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호 2012년 가을 살림,살림

[ 살림의 현장 ]

그 밭에는 또다시 열매가 맺힌다 - 두물머리 농부 이야기

봄눈별 외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열 한 명의 농부가 농사를 짓고 있었다. 2009년 4대강사업에 두물머리가 포함되면서 평화가 깨졌다. 농지를 없애고 자전거 도로를 만든다는 것. 공권력의 힘은 거대했다. 농민 일곱 명이 울며 겨자 먹기로 떠났고 네 명이 남았다. 지난 8월 14일 마침내 4년간 이어진 싸움이 끝났다. 이제 이곳에 생태체험학습장이 들어선다.

봄, 봄이라면 어쩐지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 두근거리는, 그래서 봄. 자꾸만 보고 싶어서 봄. 두물머리의 봄은 살아 있다. 봄이 다가옴과 동시에, 얼어붙었던 강물이 녹기 시작한다. 겨울 내내 자취를 감춘 듯 보였던 물살과 윤슬이 신비롭게 반짝이며 나타나고, 서서히 흐르는 강물이 된다. 그러면 흙도 동시에, 사르르 녹는 아이스크림처럼 보드라워진다. 흙이 잠에서 깨고 활력이 넘치는 봄에는 이것저것 할 일이 많다. 밭을 만들고 논을 만들고, 씨를 뿌리고 모판을 만들고, 모종을 심고, 한 해의 농사에서 봄을 빼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많은 이들이 한데 모여서 서로 일을 돕고 막걸리와 흥에 취하는 때도 이때다. 두물머리에서 네 농가만이 남아 농사지어온 것처럼 보이지만, 두물머리의 강과 바람, 또다시 찾아온 계절이 함께 짓는 것이다. 흙에 기대어 사는 풀과 나무들, 벌레와 새들, 긴 세월 거듭해온 자연의 이치가 어우러져서 새로운 농사를 부추기는 것이다.

대한민국 유기농의 발상지. 40년 동안 무농약, 무비료, 무제초제를 고집하며 살아 온 두물머리 농부들의 억센 손은 조화로운 삶에 대한 의지로 가득하다.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을 소중히 여기며, 생명과 평화의 시선으로, 발걸음으로, 손길로 일구고 보듬고 거둬온 지난한 세월이 그들의 손에 새겨져 있다.

“벌레들이 죽을까 봐, 손으로 풀을 매요” 하고 말하던 농부의 얼굴에 가득한 웃음. 토지를 강제수용하러 온 위원들 앞에서 “나는 4대강사업보다 친환경농산물을 생산해서 도시 소비자들에게 공급하는 것이 더 공익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4대강사업을 반대합니다” 하고 말해 회의장을 일순간 침묵에 젖게 했던 그 농부는 강변에서의 삶을 하나의 계절과도 같이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살았다.

한여름이면 어둠이 가시기도 전에 밭으로 나가 작물과 대화를 나누고, 가을이 되면 함께 가을걷이를 하고,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오기를 그 농부는 바랐다. 두물머리의 시간은 계절을 기준으로, 그의 시간은 아침과 밤을 기준으로, 평화를 기준으로, 생명을 기준으로 그 어떤 것 하나 어긋남 없이 완벽하게 조화로웠다.

노을이 지면 하루를 정리하고, 일주일에 하루쯤은 함께 공을 차고 막걸리를 마시고, 흥을 돋우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것. 농사로 자식들의 학비를 대며 삶의 보람을 느끼는 것이 그 농부의 삶의 전부였다. 두물머리에 기대어 사는 모든 삶들의 일부였다.

손과 발과 두 눈에 두물머리를 묻히고 살아가던, 평범하고 촌스런 농부. 그 농부는 어느 순간, 불법 경작자로 고발당했고, 벌금 내기를 거부하자 지명수배자가 되어 경찰에 끌려가고, 검찰에 송치되고 재판을 받는 범법자가 되어 있었다. 자연의 이치에 순응한 것이 죄인가, 농사짓는 것이 죄인가, 이웃과 어울려 사는 것이 죄인가.

허구한 날 찾아오는 공무원들은 대화하려는 의지도 없이 카메라를 꺼내 그의 얼굴을 찍었다. 정부와 지자체는 곧 철거할 것이라는 경고를, 예고도 없이 서류 몇 장에 담아 보내 왔다. 몇 몇 언론들과 사람들은 그를 보상을 노린 떼쟁이, 사기꾼, 빨갱이로 매도했다. 환경파괴범으로, 국책사업을 방해하는 불순세력으로 규정했다.

그 농부는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웠고 주량이 늘고 잠이 부족해졌다. 그는 이따금 굽은 등을 잔뜩 웅크리고 농막에 눕곤 했다. 농사도 투쟁도 멈출 수 없던 농부는 시나브로 쇠약해져 어느 날인가 자신의 낫에 손을 베고 말았다. 그날 밤, 속상하고 억울해서 정신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말하는 농부의 목소리에는 설움이 짙게 담겨 있었다.

그 농부의 삶을 차지하고 있는 삼보일배, 단식투쟁, 상경집회, 매일미사, 밤샘보초. 계속되는 회의, 가족들의 다그침, 연대투쟁, 검찰조사, 재판. 이것이 과연 농부의 삶인가. 이것이 과연 행복한 삶인가. 그 농부의 술잔에 담긴 한탄은 한동안 농부의 의지를 흔들어 댔다.

그래도 말이야. 내가 살면서 이렇게 많은 인연들을 어디서 맺을 수 있었겠어. 안 그래? 나의 마음을 알고 믿어 주고, 밀어 주는 이 많은 사람들 속에 둘러싸여 있으니, 힘든 건 사실이지만 이긴 거나 마찬가지야. 내 평생을 통틀어 이렇게 행복한 적이 있었나 싶다니까. 여기에 와 있는 모두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어. 그러니까 더 힘을 내야지.

그 농부의 말처럼, 그 농부의 밭에서는 또다시 새로운 열매가 맺혔다.
하나하나 귀하게 거두는 그의 억센 손.
언제나, 언제라도, 언제까지나 그럴 것처럼.
그 농부가 억센 손으로 4대강사업과 맞섰던 것처럼.
어디나, 어디라도, 어디에서나 그럴 것처럼.
그 농부가 이 여름 흘린 눈물은 또 다른 희망의 말들이 아닐까.

2012년 9월 15일. 모든 것을 스스로 철거하고, 차마 발길을 떨어뜨리지 못하던 두물머리 농부들의 뒤편. 수많은 사람들의 하나 된 염원을 기억하고 싶다. 마치 그때 그 봄의 바람, 그때 그 봄의 물살, 윤슬, 새들의 노래, 따스한 향긋함처럼. 농부의 처음 그 마음으로 기원한다.

↘봄눈별 님은 소설도 쓰고 시도 쓰는 자발적 가난뱅이입니다. 지구의 일부, 우주의 먼지, 친환경생활자입니다. 인디언플룻과 칼림바를 연주하며 치유음악회를 여는 청년으로 영원한 지금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권정생 선생처럼 살고 싶은 꿈을 안고 살아갑니다.
 



8월 6일 행정대집행
부들을 손에 들고 춤을

글. 문재형

8월 6일.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이른 새벽, 중장비가 들어올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양수대교 11번 교각으로 향한다. ‘공사 말고 농사!’, ‘발전 말고 밭(田)전!’ 종이팻말에 쓴 글씨가 눈에 띈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 한 손에는 적갈색 열매를 맺은 부들을 들고 있다. 습지를 헤쳐 오며 하나씩 주워들었다. 농부, 시민, 생협조합원, 국회의원, 종교인 등 족히 200명 되는 사람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구호를 외친다. 조금 긴장하고 경직됐지만 눈은 맑다.

교각 밑에 다다르자 수많은 경찰병력과 카메라 셔터를 눌러 대는 취재진이 보인다. 일이 터질 것만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 국토해양부에서 나온 공무원들이 공권력의 보호를 받으며 농부들 앞에 섰다. 필요 이상으로 악을 써 가며 영장을 읽는다. 그 순간 터지는 함성소리, 셔터소리, 경찰병력의 굳은 모습들…. 그가 뭐라 하는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다. 사람들의 춤 동작이 커지고 구호소리가 선명해진다. 행정대집행 영장을 앞에 두고 신나는 춤판이 벌어진다. 마구잡이로 추는 막춤. 너도나도 우리도 미소가 한가득. 근엄한 금배지를 단 국회의원도 어느새 박자에 맞춰 다리를 구르고 손뼉을 치고 있다.

‘오늘 행정대집행 맞아?’ 갑자기 벌어진 춤판에 경찰병력들은 당황한 표정이다. 중무장을 하고 잔뜩 긴장한 채로 나왔는데 사람들 손에 들려있는 건 고작 부들이라니. “아침 먹으러 갑시다!” 소리가 들릴 때까지 한 시간 가량 흥겨운 춤판이 이어졌다. 행정대집행을 막아낸 경기도 양평 두물머리의 새벽 풍경이다.

↘ 문재형 님은 주말이면 티벳을 돕는 단체인 ‘록빠’ 친구들과 두물머리에서 텃밭 농사를 짓다가, 자연스럽게 행정대집행에 맞서게 되었습니다.


8월 18일 두물머리 축하잔치
일방적인 국책사업 막아낸 열정

글. 젤리

올해 여름은 유난히도 더웠다. 농작물들은 말라 죽고 가축들은 집단 폐사했고 심지어 사람들도 죽었다. 가뭄을 대비해 만들었다던 댐은 해갈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녹조로 뒤덮여 분노를 샀는데, 4대강사업이 그 배후다. 두물머리 역시 그랬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유기농지가 4대강사업에 의해 철거될 처지라는 소식에 사람들은 분노했다. 행정대집행이 예고된 8월 6일, 최악의 폭염이 모두를 지치게 했다. 하지만 웬걸, 우리는 막아냈고 일방적인 국책사업에 제동을 걸었다.

그리하여 8월 18일 두물머리 축하잔치가 조촐히 열렸다. 더위가 한풀 꺾인 8월 18일, 사람들이 하나둘씩 두물머리로 모여들었고 주변에는 물안개가 피어올라 그동안 더위에 지친 사람들을 달래주었다. 하지만 또 다른 열기가 두물머리를 메우고 있었는데... 바로 열정.

저녁 6시경, 두물머리를 지킨 마지막 네 농부가 미사터 초입에 탁구대를 펴 놓고 열정의 탁구 경기를 벌였다. 사람들은 열정의 응원을 펼쳤다. 어느새 본격 잔치가 시작되었다. 신선한 유기농 과일과 채소, 바비큐 고기로 푸짐하게 차려진 열정의 만찬과 아름다운 공연들, 지난 4년의 투쟁 기록을 담은 영상이 이어졌다. 축하의 기운이 두물머리를 가득 메운 그때, 사람들이 불현듯 일어나 열정의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아아, 두물머리와 열정은 서로 뗄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타결안인 ‘생태학습장’은 어쩌면 우리가 앞으로 채워나가야 할 또 다른 싸움일지 모른다. 하지만 일단 폭력적인 행정대집행을 막아낸 우리는 모두의 어여쁜 마음씀씀이와 단호한 직접행동, 그리고 말 못할 고생들을 서로 위로하고 북돋았다. 새벽녘까지 이어진 정신 줄 놓은 댄스타임은 열정 그 자체였다. 농부들, 함께한 사람들은 열심히도 싸웠다, 그리고 막아냈다. 여기서 끝나진 않을 것이다. 열정은 계속된다.

↘ 젤리 님은 2011 두물머리 강변가요제에서 데뷔한 밴드 ‘바리케이트 톨게이트’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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