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호 2013년 겨울 살림,살림

[ 살림의 현장 ]

고등·대학 통합 배움터 ‘삼일학림’을 준비하며

글 박민수

지난해 3월, 오랜만에 다니던 대학교를 갔다. ‘등록금을 인하하라’, ‘비정규직 시간강사 생존권을 보장하라’, ‘미화노동자 생존권을 보장하라’ 등 학교의 비민주성을 고발하는 대자보가 곳곳에 있었다. 대안학교에서 선생님을 하고 있어서인지 이전에도 봐왔던 현수막과 대자보의 의미가 새삼 다르게 다가왔다.


학교의 비민주적 행태에 대해 학생들이 침묵한다면, 그건 학생들이 죽어 있다는 증거다. 개인화되어 자기 스펙만을 쌓으려는 요즘 시대에 교내문제·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투쟁하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번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학교가 투쟁의 대상인가.


또 다른 대자보에 눈이 갔다. 학교 당국이 적립금으로 주식투자를 하다가 200억 손해를 봤다는 내용이었다. 등록금은 천정부지로 계속 오르고 있던 때에 돈을 잃었다는 소식이 놀라웠다. 우리 시대는 학교도 주식투자를 하는, 금융화가 지배하는 사회다. 다시 말하자면, 학교도 주식을 통해 이윤을 남기는 기업이라는 이야기다. 금융화 시대, 학교의 한 단면이다.

 

이런 일들을 보며, 한 가지 질문이 생겼다. 학교는 사람을 기르는 곳이다. 그런데 시간강사, 미화노동자 등 차별받는 타자가 발생하고, 점차 기업의 논리가 강화되는 이곳에서 어떤 사람이 길러질까? 우리는 지금, 학교에서 앞으로 살아가야 할 소중한 가치와 삶을 배우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사회에서 만연한 불평등과 차별이 학교에서도 재현되고, 심지어 그것을 정당화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 시대 가장 큰 비극 중 하나가 아닐까.

 

더불어 사는 능력을 배우며

나는 강원도 홍천에 있는 생동중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가르치고 있다. 2011년에 개교한 생동중학교는 2013년 12월, 첫 졸업식을 앞두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생활관(기숙사)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더불어 사는 힘을 기르고, 농촌에서 ‘농’의 가치를 바탕으로 한 삶의 양식을 만들어왔다. 생태뒷간을 쓰며 똥과 오줌을 모아 거름으로 쓰고, 농사력에 따라 농사를 짓고, 직접 서당 건물도 생태적으로 지어보고, 직접 해 온 나무로 구들방에 불을 지피며, 생명이 순환하고 뭇 생명과 더불어 사는 삶의 양식을 몸에 들이며 살아가고 있다.


첫 졸업식을 앞두고 함께했던 지난 3년을 돌아보며, 과연 우리 학생들에게 ‘더 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모색했다.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입학하기 전, 학생들은 직접 ‘자기소개서’를 쓴다. 한 학생이 쓴 자기소개서가 생각난다. 일반 초등학교 6학년이던 그 학생은 대안학교인 생동중학교에 들어올지 많이 고민했다. 어머니의 권유로 학교를 알아보기 위해 계절학교(방학 때 열리는 일종의 캠프)와 들살이(학기 중, 산줄기 물줄기를 따라 다양한 지역의 생태·역사·문화를 공부하는 과정. 학생들이 직접 기획한다)에 참여했다. 이런저런 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선배들과 관계를 맺은 후 입학하기로 결정했고, 그 이유를 자기소개서에 적었다.


“처음에 공부는 ‘하기 귀찮고 짜증나는데 다른 애들이랑 경쟁까지 해야 하는 이상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공부를 아주~ 좋아해서 밖에서 뛰어노는 걸 싫어하고 학원만 다니며 공부하는 아이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배움’을 재밌게 하는 학교를 보았습니다.”


공부하기 어려운 현실을 재미있게 표현한 구절과 ‘배움을 재밌게 하는 학교’라고 쓴 표현이 눈에 들어왔다. ‘매일 아침 일곱 시 삼십 분까지 우릴 조그만 교실로 몰아넣고 전국 9백만의 아이들의 머릿속에 모두 똑같은 것만 집어’ 넣는다는 노래가사가 우리의 교육 현실을 대변한다는 건 뼈아픈 현실이다. 재능과 잠재력을 발휘하게 하기보다 일률적인 기준으로 등수를 매기며 경쟁을 조장하는 학교에서 아이들이 배움을 재미있게 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보다, 어떻게 평가받고 어떻게 좋은 대학을 들어갈 수 있을지에 모든 관심이 쏠려 있기 때문이다. 결국 배움을 재미있게 하는 것은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며, 이 배움이 내가 어떤 삶을 사는지와 어떻게 연결될지 알 때가 아닐까? 어떻게 보면 학교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가장 소중한 것은 결국 ‘학생심(學生心)’이다.


우리 학생들이 많이 듣는 질문이 있다고 한다. 일반학교에 비해서 학생수가 많지 않은데, ‘더 많은 사람과 만나 봐야하지 않겠나’라는 질문이다. 최근 이 주제와 관련해 대화를 나눴다. 학교에서 함께 준비하고 있는 ‘고등 이후(고등·대학 통합) 과정’에 대해 졸업을 앞둔 학생들과 의견을 나누는 집담회를 열었다. 미리 설문지를 나눠주고,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공부하고 싶은지를 적었다. 평가할 때 공통적으로 나온 이야기는, 중학교에서 얻은 가장 소중한 배움 중 하나가 “더불어 사는 능력”이라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된 일화가 있다. 한 학생이 어렵게 친구와 갈등을 풀면서 한 고백이다. “이전 학교를 다닐 때, 갈등이 있으면 안 보면 그만인데, 여기선 그러지 못하는 게 한편으론 참 어려웠고, 다른 편으론 참 감사했어요.” 많은 사람 가운데 몇몇 사람과만 관계 맺는 것보다, 적은 사람과 있더라도 모두와 진득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세계가 또 다른 참배움을 이룰 수 있는 공간이 아닐까? 우리는 ‘더불어 사는 것’이 ‘능력’임을 알지 못할 때가 있다. 능력을 기술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 더불어 사는 것은 가장 중요한 능력이다.

 

공동체에 토대를 둔 대안교육

최근에 한 대안학교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중·고등 통합 대안학교인데, 대부분의 고3 학생들은 수능시험을 준비한다고 했다. 선생님은 대학 말고 어떤 길을 제시해 줘야 할지 고민이 된다고 말했다. 올해 겨울, 중학교의 첫 졸업생이 나온다. 2014년 고등·대학 통합 과정을 시작한다. 보다 참 배움의 길을 걸을 수 있는 학교를 고민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존의 초중고·대학으로 구분된 편제가 만드는 과도한 대입 편향 교육의 한계와 상상력의 제약을 극복하려고 한다. 배움터 이름은 ‘삼일학림’이다.


 

1년 전부터 농사와 생태건축, 마을밥상, 대안학교, 공교육, 시민단체, 일반직장 등의 현장에서 활동하는 20~40대 생활인 서른 한 명이 삼일학림을 준비하는 기획위원으로 모였다. 공교육현장에서 느꼈던 답답함을 새로운 장에서 고민하고 실천하고 싶다며 참여한 이들도 있고, 농사를 지으며 참된 생명살림의 삶을 어떻게 살 수 있을지 공유하고 싶어 참여한 이도 있다. 또 직장에서 생명평화의 가치를 안고 어떻게 살지 고민하며 그걸 풀어내고 싶어 참여한 이들도 있다. 유명인사가 아닌, 일상에서 자신이 배운 가치를 잘 살아가려 애쓰는 ‘생활인’들이 저마다 동기와 고민을 가지고 학림을 만드는 과정에 함께하고 있다. 기획위원들은 연구와 교육뿐 아니라, 운영과 재정을 함께 책임지는 ‘유기적 지식인’을 꿈꿨고, 그렇게 실천하며 삼일학림의 교육 기조를 만들고 있다.


학교는 결국 새로운 시대를 살아갈 사람을 기르는 곳이다. 기르는 것은 가치와 철학, 그리고 그것을 구현하는 생활양식을 배우고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러기에 참대안교육이 되기 위해서는 대안적 가치를 구현하는 공동체의 삶을 토대로 해야 한다. 그래야 힘 있고 정직하게 교육할 수 있다.



삼일학림의 가치와 철학의 토대를 이루는 공동체는 아름다운마을공동체이다. 아름다운마을공동체는 서울 삼각산 자락 인수동과 강원도 홍천에서, 농촌과 도시를 살리는 '농도상생마을공동체'를 일구어가고 있다. 결혼·임신·출산·육아, 몸 수련과 자연치유, 생활영성, 식의주락 생활양식의 전환, 대안교육, 청년지도력 양성, 마을복지, 생명평화 등에 관심을 가지고 실천하고 있다.


산업문명과 도시문명에 토대를 둔 현대문명은 도저히 생태적으로 지속할 수 없다. 강한 인간이 약한 인간을, 인간이 자연을, 도시가 농촌을 착취하는데, 이는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않고 마음을 황폐하게 만든다. 배움과 공부가 대입과 취직에 종속된다면, 미래의 문명은 암담하다. 그러기에 새 시대를 전망하고, 미래 문명의 가치와 삶의 양식을 만드는 공부를 하고, 그런 삶의 기예를 익히는 배움터인 삼일학림의 걸음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학생심’을 잃지 않고, 뭇생명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생명평화의 삶을 갈구하는 배움의 숲을 잘 이루어가면 좋겠다.

 

 

삼일학림

2014년 문을 여는 고등·대학 통합 과정 대안학교이다. 강원도 홍천을 중심으로, 다양한 장과 연계해서 공부한다. 무학년제, 교과선택제, 학점제를 실시한다.
교육목표는 첫째, 생명평화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농생활 역량, 둘째 주체성 안에서 키워가는 창의적 능력, 셋째 소통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삼일학림에서 필수과목을 이수하고 일정한 학점을 취득하면 학림 과정을 마무리하는 예식을 갖는다. 필수과목은 농생활 교과와 철학이다. 농생활교과는 생명 순환 농사, 생태건축, 생활기술, 수신·양생 등이다. 철학에서는 우주와 존재에 대해 근원적으로 성찰하고, 새로운 문명에 대한 이해, 경험과 생각을 개념화하는 공부를 한다.
선택과목은 농생활 심화 과정, 학문 연구 과정(말글살이, 우리말글, 한문, 외국어 등), 탐구교과(수학·과학기술·사회·정치경제·역사·철학 등), 학력검정고시교과, 고등과 대학 과정의 학문, 그리고 예술생활 과정(도예·사진·음악·연희·연극·춤·서예·디자인·미디어·영상) 등이다. 또한 학생들은 공부하는 동안 최소 1년 이상 학림을 떠나 자율적으로 자신이 정한 곳에서 공부하는 독립학습 기간을 가진다.

문의 및 입학상담 : 033-433-9290, 누리집: cafe.daum.net/maeulschool

 

↘ 박민수 님은 강원도 홍천 생동중학교에서 학생들의 생기를 받으며 즐겁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삼일학림 기획위원으로 참여하며 새로운 배움터에 대한 부푼 꿈을 안고 설레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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