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호 2013년 겨울 살림,살림

[ 협동의 힘: 복정고등학교 교육경제공동체 ]

학생도 조합원·이사

글 사진 우미숙 편집위원


점심시간, 매점 앞에서 피아노연주가 시작됐다. 매점에서 음료와 과자를 사들고 나온 학생들이 연주자 앞에 자리를 잡으며 앉아 음악의 흐름에 몸을 움직인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점심시간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작은 음악회를 연출한 학생들은 경기 성남시 복정고등학교 협동조합 학생이사들이다. 

복정고등학교 교육경제공동체 사회적협동조합은 2013년 6월 24일 창립총회를 하고 10월에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승인이 난 새내기 협동조합이며 성남시 1호 학교협동조합이다. 첫 사업으로 10월 17일에 복스쿱스(Bok's Coops)라는 이름으로 학교매점을 열었다.

작은 음악회가 열린 곳은 매점 앞 ‘복덕방(福德房)’이라는 이름의 카페다. 매점 앞 자투리 공간에 작은 무대와 책을 꽂는 선반을 설치하고, 네댓 개의 탁자와 의자들을 들여와, 다용도 만남의 장이자 도서실이자 공연장으로 꾸몄다. 

학생이사인 고등학교 1학년 이명원 님은 학교와 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상상하다보니 수십 가지 할 일이 떠올랐다며 그 상상이 ‘복덕방 카페’에 고스란히 담겨 있고, 이번 음악회도 그중 하나라고 말한다.
 
학생이사들이 우리밀로 만든 과자를 고르고 있다.
  
학생·학부모·교직원이 공동주인, 학생들의 폭발적 관심
 
복정고 협동조합이 시작된 것은 “학생들의 간식거리와 생활용품을 가까이에서 구할 수 없을까” 하는 고민에서부터다. 2011년 처음 문을 연 복정고는 설립된 지 얼마 안 되어 혁신학교로 지정을 받았다. 설립 당시 학교 주위는 생활 편의시설이 전혀 없이 황량했다. 지금은 이곳저곳에 건물이 들어섰지만 여전히 학교 주위에는 놀거리·먹을거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한산하다. 이 사정을 잘 아는 자동판매기 사업자들이 약삭빠르게 후문 밖에 과자와 음료가 들어있는 자동판매기를 설치해 학생들 호주머니를 털고 있었다. 자동판매기가 설치된 후 학생들의 무단외출이 잦아졌고 한 대였던 자동판매기가 두 대, 세 대로 늘어났다. 

교사와 학부모들의 절실함이 통했을까? 올해 초 성남시에서 성남지역 학교에 ‘협동조합 형태로 학교매점을 운영하는 시범학교를 제안하는 내용’의 공문을 보내왔다. 학교 밖 자동판매기를 매점 삼아 이용해 온 학생들이나 좋지 않은 먹을거리를 찾아 담을 넘는 학생들을 걱정하던 교사와 학부모들에겐 고민을 해결할 좋은 기회였다. 경기도 교육청의 지지와 성남시 산업진흥센터, 사회적기업지원센터, 성남시 일자리창출과의 지원으로 이루어진다니 시작이 그리 어렵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편하게 공모에 응했고 시범학교로 지정을 받았다.

지난 4월 23일, 경기도 학교협동조합 시범사업 업무 협약을 맺으면서 복정고에서는 학교협동조합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6월에 300명 이상의 조합원이 참여한 총회에서 16명의 이사(학생이사 8명, 직원이사 4명, 학부모이사 4명)와 이사장을 선출하고 복정고등학교 교육경제공동체 사회적협동조합을 세상에 내놓았다.
 
협동조합의 첫 사업은 학생들에게 건강한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친환경 매점 개설이었다. 성남시가 5천만 원의 지원을 약속했고, 2013년 12월까지 시설 마련과 매점관리 활동가 급여까지 지원하는 것으로 하여 자본금을 마련하는 부담은 그리 크지 않았다. 다만 학교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주체를 세우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서울의 영림중학교가 학부모가 먼저 나서서 협동조합을 만든 것에 비하면 복정고등학교에서 학부모의 참여는 저조했다. 다행히 학부모회 임원을 맡고 있던 학부모 네 명이 선뜻 참여 의사를 보였고, 협동조합 학부모이사로 선출됐다. 

교사들의 참여를 이끄는 것도 힘겨웠다. 평소에 협동조합에 관심이 있었고, 한살림 조합원인 박수경 씨가 협동조합 담당을 맡겠다고 손들고 나선 경우다. 윤리과목 선생님인 박수경 씨는 평소에 ‘학생들에게 가장 재미있는 수업이 뭘까? 가치 있는 교육이 뭘까’를 고민해왔다. 그러던 차에 학교협동조합 활동에서 방법을 찾을 수 있겠다는 기대를 하며 참여했다. 

학교협동조합의 힘은 학생들에게서 나왔다. 학생이사 후보자 신청공고가 나간 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학교 학생이 전부 700명이고, 고3 학생들을 제외하면 400명가량인데 110명의 학생이 이사 후보로 지원했다. 박수경 씨는 이 많은 학생들을 후보로 세워 총회에서 선거를 한다고 생각 하니 앞이 캄캄해졌다. 할 수 없이 세 차례 예비선거를 해서 학생이사 정원 8명의 2배수인 16명 을 선정해 총회 후보로 냈다. 학생들의 관심과 참여는 교사와 학부모들에게는 놀라운 일이었다. 황성경 이사장은 “학생들이 그렇게 적극적일 줄 몰랐다”며 학생들이 분과활동을 통해 보여준 추 진력, 논의와 기획에서 끝나지 않고 실행에 옮기는 적극성, 스스로 방법을 찾아 해결하는 모습이 “소름끼치도록 감동적”이었다고 말한다. 
 
90% 친환경 매점, 복스쿱스 
 
조합원 수 350명, 출자금 1계좌 5천 원. 성남시의 5천만 원의 지원이 없었다면 출자금만으로 매점을 개설하기는 불가능했다. 학교가 세 워진 2011년 이후 학교에 매점이 한 번도 없었던 터라 교사와 학부모, 학생들은 서둘러 매점을 만들었다. 친환경 매점을 목표로 조금 욕심을 부렸다. 설탕과 소금의 양을 줄이고 첨가물을 크게 줄인 한살림의 우리밀빵, 아이쿱의 친환경 주스와 과자를 들여왔다. 동네 슈퍼마켓의 먹을거리 와 비교하면 비싸게 느껴지고, 맛도 담백하기만 한 빵과 과자지만, 매점이 문을 연 지 한 달이 지나니 학생들의 입맛과 가격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올해 12월까지는 성남시의 지원이 있어 매점 활동가 급여와 공간 사용료를 충당할 수 있으나, 내 년이 걱정이다. 남는 장사를 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인 비용은 자체 충당이 되어야 하기 에 수익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방학이 되면 최대 2개월은 매점 문을 닫아야 하는 실정이라 더욱 신경이 쓰인다.
 
학생이사들은 매점 앞에 있는 카페 '복덕방'이
1학년부터 3학년까지 함께 만나는 장소가 되기를 희망한다.
 
 
학생들의 생활 문화 요구도 담아낼 터 
 
‘매점 아줌마’로 불리는 협동조합 담당 교사 박수경 씨는 “매점은 협동조합 사업의 시작이고 일부”라고 말한다. 매점은 사회적협동조합의 사업으로 학생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겠다는 것이 분명히 아닌 만큼 학생들의 필요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박수경 씨는 매점과 협동조합을 통해 “학생들에게 노동의 가치를 알려주고 학교가 민주적인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고, 불량 먹을거리에 노출된 아이들에게 친환경 먹을거리의 가치를 알려주고 싶다.”고 말한다. 

협동조합에 참여한 학생들도 박수경 씨와 뜻을 같이 한다. 분과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고등학교 1학년 고혜린 학생이사는 “복덕방이 1학년부터 3학년까지 함께 만나는 장소가 됐으면 좋겠고, 전시회도 열어보려고 한다.”며 복덕방 카페의 활동에 기대를 건다.

졸업을 앞둔 서우남 학생이사는 협동조합 활동이 “아무래도 사회과학이나 인문과학과 연계되는 게 있어 교과서를 떠나 세상을 넓게 볼 기회가 되었다.”며 진로를 찾는 데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의욕을 가지고 시작한 학교협동조합이지만 넘어야 할 산이 까마득하다. 학교협동조합이 늘어나면 공동구매가 가능하겠지만 현재 개별 학교가 물류를 담당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매년 교사와 학생들 1/3이 떠나고 새로 들어오는 상황도 난감하다. 매점 운영에서도 식품위생법상의 제약이나 어린이 식생활안전관리 특별법에 의한 제약으로 친환경 먹을거리를 제공하고자 했던 계획을 확대하기 어려운 점 등 여러 장애가 놓여 있다. 

“지치지 않았어요. 이제 시작인데 졸업할 때까지 가야죠.” 

홍보단 활동부터 재미있게 협동조합 활동을 해온 고혜린 학생이사는 당차다. 조만간 복덕방 카페 공간에서 벼룩시장을 연다고 한다. 매점과 문화, 학교생활을 연결한 다양한 사업과 활동을 꾸려보겠다는 학생들의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하다. 

어려움은 어디에나 있는 법, 그러나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숨은 허락할 수 없다는 듯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의지가 넘쳐 보인다.
 
 
↘ 우미숙 님은 한살림에서 조합원 소식지 <좁쌀 세 알>을 만들고 글을 쓰는 일을 해왔습니다. 현재 한살림성남용인 이사장이며 《살림이야기》 편집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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