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호 2014년 봄 [특집] 특집-우리 밥 한번 먹자

[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사고 후 3년을 맞아 ]

이제 절망이 아닌 희망을 이야기하자

글 강언주

그동안 우리는 후쿠시마의 절망적인 상황에 대해서만 말해 왔다. 후쿠시마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그들이 만들어가는 희망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에서 탈핵을 위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는 절망보다 희망을 더 많이 보았다. 핵발전에 대해 관심 없던 청년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시민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후쿠시마는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아니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땅이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사고, 공포의 시작
후쿠시마에서 핵발전소 폭발사고가 난 지 3년이 되었다. 처음 사고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오히려 지금보다 덜 예민했다. 그저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나라에서 조금 강한 지진이 일어났고, 그래서 핵발전소라는 건물이 붕괴되었다고만 생각했다. 핵발전소 폭발이 얼마나 위험한지, 이후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고로 무너진 핵발전소는 마을공동체를 파괴했고 나아가 일본 전체, 일본을 넘어 전 인류를 방사능 공포에 떨게 했다. 연일 고농도의 방사능 오염수가 흘러나와 땅과 바다가 방사능에 오염되기 시작하면서, 이 상황을 한 지역의 문제로만 묶어둘 수 없게 되었다. 더군다나 한국에는 핵발전소 수십 기가 있고, 전 세계적으로 핵발전소 수백 기가 가동 중이다. 앞으로 더 많은 핵발전소가 건설될 예정이라고 하니 언제든 또 다른 체르노빌, 후쿠시마가 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두려워졌다. 탈핵에 대한 나의 고민은 그렇게 방사능과 핵발전소 사고에 대한 단순한 공포로부터 시작되었다.



핵발전소에 따른 문제는 특정 지역만의 것이 아니다(자료 제공: 방사능와치).



구하기도 이해하기도 어려운 핵발전 정보
2012년부터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정보공개센터)에서 ‘탈바꿈(탈핵으로 바꾸는 꿈)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알 권리 운동을 하는 단체에서 탈핵운동을 한다는 것에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탈핵운동에 영역이랄 것이 있을까? 여성운동을 하는 곳에서도, 풀뿌리운동이나 교육운동을 하는 곳에서도 탈핵은 주제가 될 수 있다.
정보 공개 관련 활동을 수년간 해왔으니 핵발전 정보 공개를 청구하는 데에는 나름 자신이 있었다. 정부의 주장대로 핵발전이 정말 안전하고 경제적인지 알아야 불안하지 않을 테니 관련기관들에 정보 공개 청구를 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답변은 “기업비밀사항이라 공개할 수 없다”, “국가안보와 관련된 정보라 공개할 수 없다” 아니면 “비.공.개” 세 글자였다. 그렇게 핵발전을 홍보하면서 정작 관련 정보는 공개할 수 없다니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았다. 정부와 관련기관의 주장대로 핵발전이 정말 좋은 거라면 대놓고 보여주는 게 마땅하지 무슨 꼼수라도 있는 것처럼 감출 필요가 없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핵발전 단가와 부품납품 정보 등을 비공개하더니, 결국 비리사건이 터졌다. 정보를 공개할 수 없는 이유가 따로 있었던 것이다.
핵발전 관련 정보가 잘 공개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내용이 너무 어려워서 시민들이 이해하기 힘든 것도 큰 문제였다. 밀리시버트, 플루토늄, 멜트다운 등 어려운 용어투성이니 신문기사 하나를 읽기도 힘들었다. 그러니 관심을 갖기 어려울 수밖에. ‘핵마피아’들은 수억 원의 예산을 들여 핵발전을 세련되고 예쁘게 포장해 홍보하는데 게임이 될 수 있었을까? 그동안 우리는 너무 전문적인 언어와 지루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조금 더 쉽게 정보를 전달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핵발전 문제에 관심을 갖게 할 방법이 필요했다. 그런 고민 가운데 만든 것이 ‘방사능와치’(
www.nukeknock.net)이다. 방사능와치에는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정보와 해외, 전문가 정보 및 시민들 스스로가 찾은 정보들이 모이고 있다. 그리고 이 정보들을 좀 더 쉽게 보여주기 위해 정보시각화 작업을 공유하고 있다.
“제대로 알아야 안전합니다, 많이 공개돼야 깨끗해집니다, 함께 공유해야 희망이 됩니다”를 표어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당장 탈핵을 할 수는 없어도 영화 <우리 선희>에 나오는 대사처럼 “파고 또 파고 가고 파고 가고 파고” 하다보면 결국 가능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탈핵에 공감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나름대로 보람도 느꼈다. 하지만 탈핵운동의 방향에 대한 고민은 정리되지 않고 더 깊어졌다. 탈핵은 처음부터 간단하게 정리될 수 있는 주제가 아니었다.


“후쿠시마는 더 이상 사람들이 살 수 없는 땅인가요?”
지난해 12월, 시민들이 조금 더 쉽게 핵발전에 관한 이야기를 접하고 관심을 가질 수 있게끔 자료집을 기획했다. 방사능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개요, 한국 핵발전소의 안전성, 핵에너지와 대안에너지 등에 대한 내용을 풀어내기 위해 아홉 가지 이야기를 구성하고 제목을 정했다. 그런데 네 번째 이야기의 제목이 자꾸만 신경 쓰였다. <후쿠시마는 더 이상 사람들이 살 수 없는 땅인가요?> 후쿠시마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표현하기에는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불편했다.
그즈음 한살림을 비롯해 땡땡책협동조합, 하자센터 등 여러 단체들과 공동으로 후쿠시마 지역 활동가들을 초청해 강연회를 열게 되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후쿠시마에서 생산된 면화로 만든 옷과 인형을 전시, 판매하는 문제로 갈등이 생겼다. 방사능에 오염되었을지도 모르는 물건을 판매한다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중에는 전시도 해서는 안 된다는 항의로 이어졌다.
사전에 충분한 설명과 논의를 하지 않은 잘못은 분명 있었지만, 속상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서울에서 강연회가 열리기 하루 전, 일본 활동가들과 만나 갈등상황을 솔직히 전했다. 시마무라 씨는 어쩌면 당연한 반응일 수 있다고 오히려 우리를 위로하면서 후쿠시마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일본에서도 후쿠시마산 물품을 외면한다. 후쿠시마 지역 주민을 위해 일부러 사주는 곳도 있지만, 사서 그대로 버리는 경우가 많다. 사주기만 하는 거다. 문제는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한지 아닌지 누구도 확언할 수 없다는 것이다. 후쿠시마 사람들은 ‘여기서 살아도 되나? 나가야 하나? 이걸 먹어도 되나? 마셔도 되나?’ 늘 불안해하면서 살아간다. 사고 이전의 후쿠시마로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다. 핵발전소를 찬성했던 우리의 잘못도 있으니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고 이후 이곳 사람들이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주고 연대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동안 나는 당장 후쿠시마에 사는 사람들을 피난시켜야 한다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피난할 수 없는 상황에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곳에는 ‘떠나지 않음’을 선택한 사람들이 있었다. 다른 지역에 있는 사람들에게 후쿠시마의 상황을 알리는 스터디투어, 에너지자립을 이루기 위한 커뮤니티전력, 먹는 농사에서 입는 농사로 전환하는 오가닉코튼 등의 사업을 진행하면서 후쿠시마의 회복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계속 마음이 불편했던 네 번째 이야기의 제목 <후쿠시마는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인가요?>를 <후쿠시마 사람들은 괜찮은 걸까요?>라고 조심스럽게 바꿨다.



핵발전소가 계속 가동되는 한,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



희망의 과정에 동참하자
얼마 전 우연히 일본의 청년 활동가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탈핵운동과 함께 지난해 말 아베정권이 통과시킨 특정비밀보호법(비밀보호법) 반대활동에 집중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에게 지금 후쿠시마의 상황은 어떤지, 비밀보호법이 실제 핵발전 정보 공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물었다.
“후쿠시마를 재건하려는 움직임들은 있으나 얼마나 지나야 상황이 좋아질지 모르겠다. 사고 이전의 후쿠시마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후쿠시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을 빨리 피난시켜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도 맞지만 오래전부터 그 마을에서 살아왔던 사람들, 가족과 헤어질 수 없는 사람들을 피난하지 않는다고 비난할 수도 없다. 그들은 후쿠시마를 회복시키기 위해 나름대로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다. 핵발전소와 관련한 정보들은 후쿠시마 사고 이전에도 잘 공개되지 않았다. 물론 시민들도 관심이 없었고. 사고 이후 정보를 은폐하는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에 항의하여 미비하지만 어느 정도의 정보가 공개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통과된 비밀보호법은 이런 것들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일본 시민들도 안다. 비밀보호법이 국방이나 핵발전과 관련한 정보를 보호함으로써 우리의 알 권리와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래서 국회 앞에서 시위도 하고 거리에서 시민들에게 설명도 하고 있다.”
시마무라 씨는 “후쿠시마 바깥의 사람들은 안정감을 느끼기 위해 ‘후쿠시마가 아니니까 나는 괜찮아’라고 구분지어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핵발전은 후쿠시마만의 문제도 아니고, 일본만의 문제도 아니다. 새로운 핵발전소가 들어서는 영덕만의 문제가 아니고, 송전탑 공사가 강행되고 있는 밀양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문제이고 핵발전이 만드는 불평등, 반평화, 반인권적인 세상에서 살고 있는 전 인류의 문제다.
탈핵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단절이 아니다. 그들이 희망을 만들고 있는 과정에 참여하는 것, 함께 희망을 만들기 위해 손을 잡는 것. 그것이 탈핵을 가능하게 한다.
3월은 순우리말로 온 산과 들에 물이 가득 차오르는 달이라는 의미로 ‘물오름달’이라고 한다. 겨우내 얼었던 땅과 물이 녹고 그 틈으로 생명이 가득 차오르듯, 탈핵의 희망도 너와 내가 마주잡은 손 사이로 솟아난다. 3년 전 후쿠시마를 기억하되 이제 절망이 아닌 희망을 이야기해야 한다.



↘ 강언주 님은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www.opengirok.or.kr) 활동가입니다. 핵 없는 세상을 꿈꾸며 핵발전과 관련한 정보 공유를 위해 탈바꿈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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