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호 2012년 가을 살림,살림

[ 말글살림 ⑧ ]

너랑 나랑 베프 '한올진 사이' - 사람 사이를 일컫는 우리말

박남일

사람은 유(類)적 존재, 또는 사회적 존재라고 한다. 무리를 지어 사는 존재라는 뜻이다. 단순한 무리가 아니라, 구성원끼리 복잡한 관계로 얽혀 있는 무리다. 오랜 세월 한곳에 머물러 살아온 우리 겨레의 관계 그물은 더더욱 정교하고 촘촘하다. 사람 사이를 짚어보면서 이를 일컫는 말도 풍성하게 알아보자.

 

무리는 두레로 만나 먹고, 일하고, 논다
사람의 한 무리는 작은 무리를 포함하거나 다른 무리와 이어져 있다. 예컨대 삶의 목적이나 지향이 비슷한 사람들은 종종 한패를 이루어 어떤 활동을 벌인다. 이를 ‘동아리’라고 한다. 영어로 ‘서클(circle)’이다. 생산 공동체나 소비자협동조합도 넓게 보면 동아리의 한 가지이다. 종교단체나 시민단체 등 이지가지 단체들도 대부분 동아리라고 할 수 있다.
동아리를 다시 몇 개의 작은 단위로 나눈 집단은 ‘모둠’이다. 한자말의 ‘조(組)’, 영어의 ‘팀(team)’에 해당한다. 더불어 이 모둠을 이루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성원을 우리말로 ‘모람’이라 한다. 그런데 이 모둠의 모람들은 서로의 단합을 위해 가끔씩 떼를 지어 놀이를 떠나거나 잔치를 벌인다. 이를 ‘모꼬지’라 하는데, 요즘엔 영어의 ‘MT (membership training)’에 대한 순화말로 쓰이고 있다.
전통 농경사회의 대표적인 모둠으로 ‘두레’가 있었다. 농사를 위한 일종의 공동작업 모둠이다. 두레는 본래 낮은 데에 있는 물을 언덕진 논이나 밭에 퍼 올리는 데 쓰는 기구 이름이었다. 이것으로 두레질을 할 때는 두 사람 이상이 호흡을 잘 맞추어야 하는데, 그 때문에 공동작업 모둠을 두레로 부르게 된 듯하다. 그런데 두레는 농악을 연주하거나 서로 어울려 음식을 해먹는 모둠을 일컫는 말이기도 했다. 일과 놀이와 잔치가 연계된 삶을 살았던 까닭일 것이다.
두레와 소리가 비슷한 ‘두럭’이라는 말도 있다. ‘두르다’에서 비롯된 말로, 여럿이 모여 편을 갈라 놀 때 임의로 가른 한편을 일컫는다. 따라서 두레가 독립적인 모둠이라면 두럭은 이편과 저편을 가르는 단위의 성격이 짙다. 그 때문에 많은 집들이 모여 있는 마을에서 이 구역과 저 구역을 가르는 단위로도 쓰인다. ‘두렁’으로 논이나 밭의 경계를 가르는 것처럼.

 

‘하나의 솔기처럼 서로 엮인 사이’, ‘한올진다’
오늘날 사회에서 가족은 가장 일반적인 생활 모둠이다. 그리고 이 모둠의 중심에는 부부가 있다. 옛말로 부부를 ‘가시버시’라 했다. 혼인한 부부가 자신들을 겸손하게 이르는 말이다. ‘가시’는 아내를 뜻하는 말로, 원래 형태는 ‘갓’이었다고 한다. 흔히 새 신부를 가리키는 ‘각시’의 어원으로 볼 수 있다. ‘버시’는 할아버지, 아버지, 어버이 따위에 들어 있는 ‘-버-’와 같은 갈래의 말이다. 부부관계에서 여성에 상대되는 남성의 의미로 널리 쓰이는 말밑이다.
한편 정식으로 혼례를 올리지 않고 함께 사는 부부도 있다. 이런 부부를 ‘뜨게부부’라고 한다. 요즘의 ‘동거부부’에 해당하는 말이다. 뜨게부부와 동거부부. 뜻은 같지만 느낌은 사뭇 다르다. 이밖에도 부부를 가리키는 우리말에는 ‘팍내’, ‘한솔’ 따위가 있다. 가슴팍을 맞대고 사는 사이, 혹은 옷감의 끝단을 서로 잇는 하나의 솔기처럼 서로 엮인 사이라는 뜻쯤 되겠다.
가시버시든 뜨게부부든 남녀가 혼인을 하면 이른바 유부남과 유부녀가 된다. 왠지 경박스러운 느낌이 나는 이 말들을 우리말로 바꾸어 보면 유부남은 ‘핫아비’, 유부녀는 ‘핫어미’다. 앞가지 ‘핫-’은 핫바지나 핫저고리에서처럼 ‘솜을 두어 만든 것’이라는 뜻과 함께, ‘배우자가 있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핫아비와 핫어미에 상대되는 말은 각각 ‘홀아비’와 ‘홀어미’다.
가시버시가 자식을 낳으면 ‘어버이’가 된다. 어버이는 아버지를 뜻하는 옛말 ‘어비’와 어머니를 가리키는 옛말 ‘어이’가 더해진 말이다. 따라서 모녀(母女) 사이는 ‘어이딸’, 모자(母子) 사이는 ‘어이아들’이다. 마찬가지로 부녀(父女) 사이는 ‘어비딸’, 부자(父子) 사이는 ‘어비아들’이 된다. 무슨 까닭인지 어비와 어이는 오늘날 ‘아비’와 ‘어미’로 바뀐 뒤, 낮춤말로 한정되어 쓰이고 있다. 말의 신분이 분화된 사례 가운데 하나다.
오랜 농경사회를 거쳐 온 우리 겨레는 ‘피붙이’ 또는 ‘살붙이’에 대한 의식이 강하다. 그래서 핏줄의 거리에 촌수(寸數)를 매겨 친인척을 따지는 게 관습이 되었다. 특히 여러 세대가 한집에 살거나 가까운 일가친척이 모여 집성촌을 이루고 살던 옛적에는 이런 체계에 따른 혈연공동체를 끈끈하게 유지했다. 그러면서 가까운 일가붙이를 ‘곁쪽’이라 부르고, 촌수가 먼 피붙이는 ‘곁붙이’, 그리고 이러저러하게 연분이 닿는 먼 친척은 통틀어 ‘결찌’라고 부르며 핏줄끼리 유대감을 다져왔다.
그러고 보면 우리 겨레는 유독 혈연에 집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웃사촌’이라는 말도 있다. 멀리 있는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실질적으로 더 살가운 사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웃끼리는 황소를 가지고도 다투지 않는다’는 속담도 생겨났다. 특히 이웃 중에서도 이쪽저쪽으로 맞붙어 있는 ‘삼이웃’과는 서로 양보하며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는 게 상식이다.

 

낯을 익히고 자주 만나서 ‘옴살’이 되자
세상에는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있다. 알고 지내는 사이에도 여러 단계가 있다. 초면(初面)은 아니지만, 겨우 얼굴이나 알고 지내는 사람은 ‘풋낯’이다. 구면(舊面)이라도 얼굴이 가물가물하면 풋낯이다. 풋낯도 자주 보면 ‘익은낯’이 된다. 친한 친구는 아니어도 낯이 익을 만큼 가까이 알고 지내는 사람의 사이는 ‘알음알이’라고 한다. 흔히 쓰는 일본식 한자말인 ‘지인(知人)’에 해당하는 우리말이다.
알음알이보다 좀 더 가깝게 서로 너, 나 하면서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는 ‘너나들이’라고 한다. 편하게 반말을 쓰면서 가깝게 지내는 사이다. 우리나라에서 동갑내기 친구끼리는 대체로 너나들이하는 사이로 지낸다. 그런데 나이가 한 살쯤 차이가 나면서 너나들이하는 관계도 있다. 이를 ‘자치동갑’ 또는 ‘어깨동갑’이라 한다. 학교 동기생이나 같은 시기에 입사한 회사동료 사이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물론 열두 살 차이 나는 ‘띠동갑’끼리 너나들이하기는 어려울 터다.
겉으로 너나들이하는 친구라고 해서 모두 뜻이 잘 맞는 건 아니다. 사람 사이는 무엇보다 뜻이 맞아야 서로 좋다. 이처럼 같은 뜻이나 마음을 가진 사이를 ‘한속’이라 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비슷하고, 그로 인한 셈속이 바람직한 관계는 ‘동지(同志)’로 발전하거나 서로 ‘단짝’이 될 수 있다. 나아가 늘 한속이 되어 오랜 단짝으로 지낸 사이는 마치 한 올의 실 같아서 ‘한올지다’고 한다. 이즈막에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베프(best friend)’야말로 한올진 사이라고 할 수 있다.
한올진 관계를 넘어, 마치 한 몸처럼 친밀하고 가까운 사이도 있다. 이런 사이를 ‘옴살’이라 한다. 서로 뜨겁게 사랑하는 연인이나, 갓 혼인하여 깨가 쏟아지는 가시버시쯤 될 터이다. 이를 속되게 일러 흔히 ‘닭살’이라고 하는데, 점잖게 말하면 옴살이다. 누구도 떼어놓을 수 없는 인간관계의 극치를 이르는 말이다.
사람 사이가 늘 좋기만 할 수는 없다. 서로 한속이거나 한올지게 친했던 사이도, 옴살처럼 붙어 지내던 사이도 오해를 품거나 다투고 나면 서로 버스러진다. 이런 사이를 ‘버슷하다’고 한다. 한번 버슷해진 사람끼리 마주하고 있으면 설면한 사람들처럼 눈길이 차갑다. 이처럼 서로 대하는 태도에 친밀감이 느껴지지 않고 냉랭한 사이를 ‘데면데면하다’고 한다.
눈앞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대체로 자주 만날수록 가까워진다. 풋낯인 사람도 자주 만나면 한속이 될 수 있다. 버슷해져서 데면데면한 사람도 자주 만나다보면 한올지게 된다. 어느 쪽이든 먼저 찾아가 손을 내밀면 된다. 그게 자존심이 상하는 일로 느껴지거든 ‘반보기’를 청하면 된다.
반보기는 옛적에 양가의 부녀자들이 서로 사는 집의 절반쯤 되는 곳에서 만나던 풍습이다. 외출에 제약을 받던 당시의 부녀자들은, 친구나 친정 식구 한번 만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그 때문에 서로 시간을 아끼기 위해 최단거리가 되는 곳을 만남의 장소로 삼았다.
통신망이 발달한 덕분에 우리는 직접 만나지 않고서도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전화통화도 번거로워 문자메시지로 안부를 대신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의 관계에서는 단 한 차례의 만남이 전화통화 열 번이나, 문자메시지 백 번보다 값진 일이다. 그러니 만나야 한다. 옴살이 되려면.

 

↘ 박남일 님은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말 풀이사전》 등 우리말 관련 책을 썼습니다. 지금은 지리산이 바라보이는 동네에서 우리말글을 연구하며 인문학 분야의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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