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호 2013년 겨울 살림,살림

[ 안녕하세요: 장일순의 글로 노래를 만든 우창수 음악가 ]

나는 미처 몰랐네 노래가 나였음을

글 이선미 편집부\사진 류관희


“노래라는 말은 놀다라는 동사에서 왔어요. 노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돌아가면서 노래시키는 게 싫어요. 노래는 지 풀에 지가 겨워서 해야지, 하고 싶으면 안 시켜도 부를 낀데.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으면 글을 쓰고, 더 많으면 노래를 부른다고 해요. 그만큼 사람 곁에 늘 가까이 있는 일상적인 거죠. 그런데 요즘은 노래를 소비하라고만 하니까 자기 노래는 안 부르게 됐어요. 생산하는 사람과 소비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게 현실이에요. 하지만 노래도 생산과 소비가 하나인 거거든요. 스스로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노래를 노래답게 하는 거죠.”



무위당 선생님이 “이렇게 살아라” 말씀하시는 듯해


“석달 전까지만 해도 장일순 선생님의 글로 노래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어요. 언젠가 기회가 되면 할 수도 있겠지 라고만 생각했죠. 그런데 올해가 한살림부산이 시작한 지 20주년 되는 해라 여러 가지 행사가 있었거든요. 이현주 목사님이 토크콘서트를 한다고 해서 그때 부를 곡을 지어가겠다고 했죠. 한두 달 꼬박 밤을 새서 곡을 지어갔는데, 사람들이 들어보더니 음반을 내자고 해요. 그래서 한 달 간 작업해서 완성했죠.” 한살림부산 20주년 기념 음반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음을>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장일순이 직접 글을 남긴 게 많지 않아 여러 문구를 모아서 노래를 만들었다. ‘옛날에’라는 곡은 1절은 장일순이 쓴 글로, 2절은 우창수 씨가 붙였다. ‘뚝방길에서’는 우 씨가 장일순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지은 곡이다. ‘한 송이 꽃 속에 천지가 있네’는 사람들이 함께 부르면 좋을 것 같아 반주도 넣어두었다. ‘하나의 풀’은 함께 노래하는 아내 김은희 씨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다. “장일순 선생님을 모시는 예술가들이 많은데 왜 노래를 안 만들었을까 궁금해서 사람들에게 물어봤어요. 아마 아버님 같아서, 너무 어려워서 그런 게 아닐까 하더라고요. 그래서 나는 장일순 선생님을 뵌 적이 없으니까, 그럼 뭘 몰라서 곡 쓴 걸로 합시다 했죠.” 짧은 시간 안에 힘들지는 않았는지, 어떻게 해냈냐고 물으니 그저 한 마디 한다. “곡이, 그냥 써지더라고요. 무위당 선생님이 이렇게 살아라 하고 말씀하시는 듯했죠.”


한 송이 꽃 속에 천지가 있네 한 송이 꽃 속에 우주가 있네
한 송이 꽃 속에 천지가 있네 한 송이 꽃 속에 우주가 있네


오늘은 가을날 산길 걸었네 소리 없이 아름답게 피었다 가는
너를 보고 나는 부끄러웠네 너를 보고 나는 부끄러웠네


세상에 모든 것 일체중생이 내 한 줄기 꽃 속에 깃들어 있네
알아야 하거늘 알아야 하네 내 한 줄기 꽃 속에 깃들었음을


장일순 글, 우창수 곡 <한 송이 꽃 속에 천지가 있네>


내도 바꾸고 세상도 바꾸는 노래를 하고 싶다


부산에서 노래한 지 20년이 다 돼가는 우 씨는 노동자문예운동을 하면서 노래를 시작했다. “기타를 칠 줄 아니까 새 노래를 먼저 배울 수 있었어요. 그걸 사람들에게 가르쳐주다 보니까 어느 순간 내가 그걸로 밥을 먹고 있더라고요. 그러려면 제대로 해야겠다 생각했지.”
하지만 현장에서 노래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예전에는 노래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서른 살이 넘으면 생활고 등 때문에 많이들 떠나가요. 떠난 후에 단절도 굉장히 심하고요. 나도 서른 중반 때는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노래를 계속해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한 치의 흔들림도 없다, 대단하다 했지만 뭘 모르고 하는 소리였죠. 가난하게 살자고 마음먹고 나서야 편하게 노래할 수 있게 됐습니다.”
노동조합이 관료화되는 모습이나 사람에 대한 무너짐으로 괴로울 때도 많았다. “정치활동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거기서 이야기하는 대로 노동자가 정치권력을 획득한다면 과연 세상이 변화할까, 우리 삶의 문제는 해결될까 하는 물음이 생겼습니다. 자동차를 만드는 노동자라면 화석연료가 고갈된 후 자신의 노동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한 자기 전망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단순히 계속 일해서 돈 벌어야지 생각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근본적인 물음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 거죠.”



아내와 함께 하면서 그의 노래는 좀 더 깊고 넓어졌다.


그러면서 우 씨는 자신의 노래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다. “어쩔 땐 내 하는 게 앵무새 같기도 했어요. 총파업 안할 낀데 끝까지 싸웁시다 하는 게 허무하기도 하고요. 내 노래가 어떤 공간에서 어떤 쓰임이 되는 게 세상을 바꾸고 내도 바꿀까 싶었죠.”
전에는 잘 보지 않았던 함석헌, 장일순의 책을 보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한살림선언>은 처음 나왔을 때 본 적이 있지만, 당시에는 노동자가 자기 권리를 찾는 등의 사회변화가 먼저라고 생각해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그런데 목소리를 높이기보다 자신의 삶을 낮춤으로써 사람들을 변화시킨 사람들, 이들의 삶이 또 다른 사람들의 삶을 바꾸는 것을 봤다. “한살림을 하게 된 게 아이의 아토피 때문이든 뭐든 어떻습니까? 와서 삶의 방식이 바뀌는데요. 한살림부산에 참 인상적이었던 게, 해마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소비조합원들이 생산자들을 초대해서 잔치를 벌이더라고. 일 년 동안 얻어먹은 데 대한 고마움으로 손수 차린 밥을 대접한다는 거예요. 그게 참 보기 좋아 잔치에 함께하면서 노래도 부르던 게 인연이 됐고.”


텃밭 키우고 아이들 농사짓기


나 스스로가, 내 삶이 바뀌면 세상도 바뀌겠구나 생각하게 되면서 자급자족하는 삶, 대안적인 삶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하게 됐다. 7~8년 전부터는 “내 먹을 것은 내가 지어야 되겠다” 생각하고 옥상텃밭에 농사짓는다. “그런데 어딜 봐도 비둘기 퇴치법이 없어요. 우리 집 옥상텃밭에 새순이 올라오면 비둘기들이 와서 다 먹어버리거든. 비둘기가 원래 초식동물이더만. 모형 뱀을 두 마리 사서 풀어놔도, 독수리 모형을 만들어놔도 소용이 없어서 결국엔 망을 쳤어요. 누가 비둘기 쫓는 법 좀 알려주면 좋겠네.”
또 초등학생 아이들과 함께 ‘개똥이어린이예술단’을 만들었다. “우리 애들이 노래는 잘 못 불러요. 그래도 최선은 다하고 있습니다만. 동요대회 같은 데 가면 꾼들이 있는데 너무 기계적이라 징그러워요. 아이들이 아이답게 노래 불러야지, 아이가 조용필처럼 노래하면 좋은 겁니까? 애들은 자기가 부르고 싶은 대로 가사도 막 바꿔서 부릅니다. 이제 6학년인 애가 왜 사는지 모르겠다고 하는데, 그렇게라도 해소하지 않으면 안 돼요. 아이들이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아파트에서 뛰어내리지는 않을 겁니다.” 개똥이어린이예술단의 아이들은 단순히 노래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글도 쓰고 같이 밭도 맨다. 그 기운으로 노래할 뿐, 연습은 별로 안 한다. “우리 애들 노래 들어보면 많이 틀립니다. 그래도 10년, 20년 후에 아이들이 그 선생님 왜 그랬을까 한번쯤은 생각하지 않을까요?”



옥상텃밭에서는 종종 음악회도 연다(왼쪽). 밀양 송전탑 반대집회에도 노래를 보탰다(오른쪽).


무엇을 이루려 하지 않고, 지금 이곳에서


전에는 2~3분짜리 노래 한 곡을 해도 논리적이고 분명한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무엇을 이루려 하지 마라”는 무위당의 말처럼 하고 싶은 대로, 느낀 바대로 노래하면 된다는 자유로움이 생겼다. 동요도 쓰고, 노동가요도 쓰고, 농부들의 노래도 쓰면서 장르에 상관없이 다양한 사람들과 즐겁게 노래할 수 있게 됐다.
“사람 많고 큰 곳보다는 다섯 명 정도쯤 모여 있고 나이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이 좋습니다. 아프고 눈물 날 때도 있지만 이편이 마음 편해요.” 그래서 월급 받는 가수가 되면 좋을 것 같다. 많이도 말고 보통 월급 받는 사람만큼, 의료보험 낼 정도만 되면 좋겠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변하거나 그만두는데, 이렇게 되면 돈에 구애받지 않고 올곧게 노래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가 사는 곳에서 자기 이야기가 나오기에, 우 씨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부산에서 노래할 것이다. “한국의 음악상황이 서울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많은 후배들이 서울로 갑니다. 그런데 서울만 가면 다 됩니까? 다 가면 지역은 어떻게 됩니까? 부산뿐 아니라 광주든 대구든 자기가 사는 곳, 그 곳을 지키는 사람의 소중함을 알아야 합니다. 우창수의 공연을 보려면 부산에 오는 게 맞습니다. 후배들이 창수선배는 그래도 부산을 지키고 있다, 힘들지만 할 만한 갑따 하고 말합니다. 그래서 내가 원하지 않아도 생긴 책임감이 있습니다. 부산에서 공연도 하고 곡도 쓰고 음반도 만들 수 있다,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이렇게 지역을 지키는 사람들이 외로워서 그만두거나 다른 사람들이 미워서 돌아서지 않도록 하려면 연대해야 한다. 생태·영성 음악제를 기획한 것도 그 때문이다. 어디서 지원받는 것 하나 없이 함께 준비하고 즐긴다. 특히 점심식사가 별난데, 진행하는 사람이건 관객이건 모두 도시락을 싸와서 나눠먹는다. “안 싸오는 사람 멕이고 서로 나눠먹고 그게 다 되드라고.”



한살림부산 20주년 축하공연으로 개똥이어린이예술단과 함께 노래했다.


내년에는 하고 싶은 일들이 많다. “몇 번 시골에 가서 느티나무음악회라고 한 적이 있어요. 하루쯤 농사일에 지친 시골 어르신들에게 노래를 들려주는 거예요. 그런데 너무 치고 빠지는 느낌이 들더라고. 노래를 해준다는 것도 별로고요. 그래서 ‘농담콘서트’를 하고 싶어요. 농부들을 모셔다가 그분들의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어 도시 사람들이 듣는 거예요. 아이들 손잡고 와서 우리 집에서 먹는 귤을 생산하는 농부의 이야기를 듣는 거죠. 또 내년이 장일순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 20주기 되는 해지요. 기회가 되면 전국에 있는 한살림을 순회하면서 노래하고 싶어요.” 그렇게 된다면 운 좋게도 가까운 곳에서 우 씨의 노래를 들을 수 있겠다. 한 가락 노래 속에 깃든 꾸밈없는 삶의 이야기를.


* 우창수의 노래나무 심기 cafe.daum.net/woo2011에서 공연 및 음반 정보를 알 수 있다.


http://www.salimstory.net/renewal/sub/view.php?post_id=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