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호 2012년 가을 [특집] 마을, 마을사람들

[ 농촌마을의 행정 : 진안군 마을만들기 10년 ]

마을공동체를 되살리는 기초자치단체시스템

구자인

도시나 농촌이나 ‘마을만들기’는 행정의 큰 화두이다. 하지만 이미 지역사회에서는 마을과 마을공동체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며 실천해왔다. 10년이 넘도록 ‘마을만들기’를 추진해오며 마을사람들의 요구와 참여를 바탕으로 되살아난 전라북도 진안군의 경험을 들어보자.

 

도시가 꽃이라면 농촌은 뿌리다

‘뿌리 깊은 나무가 꽃 좋고 열매 많다’는 《용비어천가》 2장의 말처럼 농촌이 살아나야 한다. 현대 도시의 많은 문제도 결국 농촌을 파괴한 결과 때문이다. 농업과 농촌이 풍요롭지 못한 나라는 오래갈 수 없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외형적 경제성장의 모습은 결국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도시의 화려한 불빛 한 점도 농촌의 희생 위에 있을 뿐이다. 누가, 어떻게 농촌을 살릴 것인가?
최근 들어 마을과 공동체에 관심이 다시 두드러지게 높아지고 있다. 귀농귀촌을 꿈꾸는 사람, 그리고 실행까지 하는 사람도 많이 늘고 있다. 사회적 경제, 마을기업, 협동조합에 대한 학습모임도 부쩍 늘었다. 앞만 보고 빠른 속도감에 익숙한 나라에서 매우 고무적인 경향이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질을 생각하기 시작하고 대안적인 지역사회를 꿈꾼다는 것은 정말 행복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대개 이런 경향은 행정사업과 정치의 영향이고 풀뿌리 마을 단위의 자발적 움직임이라 보기 힘들다. 시민사회단체는 열심히 노력하지만 뒤따라가거나 뒤치다꺼리하는 형국이다. 철학은 빈곤하고 행정사업은 계속 만들어진다. 올 연말의 대선이 끝난 뒤에는 ‘또 어떤 행정사업이 생길까’ 걱정될 정도다. 좋은 경험이 축적되지 못하고 시행착오가 답을 얻지 못하고 계속 반복되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전라북도 진안군은 지난 10년 이상 체계적으로 마을만들기 활동을 추진하면서 자치단체 단위의 시스템을 구축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단체장이 바뀌어도, 활동을 주도했던 계약직 공무원이 바뀌어도 일관되게 노력한 성과들이다.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도 내부적으로 많지만 외부 영향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자랑한다. 필자 본인이 직접 관여한 활동이라 소개하기 쑥스러운 점도 있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을 기초로 몇 가지 제안하고자 한다.

 


 

 

전국 최초의 시도가 많은 진안군

전라북도 진안군은 면적이 서울시의 1.3배나 되지만 상주인구는 20,446명에 불과하고, 고령화율은 36.2%(2010년 인구센서스)나 된다. 마이산과 섬진강 발원지, 용담호가 있고, 특산물로 인삼과 홍삼을 자랑한다. 20세기의 개발시대를 빗겨가 깨끗한 자연환경과 소박한 전통문화가 남았지만 주민들의 소외감과 박탈감은 아주 높다.
하지만 2001년부터 전국 최초로 주민이 주도하는 아래로부터의 마을만들기 사업이 시작되고 주민들의 학습활동과 행정의 체계적인 지원이 이어지면서 마을마다 활기가 조금씩 되돌아오고 있다. 또 2006년부터 적극적인 귀농귀촌 정책을 결합하기 시작하여 최근에는 인구감소율이 줄고 합계출산율은 전국 자치단체 2년 연속 1위를 달리고 있다.
진안군 마을만들기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 마을만들기 활동에 앞서 무엇보다 먼저 계약직 공무원을 채용하면서 행정이 주도한 위로부터의 농촌개발 방식을 반성하는 과정이 있었다. 그러면서 농촌과 마을을 살리기 위해 강력한 학습활동이 장려되고, 마을간사와 마을조사단, 마을축제, 귀농귀촌, 농촌창업 등 전국 최초의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졌다. 2007년 2월에는 전국 농촌 최초로 마을만들기담당을 신설하고 행정협력체계와 민관협력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민간에서도 마을만들기지구협의회를 중심으로 뿌리협회(귀농귀촌), 마을축제조직위, 진안고원길, 한일교류협회 등 마을 활동을 지원하는 중간지원조직이 지난 5년 동안 10개 이상 설립되었다. 행정과 민간 영역의 이런 성과들을 모두 모아 2010년 5월에는 마을만들기 기본조례도 제정되었다.

2011년 1월에는 지난 10년의 마을만들기 성과를 모아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였다. 지금까지는 ‘더디 가도 제대로 가는 길’을 슬로건으로 ‘마을 주민들이 지치지 않고 갈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데 주력하였다. 이에 반해 새로운 10년은 지금까지의 성과를 바탕으로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성과 만들기’로 주민들이 더욱 분발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잡았다.
그러한 방향에서 새로운 10년의 새로운 핵심과제로 두 가지를 채택하였다. 먼저, 로컬푸드사업으로 안정되고 부가가치가 높은 유통망을 확보하여 경제 소득을 마을로 환원하고 소농·가족농을 보호하면서 지속가능한 농촌 마을을 만들자는 것이다. 두 번째로 마을만들기지원센터를 설립하여 다양한 활동의 핵심 거점공간을 확보하고 전문성과 안정성, 지속성이 보장되는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하였다. 이 두 가지 핵심사업은 ‘마을만들기의 산업화’이며, 또 ‘지속가능한 마을 네트워크 구축’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로컬푸드사업단은 2008년부터 3년간 93회의 금요장터를 열고, 지난해 7월에 주민 100명이 1억 원을 출자한 농업회사법인을 설립했다. 현재 친환경학교급식과 꾸러미배달사업을 준비하며, 내년에는 직매장, 로컬푸드식당, 반찬가게, 전자상거래, 생협 등으로 사업영역을 조금씩 확대할 것이다.
마을만들기지원센터 설립도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 진안군의 활동 경험이 온전하게 전달되고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도록 전국을 염두에 둔 마을만들기 연수센터 기능까지 포함하고 있다. 2011년 5월부터 시작한 마을만들기대학 강좌를 중심으로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20회 이상 학습모임을 가졌다. 예산도 확보되어 옛 농업기술센터를 리모델링하여 2012년 10월중에는 개소할 예정이다.

 

 

개별사업보다 마을-지역, 주민-행정 시스템이 먼저

진안군 마을만들기의 역사는 종합적인 시스템 구축을 통해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려 한다는 점에서 다른 지역과 차이가 크다. 개별 사례에 집중하지 않고 마을과 지역, 주민과 행정의 관계에 균형 있게 접근해왔다. 이런 오랜 경험을 다른 자치단체가 단시간에 모방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을 구축해야만 마을 리더의 희생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고 정치적 외풍도 덜 타며 궁극적으로 마을공동체의 복원도 조금씩 희망을 찾을 수 있다. 도시를 포함하여 모든 지역이 심도 깊게 꼭 검토하기를 바라는 것으로 다음 몇 가지를 제안한다.
먼저, 행정기관에서 마을만들기 전담팀을 신설하고 계약직 공무원 채용, 순환보직제 제한, 관련 부서 협조회의 개최 등을 통해 전문성을 축적하면서 민간의 신뢰감을 얻어야 한다. 마을 역량을 탓하며 주민 교육만을 중시할 게 아니라 행정 시스템을 정비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다. 가장 간단한 협력도 잘 안 되는 것이 행정이기 때문이다.
둘째, 행정과 주민 사이를 이어주고 부족한 전문성을 지원할 수 있는 중간지원조직을 많이 설립해야 한다. 진안군은 이를 ‘농촌형 인큐베이팅’ 전략이라 부르며 계약직 공무원을 매개로 다양한 민간조직이 설립될 수 있는 기반을 지원하였다. 지역밀착형 전문조직이 많아야 마을만들기의 자치단체 시스템도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
셋째, 살기 좋은 마을은 경제 영역만 좋아진다고 되는 게 아니다. 민간 역량을 축적하면서 마을사람들의 삶 모든 영역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행정사업의 ‘꼬리표’에 얽매이지 않고 주민 스스로 실천하고 책임지는 문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진안군 마을만들기는 지난 10년의 실천 과정에서 ‘더디지만 제대로 가는 길’을 중요한 슬로건으로 제시해왔다. 지역과 마을공동체의 발전이란 사실 ‘지름길’이 없다.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려면 마을과 마을, 행정과 민간, 마을과 단체 등이 협력하고 적절한 경쟁의 시스템을 갖추며 순차적으로 발전시켜 가야 할 뿐이다. 진안군의 경험은 이런 점을 잘 보여준다.
마을만들기를 실천한다는 것은 20세기에 잃어버린 보물을 다시 찾는 과정이고, 또 지방자치의 풀뿌리 기반을 닦고 국토 균형 발전의 기반을 다지며 다가올 통일 시대의 든든한 진지를 구축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처럼 의미 깊지만 갈 길도 멀거니와 해야 할 것이 참으로 많다. 무엇보다 사람에 투자하고 풀뿌리 마을 기반 강화에 투자하는 정책이 지역사회가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가지는 전제 조건이다. 그래서 풀뿌리 마을과 사람을 중시하는 마을만들기는 큰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
우리 행정영역에서 가장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은 핵심적인 선진 사례를 많이 발굴하고 육성하면서 지자체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개별 마을의 사례만으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제도적인 기반을 갖추고 밀려오는 외부 압력에도 대응할 수 있는 지자체 시스템이 필요하다. 시군구 지자체는 행정의 정책결정이 이루어지는 가장 기본단위이고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가장 가까운 지방정부인 셈이다. 바로 이점이 지자체 단위의 시스템 구축이 중요한 이유이다.

 

↘ 구자인 님은 전라북도 진안군 마을만들기지원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생태학과 도시환경문제, 도농관계 등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다 일본 유학을 거쳐 전북 진안군의 계약직 공무원으로 8년째 마을만들기 정책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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