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호 2013년 봄 [특집] 식량주권과 식량자급

[ 식량자급을 함께 생각하는 네 권의 책 ]

종자에서 슈퍼마켓까지

글 윤미화

내가 사는 지역은 아직 오일장이 열린다. 북적대는 장터를 구경하다가 구석에서 수줍게 웃는 할머니를 만난다. 겨울에는 소금에 담가 떫은맛을 뺀 침시와 가마솥에 푹 삶은 시래기를 갖고 나온다. 봄이면 밭둑에서 뜯은 봄나물을 작은 바구니에 담았다. 여름에는 텃밭에서 키운 애호박과 오이를 내오고 가을에는 생강이나 고구마, 심지어 뒷마당에서 딴 홍시도 판다. 반듯한 생김새는 아니지만 공들여 키운 먹거리다. 시골 장터 손님은 거의 노인이다. 노인이 노인 물건을 팔아준다. 젊은 사람들은 대형마트 할인세일을 이용한다. 대형마트는 한 장소에서 세계 각지에서 수입한 물건을 편리하게 구매할 수 있다. 검은 비닐 봉투에 볼품없이 담아주는 시골장터와는 품목이 완전히 다르다.

 

 

세계화 시대 모든 물건에는 바코드가 붙는다?

대형마트는 기업이 만들어 원거리 수송을 한 상품을 판다. 모든 물건에 바코드가 붙었다. 계산대에선 바코드를 인식한 값을 지불한다. 시장을 기업이 장악한 상황에선 바코드가 안 붙은 물건은 상품이 아니다. 가령, 시골 할머니들이 장날 갖고 나오는 호박잎 몇 장, 장독대에서 퍼 담은 된장과 같은 것이다. 몸소 재배한 농산물로 직접 품을 팔아 만들었지만 바코드가 없으므로 시장성이 결여된다. 시장은 이렇게 기업이 생산한 것과 지역 주민 생산으로 갈리고 다시 원거리와 근거리로 나뉘고 마침내 세계화와 자급으로 대립했다.

‘세계화’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세계 여러 나라를 이해하고 받아들임. 또는 그렇게 되게 함” 문화, 경제, 정치, 종교를 들여오는 것을 전제로 할 때 세계화는 교환, 교류의 의미다. 나눔의 원칙은 평등한 관계에서 성립한다. 어느 한 쪽이 손해를 보거나 조건에 구속되면 의존적 관계가 된다.

세계화와 대치개념인 ‘자급’은 “자기에게 필요한 물자를 스스로 마련하여 충당”한다는 뜻이다. 범지구적 세계무역이 창궐한 시점에 스스로 필요한 물자를 만들어 사용하는 일이 가능할까? 다른 건 몰라도 먹거리와 단순한 가정용품은 가능하다. 앞에서 제시한 시골 장터 할머니들은 손수 만든 식품을 시장에 갖고 나온다. 바코드는 없지만 가욋돈을 마련하는데 일조한다. 이처럼 자급은 생활경제로부터 나온다. 요컨대 직접 생산한 농산물을 판매한 수입으로 생계가 가능한 수준이다. 불과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농업은 자급의 대명사였다. 비록 풍요롭지는 않았지만 삶의 기반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돈이 없으면 굶는다. 어찌된 일일까? 기아를 해결하기 위해 인류는 기계화와 종자개량에 성공했다. 당연히 식량생산도 증가했다. 그럼에도 1990년대 초반 8억 명이었던 기아인구가 2011년에는 10억 명에 육박한다. 농업농민연구소 녀름에서 번역한 《먹거리 반란》은 식량위기 주범으로 세계 먹거리 체계를 지목한다. 서문에서 “굶주림에 저항하기”로 자급의 개념을 강렬하게 정리한 이 책은 곡물 메이저 기업이 세계 먹거리 체계를 점령했다고 폭로한다. ADM과 카길 두 회사가 전 세계 곡물무역의 4분의 3을 장악했다. 전 세계를 식량으로 도박하는 카길은 내가 사는 시골 마을에까지 조사료를 공급한다.
 


수출용 커피, 카카오, 면화 재배로 굶주림의 땅이 된 아프리카

카길과 더불어 몬산토는 식량위기 해법으로 유전자변형 작물을 만들었다. 유전자변형 작물(GMO)는 저개발국가에 ‘녹색혁명 포장’을 붙여 공급했다. 남반구의 신생독립국 공산화를 막자는 취지였지만 진실은 따로 있었다. 경제구조가 취약한 신생독립국에겐 식량문제는 당면과제였다. 그래서 미국이 제공한 유전자변형 종자와 식량을 덥석 받았다. 유전자변형 농작물을 공급받기 위해 농촌은행은 정부로부터 융자를 받고 소농은 다시 농촌은행에 재융자를 신청했다. 소농은 수입된 새로운 방식의 농사를 짓기 위해 새 농자재가 필요했다.

하지만 북반구에서 들여온 신품종 농사는 상이한 풍토 때문에 실패했다. 빚을 갚지 못한 소농은 은행에 저당 잡힌 토지를 내준다. 대대로 농업을 계승해오던 농부는 토지를 잃고 도시로 유입되어 빈민층을 형성했다. 아프리카 농촌 실화이지만 1970년대부터 시작된 한국 농촌풍경과 겹친다.《먹거리 반란》에서는 ‘녹색혁명’의 실재를 두고 “북반구가 남반구에게 강요한 개발정책”이라고 말한다. 아프리카 농민은 외채를 갚기 위해 커피, 카카오, 면화와 같은 수출작물을 집중재배하고 있다. 굶주림에 지친 농민에게 정부는 수출로 생긴 수입으로 식량을 사 먹으면 된다고 호도했다.

그런데 수출이 증가해도 식량을 사 먹는 일은 쉽지 않다. 곡물가격이 수출소득보다 더 빠른 속도로 상승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계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과 같은 세계무역기구는 기업농을 적극 권장하며 농업의 대규모화를 부추긴다. 소농의 몰락은 전 지구적 현상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FTA가 본격 가동되면서 1980년대 초반 969만여 명의 농민인구가 2012년 290만여 명으로 70% 감소했다. 농민인구 감소는 여러 원인이 있지만 WTO, FTA와 같은 세계무역화 영향이 지배적이라는 분석이다. 농업을 세계무역시장에 입장시키려는 정부는 돈이 되는 작물재배를 권한다. 환금성 작물 재배는 농사규모를 확장해야 한다. 토지확보와 시설구비에 많은 비용이 든다. 재정상태가 빈약한 소농은 대출을 받거나 포기할 수밖에 없다.

소농은 가족중심 농사다. 소규모라 환경파괴를 최소화한다. 대규모 기업농이 넓은 토지에 단작을 취함으로써 과도한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과 대비된다. 기업농은 대량 생산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유전자변형 작물 재배와 화학농약 살포가 불가피하다. 미국과 같은 광활한 들판에서 화석연료로 가동하는 트랙터와 콤바인, 방제 헬리콥터를 떠올리면 된다. 자연과 사람의 보살핌으로 추수를 맞이하는 농사가 아니라 약품과 기계에 의존한 산업인 것이다.
 

 

지역 먹거리 체계에 가장 안전한 공급자 소농

그렇다면 이쯤해서 질문이 나온다. 소농만이 안전한 먹거리와 기아문제의 답안인가? 미국과 비슷한 농토를 가진 브라질의 경우, 소농이 다수를 차지한다. 세계의 소농 실태와 직거래 장터를 취재한 《밥상혁명》은 소농 지원정책까지 짚고 있다. 농업 인구 450만 명 가운데 410만 명이 소농인 브라질에선 수만 명의 어린이가 기아에 허덕인다. 왜 그럴까? 답은 ‘정부의 소농 지원정책’에 있다.

브라질 정부는 기업농 지원금으로 37조원을 제공하면서 소농 지원금은 고작 7조원이다. 브라질의 소농 역시 빚을 갚지 못해 도시로 떠났다. 농사 외에 할 줄 아는 일이 없는 소농 출신 노동자는 도시의 실업자가 되거나 일용직 노동자로 연명한다. 가난했지만 자존감을 지키고 자기 소유의 농토를 가졌던 사람의 몰락인 것이다. 소농의 해체는 단순히 한 개인의 붕괴가 아니다. 농촌구조 재편성과 농업의 기업화와 도시 실업난, 기아까지 품는다. 소농의 회복 성패는 이처럼 지원 정책에 달려있다.

주지하다시피 소농은 지역 먹거리 체계에 가장 안전한 공급자이다. 슈퍼마켓 식품과 비교해보자. 원거리를 이동한 먹거리, 즉 기업이 상품으로 출시한 식품은 전적으로 돈의 지배를 받는다. 바코드가 찍힌 화려하고 예쁜 포장지에 담긴 식품은 공장에서 만든다. 상품을 대량 생산하기 위해 기업농과 거래한다. 그리고 이름을 들어도 기억하기 힘든 첨가물을 혼합해 가격을 결정한다. 가공한 식품은 화석연료를 사용해 슈퍼마켓에 진열된다.

이에 비해 소농의 식품출시 과정은 단순하다. 재배과정이 소규모이므로 무농약 재배가 수월하다. 약품을 살포해도 소규모이므로 소량 사용한다. 직거래라면 과정은 더 투명하게 진행된다. 소비자를 농장으로 초대해 과정을 공개한다. 마지막으로 근거리 이동이므로 과도한 화석연료를 낭비하지 않는다. 환경 효율성이 기업 상품보다 월등하다.



자급이 붕괴되자 자급이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60억이 넘는 인구의 식량을 소농이 책임질 수 있을 것인가? 가설이지만 가능성이 있다. 물론 축산 사료와 같은 대량공급은 불가피하게 기업농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전에 축산 규모를 줄일 필요가 있다. 현재 축산 사료는 전 세계 곡물 생산에서 40%를 차지한다. 육식과 동시에 기아를 양산한다. 소농의 실현 가능성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자급’이 연상된다. 일본의 야마자키 농업연구소에서 펴낸 《자급을 다시 생각한다》에선 자급을 적확하게 표현했다. “자급은 자기가 사는 지역의 생태계나 농민의 지식에 기초한 지속 가능한 농업시스템.”

지금처럼 농업이 산업화에 편입되기 전, 소농은 자급의 대명사였다. 자급에서 가장 먼저 언급되는 부문이 식량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식량자급은 굶주림을 최소화하는 안전한 그물망 같은 것이었다. 말하자면 공업으로 인한 환경 황폐화에도 불구하고 바닥에 떨어지지 않도록 받쳐주는 마지막 안전장치가 식량자급이다. 그런데 미국이 주도하고 북반구의 대다수 국가가 동조하고 획책하는 세계화는 남반구의 식량자급률을 급감시켰다. 아프리카는 식민지 이전 식량수출국에서 독립 이후 기아국으로 전락했다. 농업을 세계무역에 강제하면서 투자 대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자본이 빈약한 국가는 소농의 절멸과 함께 식량주권을 잃었다.

《자급을 다시 생각한다》는 일본 농업 상태를 다뤘지만 자급에 관한한 타산지석으로 삼을 책이다. 이 책에서 정의하는 식량주권 개념은 이렇다. “국제시장에 좌우되지 않고 인민이 자신의 먹거리나 농업방식을 스스로 정의하는 권리. 국가가 주도하는 자유무역에 의존하지 않고 기본적인 자원과 물자를 스스로 관리하는 주민자치 권리” 국가의 개입 없이 지역주민 스스로 농업방식과 먹거리를 정하는 권리가 식량주권이라는 의미다. 《먹거리 반란》에선 국민이 안전한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소농과 자급과 식량주권을 한 개의 원안에 포함시켜 그림을 그리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 탄생한다. “종자에서 슈퍼마켓까지” 물론, 이 명쾌한 구호는 세계무역을 호령하는 곡물 메이저에서 만들었다. 그런데 역으로 자급에 적용이 가능하다. 그 이유를 《자급을 다시 생각한다》에선 “자급이라는 말이 의미를 갖기 시작한 것은 자급이 붕괴되었기 때문”이라고 역설한다. 기아발생이 식량분배문제를 제기하게 만든 상황과 같다. 식량이 없어서 굶주리는 것이 아니라 빈곤하기 때문에 굶주림을 겪는다면 분배문제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식량자급은 민주주의의 실현

그래서 자급은 정부와 그 정부와 결탁한 거대 자본에 반하는 행위이자 민주주의 토대다. “내 꺼 하지, 와 돈 주고 사다 하이” 한국 토종 씨앗 탐사기록인 《토종 곡식》에 등장한 할머니의 말 한마디는 자급의 의미를 일침견혈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25% 미만이며 쌀을 제외하면 5%에 불과하다. 90년대부터 진행한 우루과이 라운드와 FTA는 공산품 수출을 조건으로 농산물 수입 약정을 맺었다. 식량을 거래조건으로 내준 협정은 국민의 밥상을 담보로 한 불평등 협정이다. 지금처럼 농촌 인구 고령화와 수입농산물의 무차별 유입과 정부정책의 안일함이 계속된다면 향후 10년 이내 콩, 녹두, 팥, 조, 기장과 같은 잡곡은 토종씨앗조차 찾을 수 없게 될까? 토종씨앗을 계승한 마지막 세대가 죽으면 씨앗도 함께 사라진다. 게다가 주식인 쌀은 농민인구와 농지감소로 인해 계속 가격 상승중이다. 마침내 빈곤계층은 출처가 불분명한 수입농산물을 먹으면서 건강마저 위협받는다.

두 말할 필요 없이 자급은 자급을 유지할 자연환경과 밀접하다. 자급이라면 대개 식량자급만 떠올리지만 창문으로 들어오는 산들바람, 잘 보존된 뒷산, 아담한 들판, 반딧불이와 왕잠자리와 꽃 한 포기까지 풍경으로 대변되는 정서자급까지 포함해야 한다. 생태환경보존이 곧 식량자급과 겹치기 때문이다. 식량자급이 중요한 이유는 자유와 자율과 수평적 거래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실현이다. 자급은 토종씨앗을 보존함으로써 환경에 위배되지 않는다. 게다가 소농의 부활은 지역경제를 활성화시켜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선택권을 제공한다. 자치 민주주의는 이와 같이 정부와 대기업이 강제이식한 화폐중심의 세계화에 제동을 거는 것이다. 그래서 자급은 “국가가 강요한 내셔널리즘을 떨처버리는 것”이라고 《자급을 다시 생각한다》에선 주장한다.

 

↘ 윤미화 님은 도시생활을 접고 시골에서 염소를 치며 텃밭에 채소를 심어 먹지만 제때에 심고 가꾸는 일은 여전히 서툴다고 이야기합니다. 남은 시간은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쓴 책으로 서평집 《깐깐한 독서본능》과 서평에세이 《독과 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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