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호 2013년 봄 [특집] 식량주권과 식량자급

[ 기본편③ 농민기본소득 ]

지속가능한 농적 순환사회를 만드는 상상력

글 장길섭

나는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20년 동안은 농촌에서 초·중·고등학생으로, 1980년대 10년 동안은 대학생·산업노동자·사무직 노동자로 서울 등 대도시에서, 199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는 농민 신분으로 20여 년 동안 농촌에서 살아왔다. 50여 년을 살아오는 동안 나는 순환적인 소농 중심의 농업사회에서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의 지속불가능한 근대산업사회로의 전면적이고 급격한 사회변동을 경험했고, 지금은 지속가능한 공생의 삶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경제는 성장했으나 노동자·농민의 일자리가 없는 현재

1960년대 유년기에는 전기도, 자동차도, 쓰레기도, 공장도, 일회용품도, 오염도 없던 순환적 농경문화의 잔영을 목격하였고, 1970년대에는 부모와 친지들이 본격적인 이농의 물결에 몸을 싣고 도시로, 공장으로 흘러들어가 산업노동자가 되거나 도시 빈민으로 전락하여 비참하게 사는 모습을 보았다. 그 중에는 1980년대 들어 천신만고 끝에 자수성가하여 서울에 작은 아파트를 한 채 마련하고 결혼도 하고 포니 자가용 승용차를 몰고 명절에 자랑스럽게 귀향하는 사람도 있었다. 1970년대 말까지 시골에서 학교를 다녔던 나는, 내가 살던 마을에 새마을공장이 들어서고 초가지붕이 슬레이트로, 마을 안길이 시멘트로 포장되고 “새벽종이 울렸네/새아침이 밝았네~”, “잘 살아보세/잘 살아보세/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라는 노래가 확성기로 울려 퍼지던 유신독재시대 새마을운동의 현장에 있었다.

1970~80년대 농촌의 변화 중 내게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마을환경의 변화였다. 가난하지만 그 나름의 질서가 있고 주변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깨끗하고 아름다웠던 동네가 무질서하고 추하게 변해버린 것이다. 동네 한복판을 흐르던 맑은 개울물이 시커먼 오폐수가 흐르는 도랑으로 변해 버렸고 동네 안으로 무질서하게 들어선 공장 건물, 소음, 쓰레기 등으로 평화롭고 안정되었던 마을이 불안하게 흔들리는 마을로 변해버린 것이다.

1990년대 초에 도시에서 다시 농촌으로 돌아와 보니 10년 전 내가 떠났던 때와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농촌 사람들도 도시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소비 생활을 하고 있었고 자립·자급적 생활양식이 쇠퇴한 지 오래였다. 농촌도 이제는 돈이 없으면 생활할 수 없는 곳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무엇보다도 큰 변화는 1970년대에 1,400만이 넘었던 농업 인구가 이제 300만으로, 전체 인구의 5%에 불과하게 되었고 그나마도 나이 든 농민들이 대부분이다. 1990년대에 본격화된 UR, WTO 등 농업개방정책 때문에 농업·농촌은 거의 재생이 불가능한 괴멸 상태가 되고 말았다.

농촌이 그렇다면, 전체 인구의 50%가 수도권에 몰려가 있는 도시 산업사회는 지금 어떤 상태인가? 2013년 현재 우리가 날마다 목격하고 있는 현실은 해고노동자와 입시교육에 시달리는 어린 학생들과 빈곤층 독거노인들의 자살이다. 1980~90년대 고도 경제성장시대를 통과하고 난 지금은 자동화·기계화가 극단에 이르고, 생산 비용의 절감을 위해 기업의 해외 이전, 감원 등이 일상이 되다보니 기업은 성장해도 고용은 축소되어 노동자가 잉여의 존재로 배제되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 실업 문제, 비정규직 문제의 본질이다. 산업사회에서 자동화기술은 현재의 노동력의 1/4로서 모든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있을 정도이다. 1970년대의 농업인구 1,400만 명 가운데 300만을 제외한 1,000만 명 이상의 인구가 노동자가 되었지만 이제 그들이 일할 곳이 없다. 이 사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사람들은 복지국가를 이야기하지만 복지국가는 경제 성장을 통하여 소득을 올린 자본가들과 노동자들에게서 세금을 징수하여야 가능한데 부자들을 위해 감세하고, 소득도 일자리도 없어 구매력이 없는 노동자들에게 어떻게 세금을 걷어 복지를 한단 말인가?

 

임금노동과 소득을 분리하여 최소한의 기본소득 지급

물론 이 사태를 일거에 해결할 묘책은 없지만 하나의 실험을 시도해볼 수는 있다. 그것은 ‘시민(국민)기본소득제’의 도입이다. 경제가 돌아가려면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농민에게 생존·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구매할 구매력이 있어야 한다. 구매력이 있어야 생산자이면서 소비자인 노동자가 상품을 구매하고, 상품을 구매해야 내수 경제가 활성화되어 생산 활동이 이루어지고, 생산 활동이 이루어져야 일자리가 생긴다. 이것이 거꾸로 되어 노동자의 일자리를 없애고 임금을 삭감하면 노동자의 구매력이 없어지고 그러면 소비가 둔화되어 생산능력이 있어도 공장이 문을 닫고 시장에는 물건이 쌓여있어도 소비가 이루어지지 않는 악순환이 거듭된다.

경제 성장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경제를 살리기 위해, 임금노동과 소득을 분리하여 국가가 매월 국민에게 재산의 유무, 취업 유무를 따지지 않고 무조건, 일률적으로 최소한의 생존·생활에 필요한 현금을 지급하자는 것이 기본소득제도이다. 이것은 복지제도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렇게 하면 다수의 경제 인구가 구매력을 갖게 되므로 기본적으로 경제가 활성화 될 수 있다.

기본소득의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까? 두 가지가 있다. 국방, 복지, 그리고 각종 토건 개발 예산은 정부 예산의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데, 군수산업과 토건 개발에는 돈을 많이 쓰면 쓸수록 우리 사회가 위험해지고 지속 불가능한 사회로 전락하는데 기여할 뿐이다. 이 모든 개발 사업을 중단하고 그 예산을 기본소득예산으로 전용하면 된다. 또 기본소득을 충분히 지급하면 복지예산이 따로 필요 없게 된다. 이렇게 되면 관료의 수도 대폭 줄여 국가 권력을 축소할 수도 있다. 또 하나의 방법은 보다 근본적인 방법인데 민간은행이 대출한 ‘부채로서의 화폐’라는 기존의 금융시스템을 개혁하여 국가가 직접 이자 없는 화폐를 발행하여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이다.

기본소득제가 정착하면 시민들은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환경 파괴적이고 자기파괴적인 강제 노동에서 벗어나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기쁘게 하면서 살게 될 것이다. 기본적인 생존·생활이 가능한데 무엇 때문에 위험하고 해로운, 예컨대 핵발전소와 같은 위험한 곳에서 일하려고 할까?

기본소득제는 ‘소득은 고용노동에 의해서만 생긴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소득은 인간의 자연권에 속한다’라고 인식을 전환하지 않으면 실현하기 어렵다. 그래서 전 국민 기본소득제의 실현은 10년 정도 유예하고 우리 사회 전체 삶에서 근본 토대 중의 토대인 농업·농촌·농민을 회생시키기 위하여 농민기본소득제를 실험적으로 먼저 실시해볼 필요가 있다. 농민은 지금 전 국민의 5%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적은 예산으로도 농민기본소득제를 실험해 볼 수 있다. 지난 50년 동안 농업·농촌·농민의 일방적인 희생으로 대다수 국민들이 지금의 물질생활을 향유하여 왔기 때문에 농민에게 가장 먼저 기본소득을 지급할 이유가 있고, 또 농업·농촌만이 산업사회에서 탈락한 실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를 흡수할 수 있는 공간이므로 향후 10~20년 동안 수도권의 인구가 농촌으로 이주해 올 수 있도록 농민들에게 우선 기본소득을 지급할 필요가 있다.

수도권의 인구가 농촌으로 이주해 오면 우리 사회가 중앙집권적 사회에서 지방분권적 사회로 바뀌고 지역경제가 활성화되어 나라 전체가 균형 잡힌 사회가 될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식량과 에너지의 자립, 그리고 다음 세대의 생존이 보장되는 지속 가능한 사회로의 이행작업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할 가장 실제적인 방법이 나는 농민기본소득제의 실행이라고 생각한다.
 

특혜가 아니라 지속 불가능한 현실을 극복하는 실험

기본소득은 이미 여러 나라가 도입하여 실험하고 있다. 에콰도르 정부는 2012년 11월부터 저소득층에게 매월 50달러의 기본 소득을 지급한다. 미국 알래스카 주는 1982년부터 1년 이상 알래스카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에게 나이와 거주 기간에 무관하게 연간 기본소득 1천만 원을 지급한다. 브라질은 2012년 ‘시민기본소득’을 전국적으로 시행하기에 앞서 이미 2003년부터 350만 가구에 소득지원 프로그램을 실시하였고 현재 4,500만 명이 혜택을 받고 있다. 브라질은 2004년 기본소득을 제도화하는 법률을 세계 최초로 의회에서 통과시켰는데 저소득층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하여 차츰 대상을 확대할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이제 겨우 기본소득제에 대한 소개와 논의가 시작되는 중이다. 녹색당, 진보신당 등 소수정당에서 농민기본소득제의 시행을 주장하는데 이것은 농민에게 특혜를 주자는 이야기가 아니고, 고용 없는 성장 사회에 진입한 우리 사회의 지속 불가능한 현실을 직시하고 우리 자신과 다음 세대의 생존을 위해서 농촌에서 지속가능한 순환형 사회를 건설해야 할 필요성 때문이다. 매월 최소한의 생존·생활에 필요한 기본소득이 지급된다면, 농민들과 도시에서 이주해온 귀농·귀촌자들이 안심하고 식량작물을 포함한 농작물을 적절하게 생산하면서 지역경제를 번창시키는 여러 생산활동을 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지, 헛된 공상인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당장 지자체 중 한 곳을 택하여 실험해보면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지금 우리에게는 지속가능하고 자유로운,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농적 순환 사회를 상상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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