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호 2012년 겨울 살림,살림

[ 빛그림 이야기 ]

바람, 그대로 흐르게 하라

글 박민영\사진 굴업도를 사랑하는 문화예술인 모임

굴업도
- 이세기

들어보라
여기, 수천의 파도로 휘몰아치는
덕적군도의 수난이 있다
온 섬이 짓밟히고 있다
변경의 비참이 끝나지 않았다
제아무리 목 놓아 외쳐도
뭍사람들은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귀 막고 눈 막고 입을 막는다
들어보라
사람들아! 나는 굴업도다
사람들아! 여기에 섬이 있다
사람들아! 나는 먹구렁이 황새
왕은점표범나비 검은물떼새알이다
우리 집이 사라지려 한다

 

제주도 출신의 유별남 작가는 굴업도 안의 풍경보다 굴업도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에 집중한다. 굴업도가 사라지면 굴업도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사라지는 것이라고 작가는 설명한다. 오른쪽에 보이는 세 개의 바위는 ‘선단여’라고 불리며 이 바위에 얽힌 남매의 비극적인 사랑에 대한 설화가 전해온다. 사진 유별남

 

핵폐기장을 막아내자 골프장이 왔다

 

덕적군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세기 시인은 제 집이 사라지려 하는 먹구렁이와 황새, 왕은점표범나비와 검은머리물떼새의 입을 빌어 굴업도의 위기를 노래했다. 인천 앞바다 덕적군도의 작은 섬 굴업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굴업도가 세상에 처음 알려진 것은 1994년 핵폐기물처리장 부지로 지정되면서이다. 굴업도를 포함한 인근 섬 주민들과 환경단체의 반대 운동으로 여론이 모아졌고, 활성단층이 발견되면서 굴업도 핵폐기장 건설계획은 전면 백지화되었다. 그 뒤 굴업도는 차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갔다.
 

굴업도가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06년 모 대기업이 섬을 개발하겠다며 굴업도의 대부분을 매입하면서부터이다. 이 기업은 섬에 요트장, 호텔, 콘도, 골프장 등을 건설하여 섬을 해양 리조트로 변신시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 건설 계획은 1.7㎢(50여만 평)밖에 되지 않는 굴업도의 환경을 인위적으로 변경하고 훼손시킬 수밖에 없어 최악의 개발계획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만약 이 계획이 성사되면 굴업도는 골프장 섬으로 바뀔 것이기에 핵폐기장을 막아 굴업도를 지켜낸 인천시민의 성과가 결과적으로 대기업의 이윤을 위한 인공적인 리조트로 귀결되는 것이냐는 탄식을 자아내고 있다. 지역 주민을 선동하는 자본의 논리를 앞세운 개발 환상이 굴업도의 향후 운명을 좌우하고 있다.

 

큰말해수욕장의 풍경. 가운데 보이는 작은 섬이 굴업도의 부속섬인 토끼섬이다. 물때에 따라 본섬과 완전히 분리되어서 예로부터 주민들이 이곳에 토끼를 풀어놓고 키웠다 하여 토끼섬이라 불리게 되었다. 절벽을 활 모양으로 파고든 해식와를 잘 관찰할 수 있는 곳으로 토끼섬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 예고되어 있다. 사진 석정민

 

여기, 섬과 운명을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친구들

 

굴업도는 일제시대부터 1980년대 초까지 소 방목과 땅콩 농사를 위해 일부지역의 산림이 많이 훼손되는 등 아픔이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넓은 초지로 생태계가 안정되면서 수도권에서 최고의 경관을 갖고 있는 섬으로 각광받고 있고, 초지를 바탕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희귀한 친구들이 서식하고 있다.

 

해마다 5~6월 사랑을 하며 새끼를 키우는 매는 굴업도의 첫번째 주인이다. 사람들은 이 매를 천연기념물 제323호, 그리고 멸종위기야생동식물 1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웃 목기미 해변에는 천연기념물 제326호인 검은머리물떼새가 살고 있다. 멸종위기야생동식물 1급인 먹구렁이는 유유히 섬을 누비고 있고, 역시 멸종위기야생동식물 2급인 왕은점 표범나비는 굴업도의 개머리 초원에서 제비꽃을 먹이로 엉겅퀴꽃과 금방망이꽃을 밀원으로 나비 평원을 만들고 있으며, 멸종위기야생동식물 2급인 애기뿔소똥구리는 개머리 초지에서 소똥 대신 염소똥과 사슴똥을 먹이로 살고 있다.

 

사람들은 이러한 굴업도에 또 다른 이름을 지어주었다. 지난 2009년 9월 산림청과 생명의 숲이 주최한 ‘제10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대상을 수상하였고, 같은 해 11월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주최한 ‘2009, 이곳만은 꼭 지키자!’ 환경부장관상 수상하기도 하였다. 또한 굴업도의 독특한 해식대에 대해서는 문화재청이 지난 2009년 천연기념물로 지정을 예고하기도 했다.

 

지난 7월 굴업도의 개머리초지에서 펼쳐진 박명숙 무용단의 공연 ‘바람이 불어오는 곳’. 사진 석정민

 

여기, 이 섬을 사랑하고 지키고자 애쓰는 사람들

 

굴업도가 일부 부유층의 위락시설을 위한 대규모 환경 훼손과 난개발로 그 모습이 사라질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을 막아보려는 사람들이다. 더 이상 특정 대기업의 이익을 위한 독점적이고 반생태적인 개발 시도 앞에서 인천의 섬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굴업도를 비롯한 덕적군도의 생태자원을 보호하면서도 해양생태관광을 이루어낼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는 사람들이다. 한편으로는 이곳 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경제적인 어려움과 고통에 대해 깊은 관심과 애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다.

 

굴업도 서섬 초지의 겨울. 봄에는 파릇파릇한 생기를, 여름에는 엉겅퀴꽃을, 가을에는 수크령과 갈대, 금방망이 꽃을 볼 수 있다. 이곳에 오를 때마다 새로운 풍경을 만나게 된다. 이 언덕을 부수고 새 흙을 덮어 잔디를 심은 골프장을 만들려고 한다. 이 아름다운 초지가 지켜질 수 있도록 함께해 주길. 사진 조명환

 

뒷산에서 내려다본 굴업도 마을의 모습이다. 일곱 가구 열대여섯 명 되는 주민들이 살고 있다. 굴업도의 주민은 개발 반대와 찬성, 반으로 나뉘어 자본에 의해 마을 공동체 마저 파괴되고 있다. 사진 박영채

 

이제, 우리는 다 함께 마음을 모으고자

 

굴업도와 굴업도의 친구들, 그리고 사람이 공존하고 지속가능한 생명을 영위할 수 있는 길을 찾고자 한다. 굴업도를 포함한 덕적군도에 대한 여러 형태의 대안과 사례를 위해 연구하고자 한다.
굴업도는 사람이 따로 있고, 동식물이 따로 있는 곳이 아니다.
굴업도는 그 자체로 하나이다.
굴업도는 그 가치 그대로 보존되어야 한다.
혹자는 굴업도를 ‘누군가는 갖고 싶어 하고, 누군가는 가고 싶어 하는 섬’이라고 이야기했다. 아름다운 굴업도가 가고 싶어 하는 누구나 갈 수 있는 섬으로 남아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 박민영 님은 굴업도를 사랑하는 문화예술인 모임 실행위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사진전 ‘굴업도의 바람’을 기획하고 굴업도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굴업도를 사랑하는 문화예술인 모임 www.gulupdo.org

아름다운 굴업도를 문화예술의 섬으로 만들기 위해 2011년 5월 12일 공식 출범했다. 건축가 김원을 중심으로 소설가 이호철, 음악가 강석희, 화가 김정헌 윤명로 임옥상 이종상 홍정희, 조각가 강은엽 정보원, 사진가 배병우 주명덕 김중만, 만화가 박재동 이현세, 무용가 김숙자 홍신자 박명숙, 연극인 손숙 박정자, 연출가 표재순, 시인 조용미 채호기 문태준 장석남, 미술평론가 김홍남 김홍희, 건축가 승효상 등 문화예술계의 다양한 인사들이 뜻을 함께하고 있다. 자연과 현대 건축과 미술을 조화시킨 일본의 나오시마나 독일의 인젤 홈브로이히와 같은 세계적인 명소가 될 가능성을 굴업도가 갖고 있다고 생각하며, 굴업도 생태예술섬 프로젝트와 덕적군도 생태관광 계획, 덕적군도 국립해양공원 프로젝트 등 다양한 대안을 제시하고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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