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호 2013년 봄 살림,살림

[ 몸살림 ]

움직이는 명상 아사나

글 송태영·이리나\사진 류관희

고요하고 평화롭게 움직이는 최선의 몸짓인 ‘아사나’는 세상과 부딪히면서 생긴 많은 욕심과 집착을 서서히 사라지게 하며, 모든 대상으로부터 자유로운 침묵의 세계로 안내한다.



세포 하나하나까지 살피기


고요한 움직임 속에서 몸은 새롭게 탄생하고, 생각이 사라지는 현상 속에서 마음은 평화가 된다. 몸의 살림, 생각의 죽임 그리고 영혼의 일깨움이라는 상관관계 속에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배운다. 움직임을 하나하나 섬세하게 살피면 우리의 삶에 인과법칙이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다고 깨치게 된다. 선한 행동을 하면 선한 결과가, 악한 행동을 하면 악한 결과가 있는 것이 당연하듯이 몸을 건강하게 하는 원인을 제공하면 건강해지고, 마음에 어떠한 부정적인 생각도 들이지 않으면 평온해진다. 세 살 먹은 어린애도 아는 것이지만 팔십 먹은 노인도 지키기 어려운 일이다. 그만큼 앎과 삶이 일치하는 실천적인 삶을 살기 쉽지 않다. 이 세상을 살면서 그토록 힘이 드는 것은 실천에 게으르기 때문이다. 한평생 맑은 삶으로 충만했고, 생을 마칠 때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면 그것은 세상에 태어나 게으르지 않고 실천적인 삶을 살기 위해 정성을 다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생멸의 이치를 깊이 이해하는 시간 속에서 삶은 평화가 된다.
아사나는 단순히 몸의 겉모양을 가꾸거나 근육의 발달과 자세의 교정, 신체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세포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자유를 주고, 생명활동을 하는 데 어긋남이 없도록 세밀하게 살피는 것이다. 신체 각 기관이 제 몫을 하는 데 걸림이 없게 하고, 정신적인 능력을 증대해 영혼의 성숙을 이루는 데 허물이 되지 않도록 하여 삶의 전 과정이 감사와 행복으로 가득 차게 도와준다. 고요하고 정중한 움직임의 아사나를 지속적으로 수행하다보면 자신을 보다 사랑하게 되는 애틋한 마음이 생기고, 편견이 없는 자비심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자신을 높이기보다는 한없이 낮출 줄 아는 하심이 깊어지고, 모든 대상을 수용적으로 받아들이는 크고 넓은 마음이 된다. 또한 한 마디를 하더라도 따듯함과 향기로움이 배어 있는 진실한 말을 하게 된다.



아침에 일어날 때 이유가 충분한 삶


우리는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고통스럽고 괴로운 시간을 맞이하여 좌절할 때가 많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불필요한 것들을 너무 많이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잃었을 때의 상실감이 크고, 더 많이 채우려고 욕심을 부리지만 구하지 못해서 괴로움이 크며, 채우고 채워도 만족하지 못하는 욕망의 노예가 되었기 때문에 결핍된 마음이 크게 자리하면서 늘 허기를 느낀다. 항상 불만족한 마음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실망과 분노를 자주 느끼게 되고, 자신의 존재가 무가치하다는 자괴감으로 힘겹게 살아간다.
삶이 지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쓸데없는 생각들과 고정관념이 생활 속에 깊이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삶이 자유로우려면 불필요한 생각으로부터 벗어나 삶의 양식이 소박하고 단순해야 한다. 그래서 버리고 비우는 연습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쉬지 않고 해야 할 일이 있으니, 쓸데없는 생각들을 끊임없이 비워내는 것이다. 불쑥 솟구치는 생각이 아니라 깊은 사유를 통해 버리고 비워내어 맑은 편안함을 느끼고, 평등한 마음으로 나누고 베푸는 즐거움을 아는 삶을 지향해야 한다.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어 삶을 아름답게 그려나가는 존재여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름만 주인공일 뿐, 등장조차 못하고 자신의 삶을 불필요한 일들로 가득 채우며 산다. 삶의 초점이 남에게 있고, 남처럼 살려고 하고, 남처럼 되고 싶어 하는 어리석음이 크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답게 사는 것이 자유로운 삶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고정관념이 삶을 뒤덮고 있는데, 자유란 ‘자기의 이유’로 존재성이 드러나는 주체적인 삶을 의미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말에 따라 ‘생각’이라는 고정관념에 끌려다니기보다 “나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나는 깊은 사유를 통해 ‘나’답게 살아가는 창조적인 존재이다.”라는 명제를 세우고 존재지향적으로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침에 눈을 뜰 때 일어날 이유가 충분한 것, 이것이 바로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의 가장 거친 부분인 몸을 바르게 움직이는 것부터 시작하여 몸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몸을 바르게 움직인다는 것은 고요한 움직임 속에 내 온 마음을 담아 전력을 기울여 집중함을 이른다. 그 순간에는 오직 나의 ‘존재’만이 자리한다. 몸이 건강하고 편안해야 마음이 안정되고, 마음이 안정되어야 맑은 영혼을 지닌 대자유인이 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움직임에 질서가 없으면 몸은 편안함을 잃고, 몸이 안정되지 못하면 마음도 안정을 잃어 마음 씀이 넓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한평생의 살림살이는 누추하고 초라하게 된다. 정중하게 움직이는 ‘나’, 흐트러짐 없이 자리매김하여 명상에 들어 있는 ‘나’,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자리에서 온전히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나’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는 것이고, 스스로 살리는 일에 게으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삶은 고정되어 있는 이름씨가 아니라, 덕의 향기를 풍기며 명징하게 살아 움직이는 움직씨이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힐링’이며 ‘참된 삶’이다.



고요함 속에 마음을 모아 집중된 몸짓으로


아사나는 흔히 앉은 자세인 좌법, 그리고 어떠한 법칙에 의해서 움직이는 동작을 말한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는 본래 마음자리인 성품을 제자리에 있게 하는 것을 뜻한다. 사람의 진면목인 고요함 속에서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집중된 몸짓으로 내 몸을 하나하나 읽어나가며 그릇된 것을 알아차리는 행위이다.
우리는 자꾸만 무엇인가를 하려고만 한다. 그러나 우리의 몸에서, 생각에서 그리고 삶에서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지를 자세히 살펴보고 알아차린 후, 잘못된 것과의 관계를 벗고 바르게 변화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잘못된 상태에서 무엇인가를 더하려고만 하면 더욱 그릇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먼저 건강해지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건강하지 못한 부분을 바르게 잡아주는 것이 중요하다. 건강해지기 위해서 많은 영양제를 먹기보다 인스턴트식품을 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몸은 주인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잘못된 부분이 바로잡히기를 원한다. 그런데 주인인 나는 그러한 외침을 외면하고 잘못된 방향으로만 달려가고 있으니 삶은 자꾸 힘들어지고 아름다워야 할 인생길이 피곤하고 지치는 것이다. 늘 밖으로만 향해있던 눈을 내면으로 돌려 순수하게 집중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래야 몸과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고, 몸과 마음이 조화를 이루어 삶을 이끌어가게 된다.
집중은 달리 말하면 커다란 침묵의 세계이다. 집중을 통해서 몸과 마음 그리고 호흡이 하나가 되어 깊은 침묵의 세계로 침잠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움직임 하나하나에 마음을 싣는 과정에서 호흡은 고요해지고, 움직임은 더욱 섬세해지며, 마음은 점차 평온해진다. 커다란 침묵과 하나가 되면 헐떡이던 나는 사라지고 고요한 평화가 되어 있는 ‘진정한 나’와 만나게 되고, 어떠한 외부의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상태인 무아의 경지에 들게 된다. 아사나를 하는 것은 멈춤이나 유지가 아닌 오로지 삶이 흘러가는 과정에서 순수하게 집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다. 그 과정에서 고요함을 경험하고, 비로소 욕심을 덜어낸 자유로운 삶 속에서 몸과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된다. 움직이면서 마음을 심어주고, 가꿔주고, 고쳐가면서 변화의 극치를 삶의 환희로 이끌어 낼 준비를 하자.



집중과 조화의 자세


시연. 김보미(자담)






1. 사마스티티 아사나
산처럼 곧게 서서 고요함 속에서 몸과 마음의 평화로움을 서원하는 자세이다. 발바닥 전체에 몸무게를 골고루 싣고, 온 몸을 이완시키며 가슴과 합장한 손과의 간격을 자두 하나 들어갈 정도로 한다.



2. 찬드라 아사나
찬드라는 ‘달’이라는 뜻으로 진리의 상징이며 마음의 표현이다. 숨을 마시며 합장한 손을 천천히 위로 올리는 동시에 몸과 함께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면서 뒤로 젖힌다. 무릎은 끌어올리고, 꼬리뼈는 살짝 말아 올리듯이 한다.



3. 우타나 아사나
부드럽고 강하게 척추를 늘리며 집중하는 자세이다. 숨을 내쉬며 집중해서 다리의 뒤쪽 근육은 늘리고 무릎은 펴면서 척추를 최대한 깊게 내린다. 엉덩이뼈는 위로 끌어올린다.






4. 수리야이 아사나
행동과 힘의 원천인 태양을 바라보며 도약을 하기 위한 준비자세이다. 숨을 마시면서 무릎을 직각으로 구부리고 반대편 다리는 뒤로 곧게 뻗는다. 시선은 발뒤꿈치로부터 머리까지 곧게 뻗은 연장선상 위를 바라보도록 한다.



5. 아도무카 스바나 아사나
피라미드처럼 몸을 삼각의 형태로 만들어서 몸에 에너지를 응축시키는 자세이다. 숨을 내쉬면서 손바닥으로 바닥을 밀고 꼬리뼈를 한껏 끌어올리며 기지개를 펴듯 몸을 늘린다. 가슴은 아래로 내리고 무릎은 한껏 펴며, 허벅지 근육은 위로 끌어 올린다.


6. 우르드바무카 스바나 아사나
몸으로 원을 만들며 원만무애한 마음이 되는 자세이다. 숨을 마시면서 발뒤꿈치로부터 머리의 정수리까지 순차적으로 집중하며 몸을 뒤로 젖힌다. 엉덩이를 한껏 조이면서 온몸의 탄력성을 이끌어 외연을 넓히고 에너지를 활성화한다.





 

7. 아도무카 스바나 아사나
엉덩이로부터 등에 걸친 근육을 펴고 굽은 척추를 바르게 하여 생명력인 프라나를 늘린다. 머리와 상체를 아래로 향하게 하여 신선한 혈액과 산소를 뇌에 공급하여 머리를 맑게 한다. 전체적인 대사를 좋게 하여 전신의 피로를 회복시키고 어깨·등의 결림이나 다리통증, 무력증 등을 해소한다.



8. 수리야이 아사나
전신의 기혈 순환을 돕고 원기를 강하게 하며, 정신적인 침체와 우울증을 없애준다. 정진의 3요소인 집중력, 지속력, 실천력을 길러준다.





 

9. 우타나 아사나
육체적, 정신적 피로를 없애주고 심장박동을 느리게 한다. 머리로의 혈행이 충만하여 뇌세포를 진정시키고 생기를 준다. 다리 뒷부분과 등근육이 강하게 늘어나 유연성을 극대화한다.



10. 찬드라 아사나
전체적인 혈액순환과 함께 오장의 기운 중 음의 기운을 도모하여 양의 기운을 북돋아 음양의 조화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한다. 깊은 호흡을 도와 산소소비량을 늘려주고 전체적인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한다.




↘ 송태영(무아) 님은 사람들이 마음에 맑은 공간을 하나씩 심고 살아가길 서원하며 수행의 이치를 밝히고자 합니다. 이리나(단아) 님은 요가느림원 원장으로서 수련 지도와 지도자 양성에 힘쓰고 있습니다.
요가느림원
www.yoganrimw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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