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호 2013년 봄 [특집] 식량주권과 식량자급

[ 생활 실천편② 직거래장터 ]

좋은 먹거리를 만나는 장

글 이선미 편집부 \ 사진 여성환경연대

마르쉐@혜화동 장이 선 지난 2월 2일은 꽤 추웠던지라 버스를 타고 아르코미술관을 찾아가면서 내심 ‘이렇게 추운 날 사람들이 얼마나 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11시쯤 도착한 장터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구경하기도 어려운 정도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우선 다 구경한 후에 이것저것 사야겠다 했는데, 한 바퀴 돌고 오니 내가 점찍어뒀던 제주산 레드키위도 국내산 리코타치즈도 이미 모두 팔리고 없었다. 도시 속 직거래장터는 이렇게 성황리에 열리고 있었다.


‘알고 먹고 쓰는 삶’을 살고 싶다


지난 해 10월 시작된 이 직거래장터는 프랑스어로 시장이라는 단어인 ‘마르쉐’에 장이 서는 지역 ‘혜화동’이 붙어 '마르쉐@혜화동'이다.
서울 한복판에 장을 펼치기까지는 세 사람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마르쉐를 기획한 세 사람 중 한 명인 김수향 씨는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사고 당시 일본에 있었다. 방사능이 유출되는 상황에서 엄청난 불안과 공포를 느껴 내가 먹고 쓰는 것들이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 현재의 시스템에서 벗어나 제대로 ‘알고 먹고 쓰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도시 속 직거래장터를 제안하게 됐다. 오랫동안 일본의 파머스마켓과 한국의 재래시장 매니아로 다양한 경험을 쌓은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여성환경연대 활동가로 서울에서 문래동텃밭사업을 기획, 진행하고 있던 이보은 씨와 십년후연구소를 꾸리던 송성희 씨가 함께 이 제안을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2011년 문래동텃밭 농부들이 생산한 채소 등으로 김 씨가 운영하는 카페 수카라의 음식을 만든 경험을 살렸다. 채소값은 생협 기준으로 받았고, 카페에서 나온 음식물쓰레기는 텃밭의 지렁이 먹이와 퇴비로 활용했다. 여기에 일본의 파머스마켓, 마르쉐재팬 프로젝트에 대한 관심을 더해 서울에서도 파머스마켓을 펼쳐보기로 한 것이 마르쉐@혜화동의 시작이다.



지난 2월 2일 추운 날씨에도 사람들로 붐빈 마르쉐@혜화동


생산자와 소비자가 만나는 플랫폼


마르쉐@혜화동에는 농부팀, 요리팀, 수공예팀이 있는데 소비자에게 생산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할 수 있도록 직접 생산자가 출점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특히 도시농사 생산물은 겉으로만 봐서는 시장경쟁력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도시농부들이 자신의 삶과 농사경험을 전달하는 기회가 매우 중요하다. 이를 통해 소비자들은 농산물의 외양이 아닌 가치를 알게 되고 농부는 계속해서 농사를 지을 수 있게끔 동기부여가 된다. 전적으로 도시농사와 로컬푸드를 위해 기획된 장이다. “처음 장을 열었을 때 파는 사람들과 사는 사람들이 허물없이 이야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대형마트에서는 하지 않는 일들이죠.” 송 씨의 말이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장터에 들어와서 계속 머무르는 모습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공간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한 번 장이 설 때마다 40~50팀이 출점한다. 생산자마다 가져올 수 있는 양 또한 한계가 있기 때문에 마트처럼 사고 싶다고 해서 무한정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함께 생산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귀하게 주고받는 것, 그래서 사람들이 모이고 만나는 ‘플랫폼’이 되는 것이 이 장터의 참모습이다. 요리사들은 좋은 식재료에 대한 열망이 있고 농부들은 자신이 키운 농작물이 잘 쓰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마르쉐@혜화동은 이러한 마음들이 만나는 자리이다. 경남 함양에 귀농한 젊은 농부가 생산한 사과로 한 파티쉐가 애플파이를 만들어 판 적이 있다. 농부는 자신의 사과로 만든 요리의 맛이 궁금했고, 파티쉐는 자신이 구운 파이를 선물해 궁금증을 풀어줬다. 이렇게 먹거리로 사람과 사람이 이어진다.
마르쉐@혜화동에서 인기가 많은 품목은 병조림이다. 병조림 기술 덕분에 텃밭농사가 풍요로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병조림은 작고 못생긴 농산물을 버리지 않고 저장할 수 있어 좋고, 언제든지 건강한 농산물을 먹을 수 있어서 좋은 생산자와 소비자 양쪽에 고마운 품목이다. 특히 병조림을 통해 농산물의 전체를 먹게 되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사람들은 보통 늘 먹는 부분만 먹는데, 병조림 덕분에 버리는 부분이 크게 줄었다.
“물건을 사고팔고 사람들로 붐비는 복잡한 공간이지만, 시장은 사람들이 머무르고 싶은 공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 씨의 말대로 마르쉐@혜화동은 복잡함 속에서도 정돈된 아름다움이 있다. 한 달에 한 번 장이 서는 임시장소이지만 음식을 먹어치우는 공간이 아니라 음식을 음식답게 먹는 공간으로 가꾼다. 일회용품을 쓰지 않고 식기를 빌려주었다가 돌려받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먹거리를 통해 서로 대화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음식에 대한 예의’를 소중하게 생각한다. 운영하는 모든 품은 자원봉사자들이 감당한다. 지금까지 인건비가 전혀 들지 않았다고 하니 자발적으로 이뤄지는 장터라는 말이 과연 맞다. 덕분에 판매수익은 모두 생산자의 몫이다. 앞으로는 장을 지속가능하게 하기 위해 판매액의 10%를 지속가능기금으로 조성할 계획도 갖고 있다.


 
제주에서 온 한라봉과 레드키위



문래동텃밭에서 내놓은 묵밥. 술술 잘도 넘어갔다.


재료에 눈뜨는 공간은 계속 확장된다


마르쉐의 모든 집기는 쉽게 설치하고 철거할 수 있는 구조로 1톤 트럭 안에 다 들어가도록 만들었다. 요리팀과 농부팀을 합쳐 50여 개 팀이 장사할 수 있는 규모다. 이를 기반으로 어느 곳에서나 마르쉐가 펼쳐질 수 있도록 시장을 기획하고 집기를 빌려주는 일을 하려고 구상하고 있다. 특히 올해에는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서 또 다른 마르쉐를 열 계획인데, 이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되면 좋겠다.
마르쉐의 궁극적인 바람은 사람들이 먹거리를 소비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백화점, 마트에서 쇼핑하는 것이 참 지루한 일이라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되면 좋겠다. 그곳에는 먹거리의 이야기도, 먹거리를 주고받는 사람과의 관계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마르쉐는 새로운 것에 민감한 사람들, 기존의 틀과 다르게 살고 싶은 사람들의 자연발생적 요구에서 나온 새로운 트렌드이다. 이 사람들을 통해 우리 사회에 파급력이 더욱 커졌으면 좋겠다. 특히 전업농의 꿈을 꾸는 사람들이 하나 둘 생기는 것을 본다. 내가 지은 농산물을 기쁘게 먹어줄 사람들과 내 삶을 나눌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용기를 낼 수 있다면서 마르쉐@혜화동이 없었다면 엄두를 내지 못했을 거란 말이 고맙고 자랑스럽다.
어려운 점이 있다면 제도의 제약일 것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공장에서 만들어진 제품이 아니면 유통이 어렵게 되어 있다. 소규모 생산을 위한 시스템이 부족한 데 따른 것으로, 대안적인 시장을 위한 작은 질서들이 필요하다.
마르쉐@혜화동을 시장이라고 부르기에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우리는 마르쉐@혜화동이 ‘재료에 눈뜨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식재료가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고, 그 맛을 알게 되는 곳이죠.” 좋은 것을 서로 나누면서 맛있고 건강한 음식에 대한 감각이 생기는 것만으로도 마르쉐@혜화동의 가치는 충분하다. 매달 두 번째 토요일마다 혜화동에서는 농부, 요리사, 아티스트가 모여 행복한 축제를 벌이고 있다. 그리고 행복은 변화의 가장 큰 힘이다.



마르쉐
www.marchea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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