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호 2013년 겨울 살림,살림

[ 아이살림 ]

어느 날 나타난 개 한 마리

글 신순화

그 개는 여름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다. 자그마한 암캐였다. 처음에는 그저 담 없는 우리 집에 놀러 온 개인 줄 알았다. 하루가 지났는데도 개는 여전히 있었다. 집을 나왔나? 주인을 잃어버렸나? 갸우뚱했지만 저러다 제가 온 곳으로 가려니 했다. 그런데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가지 않았다.

 

종일 마당을 어슬렁거리다가 우리 개들에게 먹이를 줄 때마다 곁으로 다가와 저도 달라고 꼬리를 흔들어 댔다. 덥고 습한 집에서 세 아이를 돌보며, 이미 큰 개 두 마리와 열 마리가 넘는 닭까지 챙겨야 하기에, 난데없이 나타난 이름 모를 개가 반갑지 않았다. 폭우가 쏟아지는 날, 덩치가 저보다 더 큰 우리 집 수캐들을 내쫓고 제가 개집을 차지하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본 후에는 기어코 내쫓아야 하는 미운 개가 되어 버렸다.

볼 때마다 빗자루나 막대기를 들고 가라고 위협을 하고 종주먹을 하고 달려드는 시늉을 하면 재빨리 산으로 달아났다가 내가 다시 집으로 들어가면 살랑살랑 마당으로 돌아오곤 했다. 우리 개들이 남긴 사료를 악착같이 긁어먹고 두엄간을 뒤져 음식물 쓰레기들을 주워 먹느라 사방에 음식 찌꺼기들을 떨구는 모습을 볼 때마다 하루 빨리 쫓아내고 싶었다.


남편과 내가 미워하고, 함부로 하고, 무섭게 해도 그 개는 가지 않았다. 낮선 사람이 보이면 우리 개들보다 먼저 짖었고 우리가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먼저 달려와 꼬리를 흔들어댔다. 마치 처음부터 우리 집에 있던 것처럼 굴었다. 해코지할까봐 경계하면서도 몸이 다 흔들릴 정도로 꼬리를 흔들며 주위를 맴돌았다. 먹이를 줄 수도 안 줄 수도 없었다. 우리 개들만 챙겨 먹이려 해도 곁에서 굶고 있는 그 개의 절박한 눈이 맘에 걸렸다. 그렇다고 먹이를 주기 시작하면 정말 나를 주인으로 여길까봐 걱정도 되었다. 결국은 마지못해 조금씩 주면서도 빨리 제집으로 가라고 구박을 하곤 했다.


싫어하고 내쫓으려는 우리 부부와는 달리 아이들은 처음부터 그 개를 좋아했다. 크고 힘이 세서 맘 놓고 만지기 어려운 우리 집 개에 비해, 아이들이 부르면 달려와 꼬리를 흔들며 몸을 낮추고 제 얼굴을 가져다 대는 그 개가 예쁘다고 야단이었다. 어느새 아이들은 ‘복실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복실이 등엔 살이 다 보일 정도로 심하게 패인 큰 상처가 있었다. 아이들은 아마 전 주인이 학대했거나 탈출하다가 얻은 상처인 모양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우리 집에 온 게 다행이라며 기르자고 졸랐다.


가여웠지만 그렇다고 그 개를 키울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이미 해태와 해치라는 대형견 두 마리가 있기에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이미 사료며 접종에 돈도 적잖이 드는데다 명절에 시골이라도 며칠 다녀올라치면 이웃사람들에게 개를 부탁하느라 적지 않은 폐를 끼치고 있었다. 그보다 내력을 알 수 없는 개인 것이 더 싫었다. 어떤 환경에서 살다 온 개인지 알 수 없어서 꺼림칙했다. 혹 나쁜 병이라도 있을까 싶어, 아이들이 쓰다듬고 손을 핥게 하는 것도 못마땅했다. 게다가 시골살이에는 쓸모없어 보이는 것들에도 임자가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에 이러다가도 언제고 개 주인이 나타날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암캐가 오니 동네 수캐들이 밤마다 모여들었다. 다른 개들과 우리 개들이 으르렁거리며 싸우는 소리에 잠도 못 잘 지경이었다. 그러더니 복실이의 배가 조금씩 불러왔다. 새끼를 가진 것이다. 산바라지를 하고 아쉬워하며 분양하는 일이 싫어 애초부터 수캐만 두 마리 키웠다. 그런데 덜컥 들어온 낮선 개가 새끼를 가진 것이다. 심란했다.

 

이럴 줄 알고 진즉 내쫓으려 한 것인데 이제 새끼까지 밴 녀석은 더욱 우리에게 의지하는 눈치였다. 배가 불러올수록 복실이는 식탐이 늘었다. 사료가 더 많이 든다고 불평하며 눈을 흘기다가 복실이 눈빛을 보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새끼를 품고 있는 어미의 간절함이 눈에 비치고 있었다. 나도 아이를 셋이나 낳은 어미였다. 아이를 가지면 배가 더 고픈 것이 당연하다. 짐승이라고 다를 리 없다. 어떻게 해서든 새끼를 안전하고 건강하게 낳으려는 모든 노력을 복실이는 하고 있었다. 그게 생명을 가진 어미의 본능 아닌가.

 

비로소 복실이에게 마음이 열렸다. 복실이의 눈빛에서 지난 시절의 내 심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복실이는 가만히 다가와 그토록 저를 미워하던 내 손을 핥았다. 그때부터 복실이 먹이를 따로 챙겼다. 사료도 듬뿍 주고 국을 끓이고 나면 남는 멸치를 꼬박꼬박 챙겨 주었다. 남편도 나날이 불러가는 복실이 배를 보면서 마음이 풀린 듯했다.

 

그 즈음 갑작스레 어머님 상을 당해 남편은 슬프고 힘든 날을 보내고 있었다. 생명을 귀하게 여긴 어머님을 생각하며 남편은 복실이를 새롭게 보기 시작했다. 어머님이 계셨다면 분명 잘 챙겨주라고 하시면서, 우리 집에서 새끼를 낳은 일은 복이라고 하셨을 것이다. 어느 날 남편은 퇴근한 뒤에 마당에 복실이 집을 만들었다. 남편이 복실이를 거두는 것으로 어머님의 뜻을 따르려 한다고 느꼈다. 마음이 뭉클했다.

 

집을 만들어 주고 아이들이 어릴 때 쓰던 이불도 푹신하게 깔아주고 언제 새끼가 나올지 매일 기다렸다. 추석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남편의 전화를 받았다. 퇴근하니 복실이 집 안에 새끼 네 마리가 있더라는 것이다. 그렇게 기다렸는데 결국 복실이는 가족들이 아무도 없을 때 저 혼자 새끼를 낳은 것이다. 고맙고 대견했다. 아이들은 늦은 시간인데도 복실이 집을 들여다보며 그 앞을 떠날 줄 몰랐다. 조그맣고 하얀 강아지 네 마리가 복실이 젖꼭지에 매달려 있었다.

 

그새 복실이는 어미가 되었다. 새끼를 핥고 젖을 주는 표정은 생명을 먹여 살리는 어미의 얼굴이었 다. 더운데도 새끼 네 마리에게 몸을 내어 주고 개집 안에 꼼짝 않고 앉아 있는 복실이를 보자니 삼 복더위에 땀을 뻘뻘 흘려가며 젖 물려 세 아이를 키운 내 모습이 떠올랐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새끼 를 위해 최선을 다해 어미 노릇을 하는 건 마찬가지다.

 

새끼들이 태어난 후 아이들은 종일 마당에서 살았다. 복실이 집에 몸을 반이나 넣고 새끼들을 만지고 집 밖으로 기어 나온 새끼들을 도로 넣어 주었다. 새끼들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어른 개 세 마리, 새끼 개 네 마리가 뛰는 마당은 한동안 ‘개판’이었다. 새끼들은 젖을 먹으면서도 어미 사료를 넘보곤 했다. 일곱 마리 개들이 먹어 치우는 양도 어마어마했다.

아이들이 강아지를 너무나 예뻐했지만 어렵게 설득해서 분양하기로 했다, 더 이상 개를 키울 여유가 없다는 것을 힘들게 받아들였다. 대신 좋은 주인을 잘 찾아서 보내주자고 약속했다. 첫째 강아지는 아랫집 아주머니 댁으로 갔다. 막상 아주머니가 강아지를 품에 안고 내려가자 마음이 아렸다. 강아지는 곧 목줄이 메여 길가에 있는 개집 앞에 묶였는데, 며칠을 끙끙거리며 우는 소리가 잠결에도 들려와 아이들이 오래 마음 아파했다.

 

둘째 강아지는 큰아이 학교 선생님 댁으로 보냈다. 자주 들를 수 있는 곳이라 아이들이 제일 예뻐하던 강아지를 보냈다. 보내기 전에 품에 안고 사진 찍고 오래 쓰다듬다가 새 주인 품에 건넸다. 필규도 윤정이도 눈물을 글썽였다. 셋째 강아지는 아랫집 식당 주인아저씨가 데려갔는데 이틀 만에 줄을 끊고 탈출해서 우리 집으로 돌아오는 바람에 다시 데려다 주었다. 우리를 보면서 끙끙거려 돌아오는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 마리를 보낼 때마다 오래 마음을 앓았다. 마지막 한 마리는 우리 밭 위쪽에서 농사짓고 계신 할아버지가 시골로 데려가시기로 했다.

 

초여름에 갑자기 우리 집에 나타난 복실이 덕에 적지 않은 일을 겪었다. 집에서 강아지가 태어난 일은 나와 아이들에게 귀한 경험이었다. 두 달 가까이 사랑스런 강아지들과 마당을 뛰며 함께 놀면서 보드랍고 따스한 생명을 품을 수 있었던 것도 행복이었다.

 

어느 날 새로운 생명이 다가와 친구가 되기도 하고, 느닷없이 떠나거나 사라져서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하지만, 어떤 생명도 귀하게 여기고 기꺼이 마음을 여는 자세를 갖게 한다. 이런저런 계산으로 마음을 못 여는 어른에 비해 아이들은 늘 생명들에게 너그럽고 따스하다. 어쩌면 그런 아이들이 있는 곳이어서 복실이는 우리 집으로 온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복실이를 받아준 것이 아니라, 복실이가 우리를 선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머님이 떠나신 여름날, 새 식구가 생겼다. 한 생명과의 인연이 다하고도 삶은 이렇게 새로운 생명에게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 곁에 있는 목숨을 소중히 여기며 함께 잘 지내리라 다짐을 해 본다. 복실아. 우리 오래오래 같이 살자. 사랑한다.

 

 

↘ 신순화 님은 필규, 윤정, 이룸 세 아이와 하루하루를 신나게 보내고 있는 엄마입니다. <한겨레> 육아 전문 사이트 ‘베이비 트리’와 개인 블로그에 행복한 출산과 육아에 관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두려움 없이 엄마 되기》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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