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호 2013년 봄 살림,살림

[ 그림 이야기-신자유주의시대 신농가월령도 ]

언젠가 사라질지 모르는 우리 농촌의 기록

글\그림 박홍규

무제 (75×143, 2012, 한지에 채색)

 

농민을 그림으로 형상화하는 작업은 가슴이 먹먹해지고 고통스런 작업임에는 틀림이 없다. 2011년 11년 만에 두 번째로 열었던 개인전 <겨울여의도>를 준비하며 새벽술을 많이도 먹어야 했다. 그리고 2012년 대선을 코앞에 두고 연 <신(新)농가월령도> 전시회를 준비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너무나도 짠하고 가슴 저리고 아름답기까지 한 이 땅의 아버지 어머니를 그림으로 옮기는데 어찌 눈물이 나지 않겠는가.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시끄러운 마을 확성기 소리에 깨어 동무들과 마을 청소를 하고, 어른들은 흙담과 돌담, 탱자나무 울타리를 부수고 마을길을 넓히는 새마을운동 시절을 유년기에 보냈다. 그 후 암울했던 군부독재 시절, 나는 그림으로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는 절망과 무력감으로 붓을 꺾고 1985년 겨울 농촌으로 향했다.

 

정미소 앞 (47×125, 2012, 한지에 채색)

 

그 뒤 30여 년을 농사지으며 농민운동을 했다. 하우스농사하다 빚도 많이 졌다. 나만이 아니었다. 1980년 개방농정 이래 이 땅의 농민들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개방농정은 농민들의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농촌공동체를 뿌리째 해체했다, WTO, FTA 체제하의 농민들은 더 이상 국민이 아닌 이 땅의 마지막 천민으로 전락했다. 이 무지막지한 농업의 파괴와 농촌의 해체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농민들을 만났다. 그리고 아름답고 정스런 농촌풍광이 사라지고 탐욕스럽고 천박스런 개발이미지로 바뀌어가는 모습을 가슴 아프게 지켜보았다. 이 처참한 살육의 현장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그리고 아직도 남아있는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의 따뜻한 고향의 정과 너른 들녘, 황토밭, 시골길, 멈춰선 정미소 등 언젠가는 사라질지 모를 소중한 고향유산을 그려두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시작한 게 <신농가월령도>다. 사계절 힘들지만 흥겹게 농사절기를 표현한 조선시대 ‘농가월령도’에 비해 신자유주의시대의 ‘농가월령도’는 힘겹고 분노에 차 있고 가슴 저리다.

 

황토밭 (47×119, 2012, 한지에 채색)

 

오동동타령 (143×75, 2012, 한지에 채색)

 

‘무제’는 제목을 정하지 못했다. 지난해 볼라벤 태풍으로 하얗게 타들어간 나락을, 정읍에서, 김제에서, 고창에서 트랙터로 갈아엎는 현장을 지켜보는 농민들을 그린 그림이다. 한숨 폭폭 나오는 심정은 배경을 구태여 그리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고 주위에서 말려 그리지 않았다.
‘오동동타령’은 여성농민들이 날 잡아 놀러가서 흥겹게 보릿대춤을 즐기는 장면이다. 여기에 써 있는 노래구절은 1980년대 유행했던 오동동타령을 농민들이 가사를 바꾸어 불렀다.


“호남벌에 보리농사 오동동이냐
충청도에 고추농사 오동동이냐
아니요 아니요 수입쌀 싣고 오는 화물선 소리
오동동 오동동 그침이 없어
촌놈 가슴 타는 간장 오동동이냐”


‘황토밭’은 내가 사는 완주군 이서면의 황토밭이다. 비 온 뒤의 황토는 붉은 핏빛이다. 새들도 보금자리 찾아가는 황혼 무렵 어머니들이 고구마 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이다. 일당 사만 오천 원짜리 어머니들의 뒷모습은 가슴이 저리도록 아름답다. 무거워 보이지만 어머니들의 뒷모습에는 낙관적인 희망이 숨어있다. 남도의 저 붉은 황토밭은 땅의 어머니, 여성농민이 있기에 존재한다.

 

↘ 박홍규 님은 1986년부터 30여 년 동안 농사를 짓고 농민운동을 하며 그림을 그려왔습니다. <한국농정신문>에 만평을 연재하며 미술동인 ‘누렁’, 전북민족미술인협회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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