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호 2013년 봄 [특집] 식량주권과 식량자급

[ 생산 실천편⑤ 소농 ]

식량위기의 대안, 친환경농업의 주역

글 장경호

식량위기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반증이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도 식량(먹거리), 기후(환경), 에너지 등이 21세기 지구촌을 위협하는 세 가지 중요한 위기라는 것에 대해 의견이 일치한다.
그런데 우리는 식량위기 상황에 대해 전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일부분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식량위기를 가난한 나라, 가난한 국민의 기아문제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고, 2007~2008년과 같이 세계적인 흉작으로 식량공급이 갑자기 부족해서 발생하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겪어야 하는 식량위기는 이미 우리의 일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위기이다. 또한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리지 않고 소수의 상류층을 제외한 대부분의 인류가 공통으로 겪고 있는 총체적인 위기이다.


2000~2001년을 기준으로 전 세계 식량의 총생산량이 총소비량보다 낮은 식량 부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이전까지는 세계 총생산이 총소비보다는 많지만 가난한 나라와 가난한 계층이 식량부족과 기아문제로 고통 받는, 이른바 ‘상대적 식량위기’의 시대였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로는 생산이 소비를 따라가지 못해 식량의 절대적 공급이 부족한, 이른바 ‘절대적 식량위기’까지 겹쳐 나타나게 되었다. 절대적인 식량 부족이 고착되고, 만성화되면서 국제 곡물가격도 폭등했다. 최근 주요 곡물의 국제가격은 2000년과 비교할 때 약 2.5∼4배 정도 폭등했다. 이런 현상은 1930년대 대공황 및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국제 곡물가격의 폭등은 전반적인 먹거리의 가격 폭등을 유발하고 있는데, 우리가 흔히 ‘애그플레이션’이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절대적인 식량부족과 먹거리 가격의 가파른 상승은 이미 우리의 일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지구촌의 식량 부족과 가난한 계층의 기아문제도 심각하지만 여기에 더해 다국적기업들이 주도하는 글로벌푸드시스템이 식량과 먹거리를 장악하면서 먹거리 안전까지도 점점 더 위험해지고 있는, 그야말로 ‘총체적 식량위기’가 우리의 일상이 되어 버렸다.

 

기후변화와 자유무역으로 인한 위기
절대적인 식량부족은 결국 소비의 증가를 생산이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왜 생산이 소비보다 부족하게 되었을까? 소비량이 늘어난 주요 이유로는 육류 소비 증가, 중국과 인도 등 신흥 개발도상국의 소비 증가, 바이오연료 소비 증가 등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대체로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문제는 생산에 있다. 농업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단위 생산성이 증가했는데도 불구하고 생산이 소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주된 이유는 기후변화와 농산물 자유무역 때문이다. 기후변화 때문에 사막화가 확산되고 물이 부족하여 경지면적이 줄어들었다. 또한 잦은 기상이변으로 태풍, 홍수, 가뭄 등이 빈발하는 등 자연재해가 식량생산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여기에 농산물의 자유무역은 소농의 몰락과 경지이용률의 감소를 초래하여 식량생산이 소비의 증가를 따라가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기후변화라는 요인을 제외한다면 소농의 몰락이 식량위기를 초래한 구조적인 원인이 된다. 한국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다. 한국은 지난 20여 년 이상 농산물의 자유무역, 즉 농산물 시장개방을 가장 충실히 수행했다. 그 결과 1991년에 약 715만 명이던 농가인구가 최근에는 297만 명으로 절반 이상 줄어들었고, 식량자급률은 43.5% 수준에서 22.6% 정도로 급격히 떨어졌다. 농산물의 자유무역이 소농을 몰락시키는 이러한 현상들은 한국을 비롯하여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과 후진국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미국과 유럽 같은 선진국에서도 소농의 몰락 현상이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전 세계적으로 소농이 몰락하는 가운데 식량생산은 점점 더 소수의 기업농과 대농에게 집중되었다. 먹거리를 돈벌이의 수단으로 여기는 기업농과 대농들은 유전자조작농산물(GMO), 대규모 화학농업, 공장식 축산을 경쟁력이라는 이름으로 앞다투어 확산시켜 왔다. 이렇게 생산된 먹거리가 곡물메이저를 비롯한 다국적기업들에 의해 전 세계인의 밥상을 장악했다. 이 과정에서 장거리 운송 및 장기간 보관을 위해 다양한 방식의 화학적 처리방법이 수확후관리(post-harvest)라는 명목으로 빠르게 확장되었다. 우리가 불안을 느끼는 밥상의 위기, 먹거리 위험의 근원은 이와 같은 글로벌푸드시스템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국제농민연대조직 ‘비아캄페시나’의 새로운 패러다임
식량위기를 불러온 농산물 자유무역에 맞서 저항을 시작한 것은 소농들이었다. 농산물 시장개방으로 생존의 위기에 내몰리게 되면서 생존을 위해 저항에 나선 것이다. 비록 소농들의 저항이 농산물의 자유무역과 정부의 농업정책 방향을 바꾸지는 못했지만 식량위기의 대안을 제시하고, 그 대안에 대한 지지를 확산시키는 성과는 거두었다. 생존권 차원에서 시작된 소농들의 저항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국제적인 연대운동으로 확산되었고, 그속에서 식량주권이라는 대안 패러다임을 국제적으로 확산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소농들은 농산물 자유무역이라는 세계적 압력에 맞서 저항운동도 개별 국가 차원에서 국제연대로 확대하였고, 그 성과로 ‘비아캄페시나(via campesina)’라는 국제농민연대조직을 탄생시켰다. 전 세계 69개국 121개 농민단체로 구성된 비아캄페시나는 식량위기 문제에 있어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제농민조직으로 성장했다. 한국에서는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이 정회원으로 가입했고, 전농과 전여농은 비아캄페시나 내부에서 상당한 신뢰와 높은 평가를 바탕으로 매우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전여농이 제4회 식량주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비아캄페시나의 가장 큰 성과는 식량위기의 대안으로 ‘식량주권’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이다. 1997년에 처음 비아캄페시나가 국제사회에 제안하였고, 2004년에는 유엔식량농업기구(UN/FAO)가 이 제안을 수용하여 식량권에 대한 지침을 각 국가에 권고하였고, 유엔인권이사회(UN/HRC)도 강력한 지지의사를 밝혔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최근에는 문화다양성협약이나 기후변화협약과 같이 국제적으로 강제성과 구속력을 갖춘 식량주권 협약을 만드는 문제까지도 논의가 진전되어 있는 상황이다.
또한 소농들은 식량주권을 선언적으로 제안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각 나라별로 식량주권의 의미에 부합하는 다양한 대안들을 실천하는 활동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이른바 대안적 먹거리운동과도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 요즘 커다란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는 로컬푸드(local food), 슬로푸드(slow food), 사회적 협동경제, 지역순환사회경제 등 새로운 대안적 흐름들도 식량주권과 맥락이 통하는 것들이다. 특히 전여농의 언니네텃밭과 꾸러미사업 그리고 토종종자 지킴이 사업 등은 식량주권과 대안 먹거리운동을 직접 결합시킨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21세기 농업정책의 중심은 소농
국제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식량주권 패러다임은 다양한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크게 세 가지 내용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국가 차원의 권리이다. 세계무역기구(WTO)가 농산물 자유무역을 위해 개별 국가의 정책을 제한하는 것에 반해 농업·식량·먹거리 정책을 개별 국가가 자신의 실정에 맞게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자는 것이다. 둘째, 농민 차원의 권리이다. 농민이 안심하고 농사지을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고 개별 국가들이 법률·제도·정책을 통해서 그 권리를 보장해 주자는 것이다. 셋째, 국민 차원의 권리이다. 국민이 필요로 하는 안전한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제공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자는 것인데, 국민의 먹거리 기본권 보장을 국가의 기본 책무로 하자는 것이다.
현재의 식량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별 국가들이 자국의 식량자급률을 높일 수 있도록 농업보호정책과 농산물수입규제정책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식량자급률을 높이기 위한 국가의 정책은 소농을 보호하고 유지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농의 몰락이 식량자급률의 하락과 식량위기로 이어졌기 때문에 소농이 안심하고 농사지을 수 있는 제도와 정책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돈(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농이나 대농은 지속가능한 친환경 유기농업으로의 전환이 어렵지만 상대적으로 소농은 전환이 비교적 쉽다. 그래서 소농이 지속가능한 농업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제도와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처럼 식량자급률을 높이고, 지속가능한 농업으로의 전환이 확대되면 안전한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이 튼튼해지고, 국민의 먹거리 기본권도 보다 강화된다는 것이다. 결국 식량주권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기업농이나 대농이 아니라 소농이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각 나라마다 소농의 존재형태가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소농에 대해 구체적으로 엄밀하게 정의를 내리기는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는 기업농과 대농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소규모의 농가를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한다. 그리고 소농은 대체로 자기 가족의 노동만으로 대부분의 농사를 짓기 때문에 가족농의 특징을 갖고 있다. 또한 한국처럼 경지 규모가 작은 경우에는 중간 정도 규모의 가족농도 소농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그래서 한국에서 소농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소수의 기업농과 대농을 제외한 대다수 중소규모의 가족농을 일컫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이들이 식량자급률을 높이고, 지속가능한 농업으로 전환함으로써 국민의 먹거리 기본권을 실현할 수 있는 주역들이다. 결국 우리나라가 21세기 지구촌 식량위기 시대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소농(중소 가족농)을 농업정책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

 

↘ 장경호 님은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으로, 식량위기 시대에 식량자급을 위한 연구에 마음을 쏟고 있습니다.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겸임교수로도 활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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