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호 2013년 겨울 살림,살림

[ 말글살림 ⑬ 집과 건축에 관련된 우리말 ]

멋과 자연스러움이 깃든 전통 한옥

글 박남일

“기둥이 서고, 대들보가 올라가고 굴도리, 중중보, 하중도리, 마루보, 가중도리 그리고 마지막 마루도리까지 올라가고 보면 집의 뼈대는 다 되는 셈이다.”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에 묘사된 집 짓는 장면이다. 문장 하나에 한옥 한 채의 뼈대가 다 담긴 듯하다. 그러나 실제로 한옥 한 채를 짓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뼈대가 된 뒤에도 바닥을 꾸미고, 벽을 바르고, 지붕을 이어야 비로소 집의 꼴이 나온다. 그러고도 집채 주위를 다듬고, 담장을 치고, 마당까지 고른 뒤에야 살만한 집이 되는 것이니 실로 집 한 채를 짓는다는 것은 먼저 자연의 허락을 얻고도 사람의 손길이 수만 번이나 가야 하는 복잡한 일이다.
그런 만큼 집과 관련된 말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집의 주요 부분은 물론이고 집안 구석구석까지 숱한 말들이 촘촘히 박혀 있다. 거기에는 전문적인 한자말과 일상에서 쓰는 토박이말이 마구 섞여 있다. 집짓는 목수가 아닌 이상 다 알기 어려운 말들이다. 하지만 옛 궁궐이나 이름난 절을 좀 더 운치 있게 구경하려면, 전통 한옥과 관련된 말 몇 개쯤 잘 알아두면 좋을 터이다.


무거움과 가벼움이 절묘하게 조화된 지붕마루


한국의 전통미, 하면 가장 먼저 한옥이 떠오른다. 특히 유려한 곡선미를 한껏 내뿜는 한옥 지붕은 멀리서 보면 날아갈 듯 가벼워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그 육중함이 사뭇 위태롭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므로 한옥 지붕은 무거움과 가벼움이 절묘하게 조화된 건축미학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그런 한옥 지붕의 곡선미는 지붕면을 가르는 모서리들, 즉 ‘지붕마루’에서 잘 느껴지는데 각기 이름들이 있다. 먼저 지붕의 중심 맨 꼭대기에 평행하게 진 마루턱은 보통 대마루라고 한다. 그런데 모양이 용과 닮아서 흔히 용마루로 불린다. 한편 용마루 좌우 끝에서 아래쪽으로 경사지게 이어진 네 개의 모서리는 내림마루이다. 용의 네 발이 연상되는 각각의 내림마루는 다시 추녀마루로 이어지기도 한다. 추녀는 날아갈 듯 들려 있는, 한옥 지붕 처마의 뾰족한 네 귀를 말한다.
그러고 보면 한옥 지붕도 경우에 따라 모양이 조금씩 다르다. 전통 한옥 지붕의 모양은 크게 맞배지붕, 우진각지붕, 팔작지붕, 모임지붕 등이 있는데 각 지붕마루의 모양으로 구별할 수 있다. 먼저 맞배지붕은 지붕의 옆면이 수직으로 잘린 모양이다. 지붕의 전체적인 모양이 책 한가운데를 펼쳐 엎어놓은 것처럼 단순하다. 본채보다는 행랑이나 헛간 지붕에서 주로 보인다. 맞배지붕의 옆면은 보통 두툼한 널조각을 잇대어 삼각형 모양으로 마감하는데, 이를 박공이라 한다. 이에 비하면 우진각지붕은 건물 네 면에 모두 지붕면이 있다. 우진각은 모퉁이에 각이 졌다는 뜻이다. 용마루 양끝에서 내림마루가 이어지는, 소박한 초가지붕 모양이다. 숭례문을 비롯하여 돈화문, 홍화문 등의 문루 지붕도 우진각지붕이다. 팔작지붕은 합각지붕이라고도 하는데, 위엄과 권위가 있어 보이는 한옥 기와지붕이다. 쉽게 말하면 우진각지붕 위에 맞배지붕을 얹어놓은 것과 같은 모양이다. 경복궁 근정전처럼 고색창연한 옛 대궐은 대부분 팔작지붕 형식이다. 그밖에 모임지붕은 하나의 꼭짓점으로 지붕골이 모이는 모양이다. 지붕면에 따라 사모, 육모, 팔모 지붕으로 나뉘며 주로 정자나 탑 등에 사용되었다.


집이 되려면 대들보도, 마룻대도, 서까래도 있어야


한옥에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보면, 육중한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대부분 나무들이다. 그나마 몇 개의 기둥이 대부분의 무게를 감당하고 있다. 그 때문에 기둥은 튼튼한 주춧돌을 발판 삼아 지붕을 머리에 이고 있다. 그러나 기둥이 저 혼자 설 수는 없다. ‘들보’나 ‘도리’, 나아가 ‘서까래’와 서로 엮여 지붕의 무게를 감당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들보는 집의 앞쪽 기둥과 뒤쪽 기둥을 걸치는 나무이다. 들보를 줄여서 보 또는 봇장이라고도 한다. 특히 지붕의 무게를 기둥에 전달하는 자리에 있는 보는 기둥만큼이나 굵고 튼튼한 나무를 사용해야 한다. 그래서 큰 들보를 대들보라고 한다.
도리는 기둥들 위에 가로로 걸친 나무를 가리키는 한자말이다. 도리에는 지붕의 면을 지탱하는 서까래가 놓인다. 서까래는 기왓골을 따라 지붕면을 이루는 여러 개의 나무 뼈대이다. 서까래 가운데서도 처마의 네 귀퉁이에 대어 추녀마루를 지탱하는 서까래는 특별히 추녀라 부른다. 산사의 추녀 끝에는 흔히 풍경이 매달리기도 한다. 단면의 모양에 따라 둥근 것은 굴도리, 네모나 팔모난 것은 납도리라고 한다. 또 걸치는 위치에 따라 주심도리, 중도리, 종도리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이 가운데 종도리는 흔히 마룻대라 하는데, 지붕의 용마루와 나란한 방향으로 대들보 위에 걸려서 서까래 윗부분을 걸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아랫면에 집을 기념하는 글귀를 적어 넣은 마룻대를 올리는 일을 상량이라 하여 의미 있는 절차로 여긴다. 즉 우리가 아는 상량식은 집의 뼈대가 완성되었다는 의미인 것이다.
예전에 교장선생님들은 종종 학생들에게 “나라의 동량이 되라”고 말했다. 이때의 ‘동량’은, 집의 뼈대들 가운데서도 매우 중요한 마룻대와 대들보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학생들 미래를 집에 비유한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모든 학생들에게 동량이 되라는 건 문제였다. 대들보와 마룻대만으로 집이 되는 게 아니라 서까래도 있어야 하고, 문짝도 있어야 하고, 벽도 필요하고, 구들장도 있어야 하는 까닭이다.


아궁이에 불을 때고 구들을 데워 겨울 난다


집을 짓는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바닥 위에 벽을 치고 지붕을 덮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어찌 보면 집의 본질은 바닥에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줄곧 방바닥에 몸을 대고 산다. 바닥에 앉아 먹고, 바닥에 누워 잔다. 게다가 집의 규모를 말할 때도 몇 평이니 하면서 바닥의 넓이를 기준으로 하지 않는가? 결국 집을 이루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닥이다.
먼저 한옥의 방바닥을 살펴보자. 불기운이 지나가는 방고래 위에 얇고 반반한 ‘구들장’을 덮어 깐 다음에 흙을 발랐다. 그처럼 구들장을 놓아 만든 방을 구들방이라 한다. 부엌이나 집 밖의 ‘아궁이’에 불을 때면 연기와 불길이 아궁이 안쪽의 부넘기를 타고 넘어 방고래를 지난다. 방고래는 보통 불길이 몇 갈래로 고랑이 져 따로 따로 들게 놓는데, 이를 골고래라 부른다. 이처럼 골고루 골고래를 지난 불길이 방 전체를 따뜻하게 데운 뒤, 연기와 함께 굴뚝으로 빠져나간다. 그로써 따뜻한 실내 공간이 마련되는 것이다.
온돌은 대체로 부엌 바닥보다 높다. 아궁이에 불을 때면 불기운이 잘 들고 연기가 잘 빠져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길의 진행이 자연스럽지 않으면 아궁이 입구 쪽으로 불길이 역류하여 집안에 연기가 가득 차기도 한다. 그처럼 불길이 잘 들지 않아 좀처럼 데워지지 않는 구들을 쇠구들이라 한다. 또 한옥의 방은 한쪽에서만 불기운이 들기 때문에 윗목과 아랫목의 구별이 뚜렷하다는 단점도 있다. 게다가 불을 많이 때다 보면 아랫목의 부넘기 가까운 자리가 너무 뜨거워 까맣게 그을리기도 한다. 그런 자리를 불목이라 한다. 불목에 오래 앉아 있다가는 엉덩이 데이기 십상이다.
한옥의 여름 생활공간은 주로 마루이다. 방과 방 사이에 있는 통마루는 바람이 통하는 시원한 거실이다. 통마루를 대청이라 부르기도 한다. 또 한옥에서는 기둥 안쪽으로 복도처럼 좁게 난 툇마루도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엉덩이를 겨우 걸치고 앉을 정도로 좁게 낸 툇마루는 실퇴라고 한다. 그리고 기둥 바깥쪽에 쪽마루가 나 있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여름에는 아예 분리하여 옮길 수 있도록 평상처럼 된 들마루도 있다.
이처럼 구들과 마루로 이루어진 한옥은 매우 자연친화적이다. 겨울을 나는 닫힌 공간인 구들과 여름을 나는 열린 공간인 마루가 조화된 까닭이다. 따라서 한옥의 집안은 따뜻함과 차가움, 닫힘과 열림의 실용적 미학이 구현된 공간이다. 전통 한옥에서 지붕의 멋스러움이 겉멋이라면, 집안의 자연스러움이야말로 참멋이라 할 수 있다.



↘ 박남일 님은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말 풀이사전》 등 우리말 관련 책을 썼습니다. 지금은 지리산이 바라보이는 동네에서 우리말글을 연구하는 한편,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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