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호 2012년 가을 살림,살림

[ 시골살림 길잡이 ⑦ ]

사람은 거들 뿐, 자연이 키우고 여물게 하라

전희식

대형 농기계를 사용하여 사람의 수고를 최대한 줄이고, 때맞춰 농약과 비료를 살뜰하게 챙기면서 최대한 많은 수확을 얻는 것. 일견 스마트해 보이는 이런 농사에는 땅도, 생명도 완전히 배제되고 오직 사람의 탐욕만이 있을 뿐이다. 뭔가 더하지 않아도, 자연 그 자체로 충분하다.



농장이 공장이 된 시대, 땅심이 고갈된다


이제까지 모든 농법은 힘은 덜 들이고 수확은 더 많이 하는 것에 기울어져 있었다. 대놓고 말하자면 돈 많이 버는 법을 농사에 끌어댄 것으로 땅·병해충·풀 관리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화학약품과 농기계를 마구잡이로 동원하여 농업은 공업화되었고 농장은 공장처럼 변했다. 특히 농사를 위해 개발된 화학약품은 자연 생태계에는 없는 물질로, 분해도 잘 안 되고 생태계를 교란하며 개체의 형질을 변형시킨다. 2007년 현재 농촌진흥청에 등록되어 있는 제초제만 해도 297개 품목에 418개 상표라고 한다. 살충제와 살균제에 지베렐린 같은 성장촉진제, 카바릴수화제 같은 적과제(열매 솎는 농약) 등까지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다. 그 탓에 토지는 사막화되었고 지하수는 물론 대기까지 오염되었다. 물속과 땅 위의 생물종들이 모두 화학물질의 피해를 보고 있다.
경인방송에서 방영했던 <피곤에 지친 지구의 토양> 다큐멘터리를 보니 프랑스 보주(Vosges)와 카마르그(Camargue) 지방의 삼각주가 오랜 화학농업으로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생산성만 추구하는 농법이 어떻게 땅심을 고갈시키는지 적나라하게 보였다. 심지어 뱀장어의 80%가 암에 걸려 있었다. 생물농축(유기오염물이 생물의 체내로 유입된 뒤 분해되지 않고 남아 있다가 먹이사슬을 통해 상위 개체로 전달되면서 오염 농도가 점점 높아지는 현상. 먹이 사슬의 위에 있는 고래나 상어, 인간에게 심각하게 나타난다) 때문이다. 농사가 다원적 가치를 실현하면서 지구를 살리기는커녕 지구환경 파괴의 주범이 되어 버린 현실이다.



자연농법의 3무(無)원칙 : 무경운, 무비닐, 무투입


그래서 자연농법이 등장했다. 인간이 일부러 작물 재배에 이런 저런 조작을 하지 않고 자연이 하는 것을 거드는 정도의 농사라고 보면 된다. 자연농법에서는 농기계로 땅을 관리하지 않고 아예 갈지 않는 쪽을 선택하는데, 자연농법의 첫 번째 원칙인 무경운(無耕耘)이다. 대형 농기계로 땅을 갈면 경반층 또는 비독층이라고 하는 지면 30cm 밑의 땅을 돌멩이처럼 딱딱하게 하여 농사를 망친다. 땅을 갈지 않으면 장마에 물 빠짐도 좋고 가뭄도 덜 타며, 농사에 치명적인 토양의 염류축적도 없다. 땅을 갈아엎는 이유는 땅 속 흙을 산성화된 겉흙과 뒤바꾸고 잡초를 없애기 위해서다. 화학약품 때문에 산성화되는 땅을 뒤집기만 해서는 해결이 안 되니까 다른 데서 흙을 퍼 넣는 객토작업도 하고 몇 년에 한 번씩 석회나 규산을 뿌리기도 한다. 그러나 땅을 갈지 않는 대신 뿌리가 1미터 이상 내려가는 보리나 6~7미터나 내린다는 호밀을 심으면 땅도 호흡하고 흙도 떼알구조로 바뀌면서 각종 미생물과 작은 동물들의 서식처로 바뀐다. 옥수수도 뿌리가 왕성해서 비독층의 염류나 과도한 질소질도 흡수·분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연농법의 두 번째 원칙은 무비닐(無vinyl)이다. 흔히 잡초를 방지하기 위해 비닐을 씌우지만 자연농법에서는 비닐을 사용하지 않고, 비닐하우스도 하지 않는다. 비닐의 토양오염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땅을 갈지 않아 무성해진 잡초는 어떻게 하나? 잡초는 그냥 같이 살게 한다. 제초제를 자꾸 치면 내성이 강해진 슈퍼잡초가 기승을 부린다. 대신 깻묵을 우려낸 액비를 뿌리든지 타감작용(다른 식물의 성장을 방해하는 작용)이 강한 솔잎이나 은행잎을 덮어주면 확실히 잡초가 덜 자란다.
자연농법의 세 번째 원칙은 무투입(無投入)이다. 외부의 이물질을 넣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외부 축사에서 나온 거름, 내연기관으로 움직이는 농기계, 농약과 비료, 이렇게 세 가지를 넣지 않는다. 제초제도 당연히 뿌리지 않는다. 귀농해서 농사지은 지 올해로 17년 되는데 단 한 번도 농약과 제초제, 그리고 비료를 내 손에 묻혀 본 적이 없다. 관리기를 가끔 쓰기도 했는데 벌써 4~5년째 전혀 건드리지 않는다. 일반 축사의 돼지똥, 소똥, 닭똥은 상당히 오염되어 있다. 사료 자체에 항생제나 성장 호르몬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외부 축사의 분뇨를 거름으로 쓰지 않는다. 아무것도 넣지 않으면 작물이 제대로 자랄까 걱정이 될 것이다. 처음에는 당연히 잘 안 자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땅심이 회복되면 점차 나아진다. 오히려 병도 안 걸린다. 무리하게 많은 열매를 맺지도 않고 대책 없이 몸뚱이를 키우지도 않는다.



건강한 토종종자와 정직한 농사짓기


자연농의 대가인 승주의 한원식 선생은 말한다. “땅에서 얼마나 가져갈 것인가를 생각하기보다 땅이 주는 것에 감사하라.” 땅을 더는 유린하고 착취해서는 안 된다. 자기 자신이 묻힐 때까지 무덤을 파고 있는 인간의 자해문명과 카지노판을 닮은 도박농사는 이제 막바지에 다다랐다.
자연농법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토종종자로 농사를 지어야 한다. 토종종자는 키도 작고 열매도 적게 열린다. 대신 땅에 거름을 넣지 않고 널찍널찍하게 심으면 병에 걸리지 않는다. 농장 환경을 최대한 자연과 같이 해주면 된다. 한 번도 못 따고 탄저병으로 다 뽑아버리는 개량고추보다 네 번, 다섯 번 따고 서리가 하얗게 내릴 때 끝물까지 따는 토종고추가 미덥다.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토종종자 나누기 모임을 한 적이 있었다. 전국에서 토종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크고 작은 종이봉투에 담아 온 씨앗들을 나누었다. 상추만 해도 20여 종이 있었고 당근, 배추, 오이, 벼, 밀 등도 수십 종류가 넘었다. 콩은 자그마치 30여 종이 더 되었다. 토종종자의 특징은 같은 작물의 종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이다. 종묘상에서 파는 씨앗이 종자회사 이름만 다르지 거의 똑같은 것과는 큰 차이다. 게다가 종자회사 씨앗은 농약으로 소독해서 색깔이 시퍼렇든지 새빨갛다. 토종종자는 전혀 그렇지 않다. 농약 소독을 하지 않는 것은 기본이고 못 생기고, 자그마하다. 늦게 자라기까지 한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토종종자를 심고 보존하기 위해 애쓰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튼튼하게 자라고 영양도 풍부하기 때문이다. 생명력이 강하고 사람과 자연에 조화롭다. 토종종자로 농사를 지으면 비료도, 농약도 안 해도 될 만치 건강하게 자란다. 반면, 인위적으로 개량된 씨앗들은 너무 허약하다 보니 비료나 거름을 많이 줘야 한다. 그러면 급성장하게 되고 농약을 쳐야 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인위적인 육종의 목표 자체가 급성장이다. 빨리 자라게 해서 빨리 수확해 내다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토종종자는 수천 년 동안 이 땅에서 농부의 땀방울에 의지하여 자연과 조화를 이뤄낸 결과물이다. 지역의 토양과 기후에 세대를 거듭하면서 적응해온 것이다. 프로젝트 지원금 수억 원으로 단 몇 년 만에 실험실에서 탄생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자연농법은 토종종자와 함께 가야 한다. 안타깝지만 생태계도 살리면서 힘 안 들이고 풍족하게 생산하는 그런 농법은 없다. 안타깝다고 할 수도 없다. 오히려 다행일 수 있다. 충돌하는 두 가지, 세 가지 욕망을 동시에 채우려는 것에서 모든 재앙이 생기니까. 농약이나 거름같이 좋고 편해보이는 것들을 더하고 채우려는 마음을 비우기, 토종종자와 같이 시간과 자연의 힘을 인정하기에서부터 자연농법은 시작한다.




↘ 전국귀농운동본부 공동대표이기도 한 전희식 님은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존엄성을 지켜드리자는 생각에 전라북도 장수군의 산골에 내려가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런 삶을 《똥꽃》, 《엄마하고 나하고》에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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