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호 2012년 겨울 살림,살림

[ 눈여겨 본 이 물건 ]

코를 톡! 목을 탁! - 생강

윤선주

김장 재료를 준비하면서 조금 넉넉하게 마련한 생강을 정갈하게 씻어 껍질을 벗겨 저민 후 설탕이나 꿀에 재어 두었다면, 이제 다리 쭉 뻗고 여유를 즐기며 생강차를 마셔도 좋을 시간이다. 향긋하고 코를 톡 쏘는 듯한 특유의 매운 냄새는 맡는 것만으로도 목이 트이는 기분. 따뜻한 찻잔을 손으로 감싸고 그보다 더 뜨거운 생강차를 목으로 넘기면 평화롭고 고요해서 “아, 살맛 난다!”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피타고라스가 사랑한 소화제


생강은 우리 음식에 양념으로 많이 쓰일 뿐 아니라 약이 귀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감기, 위장장애나 메스꺼움을 치료하기 위한 가정의 상비약 구실을 해왔다. 고려시대인 1018년에 생강이 재배되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당시 왕의 하사품으로 쓰일 만큼 귀한 식품이었다. 인삼보다 귀한 대접을 받아서 《승정원일기》 고종 27년의 기록을 보면 임금님 상에는 연한 생강차를 올리고 중국 청나라 사신에게는 인삼차를 올렸다고 되어 있고 《영조실록》에도 임금님에게는 생강차를, 신하에게는 인삼차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동의보감》에는 생강이 담을 삭이고 기를 내리며 토하는 것을 멈추게 한다고 되어 있어 멈추지 않는 딸꾹질, 숨참, 기침에 효과가 있다. 그런데 혈관을 확장하는 특성 또한 있어 혈액항응고제를 복용하거나 출혈이 쉽게 일어나는 위·십이지장 궤양 환자, 치질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삼가는 게 좋다. 또 기운이 없어 식은땀이 자주 나거나 속에 열이 가득한 사람에게도 좋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외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초기 감기를 가볍게, 맛있게 물리치는 방편이 된다. 찬바람이 불면 찬 기운이 우리 몸에 들어와 폐기능이 떨어져 감기에 걸리기 쉽다. 이때 뜨거운 생강차를 마시면 생강의 매운 성분이 그 따뜻한 성질로 폐, 위, 비장을 보호하며 온몸을 데워주어 몸이 한결 가뿐해지는 것을 아마 누구나 한두 번은 경험했을 것이다. 나 역시 지난 봄 심한 감기에 걸려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을 뿐더러 마시는 물도 써서 고생한 적이 있었는데 한살림 생강차와 배즙, 도라지청을 함께 끓여 먹고 나은 적이 있다.
산후조리에 쓰이는 약재에는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만큼 생강을 호박이나 대추, 인삼과 함께 푹 달여 먹으면 몸이 차고 속이 냉해 생기는 각종 여성질환, 자궁질환에 좋다. 잠이 잘 오지 않을 때 생강을 얇게 썰어 머리맡에 두면 정유, 방향성분, 매운 맛이 후각을 자극해 뇌신경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어 쉽게 잠들 수 있다. 또 생강의 진저롤, 쇼가올, 정유, 매운 맛 등이 식중독균, 장티푸스균, 콜레라균 등에 강한 항균력을 지니고 있어 생선회를 먹을 때나 게장을 담글 때에도 빠지지 않는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로 우리에게 수학자로 잘 알려진 피타고라스는 제자들에게 생강을 소화제로 추천했다. 이슬람교의 경전 《코란》은 생강을 천상의 음식으로 표현하면서, 나중에 알라와 함께 천상에서 생강차를 마시게 될 것이라고 했다. 중세 유럽에서는 흑사병 예방과 정력 증강을 위해 애용했고 생강을 말려서 곱게 빻은 후 빵, 과자, 카레, 각종 소스, 피클과 진저에일에 넣어 특유의 맛을 돋우기도 했다. 생선을 날것 그대로 먹는 문화권에서는 식중독 예방을 위해 식사 도중에 먹기도 한다.


멀미약보다 효과 2배


최근 뉴욕타임스 인터넷판이 과학저널 《란셋》을 인용해 발표한 것에 따르면 생강이 시판되는 멀미약보다 2배 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멀미 하면 나를 따라 올 사람이 아마 없을 텐데, 어린 시절 인천에 살면서도 창경원으로 벚꽃놀이를 떠나는 식구들을 배웅하기만 했고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버스타기가 무서워 40분이나 걸어서 학교를 다니기도 했다. 나이가 들면서 차츰 나아지기는 했지만 내 나이 마흔에 한살림을 시작할 때에도 제일 큰 두려움은 ‘생산지 방문을 어떻게 다닐까?’였다. 지금은 “정말 그런 적이 있었어?”라고 할 정도로 멀미 걱정 없이 버스를 타고 전국을 누비지만 당시 내 주머니에는 솔잎, 인삼과 함께 편강(얇게 저며서 설탕에 조려 말린 생강)이 항상 들어 있어 멀미가 닥칠 때마다 생강의 도움으로 일촉즉발의 순간을 간신히 넘겼던 기억이 아주 많다.
런던 세인트바솔로뮤병원에서는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나는 환자의 메스꺼움 억제에 약물보다 생강이 더 큰 효과가 있다고 발표했고, 일본 도쿄대학 야마하라 죠지 박사는 생강에 들어있는 진저롤이 담즙분비를 촉진해 혈중 콜레스테롤을 감소시킨다고 말했다. 덴마크 오덴스대학의 스리바스타바 박사에 따르면 생강의 매운 맛이 혈액응고를 막고 혈액순환을 도와 혈전, 뇌경색, 심근경색, 고혈압을 예방하고 개선한다고 한다. 또한 이탈리아 나폴리대학의 마스콜로 박사는 생강이 프로스타글란린(인체 내 합성 생리활성물질로 장기, 체액에 분포하여 생리작용을 촉진한다)의 생성을 억제하여 해열촉진 효과를 내며 항산화작용이 뛰어나 노화, 각종 질병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저온·건조 싫어하는 까탈쟁이, 키우는 정성 크다


농업진흥청의 <귀농인을 위한 채소 재배 길라잡이>를 보면 생강은 병충해에 약하기 때문에 심기 전에 토양을 소독하고, 종자를 튼튼한 것으로 잘 고른 다음 종자소독약 200배액에 1시간가량 담갔다가 꺼내 그늘에서 말려 심거나 분말 농약과 섞어서 심도록 되어 있다. 흔하게 오는 병으로는 뿌리썩음병, 도열병, 흰별무늬병 등이 있으며 병이 왔을 경우 10일 간격으로 3회 농약을 뿌리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충남 아산, 당진, 홍성 등지에서 키우는 한살림 생강은 토양 및 종자 소독을 하지 않고 농약은 물론 화학비료도 주지 않는 유기농업 방식으로 재배한다. 당진과 홍성에서는 알이 잘고 향이 강한 토종을, 아산에서는 개량종을 심는데 저온에 약하고 건조한 것을 싫어하는 성질이 있어 물 관리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특히 물빠짐이 나쁘면 뿌리가 썩기 쉽고 대나무 잎처럼 생긴 잎이 바람에 흔들리면 성장에 장애가 생기므로 세심하게 보살펴야 한다. 거름을 좋아하고 연작을 싫어하므로 한 번 심은 곳에는 4~5년 후에나 다시 심어야 하며, 5월에 파종하고 10월 말이나 11월 초 서리가 내리기 전에 수확한다. 지금처럼 정보가 많은 시대에도 이렇게 재배하기가 어려우니 옛날에는 오죽했을까? 임금님의 상에만 올릴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을 만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재배가 까다롭고 날씨에 따라 수확량이 들쑥날쑥해 최근에는 상당량을 수입한다고 한다. 그러나 국산과 수입산의 가격이 50%쯤 차이가 나서 세척한 상태로 수입한 후 황토를 묻혀 국산으로 속여 팔다 적발되는 사례가 많다.
생강은 13℃ 이하에서 오래 두면 동해를 입어 상하기 쉽다. 대량으로 보관하려면 굴을 파고 묻는 방법이 있지만 소량일 경우는 화분 흙 속에 묻거나 껍질을 벗겨 밀봉한 후 냉장 혹은 냉동 보관한다. 껍질을 벗기고 잘 말려 가루를 내면 일 년 내내 양념으로 쓰거나 차를 끓여 마실 수 있고, 얇게 썰어 설탕이나 꿀에 재었다 생강청이 생기면 역시 양념이나 차로 이용할 수 있다.
한살림에서 나오는 생강차는 충북 영동의 옥잠화영농조합에서 만든다. 영동지역에서 재배한 재래종 무농약 생강을 일일이 손으로 씻고 껍질을 벗긴 후 기계로 썰어 생강 54%에 수입 유기농설탕 46%를 섞어 만든다. 다른 성분이 들어가지 않아 생강 특유의 깨끗하고 톡 쏘는 향기가 차 한 잔을 끓여도 온 집안에 감돈다. 옥잠화영농조합에서는 지난 가을 한살림 장터에서 선보였던 생강효소와 말린 생강의 반응이 좋아 이를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집집마다 생강을 일일이 마련하지 않아도 두고 편하게 쓸 수 있게 되어 반기는 이들이 많을 것 같다.
몇 년 전 동아리를 꾸려 당진에 일손 돕기를 하러 갔었다. 가는 길에 생강밭이 있었는데 댓잎같이 생긴 그 청청한 파란 잎을 손으로 쓰다듬어 보니 잎에서도 생강 냄새가 향기롭게 났다. 어찌나 예쁘던지 그해 김장에 쓰려고 받은 생강을 작은 화분에 심어 부엌 창가에 두고 싹이 나고 잎이 피는 모습을 한동안 즐기기도 했는데 여느 화분 못지않았다. 따뜻한 지방에서는 원래 다년생인 생강이 우리나라에서는 월동을 못해 1년생으로 여겨진다. 흰 눈 덮인 겨울 실내 창가에 심어 두고 싱싱한 초록 잎을 쓰다듬어 온 집 안을 향긋한 생강 냄새로 채우는 호사를 부린다면 추운 날씨도 견딜 만하지 않을까?



참고: 《텃밭백과》, 《한살림 물품이야기》, 위키피디아(wikipedia)



↘ 윤선주 님은 도시와 농촌이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믿음으로 초창기부터 한살림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지금은 한살림연합 이사로 일하며 경험과 생각을 이웃과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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