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호 2013년 봄 살림,살림

[ 살림의 지혜 녹여 흙부대집 지은, 전북 완주 이화자 씨 ]

“내 마음대로 집 지으니 얼마나 좋아요?”

글 우미숙 편집위원\사진 류관희

집 안에 또 하나의 원룸을 상상해 본다. 잠도 자고 공부도 하고 놀기도 하고 일도 할 수 있는 곳. 따뜻한 온기를 뿜어낼 벽난로까지 갖춘다면 최고다. 이화자 씨(66살)는 자신만의 공간을 그렇게 만들었다. 인터넷과 책에서 정보를 찾아 직접 설계하고 흙을 쌓아 올렸다. 내가 살고 싶은 집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렇게 만드는 수밖에. 그나마 시골에 땅이라도 있으니 가능하지 하겠지만, 그래도 할머니 소리를 듣는 나이에 이렇게 직접 흙부대를 쌓아올려 그럴듯한 집 한 채를 마련하는 걸 보통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을까? 

이화자 씨가 집을 지은 곳은 전북 완주의 어느 시골마을이다. 아무 연고도 없던 이곳에 와서 작은 교회의 목사로 지낸 지 18년이 지났다. 40년 서울생활을 접고 이곳에 와서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건 살 곳을 직접 짓는 일이었다. “어릴 때 아버지가 흙벽돌을 만드는 것을 보고 자란” 덕인지 흙으로 뭔가를 만드는 게 익숙했다. 그의 첫 작품은 교회 옆에 지은 콘크리트 골조의 흙집이다. 자연 재료로만 집을 짓고 싶다는 욕심에 3년 전에 흙과 돌, 나무로만 집을 지었다. 두 번째 작품은 교회에서 100m 떨어진 곳에 낮은 산을 뒤로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다.

 
마을의 다른 집들과 확연히 달랐다. 손때 묻은 티가 났다. 네모반듯하지도 않고 전체가 둥근 모양으로, 벽에는 유리병이 여러 개 박혀 있거나 벽 아래쪽에 그만한 크기의 구멍이 예닐곱 개 나 있는 독특한 디자인이다. 지붕도 나무를 쪼개 얹은 너와집 모양이다. 마당 한편에는 크고 작은 항아리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장독대가 있고, 그 옆에 새로 흙집을 쌓고 있는지 흙벽돌로 구들을 놓다 만 흔적이 보인다. 가운데에 집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다. 옛 가옥의 대문을 연상하게 하는 큰 나무문이다.
 
이화자 씨는 손님을 맞이하며 액체 파라핀을 등잔에 부어 불을 붙였다. 곳곳에 작은 등잔이나 양초가 놓여 있다.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밥 냄새 등 안 좋은 냄새를 없애기 위해서다. 안내를 받아 들어간 곳은 거실이다. 밖에서 보면 둥그런 모양인 그곳이다. 집 안에 있는 또 하나의 원룸, 그가 그렇게 불렀다. 그곳에서 그의 집 이야기를 들었다.

 

청소하는 데 에너지 쏟지 않고, 밥 먹는 데 불편함 없고,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한 게 최고

“까치도 자기 집은 자기가 짓잖아요. 스스로 지으면 애착도 생기고 절약도 되고, 마음대로 지을 수 있잖아요.”
 
인터넷을 누비고 책장을 수없이 넘겨가며 얻은 정보로 집을 지었다. 보통은 모서리가 있는 네모진 집이지만 이 흙집은 양쪽이 둥그렇게 생겼다.
 
“흙부대를 이용하니 가능해요. 집모양이 둥글면 원심력에 의해 자기들끼리 서로 붙잡고 있어 벽을 잘못 쌓아도 넘어지지 않아요. 또 조금 비뚤어져도 밉지 않아요.”
 
집을 본 순간 느꼈던 의문이 그의 말로 단번에 풀렸다. 그냥 집이 필요했던 게 아니라 내 편한 대로 살기 좋은 집을 원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흙을 직접 밟으며 흙부대를 날라 쌓았다.
 
“살아 보니까 청소하는 데 에너지를 쏟지 않고, 밥 해먹는 데 불편함이 없고,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한 게 최고예요. 게다가 잠도 자고 책도 보고 손님도 맞이할 수 있는 원룸이 있었으면 했어요.”
 
바라는 게 곧 디자인이 됐다. 함께 이야기를 나눈 곳이 그가 말한 원룸식 방이다. 일반 집 같으면 거실이다. 벽에는 커다란 TV가 선반 위에 놓여 있고, 그 아래 앉은뱅이 다리에 얹은 넓은 나무판 책상엔 책과 노트북이 놓여 있다. 그가 직접 짠 나무 침대가 벽에 붙어 있다. 마당 쪽으로 난 둥근 벽에는 맥주병만 한 구멍이 예닐곱 개 나 있다. 솜뭉치로 막혀 있지만 밖에서 본 모기장 그물로 가려져 있던 그 구멍과 맞닿아 있다. 바로 자연 에어컨이다. 찬바람이 들어와 집 안의 더운 공기를 밖으로 빼내는 역할을 한다. 집을 지을 때부터 구상해서 만들었다.
 
벽 한편에는 천정에 닿을 만한 길이의 벽난로가 세워져 있다. 내화벽돌로 불길을 가두게 만들어서 불이 오래 간다. 하루에 나무 여섯 토막이면 충분하다. 아침에 때고 저녁에 때면 24시간 열이 간다. 아주 추운 날이면 잠자기 전에 한 번 더 때 준다. 이화자 씨는 벽난로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 지금 것을 허물고 새 벽난로를 또 만들고 싶단다. 온돌침대로 열이 연결되는 벽난로가 좋아 보여 꼭 직접 만들어 보겠다고 한다.
 
 
청소가 싫어 건식 화장실로, 거실과 부엌은 멀찌감치 떨어지게
공간 배치가 일반 집과 달라 특별한 구상이라도 있었는지 궁금했다. “청소하기 싫고 음식 냄새가 온 집 안에 퍼지는 게 싫었고, 궂은 일 편하게 할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고, 손님 올 때 음식 만들기 편했으면” 하는 게 전부였다. 그 생각이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집 구경에 나섰다.
 
왼쪽 거실을 나와 복도 중간에 방이 하나 있다. 93살의 친정어머니 방이다. 현재 어머니와 단 둘이 이곳에서 산다. 이 집에 방은 하나다. 나머지는 부엌과 화장실, 원룸인 거실이 전부다. 방에는 종이장판을 깔아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벽에는 이불을 넣는 벽장이 있다.
 

그 벽장은 바로 옆의 화장실 벽과 맞닿아 있다. 화장실은 바닥과 벽, 천정이 모두 나무로 되어 있다. 건식 화장실이다. 타일 청소하기 싫어서 이렇게 만들었다. 별도의 샤워부스가 있어 물 쓰는 일은 그곳에서 해결한다. 화장실엔 양변기가 두 개다. 하나는 일반 변기, 또 하나는 생태변기다. 생태변기는 일반 나무 틀에 양변기 모양 뚜껑을 덮고 플라스틱 이동 통을 넣어서 만들었다. 이동도 가능하다. 볼일을 보면 톱밥을 뿌려 냄새를 없애고, 쌓이면 마당의 거름통에 모아둔다. 겨울엔 냄새가 나지 않아 실내에서 사용하기도 한다.
 
“전기와 물을 안 쓰고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어요. 언젠가 자급자족해야 할 텐데, 그래서 생태변기를 한번 해보고 있어요. 그리 어렵지 않아요.”
 
올 겨울에 수도가 얼어 화장실 변기를 사용할 수 없었을 때, 생태변기가 제 역할을 했다. 이동도 가능해 따뜻할 때는 밖에, 겨울엔 집 안 화장실에 둔다.
 
맨 오른쪽엔 부엌이 있다. 나무로 직접 짠 선반이 한 쪽 벽에 걸려 있고, 주방가구는 여느 부엌의 시설과 같지만 상판이 남다르다. 상판은 나무를 직접 사서 동백기름을 발라 길을 들였다. 다시 말리고 덧칠하면서 그렇게 만들었다. 다른 쪽 벽에 있는 조리대 상판은 타일로 만들었다. 뜨거운 음식을 놓기도 하고 재료를 늘어놓고 요리를 준비하는 곳이다. 구석에 작은 항아리가 두 개 놓여 있었다. 하나는 정수 항아리다. 안에 돌멩이를 넣어 물의 불순물을 걸러준다. 1년에 세 차례 꺼내서 햇볕에 말리고 다시 사용한다. 또 하나의 항아리는 쌀독이다. 옛사람의 지혜와 현대인의 편리함이 곳곳에서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었다.
 
밖으로 나 있는 문을 열어 보니 세탁실이다. “살림하다 보면 지저분한 게 생겨요. 부엌에서 못 하는 것은 이곳에서 해요.” 말하자면 다용도실이다. 빨래도 하고 김치도 담그고 큰 물건을 씻기도 하는 곳. 허드렛일 하는 곳이 부엌에 붙어 있어야 한다고 해서 작은 문을 내어 만들었다.
 
어디를 돌아봐도 문이 달린 수납장이라고는 방 벽장과 주방가구밖에 없다. 장롱도 찬장도 없다. 애초 그의 구상이 그랬다. “옷장이나 찬장이 없이 다 열려 있는 상태로 편하게 살아보는”것. 집 안에는 실용성과 함께 아기자기함도 녹아 있다. 곳곳에 마른 꽃이나 장식품, 직접 바느질을 해서 만든 커튼으로 멋을 냈다. 그의 손재주와 인테리어 감각이 남달라 보였다. 중학교 때 교복을 만들어 입었다니 긴 말이 필요 없다.
 
길러 먹고 지어 입고 만들어 사는 삶
이화자 씨는 집 앞 200평 텃밭을 직접 일군다. 혼자라 많이는 못한다. 콩 심어 거둬 메주 담그고, 배추 심어 김장하고, 고추 심어 가루 내 먹는다. 마늘, 양파, 깻잎, 고구마도 조금씩 한다. “양은 얼마 되지 않지만 이렇게 땅에서 자기 먹을 것을 길러먹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몰라요. 집이든 생활이든 자급자족해야죠”라고 말한다. 타샤 할머니의 삶까지는 따라가지 못하지만 땅에서 먹을 것을 길러 먹고 집을 직접 짓고 옷을 직접 지어 입는 생활이 그의 희망사항이다. 지금은 교회 일과 지역노인복지센터 일로 살림살이를 맘껏 해내지는 못하지만 조만간 자신의 생활로 돌아오려고 한다. 내 방식대로 삶을 직접 꾸리고 내 편한 생활공간을 직접 만드는 일,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든 신나게 할 수 있는 일이다.
 
손님을 위한 황토방을 만들고 있다. 마당에서 본 짓다 만 구들장이 그것이다. 벽난로를 새로 만드는 것도 최대의 숙제이고 설레는 일이다. 그래서 책상 위에는 흙집과 벽난로에 관한 책이 쌓여 있다. 그는 늘 실험 중이다. 자연 에어컨을 비롯해 연통구멍 하나로 부엌 후드를 대신한 것, 습기가 차 실패했지만 땅 밑 저장고까지. 필요한 것은 뭐든 직접 만들고 꾸미는 의욕이 대단해 보인다. 또 어떤 실험을 하려는지 그의 얼굴은 호기심으로 가득하다. 벽난로를 새로 만들면 꼭 다시 연락해 달라며 인사를 나눴다. 손때 묻고 쓰임새가 야무진 집은 그때쯤 또 새로워져 있겠지.
 
우미숙 님은 한살림에서 조합원 소식지 <좁쌀 세 알>을 만들고 글을 쓰는 일을 해왔습니다. 현재 한살림성남용인 이사장이며 <살림이야기> 편집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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