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호 2013년 가을 살림,살림

[ 안녕하세요: 꿈꾸는 지렁이들의 모임 ‘꿈지모’ ]

좋아하는 일 하며 욕심 안 부리고 살기

글 이선미 편집부\사진 류관희

힐러리 클린턴이 미국 대통령 영부인일 당시, 방글라데시의 한 마을에서 현지 여성이 물었다. “자매님, 당신은 자신의 소득이 있나요?” “아뇨, 예전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요.” “그럼 암소라도 한 마리 있나요?” “암소요? 그런 건 없지요.” 이 말을 들은 현지 여성들은 작게 중얼거렸다. “불쌍한 힐러리.” 자립의 관점에서 본 이 웃지 못할 이야기가 실린 책을 펴낸 사람들은 누구일까?



에코페미니즘의 눈으로 우리 사회를 바라본다


모임 이름이 꿈지모, 즉 ‘꿈꾸는 지렁이들의 모임’이다. 이렇게 이름을 지은 이유는 무엇인가? 또 어떤 계기로 꿈지모가 만들어졌나?
이윤숙(이): 처음에는 반장난이었다. 우리가 참 남녀 불평등한 세상에 사는데, 불평등을 겪을 일 없이 암수한몸인 동물이 뭐가 있을까 하다가 지렁이를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지렁이에 상징성이 있었다. 묵묵히, 그리고 끊임없이 노동하고 살림하는 모습이 여성을 닮았다. 또 상황에 맞게 성역할을 바꾸는 게 양성평등적이기도 하다. 지렁이의 특징이 우리 삶의 가치가 되기를 꿈꾼다는 뜻에서 ‘꿈꾸는 지렁이들의 모임’이라고 이름을 붙이게 됐다.
이안소영(안): 한국에 에코페미니즘을 처음으로 소개한 생태정치학자인 문순홍 선생과 몇몇이 공부하던 것이 발단이다. 그러다 문 선생이 대학원에서 ‘여성과 환경’ 수업을 할 때, 그 수업을 듣던 사람들이 합류하면서 자리를 잡았다.



꿈지모가 이야기하는 에코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
안: 생태여성주의라고도 부를 수 있는 에코페미니즘은, 생태학과 여성주의의 고민이 만난 새로운 지형이다. 내가 일하는 여성환경연대에서는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고 평등하듯이 남성과 여성도 조화롭고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지금 우리 세상은 인간이 우위에 있고, 자연은 인간의 수단이 되어도 좋다는 이분법적 인식 아래 있다. 다르다는 게 아니라 차별하는 것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우위에 있다는 가부장적 세계관과 일치한다. 에코페미니즘에서는 인간, 남성, 이성/ 자연, 여성, 감정으로 묶어서 이해한다. 지금과 다른 세상을 꿈꾼다면 자연과 여성에 대한 인식이 함께 바뀌어야지 하나씩만 바뀌어서는 의미가 없다.
이: 에코페미니즘에서 여성 억압과 자연 착취는 같은 방식으로, 분리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 억압을 해결하지 않는 방식의 환경운동은 허무하고 불안정하며, 자연을 고려하지 않는 여성운동은 진정한 의미의 여성운동이 아니라고 본다.




왼쪽부터 이윤숙, 이안소영, 최윤정, 윤박경

 

자연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우는 것은 여성


에코페미니즘의 시각에서,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활동해 왔나?
윤박경(윤): 2001년 새만금 관련 언론보도를 보면서, 갯벌에서 일하는 건 아줌마들인데 왜 아줌마들 이야기는 하나도 없을까란 생각에 새만금으로 갔다. 거기서 삶 자체인 갯벌과 갯벌 생물을 지키려는 여성들의 몸부림을 보았다. 남성들이 개발업자들의 돈에 매수됐을 때, 갯벌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끝까지 저항한 건 여성들이었다. 지금 밀양 송전탑에 대항해 싸우는 할머니들과 탈핵운동을 하는 100만 인의 어머니들도 마찬가지이다. 에코페미니즘이라는 개념이 서구에서 들어왔지만 사실은 한국 여성들이 예전부터 살아온 방식이라는 걸 알게 됐다.
이: 꿈지모가 생긴 무렵은 한국에서 환경운동이 크게 성장하던 때다. 쓰레기, 환경호르몬, 새만금 등 쟁점이 많았다. 그런데 여성을 주체가 아니라 객관화하고 가르쳐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 걸 알게 됐다. 주부들이 음식물쓰레기를 마구 버려서 환경이 오염된다는 식이었다. 반면에 남성을 환경오염의 피해자로 두었다. 다이옥신 등 환경호르몬이 문제가 됐을 때 환경운동단체의 피켓을 보면 ‘정자 수가 줄어요, 여성화돼요, 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등의 문구가 많았다. 실제로는 여성의 몸이 더 피해를 입는데도 말이다. 이와 같은 문제를 여성의 시각에서 본 글들을 모아 《꿈꾸는 지렁이들》(2003)이라는 책을 냈다.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는 반응이었고 대안 생리대 만들기, 채식, 조산사를 통한 출산 등의 움직임이 나타났다. 지렁이가 땅을 뚫고 나온 거다.
안: 여성운동 중에도 남성이 일하는 방식이나 임금수준 등 남성의 기준에 맞춰 평등을 이루려고 하는 경우가 있다. 돌봄과 살림이 아니라 화폐와 개발 중심의 방식으로, 규모를 키워서 각자 더 많이 나눠 갖자는 거다. 하지만 이건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한계가 있다는 걸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 여성환경단체에서 일하게 됐다.






공동육아, 대안학교, 도시텃밭... 자급은 이미 진행 중


꿈지모에서 번역한 《자급의 삶은 가능한가》(2013)는 어떤 책인가? 독자들이 어떤 점에 주목하면 좋을까?
안: 우리가 바라는 삶이 더 많은 자원으로 더 좋은 제품을 만들고, 그걸 사기 위해 더 많이 일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어떻게 하면 다르게 살 수 있는가에 대한 답으로 ‘자급’을 이야기하면서, 삶을 스스로 유지하고 창조하는 데 필요한 일에 우선순위를 두자고 말한다. 성장이 가장 중요한 가치인지 질문을 던진다.
이: ‘여성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가?’라는 질문에, 생명을 돌보고 살림하며 자급하는 삶에서라고 답하는 책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전기, 건물, 도로가 아닌 공기, 물, 땅, 먹거리라는 걸 여성은 체험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윤: 불합리한 체제를 불편하게 하는 자급의 삶을 다룬다. 지배적인 권력과 가치에 대해 저항하는 ‘자급’이 지금의 사회체계를 전복할 수 있다는 거다. 새만금, 4대강, 두물머리, 밀양이 그렇듯이 삶의 터전을 다 파헤치는 개발은 어느 한 여성의 힘만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니까.
최윤정(최): 1997년 독일에서 나온 이 책을 처음 접한 게 2004년이니까, 번역서가 나오기까지 거의 10년이 걸렸다. 때를 놓쳐서 출간이 어렵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바로 지금 우리 사회에 이 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어렵게 책을 낸 것만으로 만족하고 있었는데, 여러 경로를 통해 마침 이런 주제의 책이 필요했던 터라 너무 반갑다는 반응들이 왔다. 하자센터에서는 지난해부터 자급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 책으로 읽기모임을 한다고도 한다.

 

자급, 나아가 다르게 살기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싶나? 어떤 꿈을 꾸고 있나?
최: 여성학을 계속 공부하면서, 외롭고 힘든 삶 때문에 공동체에 대한 욕구가 큰 친구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여성의 권리나 평등만을 강조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싶다. 특히 무언가를 같이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 이 시대에 공동작업을 통해 지식을 생산하는 방식에 관심이 많다. 꿈지모가 공동작업해서 책을 펴낸 것처럼 말이다.
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욕심 안 부리고 만족하며 사는 게 자급 아닐까? 내가 일하는 대화문화아카데미에는 자신이 선택한 삶을 당당하게 살아가려는 청년들이 있는데, 일정한 소득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가족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소통하지 못하는 게 더 큰 문제다. 이들이 맘껏 커갈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들고 싶다. 또 생협에서 활동하는 주부들이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교육 프로그램에 관심이 많다.
안: 지난 10년 동안 자급을 위한 새로운 실험이 참 많았다. 마을 공동체, 공동육아, 대안학교, 도시텃밭 등이 그렇다. 공동체를 꾸려 귀농하는 비혼 여성들도 전에는 보기 힘들었다. 이렇게 개인적, 집단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람들을 인터뷰해 책을 내고 싶다. 에코페미니즘의 시각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또 내년에 지방선거가 있는데, 마을 자체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정책을 제안하고 싶다.
이: 시민단체에서 일하면서 시시각각 터지는 문제에 대응하다 보니 지칠 때가 많은데, 여유를 갖고 서로 돌보는 삶이 어떻게 가능한지 보여주고 싶다. 또 자급을 위해서는 기술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 농사기술을 배우려고 한다. 해녀들이 바다를 놀이터라고 하듯이, 놀면서 재미있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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