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호 2012년 가을 [특집] 마을, 마을사람들

[ 도시에서 농촌으로 간 예술가들 : 예술과마을네트워크 ]

'크고 빠름'을 버리고 열린 문화예술의 눈으로

박명학

1980년대를 지나면서 도시의 삶에 지친 예술가들이 시골로 고향으로 터전을 옮겨 갔다. 농촌의 마을을 지키는 예술가들을 잇는 ‘예술과마을네트워크’에서는 충청북도 제천에 ‘마을 이야기 학교’를 열었다. 문화예술로 마을의 기억과 이야기를 찾고 비어가는 마을을 채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예술과 마을은 모두 삶의 근원

오늘날 도시는 단순히 물리적 공간의 의미를 넘어선다. 도시의 일상을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입고 먹고 잠자는 인간 생존의 기본 욕구는 물론 우리를 둘러싼 관계망이 도시의 원리로 짜이고 작동한다는 사실을 눈치챈다. 도시의 원리를 한두 마디로 규명하기 쉽지 않지만, 모든 것을 산산이 쪼개어 나눠 놓고는 이를 다시 애써 이어 맞추는 일인 듯싶다. 애당초 그렇게까지 쪼개고 나누지 않았던들, 힘들게 이어 맞추려 하지 않아도 될 법한데, 굳이 그리함을 보면 무슨 깊은 속내가 있나보다. 어찌됐든 그리해야 개발과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며 호기롭게 외치는 이들도 있지만, 도시의 원리는 이제 효용성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도처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도시에 사는 예술가들이 마을로 갔다. ‘예술이 원래 삶의 근원에서 나왔듯이 마을도 삶의 근원으로서 최소 단위이다’라는 생각을 지닌 예술가들이 2009년 2월 ‘예술과마을네트워크(예마네)’를 만들었다. 먼저 예술가들이 살고 있는 농촌마을을 답사하면서 예술과 마을이 상생하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이후 미술운동을 하던 많은 화가들이 시골로 옮겨가거나 고향으로 돌아가 자기가 사는 마을에서 활동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마을탐방은 홍일선 시인의 여주 점동면 내담골, 이철수 판화가의 제천 백운면 평동리, 이은홍·신혜원 작가의 제천 덕산면 신현리, 류준화 작가의 봉화, 김봉준·김기봉 작가의 원주, 이정석·이진경 작가의 홍천 등으로 이어졌다.
도시의 원리가 한계에 다다랐다고 해서 우리 농촌마을이 새로운 신천지라고 단박에 얘기할 순 없다. 지금 농촌에서도 도시의 원리가 만만치 않은 작동 기재로 움직임을 부인할 수 없고, 예술가들 또한 거기서 결코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농촌으로 번지는 도시의 원리는 규모와 속도가 심상치 않기에 이러다간 마을은 그저 박제된 유물로 남거나, 도시와 농촌의 구분이 무의미하게 될지도 모르겠단 생각마저 들곤 한다. 그래도 농촌에는 아직 도시와는 다른 기억의 흔적들이 꽤 남아있다.
만일 우리가 마을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만 있다면, 쪼개지고 나뉘지 않은, 그 자체로 온전하게 이어진 삶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비록 크고 빠르진 않지만, 자급과 순환, 공생이라는 미래지향적이고 진취적인 삶의 역동성을 그려내는 곳이다. 예마네가 그려내는 마을이란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 일과 놀이 등이 쪼개지고 나뉘지 않은 통합의 마을이자, 진보하는 삶의 가치를 지지하는 마을이다. 거기서 문화와 예술 역시 삶과 일상에서 따로 떨어져 나온 무엇이 아니라 한 몸으로 이어져 있음은 물론이요 마을의 상상력의 전위가 된다.

 

기억과 이야기를 되살려야 마을이 산다

2010년 6월 14일 예마네에서는 충북 제천시 수산면 대전리 마을의 작은 폐교에 ‘마을 이야기 학교’를 열었다. 예술가들이 마을에서 살며 마을과 공동체, 문화예술의 관계를 더 깊이 연구하고 실천하며 예술작업도 하기 위해서다.
예마네에서는 먼저 마을공동체의 어제, 오늘, 내일의 기억과 이야기를 찾고, 그것을 잇는 끈을 엮었다. 사라져가는 마을, 비어있는 마을은 단지 사람과 자원의 문제만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기억이 비어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사람과 자원은 언제든 다시 돌아오고 채워진다지만 한번 잊어버린 기억은 다시 찾기 어렵다. 마을의 기억 찾기는 ‘마을조사(Community Research)’로 실제 모습을 드러내며, 이를 통해 마을공동체의 언어를 안팎으로 읽어내는 독해력을 쌓아가게 되었다. 마을의 기억과 이야기는 더 이상 화석이 아니라 삶의 빈자리를 채우며 여전히 살아있는 오늘의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막상 마을조사의 귀동냥을 다닌답시고 마을 이곳저곳을 기웃거렸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외지에서 찾아든 근본도 모르는 낯선 이에게 마을사람들이 선뜻 입을 열지 않았다. 마을 대소사에 얼굴을 들이밀며 서로 탐색이 어지간히 끝나고 가까워지면서야 마을사람들은 아주 조금씩, 아주 천천히 속내의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농사일 등 마을공동체와 일상의 생활문화를 함께하는 예술가의 현장 활동으로 이루어지는 마을조사는 예마네와 마을공동체의 소통 채널이 되기도 하지만, 예술가의 상상력과 마을의 기억이 조우하는 장이기도 하다. 마을조사의 성과는 마을잡지, 마을기획전, 마을영화제, 마을학교 등 마을공동체의 생활문화 콘텐츠로 확장되었고, 모든 과정과 성과는 ‘마을 이야기 박물관’에 보존되어 마을공동체의 문화 자원으로 축적·재생되면서 선순환하게 된다. 아울러 이를 토대로 도시와 마을이 서로 품고 있는 기억을 나누고 배우며 눈높이에서 마주보는 수평적 도농교류의 모델을 엮어낼 것으로 기대한다.

 

조급함을 버리고 ‘문화예술로 마을만들기’

대전리는 산골 마을의 한적한 풍광과 마을길 어디서건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따뜻함, 폐교에 자리잡은 예술가 식구들을 챙겨주는 후한 인심을 가졌다. 또한 공동화와 고령화 등 다른 농촌마을이 안고 있는 어려움도 그대로 갖고 있는 마을이다.
3년 전 예마네가 마을로 들어올 때와 같은 질문들을 안팎에서 여전히 듣고 있다. 왜, 무엇을 하러 들어갔는가? 지금 예마네가 하고자 하는 일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 명쾌한 답을 찾는 일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예술과 마을을 잇고 마을을 되살리려는 예마네의 3년을 돌아보면, 먼저 ‘크고 빠름’에 대한 조급증이 자리 잡고 있었음을 숨길 수 없다. 물론 농촌의 마을에선 언제나 작고 느리게 있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래서도 안 되고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크고 빠름을 쫓다가 종종 마을공동체와 발맞춤이 벗어나면, 어떠한 형태로든 제도적인 지배구조의 틀을 강요하게 되고 종국에는 개인과 공동체의 소외가 따르게 된다. 이점을 경계해야 한다. 그런 현상은 마을공동체에서 수요와 욕구가 분화하고 분열하는 내생변수, 또한 최근 전국적으로 벌어지는 ‘○○마을 만들기’ 식의 정책사업으로 대변되는 외생변수 등이 상호작용하면서 더욱 심해지기도 한다. 그렇게 되고나면, 주민자치나 내발성, 거버넌스 등은 요원해지고, 뭔가 눈에 보이는 규모와 속도를 이뤄내려는 인위적이고 목표지향적 과제를 설정하게 되고 마을공동체와 엇갈림이 점점 더 깊어지곤 한다.
또한 경계해야 할 점은 문화예술에 대해 닫힌 시선이다. 이런 시선이 여러 형태로 보인다. 흔히 예술과 마을의 짝 맺음을 어색해 하며 서로 경원하고 낯설어하곤 한다. 그런가 하면 그저 서로를 치장시켜주는 분장사로 여기거나, 마치 문화예술이 무슨 전지전능한 마이더스의 손이라도 되듯이 단기필마로 마을의 모든 것을 떠안으려 한다. ‘문화예술로 마을 만들기’란 닫힌 문화예술로는 도달할 수 없는 ‘문화예술의 새로운 지평을 탐색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거기서 문화예술은 ‘따로 나 홀로’가 아니라 개인과 공동체의 삶과 일상을 향해 항상 열려 있어야 하며, 마을공동체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스펙트럼을 담아서 드러내는 총화여야 한다. 이러한 새로운 지평의 문화예술은 형해한 문화예술도 아니지만, 문화예술의 도구화를 불러서도 안 된다. 어찌 보면 모든 것에 열리고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이 문화예술의 힘이기도 하다.

 

예마네 마을 이야기 학교

마을잡지 《뒤싯골 지나 방아다리 건너》  뒤싯골과 방아다리는 대전리에 있는 지명. 대전리 이장과 부녀회장 등 마을사람들이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고 노인회와 면사무소 등에서도 힘을 합쳤다. 마을의 유래와 특산물 이야기, 마을의 터줏대감 인터뷰 등 마을의 기억과 이야기를 담는다. 현재까지 총 3호를 발간했다.


마을학교 농한기인 매년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미술·한글·영어·서예·전각 등 예술가들이 마을사람들을 대상으로 강좌를 연다. 40~60대의 여성들이 난생 처음으로 예술가가 되어 자화상 등을 그리며 새로운 재능을 발휘하곤 한다.


마을기획전 마을사람들의 옛 사진, 마을 어린이와 청소년 워크숍 작품, 마을 문예교실 졸업작품 등을 전시한다. 올해 3~4월 두 번째 마을기획전 ‘생전처음’을 열었다.


마을영화제 매년 8월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열리는 때에 맞춰 마을사람들과 함께하는 작은영화제 ‘한밭들 마을영화제’를 연다. 올해는 ‘자유부인’(1956), ‘사랑방손님과 어머니’(1861), ‘청춘쌍곡선’(1956) 등을 상영했다.


마을 이야기 박물관 마을 이야기 학교의 교실 한 칸을 내어, 마을조사의 성과와 마을 공동체의 각종 생활문화 자원의 아카이빙을 위한 ‘마을 이야기 박물관’을 조성하여 운영하고 있다.


오리보트 프로젝트 시민자치문화센터와 협력하여 자급적 삶을 지향하는 젊은 도시 여성들의 모임인 오리보트 프로젝트를 연중 운영한다. 격주로 마을 이야기 학교에 체류하면서, 마을과 학교의 농사일과 마을살이를 함께하며 마을 문화 자원의 학습교류 활동을 엮어내고 있다.

 

↘ 박명학 님은 예술과마을 네트워크 상임이사입니다. 문화예술행정 전문가로서,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사무처장을 역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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