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호 2012년 가을 살림,살림

[ 함경도 팔순 어머니의 손맛 ]

내 삶의 뿌리 ‘식해’

글. 김홍성 사진. 류관희

 온 가족이 둘러앉았던 어린 시절의 둥그런 밥상에는 오징어식해가 자주 올라왔다. 나는 ‘이야기가 있는 맛’을 식해로 시작하기 위해 팔순이 훨씬 넘은 어머니에게 오징어식해를 담가 달라고 떼를 썼다. 어머니는 이웃해 사는 사촌언니에게 도움을 청해 오징어식해를 담갔다. 식해의 본고장 함흥이 고향인 자매가 오랜만에 담근 식해는 여전히 맛있었다.



피난민 식해
스물 셋에 함흥에서 부산으로 피난 나온 어머니는 숙모를 도와 살림을 하다가 같은 고향 출신의 군의관과 중매로 결혼했다. 갓 임관한 군의관 즉 아버지는 결혼하자마자 어머니를 남겨 두고 교전이 벌어지는 전선으로 떠났다. 상황이 이러했기 때문인지 어머니 기억에 남은 부산 피난 시절 살림에는 식해가 등장하지 않는다. 휴전이 되고, 아버지가 배속되어 있던 강원도 양구 땅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한 후에야 어머니는 식해를 담갔다. 고향을 떠나 처음 만들어 먹은 식해, 그것은 갈치식해였다. 아버지가 어디선가 갈치를 한 상자나 얻어 왔기에 식해를 담갔다는 것이다. 식해는 본래 월동용 저장음식. 함흥에서는 갈치식해를 담그는 일은 없었다. 주로 가자미나 횟대로 담갔지만, 생선을 깨끗이 손질해서 항아리에 담아 소금으로 절인 후 조밥에 버무려 익힌다는 기본 원칙은 같았다.


수없이 들은 바에 의하면, 함흥 땅은 바다가 가깝고 들이 넓으며 산에 기대고 있어서 먹을거리가 다양하고 풍부했다. 그래서 그런지 있는 집이든 없는 집이든 ‘먹두배’가 심했다. 먹두배란 여럿이 둘러앉아 뭔가 먹는 일을 말하는 함경도 방언이다. 감자나 옥수수를 많이 삶아 놓고 온 식구가 둘러앉아 먹는 일도 먹두배, 이웃과 함께 수육을 삶고 녹말 국수를 뽑아 온면을 말아 먹는 일도 먹두배라고 했다. 배고픈 피난 시절에 가장 그리운 일은 고향에서의 먹두배였고, 먹두배를 하면서 빠지지 않는 음식이 식해였다. 식구들과 집과 고향이 함께 그리워지는 음식이 바로 식해였다.


아버지는 새 옷을 사거나 새 가구를 들이는 일에는 인색했지만 식구들이 먹을 음식을 장만하는 데에는 관대했다. 고향에서 먹두배 하던 추억이 간절했기 때문일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어려서부터 함흥음식을 맛보며 자랐다. 미역에 고추장을 풀고 감자와 쇠고기를 썰어 넣어 끓이는 미역감자찌개. 가지를 반으로 잘라 세워 놓고 칼집을 십자로 낸 틈에다 돼지고기와 양파와 고추와 고추장을 버무린 속을 넣어 찌는 가지찜. 어쩌다 시장에 나온 털게를 사다가 산 채로 독에 담고 간장을 끓여서 부은 털게 게장. 물론 명란젓과 창난젓 맛도 알게 됐다. 뿐만 아니다. 김장철마다 어머니는 생태를 사다가 잘게 토막 내어 김치 속으로 식해도 담갔다. 시장에 오징어가 나오면 오징어식해도
담갔다. 오징어나 명태식해는 갈치식해처럼 어머니 고향 함흥에서 먹던 식해는 아닐지언정 맛은 가자미식해 못지않았다.

나를 포함한 어머니 슬하의 사남매가 자랄 때는 오징어가 많이 나서 가자미식해보다는 오징어식해를 많이 먹었다. 어머니가 딸들에게 가장 먼저 가르쳐 준 식해는 그래서 오징어식해였다. 가자미식해보다 훨씬 만들기가 쉽고 금방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보니 큰 여동생은 어느새 오징어식해뿐 아니라 가자미식해까지 담가서 친정에 보내기도 했고, 막내는 블로그에 오징어식해 만드는 법을 사진과 함께 올려놓았다.


가자미식해
시장에 참가자미가 나오면 어머니는 가자미식해를 담갔다. 그러나 내륙의 시골 시장에서 싱싱한 참가자미를 보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속초 ‘아바이 마을’에 사는 친지, 즉 어머니가 ‘속초 이모’라고 불렀던 함경남도 태조(함흥 인근) 출신의 노부인이 만든 가자미식해를 택배로 주문해서 먹었다.


어머니 고향에서는 가을철에 커다란 참가자미들이 많이 잡혔다. 식구가 많았던 함흥 외가에서는 살이 통통하게 오른 싱싱하고 커다란 참가자미를 몇 두름(한 두름은 스무 마리) 사다가 소금을 쳐서 독에다 절였다. 가자미를 절일 때는 비늘을 깨끗이 긁고 대가리와 지느러미를 자르고 내장을 뺀 후 깨끗이 씻어야 한다. 그런 다음 듬성듬성 칼집을 내서 통째로 독에 담아 부엌의 따스한 곳에 놔두면 1주일쯤 후에 물이 생겨 촉촉해진다. 이때 가자미를 찢어 봐서 쭉쭉 잘 찢어지면 잘 절여진 것이다. 소금으로 절인 가자미가 식해가 되기 위해서는 조밥을 가미한 발효와 숙성 과정을 거쳐야 한다.


식해를 위한 조밥은 차조와 메조 중에서 메조다. 메조는 차조에 비해 찰기가 없다. 또한 차조는 약간 연두색을 띠는데 메조는 노랗다. 쌀밥을 지을 때의 쌀과 물의 비율이 1:1 정도라면 조밥은 2:1 정도로 고슬고슬하게 지어서 식힌다. 조밥이 식으면 적당량의 고춧가루, 마늘 그리고 소량의 생강, 설탕 등의 양념을 넣고 버무린다.


가자미도 독에 담아 익힌다. 절인 가자미들을 한바닥 깔고 그 위에 양념에 버무린 조밥을 촘촘히 깔면서 조밥과 가자미를 켜켜이 눌러 담은 후에 뚜껑을 닫고 열흘쯤 지나면 먹을 때가 된다. 먹을 때가 된 식해에서는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는다. 완전히 숙성된 식해는 한 마리씩 꺼내어 손으로 찢어서 밥상에 올리기도 했지만, 굵직하게 채쳐서 약간 절인 무에 버무려 밥상에 올리기도 했다. 속초에서 플라스틱 통에 포장하여 택배로 오는 가자미식해는 물론 그대로 먹어도 되지만 굵직하게 채쳐서 약간 절인 무를 버무려 하루 이틀 재워야 제맛이 난다.
 


황태식해·황태채식해




함흥 인근 포구에는 명태도 많이 들어왔다. 태조나 신포 같은 큰 포구에는 명태를 걸어서 말리는 덕장들이 있었다. 어머니의 큰아버지는 바로 그 신포와 태조에 덕장을 가졌으며 함흥 시내 개천거리에서 덕흥상회라는 건어물 도매상을 운영했다. 어머니의 아버지, 즉 나의 외할아버지는 당신의 큰형을 도와 덕흥상회에서 일했다. 덕흥상회에서 취급한 물건은 황태, 말린 오징어, 말린 홍합, 말린 미역, 말린 김 등 해산물 외에 말린 산나물도 있었다. 이렇다 보니 구하기 쉽지 않은 재료로도 식해를 담가 먹었다. 말린 명태의 눈깔만 빼서 담는 명태눈깔식해라든지, 도루묵 대가리만으로 담는 도루묵대가리식해 등이 그것이다. 이중에 특히 황태로 담는 식해를 자세히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이 식해는 아무 때나 조금씩 담아서 빨리 먹을 수 있고 맛 또한 특별하기 때문이다.

황태란 얼고 녹기를 거듭하면서 살의 조직이 스펀지처럼 푹신하게 마른 명태다. 이것을 방망이로 잘 두드려서 골고루 부드럽게 만든 후 물에 살짝 적셨다가 꺼내어 대가리와 지느러미는 떼어 내고 토막을 친다. 토막을 다시 반으로 가른 뒤 그 사이에 붙어 있는 뼈를 제거한다. 그러면 황태 껍데기와 거기에 붙어있는 살만 남는다. 이것을 다시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서 조밥(고춧가루, 다진 마늘, 다진 생강, 설탕 등 양념에 무친)과 살짝 절여 고춧가루에 무친 무채와 함께 버무렸다가 무만 익으면 바로 먹는다.


황태식해를 만들 때 주의할 점은 껍질에 붙어 있는 살이 떨어지지 않게 잘 갈무리하는 일이다. 방망이로 두드릴 때, 물에 축여 토막을 낼 때, 쪼개서 뼈를 뺄 때, 마지막으로 양념된 조밥과 무채와 껍질에 붙어 있는 살을 다함께 섞을 때 살이 껍질에서 떨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 떨어진 살은 흩어져서 뭉쳐 있을 때와 같은 맛을 못 낸다. 통으로 나오는 질 좋은 황태를 구하기 어렵고 황태식해를 만들 때 살이 껍질에 붙어 있게 갈무리하기가 어렵다. 껍질 없이 살만 뜯어서 포장한 ‘황태채’가 나오고부터는 황태채식해를 담가 먹기도 했다. 황태식해보다 훨씬 간단하게 만들어 바로 먹을 수 있다. 채를 가위로 적당한 크기로 잘라 모은 뒤 물로 축여서 황태식해 만들 때처럼 양념된 조밥과 살짝 절인 무를 함께 버무려 상온에 두면 하루 만에 먹을 수도 있다.


동태포식해
싱싱한 생태로 담근 생태식해는 가자미식해처럼 일이 많고 먹을 때까지 오랜 숙성기가 필요하므로 보다 편하게 만들고 빨리 익혀 먹기 위해서 동태포식해를 담그기도 한다. 시장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동태포를 사다가 깨끗이 씻고 한입 크기로 썰어서 곧바로 양념된 조밥에 버무려 독에 눌러 담는다. 1주일쯤 지나 포가 익으면서 물이 살짝 올라온다. 더 빨리 익혀 먹으려면 조밥에 양념을 할 때 엿기름을 한두 숟가락 섞기도 한다.


포가 익으면 무를 채 썰고 소금 쳐서 한두 시간 절였다가 소쿠리에 받쳐 물기를 뺀 뒤에 간을 본다. 너무 싱거우면 소금을 조금 더 치고, 너무 짜면 한 번 더 슬쩍 씻어서 간을 뺀 다음 포와 같이 버무려 항아리에 눌러 둔다. 동태포식해는 사흘쯤 숙성시키면 비린내가 안 난다. 비린내가 안 나면 먹을 때가 된 것이다.


   오징어식해 만드는 법

재료: 무 한 개, 생물 오징어 세 마리, 메조 종이컵으로 한 컵, 고춧가루 종이컵으로 한 컵 반, 마늘 종이컵으로 0.7컵, 생강 손가락 한 마디 크기

① 무를 새끼손가락 크기로 자른 뒤 소금 쳐서 절인다. ② 메조로 고슬고슬한 조밥을 만들어 식힌다. 이때 메조와 물 비율은 2:1 정도 ③ 오징어는 껍질을 벗긴 후 끓는 물에 넣어 살짝 오그라들 정도로 데친다. ④ 데친 오징어를 새끼손가락 크기로 잘라서 고춧가루, 마늘, 생강으로 버무리면서 소금을 쳐서 간을 맞춘다. ⑤ 절인 무를 간 봐서 너무 짜면 물에 넣었다가 소쿠리에 건져 물을 뺀다. ⑥ 물 뺀 무를 고춧가루에 빨갛게 버무린다. 식성에 따라 덜 맵게 버무려도 된다. ⑦ 손질해서 만든 조밥과 오징어와 무를 섞어서 버무린다. 이때 간을 봐 가면서 고춧가루, 소금, 마늘, 설탕을 첨가한다. ⑧ 용기에 꼭꼭 눌러 담는다. ⑨ 상온의 실내에 두면 1~2일 만에 익으면서 물이 나와 촉촉해진다. 먹어도 된다는 신호다. ⑩ 며칠 두고 먹으려면 너무 익기 전에 냉장고로 옮긴다

 

김홍성 님은 산책과 도보 여행을 좋아합니다. 20세기 말에 네팔로 이주하여 설산을 벗하고 살다가 근년에 귀국해 춘천에 머물고 있습니다. 시집 《나팔꽃 피는 창가에서》, 산문집 《히말라야 40일간의 낮과 밤》, 《천년 순정의 땅 히말라야를 걷다》, 《우리들의 소풍》, 《꽃향기 두엄 냄새 서로 섞인들》 등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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