비스의 며칠간 여정을 가만히 지켜보도록 만든다.
영화는 어느 날 르윈 데이비스가 <날 매달아주오>라는 노래를 부른 뒤 카페 뒷골목에서 흠씬 두들겨 맞는 장면에서 출발한다. 그 후 이 ‘꼴통’이 저질러 놓은 일들을 차근차근 따라가는데, 사실만 열거하자면 실로 가관이라 할 정도다. 친한 동료 가수의 여자친구를 임신시키고는 아직 그 사실을 모르는 친구에게 중절 수술비를 빌리려는 뻔뻔함, 전 여자친구의 임신 소식을 한참 뒤에야 알 정도의 무신경함. 누나는 제대로 된 일을 하라고 충고하지만 르윈은 선원으로 살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처럼 살고싶지 않다며 갑갑해 한다. 아무것도 책임지려 하지 않은 채 기타 하나 달랑 메고 거리를 배회하는 모습은 자유롭기보다는 초라해 보여야 맞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황색 코트 하나 입고 영화 내내 스크린을 떠도는 르윈의 모습은 마치 그가 들고 있는 길고양이처럼 한가롭고 가볍다. 이 이기적이고 철없는 남자의 뒷모습에서 느껴지는 도도한 분위기의 정체는 무엇일까?





다시 찾은 고양이 ‘율리시스’에 담긴 뜻


세상의 모욕과 비난과 질시, 가난에도 그를 버티게 했던 건 오직 포크송을 향한 애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점점 자신에게 아무것도 들려주지 않는 포크송에 대해 환멸을 느낀다. 관객이 르윈의 여정에 참여하는 것은 딱 그 시점이다. 아마도 음악만이 전부였을 르윈 데이비스조차 동료를 잃고 가난에 지친 끝에 포크송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다. 매번 노래가 끝날 때마다 “포크송은 거기서 거기”라고 농담처럼 자조하거나 동료가 작사·작곡한 노래가 이상하다며 비웃을 수밖에 없는 참담함. 마지막으로 시카고 클럽에 가수 일자리를 알아보러 가는 길에 동행한 사람들로부터 포크를 모욕당하면서도 한마디 변명할 힘도 없는 무기력함. 영화 속 적재적소에 삽입된 포크송들은 이미지보다 훨씬 직접적으로 르윈 데이비스의 속마음을 드러낸다. 그야말로 ‘인사이드 르윈 데이비스’(르윈 데이비스의 솔로 앨범명이기도 하다)이다. <500마일>이나 <미스터 케네디>, <내게 날개가 있다면>, 결정적으로 시카고 클럽에서 부르는 <왕비 제인의 죽음>은 르윈 데이비스의 비루한 처지 그 자체다. ‘르윈 데이비스의 인생’이라는 잘 구성된 포크 앨범을 통째로 듣는 셈이다.
멀고 먼 음악의 여정은 결국 기적으로 마무리된다. 르윈의 음악이 인정을 받아 크게 성공하는 상투적 해피엔딩은 아니다. 뉴욕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마주하는 영화 <머나먼 여정>의 포스터는 노골적인 상징이다. 잃어버린 고양이가 다시 돌아오고 그 고양이의 이름이 ‘율리시스’라는 걸 안 순간, 르윈은 이 거대한 농담 앞에서 다시 한번 기타를 잡는다. 결국 돌아와야 하는 곳. 음악을 해야 한다는 사실. 다시 돌아온 자리는 여전히 가난하지만 많은 것이 변했다. 나를 위해 부를 수 있게 된 르윈의 노래는 처음과 같지만 전혀 다르다. 이제 르윈은 자기 자신을 돌아보면서 자신을 위해 노래한다. 선원이 되길 마다하고 조그만 카페에서 다시 노래를 시작하는 것은 자기를 기만하는 도피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다. 자기를 한 바퀴 돌아보고 온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택의 자격. 가스등 불빛 아래에서 다시 울려 퍼지는 그의 노래를 듣다 보면 가난한 예술가의 삶과 그의 선택이 안타깝고 흐뭇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영화로 할 수 있는 일이, 바꿀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심지어 영화도 그럴진대, 영화를 말하는 게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일지 매번 고민과 회의에 잠긴다. 하지만 그럼에도 계속 영화를 보고, 말하고, 이야기 나누는 것은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 내게 가장 큰 만족을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모두 각자의 최선과 만족을 위해 살아가길. 너무 먼 미래까지 미리 걱정하지 말자. 지금 내 손이 닿는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다하면 족하다. 르윈 데이비스라는 이름의 삶에 대한 우화, 영혼의 소리에 내 삶도 슬쩍 얹어본다.



극장을 나서는 순간 <원스>를 떠올릴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친숙하고 애잔한 포크 음악은 물론이거니와 음악과 함께 인물의 여정을 따라가는 구성도 유사하다. 시각장애인이자 천재 음악가 레이 찰스의 삶을 다룬 <레이>나 불멸의 여가수 에디트 피아프에 관한 영화 <라비앙 로즈>도 좋다. 코엔 형제에 관심이 가는 사람에겐 <바톤 핑크>와 <파고>를 추천한다. 고통 속에서 삶을 성찰해내는 코엔 형제 특유의 시선이 돋보인다.



↘ 송경원 님은 영화평론가이자 <씨네21>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쓰는 만큼 즐거워질 거란 믿음으로 오늘도 쉬지 않고 영화 관람 중입니다.



 


http://www.salimstory.net/renewal/sub/view.php?post_id=9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