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호 2013년 겨울 살림,살림

[ 땅땅거리며 살다-경상남도 상주 햇살아래공동체 이학수·김영숙 생산자 ]

사과 따고 소먹이는 '선녀과 나무꾼'

글 김세진 편집부\사진 류관희

빨간 우편함이다. 경북 상주 햇살아래공동체 ‘이학수·김영숙’ 생산자 집을 제대로 찾아왔다는 표시다. 한살림생산자연합회 누리집 게시판에서 이 우편함에 ‘새가 둥지를 틀었다’는 소식을 보았다. 혹여 새가 놀랄까봐 우편함에 ‘편지를 넣지 마세요’라고 써놓았다는 이야기를 보고, 이 집 주인들 품이 넉넉하게 느껴져 내심 어서 만나고 싶었다. 가서 보니 부엌 후드에도 새들이 둥지를 틀었다. 비바람을 피하려고 집을 지었으려니 싶어서, 새들을 위해 후드도 안 쓴 지 오래되었단다.


이학수·김영숙 생산자는 사과와 포도농사를 지으면서, 소도 기르고 있다. 농사 부산물을 소에게 먹이고 소똥은 다시 밭에 뿌리는 순환 농사를 짓는다. 며칠 전 올해 들어 세 번째 서리가 내렸다. 서리를 세 번 맞은 부사가 더 달아, 한창 일손이 바빴다. 분주할 텐데 환한 미소로 우리를 반기며 어서 밥부터 먹자고 한다.

막 지은 밥을 안고 김영숙 생산자를 따라 ‘은혜농원’ 한가운데로 들어섰다. 사과밭 한가운데 있는 커다란 소나무 아래에서 먹는 점심이라니, 무슨 동화 같지 않은가. 은혜농원 과수밭이 아름다워 더욱 그랬다. 멀리 산이 보이고 해가 잘 들고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눈에 거치는 것이 없었다. 사과밭 9917㎡(3천 평) 와 포도밭 9917㎡(3천 평)에 심은 960주가 다 내려다 보였다. 함경도 실향민인 이학수 생산자의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새로 고향을 만들어 주고, 집안 묏자리로도 쓰려고 고른 땅이다.

이학수 생산자는 지난겨울에 가지치기한 사과나무로 장작불을 피워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옹기종기 모닥불가에 둘러서서 먹는 점심. 겉도 속도 따스해졌다.

 

키도 작고 나이도 어리지만

“내가 그렇게 예뻤어”
“예뻤다기보다 매력 있었지.”
결혼한 지 25년이 넘었다는데 아직도 저런 닭살 돋는 대화가 오간다. 이십대 중반, 이학수 생산자는 키도 더 크고 나이도 두 살이나 많은 김영숙 생산자를 삼 년 반 동안 쫓아다녔다. 둘 다 늦깎이 대학생이었다. 입학 동기들은 다섯 살이나 많은 이학수 생산자를 “아저씨”라고 부르며 어려워했는데, 어떤 여학생이 대뜸 “이형”이라고 불렀다. ‘누가 이렇게 부를 수 있는가’ 싶어 놀랐는데 김영숙 생산자가 자기도 나이가 많다고 했다. 말을 막 하는 그게 편하고 호감이 갔다.

이학수 생산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런저런 일을 하다가 대학에 갔던 참이다. 등산을 즐기고 나무를 좋아해서 임학과를 택했다. 김영숙 생산자도 직장생활을 하다가 25살에 대학에 들어갔다. 옷에 관심이 많아 의상학과에 진학했다. 키가 크고 늘씬한 김영숙 생산자는 종종 학과에서 여는 패션쇼 모델도 했다. 김영숙 생산자는 당시 “키도 작고 뚱뚱하고 나이도 어린” 이학수 생산자가 눈에 차지 않았다. 애를 많이 태워서 이학수 생산자가 “속상해서 먹은 술값이면 집 한 채도 살 정도”란다.

“우리 과는 실습비가 많이 들었거든요. 학비도 없고 해서 휴학할까 하는데 어느 날 이 사람이 돈을 내미는 거예요. ‘어느 어느 장학재단에서 장학금 받을 사람을 모집하기에 영숙 씨를 추천했는데 되었다’고 하면서요. 좋았죠. 두 번이나 그랬어요.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결혼하고 나서 어느 날 시어머니가 ‘학수 쟤는 뭘 잘 깜빡거려. 대학 다닐 때 등록금도 두 번이나 잃어버려서 다시 줬잖아’ 하는 말을 듣고 나서, 이상해서 이 사람에게 물어보았죠. 알고 보니 이 사람이 그걸 나에게 준 거야.”

김영숙 생산자가 이학수 생산자를 다시 보게 된 건, 가족의 훈수 덕이다. 매일 찾아오는 그를 지켜보더니 “이만한 사람 없다”고 했다. 특히 올케 언니는 “저 남자 말고 다른 사람에게 가면 벌 받을 거”라고 할 정도였다. 외모만 보던 눈을 돌려 다른 각도에서 보니 마음이 열렸다. 친구들은 의상학과를 나온 김영숙 생산자와 임학과를 나온 이학수 생산자 부부를 ‘선녀와 나무꾼’이라고 부른다. 지금은 상황이 바뀌어 선녀가 나무꾼을 쫓아다닌다.


팔지 못해 잼 만들고 술 담그고
진행은 속전속결이었다. ‘선녀와 나무꾼’은 대학교 3학년 때 결혼해 서울에 둥지를 틀었다. 대학 공부에 실망만 하던 이학수 생산자는 아버지가 상주에 땅 19,834㎡(6천 평)를 샀다는 소식에 반색했다. 한 평에 300원이라는 싼 값이었다. 도시에 사는 게 지겹기도 했다. 상주에서 과수농사를 하겠다고 했더니, 땅 관리할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부모님도 반가워했다.

이학수 생산자는 상주에 내려와 농사를 지으며 1년 반 동안 주말마다 서울을 오갔다. 첫아이를 임신하고 유산기가 있었던 김영숙 생산자는 어디에 나가지도 못하고 서울의 집에서 책만 읽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무섭고 외로워 “같이 있는 것 말고 더 바랄 게 없어서” 귀농을 결심했다. 그 말을 듣고 김영숙 생산자의 어머니는 많이 말렸지만 그때 김영숙 생산자는 농사일이 힘든 걸 미처 다 짐작하지 못했다. 상주로 아예 내려온 뒤로는 인근에 집이 없어 외로워 울고, 일이 힘들어 울었다. 귀농 3년 후 갑자기 시부모님과 함께 살게 된 일도 힘들었다.

서울 잠실에서 주유소를 하시던 시아버지가 어느 날 이름 모를 병으로 쓰러지셨던 것이다. 휘발유 가스를 많이 마신 탓에 병을 얻었을 것이다. 깨어나긴 했지만 제대로 걷지 못하셨다. 공기 좋은 곳에서 요양하기 위해 시부모님이 상주로 오셨다. 이학수 생산자는 당시 농사 초년생이라 경제적으로 부모님께 의지하던 부분이 많았기에 살림을 꾸려가기가 힘에 부쳤다. 심은 지 1년도 안 된 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해 내다 팔 게 없는데, 사야 할 농자재들은 많았다.

 

더구나 ‘돈 안 되는’ 친환경 농사를 짓고 있었다. 처음부터 친환경 농사에 관심이 있었는데 한살림 1세대 생산자라고 할 수 있는 조성용·최병수 씨 같은 분들과 어울리는 바람에, 더 친환경 농사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들이 하라는 대로 제초제 대신 현미식초 등을 이용했다. 20년 전에는 한살림 생산자들도 딱히 이렇다 할 방법을 찾지 못해 이런저런 실험을 하던 때였다. 같이 고민하면서 함께 망하고 실패하는 일들이 이어졌다.

마침내 저농약 사과가 열렸지만 크기도 작고 색도 예쁘지 않아 팔 곳이 없었다. 농약을 치면 사과 표면이 매끈할 텐데 은혜농원 사과는 볼품이 없었다. 한살림에 과일을 낼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판로도 모른 채 농사부터 먼저 배운 셈이었다. 사과를 트럭에 한가득 싣고 서울로 갔다. 친척들 중심으로 알음알음 팔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사과가 남아 잼을 만들고 그러고도 남아 어마어마한 양의 사과주를 담갔다. 덕분에 그해 겨울은 노란 빛깔의 향기로운 사과주에 취해 겨울을 보냈다고 한다. 귀농한 지 6년째 되던 해에 한살림을 알게 됐다. 사과를 못 팔아 사과주를 담그는 일을 더는 하지 않아도 되었다. 못난 사과들을 따지지 않고 먹어주는 조합원들이 참 고마웠다.


농사를 계속하게 하는 건 ‘망각의 힘’
사과를 하나 따는데 ‘톡’ 소리가 났다. 한 입 베어 물었더니 ‘아삭’하는 소리와 함께 입안에 흘러든 즙이 달고도 새콤했다. 신선한 향이 입 전체에 감돌았다. 입맛이 확 돌아, 사과만 먹고도 며칠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껍질째 사과를 먹을 수 있다는 건, 아는 사람만 아는 행복이다.

이렇게 맛있는 사과가 나오는 계절인데 이학수 생산자는 가을이 “고통의 계절”이라고 했다. 봄에 새싹이 돋으면 ‘이번에는 잘될 것 같다’는 희망을 품고, 여름에는 꽃잎을 따느라 분주해서 생각을 못하다가 열매 맺는 가을이 되면 좌절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생각보다 과실이 적게 열려서다. 가을마다 다른 일자리를 구할까 고민한다. 누구에게 이런 맘을 털어놓기도 힘들어 그저 혼자 속을 태운다. 친환경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모두 수확이 나쁘면 원래 그러려니 할 텐데 자기 밭만 안 되니 “전부 내 탓”이지 싶다. 좌절하다가도 겨울이 되면 가지를 잘라주는 전지작업을 하느라 바빠 잊어버리고, 봄이 되면 또 희망을 품는다. 그래서 “봄에 속는다”고 했다. 농사를 계속하게 하는 힘은 “아무래도 망각의 힘”이란다.

 


올해도 망각할 일이 생겼다. 포도 농사가 잘 되지 않아, 수익이 600만 원에 그쳤다. 잘되면 5~6천만 원, 최소 3천만 원 수익을 내던 곳이었다. 새로운 시도를 했는데 잘 되지 않았다. 포도에 갈반병(갈색무늬병)이 생기면 잎이 노랗게 되다가 후루룩 힘없이 빠지는데 이걸 예방하기 위해 그동안 석회보르드액을 써왔다. 그런데 누군가 갈반병에 황(황토유황)이 좋다고 했다. 그런데 “황을 쳤다가 황됐다.” 황이 상주 땅에는 맞지 않았는지, 아니면 치는 시기가 적절하지 않았는지, 포도 알갱이가 우수수 다 떨어졌다. 새로운 시도를 할 때는 보통 한두 주에다가 실험해 보고 전체 밭에 하는데, 이번에는 뭐에  씌었는지 하루 만에 온 밭에 황을 쳤다. 그 후에 만회할 수 있을까 해서 서둘러 봉지로 다 쌌더니 포도 알갱이는 크지 않은 채 색만 까맣게 익었다. 도저히 납품할 수 없어 올해는 포도주를 많이 담갔다.

“포도의 눈물, 지난해 포도주를 담그면서 지은 이름이에요. 에구, 그런데 이름대로 된 것 같아요. 포도가 없는 빈 가지를 보면서 가지 정리 작업은 그대로 다 해야 하고, 힘들더라고요.”

김영숙 생산자는 남편 이학수 생산자에게 비싼 공부했다고 치자고 말했다. 선녀와 나무꾼은 또 다시 망각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사과는 올해 그나마 괜찮은 편이다. 다행이다. 친환경 사과 농사는 만만치 않다. 우선 벌레가 많이 꼬인다. 심식나방이나 응애, 진딧물, 면충이 생긴다. 올해는 면충이 심해서, 사과 꼭지가 하얗게 되었다. 면충은 꼭지 부분을 솜처럼 뒤집어써서 마치 눈을 맞은 것같이 보인다. 다행히 면충은 좀벌이라는 자연 천적이 잡는다. 기다리면 자연 방재가 되는데, 농약을 뿌리면 면충도 죽지만 좀벌도 같이 죽는다. 그래서 기다리는 마음도 필요하다. 좀 더 느긋하게 기다리며 지켜 줄 수 있는 그런 마음 말이다.

과수원 중간 중간 바닥에 쌓인 사과무더기는 탄저병에 걸려 따낸 것이다. 한쪽이 동그랗게 검어지는 병이다. 오래된 나무에는 껍질이 마르는 부란병이 유행이다. 열매에 병반이 생기면서 과일 전체가 썩는 겹무늬썩음병도 돈다. 농약을 치지 않는 나무 꼭대기에서 맺은 사과에는 으레 그을음(점무늬)병이 생긴다. 이 병을 앓으면 얼룩덜룩 지저분해 보인다. 맛에는 지장이 없지만 역시 납품하지 않는다.

사과잎이 떨어지는 시기가 중요하다고 했다. 잎이 일찍 떨어지면 크기가 더 크지 않고 예쁜 빨간 색을 내지 않고, 잎이 늦게까지 붙어 있으면 햇빛을 가려 퍼런 빛깔의 사과가 된다. 적당한 시기에 적당량의 비료를 주면 크기도 좋아지고 잎사귀도 좋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단다.

많은 사람들이 사과색을 탐스럽게 하기 위해 바닥에 반사필름을 깐다. 햇빛이 땅에 떨어졌다가 반사필름에 반사해 열매를 비추어 잘 익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사필름은 한 번 쓰면 군데군데 찢어지거나 흙이 묻고 구겨져서 반사율이 떨어진다. 그래서 보통 한 해 쓰고 버린다. 이학수 생산자는 그런 쓰레기를 만드는 게 죄스럽다고 했다. 농사 포장재도 환경을 해치는 데 한몫을 하는 것 같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백설공주가 탐냈던 빨간 사과’를 좋아하니, 몇 년 전에 사용하고 모아 두었던 반사필름을 다시 꺼내 사용해야 하는 게 아닐까 고민이다.


소에게 사과 먹이고, 밭에 소똥 주고
이학수 생산자는 가능한 한 유박(깻묵)을 쓰지 않으려고 한다. 유박은 정부에서 유기농자재로 인증했고, 화학비료 대신 쓰라고 권한다. 그러나 국내에서 생산하는 양으로는 부족해서, 해외에서 팜유 등을 짜고 남은 부산물을 수입한다.

“유박에는 금세 벌레가 생겨요. 주로 배로 들여오는데 그 과정에서 벌레가 생기지 않게 하려고 살충제를 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유기농 농사꾼들끼리 ‘유박이 진짜냐’ 논의하지만 대안이 없어요. 고민이 되죠. 유박을 많이 주면서 유기농을 하는 것보다 유박을 조금 주고 무농약을 하는 게 더 낫지 않은가 싶기도 하고….”

이학수 생산자는 유박을 최소한으로 쓰기 위해 다른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5년 전부터 소 두 마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지금은 새로 태어난 송아지까지 포함해 전부 아홉 마리가 되었다. 농사 부산물을 소에게 주고, 소똥을 땅에 다시 돌려주는 지역생태순환농법은 한살림에서도 권장하고 있다. 과수원에서 나오는 작고 흠집 난 사과, 감껍질, 출하하지 못하는 포도 등을 소에게 먹이고, 그 소가 싸는 똥오줌으로 퇴비를 만들어 밭에 준다. 어쩐지 소가 있는 외양간에서는 악취 대신 마른 풀냄새와 당밀의 달콤한 냄새가 나고 있었다. 게다가 송아지는 마치 강아지처럼 마당에서 뛰놀며 재롱을 부리고, 울타리 친 마당에서 어슬렁거리는 소들도 사람을 경계하지 않았다. 저들만큼 복 받은 소가 있을까 싶은데 주인의 수고는 만만치 않다.


소에겐 국산사료만 먹여야 한다. 농사 부산물로 키우기 때문에 국산사료일 수밖에 없기도 하다. 이학수 생산자는 유기농 농사를 짓는 인근 농부에게서 콩깍지며, 쌀겨, 깻묵 등을 사거나 얻어 온다. 한 덩어리에 7만 원이나 하는 짚을 소들은 한 달에 다섯 덩어리씩 해치운다. 사과나무 사이에는 보리와 호밀을 심었다. 꽃이 피는 철에는 피부에 오톨도톨 알러지가 생기지만 소를 위해 심었다. 저항력을 길러주려고 항생제 대신 숯가루를 사료에 섞어 준다. 맛있게 먹으라고 소금도 치고 당밀도 섞는다. 당밀을 섞으면 미생물이 활성화되어서 소화에 도움이 된다. 이것들을 섞어서 잘 갠다. 겨울에 소죽을 쑤어 주고 싶은데 솥이 마땅치 않다. 예전에 네 마리 정도까지는 소죽을 끓여서 주었는데 아홉 마리가 되면서는 못하고 있다. 소죽을 끓여주면 속도 따듯하고 소화도 잘 될 텐데, 아홉 마리의 소에게 맛난 소죽을 끓여 줄 여력이 없다.

소를 도축해서 고기로 낼 수 있으면 다행인데 상황이 여의치 않다. 무게가 470kg은 되어야 육가공생산자들이 손해를 보지 않는데, 이학수 생산자의 소는 다 컸지만 400kg도 되어 보이지 않았다. 일반사료에 들어 있는 옥수수 성분이 소를 살찌우고 근육 내 지방 비율을 높이는데, 자급사료로 키운 소들은 살이 많이 찌지 않는다. 제주도 한울공동체에서도 자급순환국산사료로 한우를 기르고 있어, 얼마 전에는 그곳에 가서 어떻게 영양가 있는 조사료를 확보하는지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올겨울에 한울공동체에서 키운 한우는 성남용인한살림 조합원에게 공급될 예정이다.

“소를 키우는 걸, 같이 사는 사람이 힘들어 해서 마음이 무거워요. 며칠 전에 트럭에 감껍질을 가득 싣고 오는데 이 사람이 눈물을 글썽이더라고요. 아직 제대로 된 외양간을 짓지 못해 마당 한쪽에 부산물을 쌓아두고 있거든요. 감껍질에서 물도 새어 나오지, 잘못하면 곰팡이가 생겨서 관리하기도 힘들지, 마당 가득 짚과 콩깍지 등을 쌓아 놓으니 지저분해서 다니러 오는 이웃들 보기가 민망하다며 속이 상해 눈물을 글썽거리는데… 이거 소 키우다가 이혼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또 소한테도 미안해요. 배불리 먹이지도 못하고 최선을 다하고는 있지만 맛있는 걸 주지도 못하고….”

이십 년 전 아무것도 모르고 농사를 시작한 이학수·김영숙 부부를 이웃 어른들이 ‘반거치(일을 반도 따라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 농사꾼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선녀와 나무꾼’ 스스로도 ‘반거치’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부터 농사짓는 것을 보아 온 자녀들이 혹 대를 이어 농사를 짓는다면 그때쯤은 ‘온거치’ 농사꾼이 나지 않겠냐고 했다.  하지만 그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이보다 더 맛있는 사과를 맛본 적 없는 내게 당신들이야말로 ‘온거치’ 농사꾼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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