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호 2013년 겨울 살림,살림

[ 너와 함께 문화재: 반구대 암각화에 말 걸기 ]

고래야, 고래야 먹이도 잘 먹고 튼튼하게 자라렴

글 박찬희

  “아빠, 내 선물이야?”

블록 놀이를 하던 딸아이가 쪼르르 달려와 택배 상자를 열었다. 그러더니 자기 책은 대충 살펴보고 내가 주문한 책을 집어 들었다. 몇 장을 넘겨보던 딸아이가 “아빠, 나 이 책 읽어줘!”라며 책을 내밀었다. 반구대 암각화를 보러 가기 전에 읽어 보려던, 초등학생을 위한 《반구대 암각화 이야기》라는 책이었다. 동물과 옛날 사람들 그림이 마음에 쏙 들었나?



‘아이가 이 내용을 알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일단 책을 펼쳤다. 글자를 모르는 딸아이는 평소대로 그림부터 뚫어지게 봤다. 뭐가 그렇게 궁금한지 새로운 그림이 나올 때마다 “이거 뭐하는 거예요”라거나 “왜 이런지 알아요”라며 자기 생각을 종알종알 말하기에 바빴다. 그날부터 딸아이와 나는 반구대 암각화에 말 걸기를 시작했다.

 

며칠 뒤 반구대 암각화를 보러 울산 대곡리로 답사를 떠났다. 반구대 암각화 앞을 흐르는 강이 바닥까지 훤히 드러난 데다 강바닥에 있을지도 모를 유적을 찾기 위해 발굴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은 터였다. 딸아이와 같이 가고 싶었지만 대중교통으로 갈 생각을 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부산 처가에서 출발해 네 시간이 지난 후에야 반구대 암각화 앞에 설 수 있었다.

암각화는 깊은 계곡 수십 미터 절벽 아래 비가 들이치지 않는 암벽에 있다. 옛사람들에게는 더 영험했을 곳이다. 사진만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이었다. 그러나 보고 싶었던 새끼를 업고 가는 귀신고래나 절을 하는 듯한 사람은 볼 수 없었다. 보존한다는 이유로, 멀찍이 떨어진 강 건너편 전망대에서 보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오히려 암각화 세부를 잘 보려면 계곡 위에 만든 울산암각화박물관으로 가는 편이 나았다. 아쉬움에 날이 저물 때까지 서성거리다 발걸음을 옮겼다. ‘힘들어도 딸아이와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배가 고프면 먹어야 하는데”

처가로 돌아가자 기다리던 딸아이가 한마디 했다.

“아빠만 좋은 데 다녀오고!”

그로부터 두 주쯤 지난 어느 날, 딸아이는 책상 위에 놓인 암각화 책을 발견했다. 그리고는 내게 달려와 “아빠, 읽어줘.”라며 대답은 듣지도 않은 채 내 무릎에 엉덩이를 쑥 들이밀었다. 책장을 넘기자 배에 탄 사람들이 창살로 고래를 잡는 그림이 나왔다. 비슷한 장면이 반구대 암각화에도 새겨져 있었다.

그림을 보다 “고래를 잡아서 뭐하려고 했을까”라고 묻자, “먹으려고. 왜인지 알아요? 옛날 사람들은 가게도 없었어요.”란다. 아이들에게 가게는 모든 것을 구할 수 있는 보물상자 같은 곳이니까. 몇 장을 넘기자 동물을 잡아 신에게 바치고 절하는 사람들이 나왔다. 반구대 암각화는 사람들이 고래를 비롯한 여러 동물을 먹을 수 있도록 허락한 신에게 감사를 드리는 제사터였을 가능성이 높다. 딸아이는 절하는 사람을 보더니 “얘가 이 동물을 잡았기 때문에 절을 하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얼마 전 배운, 머리에 깃털을 꽂은 인디언이 나오자 반가운 모양이었다. 고래를 잡으려는 인디언과 손으로 막으며 고래를 잡지 말라는 그린피스 회원이 나왔다. 그림을 유심히 보던 딸아이가 “뭐라고 그러는 거예요”라고 물었다. “이 사람들(인디언)은 고래를 잡아먹고 사는 사람들이야. 그런데 이 사람들(그핀피스 회원)이 ‘고래 잡지 마세요’ 이렇게 말하는 거야. 그래서 이 사람들(인디언)은 ‘우리는 고래를 먹고 살아요’라고 말하는 거야.”라고 하자 이번에는 딸아이가 말했다.

“배가 고프면 먹어야 하는데.”

딸아이 말대로 사람은 배가 고프면 먹어야 한다. 고래를 멸종위기로 몰아넣은 사람들은 고래의 존엄성을 알고 고래를 잡았던 인디언이 아니라 고래를 상품으로밖에 보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어쩌면 그들은 배가 고프지 않은 사람들일지 모른다.

 

선사인의 암각화를 이해하는 ‘상상력’

책을 덮으며 다섯 살 딸아이와 반구대 암각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즐거웠다. 다음날 아침에도 딸아이는 눈을 뜨자마다 달려와 “아빠, 우리 옛날 책 보자”며 아빠를 졸랐다. ‘아! 할 일도 많은데. 짧게 요약해서 이야기해 줘야지.’라며 책을 읽자 딸아이는 귀신같이 알아차렸다.

“아빠, 여기에 있는 걸로!”

‘그래, 아이와 있을 때는 아이에게 집중하자.’며 마음을 비웠다. 이번에는 고래가 많이 나오는 장면에 눈길을 멈춘 딸아이가 고래가 많은 이유를 알려주었다.

“고래가 너무 커가지고 우리 다 태울 수 있는 줄 알고 고래를 여기저기 여기저기 많이 그렸어. 우리를 다 태우고 있는 모습을 그리려고. 그런데 ‘뚜뚜’가요. 뚜뚜가 빨간 자동차에요. 고래를 타 본 적이 있대. 점프하다가 휙 날아가다가 회오리바람에 엄청 이만한 회오리바람에 날아가다가 고래한테 철퍼덕 앉았는데 고래가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 준다고 바다를 막 헤엄쳐 가지고 어떤 뽀로로 나라에 철컥 도착했어. 뚜뚜가. 근데 고래가 너무 좋아서 고래만 그리고 사람은 안 그린 거야.”

선사인의 암각화에서 뽀로로에 나오는 빨간 자동차 뚜뚜가 나오다니. 어른들이 들으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웃고 넘어가겠지만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많은 고래들을 풀어내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게 이런 상상력이 아닐까 싶다.


그날 오후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렸다. 덕분에 공원에는 낙엽들이 수북하게 쌓였다. 딸아이와 함께 공원으로 놀러갔다. 비에 젖어 그네를 타기도 힘들고 뭐를 할까 고민하다 두툼하게 쌓인 낙엽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바로 이거야.

“우리, 나뭇잎으로 배 만들어서 고래사냥 할까”

나뭇잎을 모아 길이 4~5미터쯤 되는 배를 만들고 뾰족하고 긴 나뭇잎을 모아 창살로 쓰기로 했다. 준비가 끝나자 딸아이는 배에 타고 나는 배 밖으로 나와 “쉬이익, 쉬이익” 소리를 내며 고래 흉내를 냈다.

“나뭇잎 발사!”

딸아이가 창살을 던지자 아빠 고래는 도망가는 시늉을 하다 “에고 힘들어 더 못가겠다.”라며 멈췄다.

 

이번에는 같이 고래 사냥을 떠났다. 딸아이가 외쳤다.

“애기 혹등고래가 나타났어요. 애기 혹등고래는 죽이면 안 돼!”

날이 캄캄해질 때까지 고래를 잡고 상어를 잡고 요리도 하고 잔치도 벌였다. 그 자리에는 연대와 인물을 외워야 하는 역사나 문화재는 없었지만 어느 때보다도 즐거웠다. 역사라는, 문화재라는 이름에 따라다니는 엄숙함과 비장함은 누가 만들어 냈을까? 명랑하고 즐거울 수는 없는 걸까?

딸아이와 함께 반구대 암각화에, 고래가 살아 있는 동해바다에 가봐야겠구나 싶은 마음이 커졌다. 그러던 어느 날 버스를 타면서 딸아이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암각회 멀어”

“암각화”

“응. 암각화. 남극보다 멀어”

“남극보다는 가까운데.”

“그러면 멕시코보다는 멀어”

“멕시코보다 가까운데.”

“암각화 실제로 보려면 어떻게 해야 돼”

“실제로 보려면 암각화 있는 데로 가면 되지.”

맞다. 암각화를 실제로 보려면 암각화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참,딸아이가 암각화를 만든 사람들이 고래를 보며 뭐라고 빌었다고 생각할지 궁금했다.

“고래야, 고래야. 먹이도 잘 먹고 튼튼하게 자라렴.”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말인데. 그렇다. 우리가 자주 하던 말이었다. 이제는 딸아이가 선사인들에게, 고래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암각화, 이렇게 찾아가요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는 국보 제285호로,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반구대안길 254에 있다. 깎아지른 절벽의 아래쪽 너비 약 10m, 높이 약 3m에 이르는 바위에서 여러 가지 그림들이 발견되었다. 바다동물과 육지동물, 도구와 사람 등이 새겨졌다. 바다동물로는 고래, 거북, 물개, 물새가 확인되며, 육지동물로는 사슴, 멧돼지, 호랑이, 여우, 늑대 등이 새겨져 있다. 특히 고래는 지금도 종류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상세하며 고래사냥 장면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의: bangudae.ulsan.go.kr, 052-229-6678

 

 

↘ 박찬희 님은 역사와 한국미술사를 공부하고 10년 넘게 박물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했습니다. 아내의 육아휴직이 끝날 무렵 “그럼 내가 보지.”라는 말과 함께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그동안의 육아 경험을 모아 《아빠를 키우는 아이》(2013)를 펴냈습니다. 틈나는 대로 오랜 시간의 숨결이 깃든 곳을 찾아다니며 느꼈던 감동을 글로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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