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호 2014년 봄 [특집] 특집-우리 밥 한번 먹자

[ 해남 미세마을에서 함께 사는 청년들 ]

혈연이 아니어도 우리는 식구

글\사진 정혜성


우리는 별일이 없는 한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밥을 먹는다. 가끔 특별하거나 색다른 것을 먹을 일도 있지만, 특별할 것 없는 밥을 얼마나 잘 먹 고 있는가가 얼마나 잘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미세마을 식구들은 매일 그 밥을 같이 먹으며 산다. 그것이 이곳에서 사는 데 별 다른 규칙이 없는 우리가 거의 유일하게 지키는 일 중 하나다.


내가 살고 있는 미세마을은 전라남도 해남의 시골에 있다. 새로운 삶을 꿈꾸며 모인 청년들이 함께 같이 밥을 해먹고 농사를 짓고 공부를 하 며 살아간다. 지금은 다섯 명이 같이 살고 있고 곧 세 명의 새로운 식구들이 합류해, 올해 여덟 명이 한 식구로 살 예정이다. 동네 할머니들은 무슨 사연이 있기에 젊은 사람들이 여기서 이러고 있냐고 하시지만 우리는 별다른 사연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여기 모인 이유라고 하면, 농사지으며 시골에서 사는 것에 관심이 있고 그렇게 살고 싶거나, 복잡한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단순 소박하게 살고 싶거나, 주어진 일을 하 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삶을 살고 싶었거나 그런 정도일 것이다.


함께 심고 거둔 것으로 같이 밥 먹기

미세마을에는 특별한 규칙이나 지향이 없다. 다만 같이 더불어 잘 살기 위해 노력한다는, 원칙 아닌 원칙이 존재한다. 그래서 무엇이든 상황 에 맞춰 그때그때 할 수 있는 사람이 마음을 내어 하고자 한다. 물론 제대로 되지 않을 때가 더 많다. 하지만 이곳에서 꼭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그것은 함께 밥을 먹는 것이다. 도시가 아닌 농촌에서, 많은 규칙이 정해져 있지 않은 공간에서, 남이었던 사람들이 만나 같이 밥을 먹는다는 일은 단순히 음식을 함께 나눈다는 행위를 넘어 여러 가지 의미를 담게 된다.


우리 밥상에 올라오는 음식은 고기나 생선을 빼고는 대부분 이곳에서 심고 기르고 거둔 것이다. 미세마을의 농사는 수익형과 자급형으로 나누는데 수익형 농사는 주로 한살림에 출하하거나 직거래로 파는 것이다. 그렇게 돈을 만들어 이곳 살림살이에 필요한 경비를 충당한다. 자급형 농사는 우리가 먹을 것을 심는 농사이다. 지난해 농사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각자 관심이 있거나 좋아하는 작물을 자급 농사하기로 정하고 그걸로 한 해를 먹었다.





모든 농사가 다 잘되는 것은 아니어서 날씨에 의해, 벌레나 새가 공격하는 정도에 따라, 그리고 각자가 들인 정성에 따라, 실컷 먹을 수 있던 것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것도 있었다. 그래도 대체로 우리가 들인 품에 비해 하늘이 후하게 쳐주었다. 그래서 작년 한 해 늘 풍족하게 배불리 맛있게 먹었다. 지난겨울도 그동안 저장해 놓은 가을의 열매로 부족함 없이 잘 지냈다. 이제 서서히 새 작물이 나올 시기와 남은 양을 가늠해야 한다. 5~6월까지 춘궁기 동안 음식이 떨어지지 않게 아껴 먹고, 봄나물을 캐어다 먹으며 잘 버티는 일만 남았다.


규칙이 정해지지 않은 공간에서 밥을 준비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지금까지는 마음을 낼 수 있는 사람, 여유 있는 사람이 밥을 하면서 지냈다. 그 마음에는 성격 혹은 성질도 포함되어 있어서 끼니때가 되면 밥걱정을 하는 사람이 먼저 밥을 준비하고 그런 걱정이 전혀 없는 사람은 매번 밥을 하는 일에서 뒤로 밀리기 일쑤다. 밥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 더 자주하게 되는 경향도 있어 여자들이 더 자주 하게 되기도 하다.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이 밥하는 것만이 아니어서, 밥 에 관심 있는 사람은 밥을 하고 청소에 관심 있는 사람은 청소를 하면 되니 아직까지는 감당할 만 한 수준이었는데 앞으로 새 식구가 들어오면 자율적으로 밥을 준비하기는 조금 어려워질 것 같다. 다 모이면 우리에게 맞는 새로운 방식으로 밥 준비를 시작해 보려고 한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다른 습관으로 살던 다 큰 어른들이 한자리에서 밥을 먹는 일도 어렵다. 몸에 밴 습관을 짧은 시간에 조율해가는 일은 쉽지 않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누구는 버리는 게 싫어서 매일 냉장고를 뒤져, 남은 것은 무엇인지, 썩어가는 것이 없는지를 살펴 밥을 한다. 누구는 어떻게 하나도 안 버릴 수 있냐며 그러다가는 안 좋은 것만 먹게 된다는 생각으로 밥을 한다.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 면 상에 달걀이라도 올라와야 밥을 먹을 수 있는 사람도 있다. 이런 과정들이 반복되다 보면 서로에 대한 불만이 생길 수도 있고 평소에는 잘 넘기던 일이 기분이나 감정 상태에 따라 견딜 수 없을 때도 있다. 이제 일 년쯤 같이 살고 나니 그러한 성향 하나하나가 그 사람이겠거니 하는 마음이 되었다. 다만 그것이 포기가 아닌 이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늘 한 켠에 존재 한다.


10만 원 기본소득 나누기

미세마을은 아직 정해진 바가 없어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공간이다. 가장 길게 산 친구가 이제 4년 정도 되었고 대부분 일 년 남짓 산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아직은 해결해야 하는 문제도 많고 갈 길도 멀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실험을 통해 해 보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을 찾아 다양하게 시도하려고 한다. 올 한 해는 ‘배움터’라는 이름으로 그 과정을 살아보기로 했다. 농사에서부터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 그 가운데서 자기 자신을 살피며 돌보는 일까지 매일의 일상에 서 배운다는 것이 배움터가 지향하는 바이다.


배움터에서도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계획 중이다. 그 가운데 하나는 함께 사는 이들이 월 10만 원 정도의 기본소득을 나눠 갖는 일이다.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일은 아니지만 아 직 수입이 그리 많지 않고 또한 수입 구조 또한 안정되지 않은 이곳에서, 특히 연초에 투자비가 많이 드는 농사의 특성 때문에 잘 운영하기 쉽다. 그렇지만 이곳에 사는 이들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상반기에는 농사에 필요한 비용을 조달하기 위한 방안으로, 꾸러미의 일종인 BB박스의 회원도 모집하고 있다. BB박스라는 이름은 바리바리를 줄인 말이기도 하고, BB크림 하나면 여러 화장품이 한 번에 해결되듯 우리가 직접 기르거나 가공한 물품을 풍성하게 담겠다는 뜻이다.


미세마을은 식구의 테두리를 확장했다. 지역에서 살고 싶은 청년들에게 완충지가 되고자 한다. 분명 지금의 농촌에는 청년이, 청년에게는 농촌이 서로 필요하다. 살면서 더욱 체감하게 된다. 그러나 돈도 없고 연고나 정보가 부족한 청년에게 농촌은 접근하기 쉬운 조건이 아니다. 새로운 일에 적응할 몸과 마음의 준비 기간도 필요하다. 미세마을에서 함께 밥을 먹고 사는 식구들은 이곳에 계속 남아 같이 일을 꾸려갈 수도 있고, 농촌 환경에 적응하고 농사를 배우면서 스스로 설 준비가 되면 독립해 새로운 자신만의 공간을 마련할 수도 있다. 이를 위해 ‘미세농부협동조합’을 만들었고 이를 통해 지역의 토지나 빈집을 마련해두고 필요한 청년이나 귀농자들에게 빌려주는 사업도 계획하고 있다.


서로 다른 이들이 한자리에서 밥 먹기

나고 자라면서부터 같이 밥을 먹고 지내왔던 익숙한 관계나 어쩌면 더 편할지도 모르는 혼자만의 생활을 떠나, 몰랐던 사람들과 만나 밥을 먹는 관계가 되는 일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여러 사람이 지내다 보면 크고 작은 갈등이 있기 마련인데, 그때 가장 어려운 일은 한자리에서 밥을 먹는 일이다. 그래서 마음이 어려운 사람들은 밥을 건너뛰거나 때로는 혼자 먹는 일을 택하곤 한다. 이제 이곳에 산 지 일 년이 갓 넘은 나도 혼자 밥을 먹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러고 보면 미세마을에서 함께 밥을 먹는 시간은,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밀도 높은 감정들이 오고가는 자리이다. 이 자리에 함께한다는 것이 내게 어떤 의미를 남기게 될까? 지금은 다 알 수 없지만 사람과 함께하는 일,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 일,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쏟는 것은 그리 아깝지 않을 듯하다.



* 미세마을에서 만나요.(cafe.daum.net/freemise)



↘ 정혜성 님은 해남 미세마을에 살고 있고 아직 배울 게 더 많은 농부입니다. 버려지는 것을 살려내는 일과 갈무리를 좋아하여 미세마을에서 이런 것을 활용해 요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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