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호 2012년 가을 살림,살림

[ 살림이 읽은 책 ]

왜 나는 음식에 집착하는가? - 《음식 여행 끝에서 자유를 얻다》

윤미화

《음식 여행 끝에서 자유를 얻다》 데이나 메이시 지음

“내가 원하는 건 완벽한 몸매도, 완벽하게 먹는 방법도 아니다.
더 나은 건강, 더 큰 마음의 평화, 내 외모 안에서 나를 평온하게 해 줄 음식과의 새로운 관계 정립을 원하는 것이다. 중년에 이른 지금, 나는 음식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갈구하고 있다” (17쪽)

 

허기는 급박하게 또다시 찾아온다

딸깍, 가스 불을 켠다. 전날 밤 미리 불려둔 콩을 냄비에 담아 불에 올린다. 콩이 익을 동안 텃밭으로 간다. 다 자란 오이가 서너 개, 이틀은 더 자랄 오이가 두어 개, 늙은 오이가 한 개 매달렸다. 늙은 오이는 노각이다. 노각은 껍질이 노랗고 쭈글쭈글하다. 노각의 두껍고 거친 껍질을 벗기고 속살을 얇게 저며 소금에 살짝 절였다가 꼭 짠다. 파, 마늘, 깨소금, 고춧가루, 참기름을 넣고 무친다.
노각무침을 하고 생오이를 채 써는 동안 콩이 다 익었다. 익은 콩을 분쇄기에 갈고 국수를 삶는다. 삶아서 찬 물에 헹군 국수를 면기에 담고 콩국물을 붓고 얼음을 띄운다. 국수 위에 채 썬 오이를 고명으로 얹고 노각무침이랑 먹는다.
알다시피 콩국수를 만드는 방법이다. 꽤 번거로운 것 같지만 익숙해지면 간단하다. 콩국수 한 그릇 먹는 일에 텃밭에서 직접 거둔 재료를 열거하면 이렇다. 콩, 오이, 파, 마늘, 고춧가루, 깨소금, 참기름. 가게에서 사 온 건 국수가 유일하다. 90%의 자급률이지만 노동이 따른다. 오이는 봄에 모종을 사 와 심고 콩은 여름에 심고 가을에 수확해서 턴다. 깨도 마찬가지다. 수확해서 턴 깨를 볶으면 깨소금이고 방앗간에 갖고 가서 기름을 짜면 참기름이다. 파, 마늘은 손이 덜 가지만 고추는 여름부터 가을까지 뙤약볕에서 말리고 병이 들면 약을 준다.
번거롭고 고단한 노동 과정을 거쳐 내 앞에 한 그릇의 수제 콩국수를 차렸다. 내남없이 빠르게 달려가는 세상에서 이렇게 ‘느린 음식’을 먹는 일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 책 《음식 여행 끝에서 자유를 얻다》는 ‘빠른 음식’, 즉 패스트푸드를 식탐하던 저자의 실화다.
마흔여덟 살의 편집자이자 작가인 저자는 음식에 대한 광적인 집착 원인을 1년여 간의 여정을 통해 밝힌다. 올리브라면 덮어놓고 남김없이 먹고 소시지는 다른 사람이 남긴 것조차 먹었다. 초콜릿을 숭배하고 기름에 전 음식을 좇았다. 포만은 잠깐일 뿐, 허기는 곧 다시 급박하게 찾아왔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아버지가 집을 나간 열 살 때부터 쉰 살을 바라보는 나이까지 음식을 아무 감각 없이 먹어왔다. 그래서 한때 날씬했던 몸은 비만에 걸렸고 아프기 시작했다.

 

음식의 근원을 찾아가는 여행

당장 날씬해지고 싶다면 다이어트 처방전을 받으면 된다. 하지만 다이어트 처방은 몸의 외형만 다듬어 줄 뿐, 마음을 순화하진 못한다. 저자는 더 나은 건강뿐만 아니라 마음의 평화를 원했다. 그리고 마침내 몸과 마음을 평온하게 해 줄 음식의 가치를 찾았다. 저자가 찾은 음식의 가치란 음식의 근원지부터 과정을 탐구한 것이다. 야생재료와 텃밭 채소를 가꾸는 유기농 농장 방문과 도축작업장까지 두루 훑는다. 음식을 이해한다는 것은 과정을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치즈를 만드는 염소농장을 방문했을 때 숙성하는 염소젖 냄새를 ‘손상되지 않은 자연의 냄새’였다고 술회한다. 차갑게 식은 핫도그를 우걱우걱 먹고 아들이 남긴 소시지까지 남김없이 먹던 사람이었다. 뼛속까지 통조림 음식 맛에 길들었던 과거가 느릿느릿 변하기 시작했다. 염소농장에서 안은 아기염소는 보드라운 혀로 사람의 귓불을 핥고 젖 냄새가 났다. 집으로 돌아와 농장에서 얻어온 치즈를 천천히 한 조각씩 씹어 음미했다. 염소젖 속에 엉겅퀴와 관목의 맛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변화는 한 점을 찍으면서 시작하는 법. 염소농장 방문을 통해 저자는 치즈에 대해 남다른 식견이 생겼다. 치즈의 원료인 염소젖이 만들어지는 환경을 알고 그 염소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지식과 감성을 동시에 얻은 것이다. 음식의 원재료를 향한 탐구심은 계속 진행했다.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가 적도를 중심으로 위도 20도 이내의 열대지역에 분포하고 씨방을 맺기까지 7년의 시간이 걸린다는 강의를 듣는다. 그리고 직접 만든 초콜릿은 이전의 초콜릿과는 다른 맛이다. 그것은 ‘대지를 한 조각 맛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트 초콜릿에선 맛 볼 수 없던 진기한 체험이었다.
올리브 농장에선 품종과 요리 방법에 따라 다양한 올리브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절이는 방식에 따라 숙성시간도 달랐다. 이처럼 시간이 걸려야 얻을 수 있는 음식은 영양성분만 다루는 현대인의 밥상을 두고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내가 텃밭에서 키운 콩과 오이와 참깨로 콩국수를 만드는 것처럼 음식은 라이프스타일이다. 노동에 의해 보살펴지고 기후와 풍토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음식의 근원인 원재료다. 즉, 자연의 은총과 경작자의 노동이 더해진 것이 음식의 근원인 것이다.
그래서 책 속에 등장하는 명상가이자 요리사는 저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뭔가를 맛볼 때는 입에서만 반응하게 하지 마세요. 심장이 반응하게 하세요. 심장에까지 가 닿지 못하는 음식도 이 세상에는 아주 많답니다.”
우리는 심장에 닿지 못하는 음식을 거의 매일 먹는다. 공장에서 찍어낸 통조림이나 비닐 포장된 똑같은 음식에 익숙하다. 과연, 우리는 음식을 먹는 것일까, 상품을 먹는 것일까?

 

천천히 그리고 소중히, 오렌지 한 조각의 혁명

서울에 갈 때마다 가족이나 친구와 대형마트에 간다. 탐스런 포도와 자두가 플라스틱에 담겨서 유혹한다. 채소는 비닐포장에 가지런히 담겨졌다. 냉장쇠고기는 붉은 색이 선명하고 냉동피자는 단단히 얼어있다. 모두 정확히 계량되고 1그램 단위로 가격이 매겨진 것이다. 청결하게 세척하고 깨끗하게 다듬은 과일과 채소와 고기임에도 나는 선뜻 손길이 가지 않는다. 비록 한 뙈기의 텃밭에서 부족한 대로 채소를 얻다보니 포장상품에 담긴 음식은 ‘공산품’처럼 보이는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베란다에 온갖 채소를 심고 소와 돼지를 기를 순 없다. 하지만 내 밥상 위에 오른 음식이 거쳐 온 과정을 아는 일은 중요하다. 그것은 단순한 맛의 문제를 훌쩍 뛰어 넘는다. 토양과 기후, 종자시장과 유전자 조작과 유통구조와 기업의 상술까지 폭넓은 시야를 품었다. 내가 먹는 음식이 다른 것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우리는 탐구할 필요가 있다. 곧 음식을 먹는 주권자로서의 권리이며 저자가 말한 것처럼 ‘책임감 있는 소비자’로서의 행위다. 음식이 품은 의미는 개인에게는 풍요로운 존재를 확인하며 건강한 사상을 생산하고 사회구조를 형성한다.
그래서 웬델 베리는 먹는 행위는 농부만의 문제가 아닌 모두의 행위로 볼 것을 주문했다.
“먹는 것은 농업적인 행동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먹는 자들은 그러한 진실을 더 이상 알지 못한다. 그들은 식량이 농사의 산물이라고 생각할 수는 있을지언정, 자기 자신이 농사의 참여자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127쪽)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1년여 동안 음식 탐험 여행 끝에 혁명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오랫동안 패스트푸드 방식에 익숙한 생활은 공장식 음식이 더 편리할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어느새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요가와 명상을 즐기고 정원에서 식탁을 차린다. 아이들이 마당에서 꺾어온 제라늄을 꽃병에 꽂고 치킨과 감자 요리를 직접 만든다. 후식으로 과일 한 조각을 먹지만 ‘내 존재의 모든 부분이 느려져 있었다’고 고백한다.
소시지 한 조각이라도 배가 터져라 먹어댔던 저자가 오렌지 한 조각을 천천히 음미하는 장면은 혁명이 아니고는 상상할 수 없다. 음식의 원재료가 만들어지는 현장체험과 직접 조리하는 과정을 익히면서 스스로 변화를 만든 것이다. 음식을 소중히 한다는 것은 나와 타인을 존중하고 자연과 신께 경배를 드리는 일임을 배웠다. 따라서 음식에 정성을 기울이고 가치를 부여할 때 인간을 포함한 자연 질서의 순환과 균형과 평화가 온다고 저자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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