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호 2012년 가을 살림,살림

[ 다시 본 이 물건 ]

"저 이 휴지 안 써요" - 지금 숲을 파괴하고 있는 당신에게

이소영

 

몇 년 전만 해도 사람들과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면 나는 의도치 않게 상대방을 참 무안하게 만들곤 했다. 안 먹을 반찬을 물리거나 밥을 남기면 안 된다는 등 잔소리를 해서가 아니었다. 식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음식과 관련해 작정한 내 잔소리가 시작되기도 전에, 사람들이(특히 어여쁜 여성동지들께서) 식탁 위 휴지를 탁탁 뽑아 수저받침을 만들고 젓가락과 숟가락을 가지런히 놓아주는 것 때문이었다.

 

휴지를 쓰는 일이 너무 쉽다
대접한다는 의미를 담은 성의 있는 배려였을 테지만, 나는 참 재수 없게도 “저는 이 휴지 안 쓰거든요”라며 굳이 그 휴지를 빼내 다시 물린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왜 식탁마다 다량의 휴지가 놓여 있는지, 사람들이 너무도 쉽게 불필요한 휴지를 소비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을 때였다.
식탁 위에 놓여 있는 휴지나 방마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각 휴지, 대부분의 화장실에 걸려 있는 두루마리 휴지 등이 우리 주위 어디에나 있게 된 때가 실은 채 얼마 되지 않았다. 어린 친구들이 들으면 무슨 호랑이 담배 필 때 소린가 갸우뚱할 수도 있겠다. 얼마 전 대학생 유럽탐방단을 인솔했을 때, 한 여학생이 비데를 하고 싶다고 고백해 혼자 놀란 적이 있다. 이 친구는 비데는커녕 휴지도 없던 한국의 전통 푸세식 화장실인 뒷간을 알까? 생태뒷간이라고 톱밥도 준비해 두고 휴지도 마련된 매우 발전된 형태 말고, ‘빨간 종이 줄까 파란 종이 줄까’ 한다는, 인분이 그대로 드러난 뒷간 말이다. 휴지가 아니라 일일 날짜가 한 면 가득 인쇄된 달력 한 장을 찢어 부드러워질 때까지 열심히 비벼서 뒤처리하는 것을 알 리가 없을 듯하다. 언제부터 우리 화장실에 뒷물도 아니고 전기로 작동하는 비데가 일상적으로 사용된 걸까? 아니 언제부터 물과 함께 똥을 흘려보내고는 내 눈에 더 이상 보이지 않으니 제거된 것이라고, 까꿍놀이하는 어린아이처럼 안보이면 그만이라는 유아적 사고를 하기 시작했는지, 언제부터 큰일을 보든 작은 일을 보든 늘 비치된 휴지를 둘둘 말아 실컷 써버리기 시작했느냐 말이다. 뒤처리할 때만 아니라 식사할 때도 무엇 때문에 휴지를 옆에 쟁여놓고 연속으로 마구마구 뽑아서 쓰기 시작했느냐 이 말이다.

 

숲은 빠르게 사라지고, 나무는 자랄 틈이 없다
휴지는 종이로 만들고, 종이는 나무로 만든다. 나무는 광합성을 통해 태양에너지를 생태계로 들여온다. 생태계 안에서 태양에너지를 물질로 전환시키는 유일한 방법이 광합성이다. 나무와 숲은 최초의 에너지 공급원으로서 중요할 뿐 아니라 땅속 및 땅 위 각종 생물종의 서식지로서 역할도 크다. 이러한 숲이 파괴되면서 생물종의 자연적 멸종과 함께 인위적인 멸종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2004년 1월 발간된 《네이처 Nature》에 따르면, 현재의 멸종 속도에 비추어 볼 때 2100년까지 현존하는 생물종의 절반이 사라질 것이다.
숲 파괴는 역사적으로 볼 때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수렵과 채취를 중심으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던 시기에서 농경시대로 접어들면서부터 밭을 만들기 위해 벌목이 시작되었다. 농업을 근간으로 정착하여 살게 되면서 많은 목재를 사용하여 집을 짓기 시작했고, 벽돌집을 만들면서 벽돌을 굽는 데 엄청난 양의 나무를 땔감으로 썼다. 벌목은 땅을 빠른 속도로 부식시켜 식량 생산에 해를 끼치기에 이른다. 특정 지역에서만 발생한 문제가 아니라 인더스 강 유역을 비롯하여 중국 고원지대, 지중해 연안 등에서 숲 황폐로 어려움을 겪었다. 게다가 급격한 인구 증가는 난방이나 취사, 건축 등에 사용하는 목재 수요를 더욱 늘렸다. 농업과 함께 시작된 목축 때문에 방목된 가축들이 나무가 채 자랄 틈도 없이 싹부터 먹어치운 것도, 숲이 되살아나지 못하고 파괴된 채 남게 된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
산을 완전히 벌거숭이로 만드는 데에는 제국주의국가들이 식민지에서 과잉벌목을 한 것이 큰 역할을 했다. 식민통치가 끝나고 독립한 국가들은 계속해서 목재 수출을 외화벌이 수단으로 활용했다. 1960년대 이후 일본의 수입으로 인도네시아 목재 수출이 급격히 늘었는데, 이때 일본은 목재 생산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국의 숲은 엄격하게 보호하면서 인도네시아 나무를 베어갔다. 2009년 KBS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 <환경스페셜 - 종이의 일생>에 따르면 아시아 열대 우림의 40%를 보유한 인도네시아의 전체 열대림 중 36%가 이미 황폐해졌다고 한다. 벌목용 기계는 일정 높이 이상 되는 것은 모두 베어버린다. 그래서 원래 필요한 양보다 10배나 많은 벌목을 해버려 숲을 파괴하고 불필요한 쓰레기를 발생시킨다. 환경보호단체인 ‘지구의 벗(Friends of the Earth)’에서는 1분당 축구 경기장 36개 크기만 한 숲이 없어지고 있다고 보고한다. 아마존에서는 불법벌목이 횡횡하여 이를 막기 위해 환경운동가들이 지킴이로 나섰다. 그러나 벌목업자가 고용한 청부살인업자에 의해 지난 20년 동안 1,150여 명이 살해됐다. 숲은 이렇게나 빠른 속도로 없어지지만, 재생산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설마 벌목되는 숲과 이 때문에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이 펑펑 써버리는 휴지와 무슨 상관이 있냐고 묻고 싶은가? 먼저 휴지를 만드는 종이에 대해 알아보자. A4용지 1만 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30년생 원목 한 그루가 필요하다. 이때 소비되는 물과 발생되는 탄소량도 고려해야 한다. 종이원가의 1/4을 물과 에너지 비용이 차지할 만큼 제지산업은 에너지 집약산업이다. 표백과정에 쓰이는 염소는 화학공정에서 수질 오염을 일으킨다. 자연림을 보호하기 위해 단일 품종의 인공림을 조성하는 것은 토양침식의 원인이 된다. 2005년 세계자연보호기금(WWF)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유럽인 1인당 1년에 13kg의 휴지를 사용하는데, 하루에 27만 그루의 나무가 화장실에서 사라지는 것과 같다고 한다. 특히 유럽의 휴지 제조사들은 재생지를 사용하지 않고 수입한 펄프 목재를 사용하기 때문에 숲 파괴를 촉진한다. 그래서 재생지를 사용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숲을 얼마나 파괴하는지도 모른 채 휴지를 쓰기 때문에 생산자들이 먼저 노력하라는 것이다.

 

까꿍놀이는 이제 그만
많은 곳에서 이러저러한 이유로 숲이 파괴되고 생태계가 존속하기 어려우니 휴지 사용도 줄이고 이면지를 사용하자고 한다. 그러면 일부 ‘소비자 여러분’들은 귀에 딱지 앉겠다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경제가 돌아가려면 소비를 제대로 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오히려 그렇게 팍팍하게 살지 말라고 충고한다. 범죄율이 증가하는 데 따라 방범산업이 성장하고, 비만 때문에 다이어트산업이 극성이듯이. 스트레스 때문에 항우울제 생산·소비가 증가하고 그 덕분에 국내총생산(GDP)이 늘어나듯이. 이런 게 경제가 잘 돌아가게 한다는 걸까?
조근조근 근거를 들어 문제제기를 해도 이렇게 어이없이 경제타령을 하니 나도 재수 없게 대놓고 “저 이 휴지 안 써요” 했었다. 연배 지긋한 선배 사회학자에게서 소소한 데 목숨 걸지 말라는 핀잔을 듣고서야 사람들이 휴지로 수저받침을 만들어줘도 가만히 있게 됐다. 더 이상 뽑아 쓰지 않을 뿐이다. 사회학자는 구조를 비판해야지 소소한 생활에 목숨 걸지 말란다. 생활을 바꾸어야 구조가 바뀌는 게 아닐까? 구조를 바꾸면 생활은 저절로 변화되는 것일까? 일상의 변화가 축적되어 구조의 변화에 힘을 실어주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곳곳에 휴지가 비치되어 있으면 마구 소비하고, 휴지가 모두 없어져버리면 없는 대로 살게 되는 걸까? 나는 사회구조의 변화와 일상에서의 실천이 함께 가면 좋겠다. 기껏 휴지 한 장이지만 거기에 얼마나 많은 생명과 역사적 진실이 담겨있는지 기억하고, 꼭 써야 한다면 한 장만 쓰자. 되도록 손수건을 쓰고, 사실 뭐 소매로 쓱 닦아도 된다. 없어도 살아가는 데 큰 지장이 없는 것에 너무 큰 희생이 따른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까꿍놀이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

 

↘ 이소영 님은 에코토피아를 꿈꾸는 살림꾼입니다. 모심과살림연구소 연구원, 부산대 생태유아교육사업단 연구교수를 거쳐 지금은 고려대에서 강의하고 있습니다. 《인드라망, 지금 여기의 에코토피아》를 썼으며 《비아캄페시나-세계화에 맞서는 소농의 힘》을 공동번역했습니다.


http://www.salimstory.net/renewal/sub/view.php?post_id=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