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호 2012년 가을 [특집] 마을, 마을사람들

[ 일본의 마을만들기 ]

시행착오가 자치의 힘을 키운다

강내영

마을만들기 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이나 행정기관에서는 일본의 마을만들기를 연구하고 벤치마킹하려 한다. 우선 지리적으로 가깝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우리나라의 행정제도가 일본의 영향을 받아 흡사하기 때문이다. 전쟁과 급격한 산업화로 마을 해체를 경험한 점도 비슷해 보인다. 일본의 마을만들기는 어떤 발자취를 남겼는지, 우리와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을 짚어 보자.

 

 

‘마을’이라는 공동자산 만들기

‘마을만들기(まちづくり마찌쯔꾸리)’라고 하면 어떤 게 연상되는가? 초창기에 일본의 마을만들기는 주로 하드웨어적인 부분을 일컬었다. 도로나 공공건물의 건설, 경관이나 도시계획을 포함한 하드웨어적인 만들기를 말했다. 또 한편으로는 마을활성화나 지역 브랜드의 창출 등의 소프트웨어적인 의미를 연상하기도 한다. 성공 사례로는 토쿠시마현 카미카츠쵸의 ‘이로도리’나 고치현 우마지무라의 ‘유자’가 있다. ‘이로도리’는 지역의 사회적기업으로, 초밥을 놓을 때 그릇에 까는 나뭇잎을 상품화해, 연간 3억 엔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우마지무라는 유자입욕제, 화과자, 목캔디 등 유자 가공식품을 개발해 지역경제를 살렸다.
일본에서 말하는 마을만들기는 개인이 자기실현을 하는 것을 넘어 지역사회가 힘을 합쳐 ‘마을’이라는 사회적 공통자산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수십 년에 걸쳐서 마을만들기를 진행하는 가운데 다양한 의미가 중첩되고 축적되어서 개념이 계속 발전하고 있다. 그래서 사실 고정된 명확한 정의가 존재할 수 없고, 정의하는 사 람에 따라 다양한 내용으로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와세다대 사토우 시게루 교수는 “마을만들기란 지역사회에 존재하는 자원을 기반으로 해서 다양한 주체가 연계·협력해, 주변의 거주환경을 점진적으로 개선하고 마을의 활력을 높이고 생활의 질 향상을 실현하는 일련의 지속적인 활동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1952년 잡지 《도시문제》에 시민에 의한 마을만들기란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인구가 대도시로 급격하게 집중하면서 열악한 거주환경과 공해 문제, 부족한 공공서비스로 주민들의 생활이 위협받으면서부터다. 마을만들기와 관련이 깊은 6가지의 움직임이 있다. 첫 번째는 공해추방운동으로, 고베시 마노지구가 대표적이다. 고베시 마노지구는 초창기 소규모 공장의 공해추방운동으로 시작해, 이후에 녹화운동과 노인급식과 입욕 서비스 그리고 마을만들기 운동으로 발전했다. 지역의 풀뿌리 자치조직들이 자발적으로 협의회를 만들어 추진했기 때문에 풀뿌리운동의 대표적 사례로도 꼽힌다. 두 번째는 커뮤니티 만들기 운동으로, 고베시 마루야마지구를 원점으로 꼽는다. 일본정부에서는 1970년대 초등학교를 단위로 커뮤니티 지구를 설정하고 여기에 커뮤니티센터를 건설했다. 세 번째는 1960~70년대에 참여와 분권을 내세우며 나타난 혁신지자체 그리고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지역자치의 사례이다. 나라시노시 지역회의가 대표적이다.
네 번째는 농촌지역의 마을 부흥 또는 활성화 운동이다. 지역경제 활성화로 대변될 수 있는 이 운동의 대표 사례로는 오이타현의 일촌일품 운동이 있다. 마을마다, 고을마다 특산품을 하나씩 만들어 지역의 경제적 자립과 문화 발전을 꾀하는 일촌일품 운동은 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하는 지산지소 운동이나 생태운동으로 발전했다. 다섯 번째는 주거환경의 개선·정비 사업이다. 세타가야구의 타이시도지구가 대표적이다. 현재도 지진, 화재 등을 방재하는 차원에서 접근이 활발하다. 마지막은 역사적인 시가지 보존 운동이다. 1962년의 프랑스의 역사적 시가지 보존법과 영국의 시빅어메니티액트의 영향을 받았다. 1966년의 고도(古都)보존법과 1975년의 문화재보호법에 근거한 ‘중요 전통적 건조물 보존 지구’가 대표적이다. 1974년에는 일본 전역에서 전문가와 시민이 모여 전국 시가지 보존연맹을 결성했다. 시가지 보존운동은 환경학습과 관광사업으로 연결되는데 대표적인 지역은 카와고에와 나가하마다.

 

 

지자체·기업·주민·전문가가 종합적으로 연계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흔히 시장의 실패와 정부의 실패를 이야기한다. 실패의 부담은 고스란히 지역으로 왔다. 일본의 마을만들기에는 지역사회의 주민, 행정, 기업 등 여러 주체가 각각 역할을 맡고 있다. 먼저 행정에서는 지역 간 경쟁이 격화되고, 지역 재정이 파탄했기 때문에 자립화와 차별화를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해 내야 한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행정이 주도하고 보조적으로 주민을 참여시키면서 이를 ‘참여형 마을만들기’라 부르기도 한다. 이와 구별하기 위해 기획 단계부터 주민이 결합하는 ‘참획 마을만들기’도 있다. 주민들이 참여하게 하려면 소통이 중요하다. 특히 중요한 정보들은 행정에서 쥐고 있을 가능성이 큰데 이를 지역주민들과 공유해야 마땅하다. 주민들이 참여하고 논의하는 장을 수시로 마련하고, 주민참여기본조례와 같은 제도적 보장이 필요하다.
주민 쪽에서는 인간적인 삶을 보장받기 위해 상호부조 등으로 대변되는 공동체가 중요하게 떠오르고 있다. 또한, 행정에 대한 불신 때문에 자치적인 공동체(커뮤티티)를 만들어 직접 참여하려는 욕구도 보인다. 하지만 커뮤니티에서 마을만들기 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치기 힘들거나, 참여하는 주민들이 한정되고 여러 사업에 겹치는 문제가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지역 구성원들이 참여하도록 상시적으로 주민교육 강좌 둥을 열고. 지역의 요구를 지속적으로 모니터하고 관계망을 구축해야 한다.
기업 쪽에서도 세계화와 저성장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형태의 커뮤니티 비즈니스나 사회적기업 등이 생기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새로운 경영관, 노동관 등을 만들어 낸다.
지역에는 공동체 복원과 창조, 환경보전과 재활용, 고령화대책, 지역복지 등의 다양한 과제들이 있다. 현재 계층에 따라 분절적으로 이뤄지는 활동들을 지역이라는 캔버스에 놓고 종합적인 관점으로 재편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최근에는 지역복지와 마을만들기 운동이 결합되고 있다. 생활 기반 환경을 정비하는 문제와 일상적인 돌봄을 묶어서, 관련 조직들이 연계해 종합 복지네트워크를 만들기도 한다. 주민과 지자체, 기업, 전문가, 대학 등 지역의 다양한 주체들이 종합적인 관점으로 동시에 지역을 바라보면서 마을만들기를 추진해 나가는 ‘로컬 거버넌스 시스템’도 있다.
특히, 1998년 제정된 특정비영리활동촉진법(NPO법)은 지역사회 재편에 큰 영향을 끼쳤다. 활동조직들이 서로 연계하고 공존하게 된 것이다. 00포럼, 00공방 등으로 불리는 아레나(arena: 공연장)형의 마을만들기가 대표적이다. 가와구치 마을만들기 포럼이나 치치부 마을만들기 공방 등이 좋은 예다. 도시화가 너무 급하게 진행되어, 문화나 전통을 돌볼 여유도 없이 마을의 개성을 잃어버렸고, 유무형의 자산이 손실되었다. 마을만들기는 지역의 고유한 문화나 역사와 전통을 들여다보면서 차근차근 해나가야 할 것이다.

 

스스로 지역 비전을 세워야


한국과 일본의 마을만들기의 차이점은 ‘시행착오를 축적할 시간과 경험’이다. 일본의 경우에는 주민들이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답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있었다면 우리는 아직 그런 경험이 부족하다. 한국의 마을운동가나 공무원이 열심히 일본의 사례를 벤치마킹하는 것이 오히려 주민들이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을 기회를 미리 막아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주민들은 조금만 상황이 바뀌어도 당황한다. 무엇보다 주민들이 스스로 경험하고 대안을 내놓도록 지켜보고 격려하고 응원하면 좋겠다. 그리고 지역의 비전을 함께 그리는 작업을 제일 중요한 과제로 상정했으면 한다. 행정에서는 전문가가 그린 지역의 마스터플랜에 주민을 참여시키는 방식으로 ‘주민참여형 마을만들기’를 실현하려고 한다. 그러나 조금 더디 가더라도 최대한 주민들이 지역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 함께 나아가는 방식으로 마을만들기를 진행해야 한다. 그래야만 나의 꿈이 동시에 우리의 꿈이 되고 이것이 지속적인 마을만들기로 이어지지 않을까?

 

↘ 강내영 님은 ‘모심과살림연구소’ 초빙연구원입니다. 지역에서 협동하고자 하는 이를 연결하고 서로 관계를 맺도록 돕는 일을 통해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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