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호 2013년 봄 살림,살림

[ 이야기가 있는 맛 ]

뼈와 가시도 맛이 되는 추어탕

글. 김홍성 편집위원 \ 사진. 정희기



아파트가 일반화되면서 자취를 감춘 살림 중에 확독이라는 게 있다. 가운데가 움푹하면서 넓적한 돌인데 부엌이나 마당 구석에 놓고 절구처럼 썼다. 보리도 찧고 마늘이나 고추를 갈기도 했다. 확독에 갈아 놓은 양념에 푸성귀를 바로 버무려 겉절이를 만들기도 했다. 양순식 씨(76살)는 친정어머니와 함께 확독에 버무린 겉절이의 간을 보던 중에 밥을 가져다가 확독 앞에서 먹던 추억이 있다. 그래서 서울로 이사할 때도 확독을 챙겼다. 나중에 아파트 살림을 하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놔버렸지만 그는 확독을 살림으로 가졌던 마지막 세대일 것이다. 슬하의 4남매 중 외아들인 정철훈 씨(55살)는 어머니의 확독을 이렇게 기억한다.


“여름에는 마당에서 비를 맞고 있던 확독이 가을이 되면 살아났습니다. 푹 삶은 추어를 확독에 붓고 돌로 갈고서 그 위에다 시래기를 버무려 솥에 옮겼죠. 아직 땡볕이 남아 있던 그 가을, 흰 수건을 머리에 두르신 어머니는 그때 아마 서른 살을 갓 넘기셨을 겁니다.”


양 씨는 현재 서울 상계동 상계중앙시장 부근의 한 아파트에서 남편 정근 씨(84살)와 단출하게 산다. 그러나 노령에 이른 남편의 섭생을 위한 음식에 기울이는 정성은 단출하지 않다. 좋은 음식이란 우선 재료를 잘 선별해야 한다고 믿는 양 씨는 꼭 큰 시장에 가서 장을 본다. 동네 마트에 가면 선택의 폭이 좁기 때문이다. 큰 시장도 각각 특색이 다르다. 예를 들면, 채소는 경동시장에서 산다. 잡곡은 성남 모란시장에서, 건어물은 서울 중앙시장에서, 고기는 마장동에서 산다. 조미료는 일체 쓰지 않는 대신 제철에 나는 재료를 애써 구한다. 오이는 봄에 맛있고, 호박이나 가지는 가을에 맛있으며, 시금치는 늦가을이나 겨울에 눈비 맞고 자란 것이라야 오묘한 맛이 난다. 추어는 통통하게 알이 차는 늦가을에 많이 먹었다. 그러나 양식장 추어가 대부분인 요즘엔 제철 추어탕이 따로 없다.



굵은 소금 뿌리고 거품 뿜을 때까지 주무르고 들깻가루와 고춧가루 넣어

지난 1월, 양순식 씨는 여느 때처럼 배낭을 메고 전철에 올랐다. 추어탕 재료인 시래기와 초피 등을 사기 위해 경동시장에 갔던 것이다. 경동시장에는 여러 지방에서 올라온 시래기가 있었는데 속초에서 왔다는 시래기를 골랐다. 촬영하는 날, 그는 미리 시래기를 삶고 시래기 껍질을 벗겨 따로 모아 놓았다. 사진을 찍은 정희기 씨(28살)는 양 씨의 친손녀. 손녀는 할머니가 손끝으로 일일이 벗겨 놓은 시래기 껍질이 그릇에 수북한 것을 보고 경탄했다.


추어탕에 쓸 미꾸라지는 동네 시장인 상계동의 중앙시장에 미리 맞춰 놨다가 아침에 손녀와 같이 가서 세 근(약 2kg)쯤 사왔다. 양 씨는 두어 겹의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온 미꾸라지를 싱크대의 솥에 쏟아 넣고 굵은 소금을 뿌린 후 한 손에 고무장갑을 끼고 주물렀다. 미꾸라지들은 꿈틀대며 거품을 뿜었다. 확독을 쓰던 옛날 고향에서는 고무장갑 대신에 호박잎으로 주물러서 거품을 벗겼다고 한다. 주무른 미꾸라지를 큼직한 어레미(바닥 구멍이 굵은 채)에 옮겨 수돗물로 여러 번 헹궜다. 고향에서는 가마솥에 부어 삶았다는 미꾸라지는 이제 압력솥으로 들어갔다. 쌀 씻어 넣고 밥하듯이 물을 부으면 된다고 했던가. 딱 그만한 양의 물을 미꾸라지가 담긴 솥에 붓고 뚜껑을 닫았다.


가스레인지에 올린 압력솥의 추가 돌기까지는 20~30분이 걸린 듯하다. 양 씨는 그 사이에 양념을 준비했다. 믹서에 들깨를 갈아서 고운 체에 여러 번 밭치고 주물러서 앙금을 내린 후 체에 남은 껍질은 털어 버렸다. 시중에서 파는 들깻가루를 쓸 수도 있지만 밭쳐서 쓰는 게 훨씬 고소하고 맛도 부드럽다. 붉은 통고추 말린 것도 30개쯤 꼭지를 따서 믹서에 넣고 물을 부어가며 갈았다. 고춧가루를 쓰기보다 통고추를 바로 갈아서 쓰는 것이 훨씬 알큰하고 감칠맛이 난다고 했다. 조선 된장도 믹서에 갈았다. 채에 거르면 버리는 게 생겨서 아깝기 때문이다. 반 공기쯤 되는 마늘은 이미 준비했다. 맛국물도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그냥 된장을 풀어 넣은 물에 미꾸라지를 우거지와 함께 끓인 국이 추어탕이다. 보통은 그렇게 끓인다. 그런데 양 씨는 맛국물을 내서 썼다. 맛국물은 다시마, 멸치, 양파가 주된 재료다. 때로 황태 대가리를 넣기도 한다. 맛국물 내는 멸치는 그냥 넣으면 비린내가 나기 때문에 프라이팬을 달궈서 깨 볶듯이 잠시 볶아서 넣어야 비린내가 안 나고 국물 맛이 좋다.


미꾸라지를 삶는 압력솥의 추가 김을 뿜으며 돌기 시작하자 가스레인지 불을 최소한으로 줄여 잠시 뜸을 들이다가 껐다. 압력솥을 쓸 자신이 없으면 일반 솥에다 오래 끓여도 되는데 이 경우는 시간이 배 이상 걸린다.


양 씨는 압력솥 속에서 흐물흐물해진 미꾸라지들을 밑에다 커다란 양푼을 받친 어레미에 쏟아붓고서 맛국물을 부어가며 국자로 누르는 듯 젓고 헤쳐서 뼈와 가시를 걸러냈다. 걸러낸 뼈와 가시는 믹서에 넣고 갈았다. 미꾸라지의 뼈와 가시도 영양소가 풍부하며, 먹을 때 씹히면 뱉고 싶어지기 때문에 따로 모아 갈아 넣는 것이라고 했다.
 


이제 커다란 솥에다 이 모든 재료를 차례차례 넣어서 끓이면 추어탕이 된다. 양 씨의 아파트에는 커다란 솥이 없어서 한 말들이 스테인리스 들통을 가스레인지에 올렸다. 들통에는 체로 밭친 들깨와 갈아 놓은 통고추, 그리고 맛국물을 부어가며 어레미로 걸러낸 미꾸라지가 이미 들어가 있었다. 믹서로 갈아서 가루로 만든 미꾸라지의 뼈와 가시도 조금 남겨둔 맛국물로 헹궈서 들통에 부었다.


작은 아파트의 좁은 조리대에서 이처럼 많은 도구와 그릇을 꺼내서 손길이 많이 가는 추어탕을 70대 노인 혼자 10인 분 이상 끓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양 씨는 일부 재료를 미리 다듬어 두기는 했으나 쓰고 난 그릇을 재빨리 씻어서 있을 자리에 놔두는 방법으로 비좁은 공간을 극복하고 있었다. 이제 남은 일은 시래기를 들통에 넣는 일. 시래기는 약간의 멸치 액젓으로 간을 해서 넣었다. 국이 끓기 시작하자 마늘 반 공기가 들어가고, 좀 더 끓은 후에 간을 보면서 고춧가루를 몇 번 더 넣었다.

 

좋은 음식이란 시간을 들이는 정성으로 만들어지는 것

양 씨의 고향은 전라북도 장수군 산서면. 아버지가 정미소, 양조장, 목재소에 산판까지 하다 보니 집안에 일꾼들이 많았다. 자전거로 쌀을 배달하는 직원만 10명쯤 됐다. 일꾼들은 일찍 출근해서 아침을 같이 먹었다. 일꾼들은 물론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도 음식을 잘 베풀어야 복 받는다고 믿는 집안이어서 부엌살림이 크고 분주했다. 끼니마다 30~40명 분량을 마련했고, 끼니 중간에는 참도 냈다. 이런 집안의 안주인인 어머니를 도우며 자라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부엌일이 몸에 뱄다. 양 씨는 전주여고에 진학했으나 대학은 포기하고 19살에 중매로 전라남도 광주의 정 씨 집안으로 출가했다. 시집의 살림 규모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친정에서 체득한 일솜씨로 시부모의 사랑을 흠뻑 받았다.

 

“시아버님께서는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잡수셨지만 시어머님께서는 담백하고 깔끔한 음식을 좋아하셨습니다. 특히 쑥국, 냉잇국 같은 걸 좋아하셨죠. 시아버님은 국에 밥을 말아서 빨리 드시는 편이었지만 시어머님은 국에 밥을 말지 않고 국은 국대로 밥은 밥대로 천천히 드셨습니다. 시어머님과 함께 살림을 오래 살다 보니 제 식성도 시어머님을 닮아갔습니다.”


양 씨의 시어머니는 1984년에 타계했는데 그때 91살이었다고 한다. 양 씨는 자녀를 기르고 노인들을 모시면서 좋은 음식을 잘 먹는 것이 섭생의 첫 번째 비결이며, 좋은 음식이란 시간을 들이는 세심한 정성으로 만들어지는 것임을 알게 됐다고 했다.



이윽고 밥상에 올라온 추어탕. 양 씨 자신은 추어탕에 초피를 넣지 않는다 하여 나도 우선은 초피를 넣지 않고 맛을 보았다. 부드럽고, 은근하고, 구수했다. 매운맛, 단맛도 알싸하게 섞여 있었다. 반쯤 먹다가 초피를 조금 넣었더니 초피의 강한 맛 때문에 본래의 깊은 맛이 감소되었다. 양 씨가 초피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추어탕이라면 응당 초피 맛을 떠올렸던 내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양 씨의 남편 정근 씨는 우리 귀에 익숙한 수많은 동요를 만들었다. 저∼멀리 하늘에 구름이 간다. 외양간 송아지 음매음매 울 적에 어머니 얼굴을 그리며 간다 ― 이렇게 시작하는 ‘구름’도 그중 하나다. 그는 노령에 이르면서 폐암 수술, 척추 수술 등 큰 수술을 네 번이나 겪었다. 아들은 아버지가 그런 고비를 잘 넘긴 것은 물론 운신하는 데 지장이 없는 저변에는 어머니의 정성과 노고가 그림자처럼 깔려 있다고 말했다. 양 씨의 며느리나 손녀도 그렇게 말했다.


양 씨는 제사나 차례 상에 올릴 제물을 장만하는 데도 특별한 정성을 기울였다. 손녀 정희기 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명절이나 기일이 오기 보름 전부터 할머니는 배낭을 메고 큰 시장에 다니셨습니다. 가족 중 누구 하나 따라간 적이 없었습니다. 항상 당신 혼자 다니셨습니다. 이번에 제가 따라나서서 왜 그렇게 미리 제물을 마련해 두셨냐고 했더니 제물 중에서 특히 생선은 물에 씻어서 한 번 말려둬야 하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명절이 임박하면 물건이 귀해질 수 있기 때문에 미리 좋은 것을 구해야 한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할머니는 그렇게 일일이 마련해 놓은 제물들을 제사 당일이 되면 베란다에서 주섬주섬 꺼내다가 상 차릴 준비를 하셨습니다.”


5년 전에 며느리 김홍주 씨(56살)에게 제사를 물려준 양 씨는 자식들 부담을 덜어 주느라고 기제사는 지내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명절 제사만 아들 집에서 지내왔는데, 제물로 쓸 시금치, 고사리, 도
라지 등 나물은 계속 맡고 있다.


“어머님을 존경해요. 하지만 우리 세대는 어머니들을 따르지 못합니다. 음식에 들이는 정성도 정성이지만 그만한 시간을 낼 수가 없기 때문이죠. 우리는, 그러니까 저와 남편과 아들 딸 넷은 명절 전날 함께 움직입니다. 아침 일찍 방학동 도깨비 시장에 가서 순댓국 한 그릇씩 후딱 먹고 제물을 장만합니다. 지난 추석에는 송편도 빚지 않고, 네 식구가 같이 준비하니까 오후 4시에 일이 끝나더군요.”


며느리 김 씨는 새로운 풍속을 만들고 있지만 시어머니 양 씨는 여전히 혼자서 배낭을 메고 재래시장을 찾는다. 양 씨는 재래시장을 할머니 시장이라고 했다. 재래시장에는 주로 할머니들만 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양 씨는 또 젊어서는 먹는 음식의 중요성을 몰랐는데 늙어서야 비로소 깨달았다면서 음식에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일은 사실 당연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추어탕 만드는 법

재료 : (10~12인 기준) 미꾸라지 2kg, 말린 시래기 0.5kg, 조선된장 5큰술, 들깨 1공기, 마늘 1/2공기, 맛국물 2ℓ,통고추 30개 또는 같은 분량의 고춧가루, 초피(초피나무 열매의 껍질을 말린 가루) 약간  

도구 : 어레미, 믹서, 체, 압력솥, 큰솥, 큰 양푼, 주걱 또는 국자

➊ 멸치, 양파, 다시마, 황태 등으로 맛국물을 2ℓ쯤 내둔다.

➋ 말린 시래기를 푹 삶아서 식혔다가 물기를 뺀 뒤에 껍질을 벗겨 둔다.

➌ 들깨 1공기를 믹서에 갈아서 껍질은 체로 걸러내고 국물만 남겨 둔다.

➍ 조선된장 5큰술을 적당량의 ①의 맛국물을 섞어 믹서로 갈아 둔다.

➎ 마늘 반 공기를 갈아 둔다.

➏ 통고추 20~30개를 ①의 맛국물을 섞어 믹서로 갈아 둔다.

➐ 미꾸라지는 소금을 뿌리고 주물러서 거품을 낸 후 여러 번 깨끗이 씻어서 형태가 간신히 남을 만큼 푹 삶은 다음 어레미로 살만 먼저 밭쳐 솥에 넣고 어레미에 남아 있는 뼈와 가시는 ①의 맛국물을 섞어 믹서로 갈아 솥에 넣는다.

➑ ⑦의 솥에 ①의 맛국물 남은 것과 ②, ③, ④, ⑤, ⑥을 넣고 끓이면서 간을 본다.

 

 

김홍성 님은 산책과 도보여행을 좋아하는 시인입니다. 20세기 말에 네팔로 이주해서 설산과 벗하고 살다가 귀국해, 현재 포천 땅에 머물고 있습니다. 시집 《나팔꽃 피는 창가에서》, 산문집 《천년 순정의 땅, 히말라야를 걷다》, 《우리들의 소풍》, 《꽃향기, 두엄냄새 서로 섞인들》 등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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