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호 2012년 가을 살림,살림

[ 아이살림 ]

해태의 무덤에 올린 감자꽃다발

신순화

어린 시절 ‘스캉’이란 개가 있었다. 특별한 것 없는 잡종이었지만 우리 형제들은 모두 스캉을 좋아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스캉부터 찾았다. 매리, 쫑, 해피, 바둑이… 그땐 어딜 가나 개를 키우는 집이 많았다. 골목에도 친구 집에도 개가 있었다. 스캉은 오래 우리 가족의 사랑을 받다가 어느 날 없어졌다. 우연히 집을 나갔는데 누가 데려간 모양이라고 위로했지만 오래 슬펐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개를 키우는 생활도 끝이 났다. 다시 개를 키울 생각을 한 건 엄마가 되어서다. 어린 아들이 개를 좋아했다. 아파트에서 개를 키우는 건 자신이 없어서,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 가면 그때 개를 데려오자고 달래곤 했었다.


우리 가족은 강아지까지 일곱!

2010년 1월 드디어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하게 되었고 우린 제일 먼저 강아지 두 마리를 구했다. 강아지도 혼자 있으면 쓸쓸할 테니까 두 마리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 온 검정 강아지는 ‘해태’, 이튿날 온 누런 강아지는 ‘해치’라고 이름을 지었다. 도둑과 불을 물리친다는 전설의 동물처럼 우리 집과 가족을 잘 지켜달라는 뜻이었다. 이사도 하기 전에 남편이 덜컥 강아지를 데려오는 바람에 열흘 정도 아파트에서 함께 지냈다. 예쁜 개줄을 매고 애견 샴푸를 사서 처음 목욕을 시킬 때만 해도 앞으로 벌어질 일을 몰랐다. 그저 귀엽기만 했다.

개들은 곧 집안 여기저기에 똥오줌을 싸기 시작했다. 갓 돌이 된 셋째까지 어린아이 셋을 돌보고 있던 나는 두 마리 강아지들을 제대로 거둘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어 책상 다리에 묶어두었더니 종일 낑낑거리며 짖어댔다. 이웃에서 항의 전화라도 할까봐 전전긍긍하며 열흘을 보내고, 이사하자마자 제일 먼저 녀석들을 마당에 풀어 놓았다. 아이들과 어울려 자유롭게 뛰노는 모습을 보며 이젠 걱정 없겠다고 안심했다. 눈이 많이 온 그해 겨울, 아이들과 개들은 눈밭에서 함께 뒹굴며 뛰놀았다. 산비탈에서 비닐을 깔고 눈썰매를 탈 때 큰아이 필규는 개를 안고 타곤 했다. 밖에서 키우는 개라 지저분하다고 잔소리해도 아이들은 늘 개를 안고 쓰다듬고 품으며 놀았다.

해태와 해치는 아이들에게 새로운 친구가 되어 주었다. 아이들은 이따금 개들을 데리고 동네를 산책했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해태, 해치 몫을 잊지 않았다. 외출했다 돌아오면 이름을 부르며 달려가곤 했다. 늘 “우리 해태, 우리 해치”라고 불렀다. 어디에 가서 가족이 다섯 명이라고 소개하면 옆에서 “아니에요. 일곱이예요. 해태랑 해치도 가족이잖아요”하며 정색했다.

그런데 해태가 갑자기 아프기 시작했다. 설사를 하더니 맥을 못 추었다. 남편이 지방에 출장 가 있던 터라 25kg이나 되는, 아파서 늘어진 개를 차에 태우고 세 아이까지 챙겨서 시내에 있는 동물병원에 가는 게 보통 벅찬 일이 아니었다. 해태는 ‘파보장염’이었다. 면역력이 약한 어린 개들이 자주 걸리는 병이라고 했다. 입원해야 하는데 해태는 큰 개라 최소 300만 원은 든다고 했다. 완치를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개를 입원시킨 경험이 없는 데다 상상도 못했던 큰돈이어서 결정을 못했다. 우선 약을 먹이며 지켜보자는 수의사의 말에 가루약만 지어 돌아왔는데 해태는 다음날, 내가 보는 앞에서 격렬하게 경련하다가 죽어 버렸다. 두려움과 미안함으로 목 놓아 울었지만 해태는 돌아올 수 없었다.

이웃에 있는 전국귀농운동본부 사무실로 달려가 도움을 청했다. 남자 활동가 두 분이 오셔서 해태를 그늘로 옮겨 주셨다. 해태의 몸을 물수건으로 깨끗이 닦아 주고 시집올 때 가져온 소창 두루마리를 꺼내 해태의 몸을 감쌌다. 학교에서 돌아온 큰아이는 누워 있는 해태의 몸을 오래오래 쓰다듬으며 울었다. 나도 함께 울었다. 밤나무 밑에 묻어 주기로 했다. 귀농운동본부 어르신들이 구덩이를 깊게 파서 해태를 뉘어 주었다. 큰아이가 삽으로 흙을 떠서 그 위에 뿌렸다. 사람들이 돌아간 후에도 우린 해태의 무덤에 오래 남아 있었다. 필규와 윤정이는 근처에 있던 감자밭에서 감자꽃을 꺾어 꽃다발을 만들어 해태의 무덤 위에 올려놓았다.

“해태야. 하늘나라에 가면 파트라슈도 있고 아기 새도 있을 거야. 잘 놀고 있어. 이다음에 다시 만나자.”
필규는 이렇게 말하며 눈가를 훔쳤다. 그 얘기가 내게도 위로가 되었다.

“그래. 생명이 있는 것들은 언젠가는 모두 죽어. 우리도 언젠가 하늘나라에 가면 그때 해태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다시 만날 수 있어.”

필규를 위로하며 나도 울었다. 그리고 어렴풋이 예전에 책에서 읽었던 ‘생명이 순환한다’는 말이 생각났다. 해태가 모습은 보이지 않아도 늘 우리 곁에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해태는 흙으로 다시 돌아갈 거야. 지렁이랑 수많은 미생물들이 해태의 몸을 분해해서 다시 땅으로 돌려주면 해태는 감자밭으로도 스며들고 밤나무에게도 들어갈 거야. 토실토실한 감자로, 밤으로 또 다른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그렇게 돌고 돌면서 끝없이 서로를 살게 할 거야.”

누구보다 해태를 아꼈던 필규는 무척이나 그리워했다. 하지만 걱정했던 것보다는 빨리 안정을 되찾았다. 해태가 아픈 것을 알고 있었고, 충분히 슬퍼할 시간이 있었고 제 손으로 해태를 묻으면서 마음의 상처를 보살폈기 때문이다. 그리울 때마다 해태의 무덤에 가서 꽃이나 들풀로 제 마음을 표현할 수도 있었다. 해태뿐 아니라 죽어 있는 아기 새를 묻어 주고, 말라 죽은 매미를 한곳으로 거두어 주면서 필규는 의연해졌다.


개를 키우는 일, 생명을 알게 되는 일

해태의 죽음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개를 데려올 때 반려동물을 맞이하는 것이 무엇인지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개를 키울 수 있어 기뻤을 뿐이다. 마당에 풀어놓으니 씻기거나 용변을 처리해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어린 날에 동네에서 흔하게 보던 것처럼, 개는 개집에서 자고 아무데서나 볼일을 보고 남은 음식도 먹고 사료도 먹으며 그렇게 크면 되는 줄 알았다. 개는 아프다가도 스스로 이겨내는 동물이라고 여겼다. 동물병원이 시내에나 있어서 한 번 데리고 오가는 일이 엄두가 나지 않아 예방접종을 해야지 하면서 미루고 있었다. 새집에 산적한 일을 처리하다 보니 차일피일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광견병 예방접종은 의사가 동네로 직접 와서 해 주었는데 일반 전염병 접종은 자가 투여를 할까 망설이던 참이었다. 만약 개가 아프면 큰돈이 들어간다고 알고 있었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개를 데려오는 일은 그 생명에 대한 커다란 책임과 의무도 함께 선택하는 일이라는 것을 미처 고민하지 않은 탓이었다. 해태의 죽음이 내 잘못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더 마음이 아팠다.

해태의 죽음은 유기견에 대해서 생각하게 했다. 예쁘고 건강할 때는 사랑받다가, 아프면 버려지는 개들이 수없이 많다는 사실에 눈이 뜨였다. 대형마트에서 물건처럼 팔리는 동물들의 존재도 새롭게 다가왔다. 생명은 결코 물건이 아니다. 쉽게 사서 제대로 돌보지 않다가, 죽으면 버리고, 또 새로 사는 문화는 아이들에게 생명에 대한 진지한 책임을 외면하게 한다. 반려동물을 맞이하려면 그에 대해 제대로 알고 준비해야 한다. 해태를 보낸 뒤, ‘인간의 욕구대로 동물의 본능을 통제하는 일이 과연 옳은 일일까’를 묻게 되었다.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하면서 동물원의 돌고래 쇼와 동물을 이용한 각종 쇼를 구경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해태는 떠났지만 해치는 남았다. 슬퍼하고 힘들어 하는 해치를 위해 짝짓기를 주선했다. 해태는 아랫집 암컷 진돗개 사이에서 수컷 강아지를 낳았다. 그에게 ‘해태’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해태2세도 어느덧 아빠만큼 큰 개로 자라났다. 우리는 두 마리 개들 때문에 집을 오래 비우거나 여행을 맘 놓고 못 가고 매일 똥을 치우고 먹이를 챙기며 신경 써야 하지만, 외출했다 돌아올 때마다 우리 차를 멀리서부터 알아보고 겅중겅중 뛰며 반기던 모습에 언제나 가슴이 뭉클해진다. 어린 시절 마음을 줄 수 있는 강아지 한 마리를 만나면 평생 개와 친구가 된다. 생명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만큼 생명에 대한 이해와 책임도 함께 배운다. 마음껏 배회하고 온갖 물건의 냄새를 맡으며 동료들끼리 소통하는 것이 개에게도 중요한 욕구라는 것을 알게 된 필규는 이따금 동네에서 목줄이 너무 짧게 묶여 있는 개들을 만나면 무척 안타까워한다. 좁은 철창에 갇힌 가축들의 괴로움도 제 일처럼 여긴다. 해태는 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게 해 주었다. 우리에게 선물과 함께 숙제를 남겨 주었다.


↘ 신순화 님은 필규, 윤정, 이룸 세 아이와 하루하루를 신나게 보내고 있는 엄마입니다. <한겨레> 육아 전문 사이트 '베이비 트리'와 개인 블로그에 행복한 출산과 육아에 관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두려움 없이 엄마 되기》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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