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호 2013년 가을 살림,살림

[ 협동의 힘: 어린이 돌봄 협동조합 ‘아이사랑 생명학교’ ]

쉰이 넘어 어린이집 선생님이 된 이들

글\사진 우미숙 편집위원



함께 나이 들어갈 사람들이 있다면, 말이 통하는 사람이 옆에 있다면, 이런 사람들과 일한다면, 그만한 행복한 삶이 있을까? “어쩌면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을까?” 감탄하는 사람들이 있다.

올해 6월에 ‘아이사랑 생명학교’ 협동조합을 만든 사람들이다. 10년 넘게 한살림에서 활동가로 일하면서 협동의 경험을 쌓아온 그들이 어린이 돌봄 교사로 새로운 활동을 시작했다. 오랫동안 같은 길을 걸어와서인지 서로 눈빛만 봐도 마음을 읽어낼 만큼 관계가 끈끈하다. 그러하기에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었다. 아이사랑 생명학교 협동조합은 지난 7월 첫날, 서초구 방배동 주택가에 아이사랑 생명학교의 문을 열었다. 이를테면 어린이집이다. 협동조합으로서 마을기업으로서 새로운 방식의 어린이 돌봄 활동을 시작하였다.

아이사랑 생명학교는 울타리와 대문이 없고, 키 작은 미닫이문만 달려 있는 예쁜 아담한 집이다. 캥거루가 그려진 벽걸이 안내판과 벽화가 어린이를 환영하는 곳임을 알려준다. 나지막한 나무 계단을 올라 학교 문을 두드렸다. 빠끔히 열려 있는 틈으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마침 일주일에 한 번 있는 공작시간이었다. 선생님들을 위한 교습시간이다. 여러 색깔의 찰흙으로 동물을 빚고 있었다. 타고난 재능과 눈썰미로 손재주를 부리면서 아이들보다 즐거워하고 있었다. 만들기를 가르치는 선생님은 마을 미술학원 선생님인데, 특별히 시간을 내 재능을 기부하고 있다. ‘아이사랑 생명학교’가 하는 일에 마음이 끌렸고, 무엇보다 이곳 선생님들과 서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선뜻 미술 선생님 역할을 자청했다. 돌봄 교사는 모두 다섯 명이다. 대표를 맡은 최순복 선생님을 비롯해 김종우·박재신·이경숙·이은경 선생님이다. 선생님들은 협동조합 이사이기도 하다. 한살림서울 지역 지부장과 창업을 함께 준비한 김민경 (사)한살림 전 회장까지 모두 7명으로 이사회를 꾸렸다. 출자자인 조합원은, 법인 하나까지 포함해 17명이다. 조합원 모임은 올해 9월을 시작으로 일 년에 서너 차례 열 예정이다.


잘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
어린이 돌봄 사업을 주 활동으로 하는 협동조합은 협동조합기본법 시행 후 처음이다. 그렇다보니 협동조합의 틀로 가는 게 맞는지, 의문을 가지는 이들도 있다. 정부 규율에 매인 일반 어린이집처럼 운영하면 자율성과 자치 원칙이 침해받을 수 있다는 이유다. 선생님들의 이탈도 우려한다. 이윤을 내기보다 사회적 가치를 우선하는 협동조합인데, 교육철학이나 방식에서 충돌이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염려한다. 최순복 대표는 “제도나 공간이 중요하지 않다. 일하는 사람이 행복해야 하고, 그러자면 협동의 실험을 잘 해내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사랑 생명학교 협동조합의 이름엔 이들의 지난 활동이 그대로 배어 있다. ‘아이사랑’은 2년 전, 한살림서울에서 ‘자주공부모임’을 할 때 지은 이름이다. ‘생명학교’는 일 년에 두 번 생산지에서 생태학습과 농사체험을 하는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 이름이다. 한살림에서 생명학교 교사를 하면서 배웠던 교육의 취지와 내용을 접목한다는 의미도 있다.

2년 동안 함께 공부하면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특별히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았다. 답은 한살림 조합원들의 생활에 있었다. 한창 아이들을 키우는 30~40대에겐 아이들과 가정의 잡다한 일에서 잠시라도 떨어져 여유를 누리는 기회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또 주로 시간제 활동을 하는 한살림 조합원들에겐 오전이나 오후 몇 시간이라도 어린아이를 맡길 수 있는 곳이 절실해 보였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어린이 돌봄 사업이라고 판단했다. 이후 서울시와 여성가족부에서 주관하는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돌봄 교육을 받았다. 공부모임을 꾸려 어린이성장발달과 심리학, 협동조합 이론을 꾸준히 공부했다.

여기까지 오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함께 준비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빠지기도 했고, 나이 들어 공부하는 것 자체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어려울 때 긍정의 힘을 발휘하면서 지금까지 왔고, 앞으로도 그런 힘으로 갈 것 같다.” 오히려 같은 길을 찾아가면서 동력이 생겼고, 몰랐던 능력들을 발견하면서 서로 존중하고 더욱 끈끈해졌다.


머리 맞대고 공부한 시간이 밑천
그 힘의 발원지가 어디일까? 아이사랑 생명학교 이경숙 선생님은 “2년간 이어 온 공부모임”에서 찾았다. “협동조합이나 공동체나 공부모임이 없으면 성장하거나 만들어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오랜 기간 머리를 맞대고 공부한 게 밑천이 되었다. 무엇보다 “자신을 내려놓는 훈련”이 중요하단다. 모두 활동가 경력이 화려하고 6~7년간 한살림의 임원을 지낸 사람들이 모였기에 염려가 많았다. “실무나 소소한 일을 직접 해야 하는데 잘 견뎌낼지 지켜보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할 일이 자기 것을 내려놓는 훈련이다. 그게 없다면 마음을 맞춰가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때마침 좋은 기회가 왔다. 서울시에서 낸 마을기업 사업자 공고가 촉발제가 되었다. 사업계획서를 마련했고 세 단계 심사를 무난히 통과했다. 결국 서울시에서 공간지원금 1억 원을 받고, 안전행정부에서 운영자금으로 1차년도 5천만 원, 2차년도 3천만 원을 지원받았다. 서울시 지원금 1억 원과 출자금에서 3천만 원을 보태 건물을 얻었고, 운영자금은 안전행정부 지원급과 수익금으로 충당한다. 착실히 준비했던 밑바탕이 있어서 든든하다. “지원금을 받으려고 갑자기 사업계획을 서둘렀다면 구성원끼리 불협화음도 컸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재능 기부한 미술 선생님에게 찰흙 놀이를 배우고 있는 선생님들

일반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20~30대인 것이 비하면 아이사랑 생명학교 선생님들은 연령이 꽤 높다. 대부분 쉰을 훌쩍 넘었고, 최순복 대표는 올해 회갑을 맞는다. 그동안 자녀들을 키우면서 힘든 세월을 견뎠는데, 어린아이를 돌보는 게 내키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김종우 선생님은 “말썽만 피우고 버릇없고 제멋대로인 아이들이 싫다”면서도 이곳에 오는 4~5살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재미에 푹 빠졌단다. 휴대전화에는 아이들 사진이 가득하다. 아이들도 그걸 알고, 선생님 휴대전화에서 자기 얼굴을 찾으며 키득키득댄단다.

김종우 선생님은 사회복지사 공부를 해 드디어 올해 말에 수료증을 받는다. 어린이 돌봄에서 사회적 돌봄으로 활동의 영역을 넓혀나가려고 한다. 치매 증세를 보이는 어머니를 모시는 박재신 선생님은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다. 그림책을 가장 맛깔스럽게 읽어 인기가 많은 그는 어린아이들뿐 아니라 다양한 영역의 돌봄 활동을 내다보면서 공부하고 있다.

이제 시작이다. 2년 동안 숙성 기간이 있었지만 사업을 꾸려 직접 현장 활동을 한 것은 두어 달 정도다. 10여 년 동안 협동조합 활동을 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또 다른 협동조합의 실험을 시작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서 더 기대가 된다. 올해 50명을 아이들과 더 많은 돌봄 선생님들을 만나고 싶다. 생각만 있고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 함께할 사람이 없다고 조바심 내는 사람들에게 최순복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먼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면 마음 맞는 사람들을 만나요. 처음부터 다섯 명이 안 되어도 됩니다. 100% 공감이 안 되더라도 계속 마음을 맞춰가는 게 중요합니다. 공감대를 키워가는 게 협동조합의 의미니까요.”

협동조합 자체에 매달리기보다 보석 같은 사람들을 찾고 만들어가기! 바로 협동조합의 기본이다. 일하는 사람이 행복한 곳, 아이와 함께 편하게 놀러갈 수 있는 곳, 엄마들의 수다가 넘치는 곳,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곳, 아이들이 마음 따뜻하게 생명의 기운을 느끼며 자라는 곳, ‘아이사랑 생명학교 협동조합’이 만들어가는 곳이다.



아이사랑 생명학교 협동조합

* 이용 안내
- 시간제 돌봄 : 24개월~7살 / 주중 8시~20시 / 1시간 5,000원(기본 2시간)
간식 1,500원 / 식대 3,500원(한살림 친환경 먹을거리)
- 방과후교실 : 초등 저학년 / 주중 14~21시 / 1일 15,000원(간식·석식 제공)
- 그 외 활동
* 12시~14시에는 누구나 아이와 함께 놀다갈 수 있다(무료)
* 장난감 대여, 벼룩시장 개최
* 전문 돌봄 교사 양성 과정 교육
문의 : 02-537-5508(서울 서초구 방배4동 833-10)

↘ 우미숙 님은 한살림에서 조합원 소식지 <좁쌀 세 알>을 만들고 글을 쓰는 일을 해왔습니다. 현재 한살림성남용인 이사장이며 《살림이야기》 편집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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