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호 2012년 가을 [특집] 마을, 마을사람들

[ 도시의 마을과 행정 : '뉴타운'을 넘어 '마을공동체'로 ]

서울시 마을만들기, 성급한 결과를 경계하라

이주원

‘뉴타운사업’의 열풍이 지나간 뒤, 서울시에서는 ‘마을만들기’ 사업을 새로이 내놓았다. 지역사회에서 필요한 부분을 외면했던 뉴타운사업의 실패를 반성하고 거대도시 서울에서 ‘마을’ 본연의 모습을 되살릴 수 있을까?

 

전쟁의 폐허에서 응급도시로 압축성장한 서울

서울이라는 거대도시에서 ‘마을’이 지니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 물음은 곧 거대도시 서울에서 마을공동체 사업이 가능한가라는 질문과 이어진다. 이 물음에 답변하기 전에 먼저 서울이라는 도시의 성장사를 대략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서울은 한국전쟁으로 철저히 파괴된 도시였다. 서울에서 19만 동의 일반주택 가운데 34,742동이 완전 소실되거나 파괴되었으며, 반쯤 소실되거나 파괴된 것이 20,340동에 달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을 재건하는 과정은 정상적일 수가 없었다. 서울은 긴급히 도시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 압축적인 응급형 도시로 건설되기 시작한다. 더구나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해마다 현재 경주시 인구만큼씩 인구가 늘어나 만성적인 주택난을 겪는다. 한때 판자촌에 거주하는 서울시민의 수가 13%까지 육박했다는 기록이 이런 만성적인 주택난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은 장기적으로 도시계획을 세울 안목도 여유도 없이 압축성장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압축성장의 결과 서울은 인구 천만의 세계적인 대도시로 성장했다. 그러나 압축성장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서울과 수도권으로 집중과 과밀이 일어나 비수도권과 격차가 심화됐으며, 서울 자체도 강남과 강북으로 도시가 양분되었다. 또한 아파트 위주의 개성 없고 단조로운 도시환경과 경관을 만들었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도시가 되어버렸다.
그 많던 마을은 어디로 갔을까? 전쟁으로 서울이 철저하게 파괴된 뒤 그나마 새롭게 형성되기 시작했던 마을이 철거재개발로 깨져나간 것은 ‘부동산 불패의 신앙’ 때문이었다. 정부가 조장하고 투기세력이 휩쓸고 다니면서 ‘마을’은 하나 둘씩 사라져 갔다. 마을의 소멸은 장소성과 역사성이 소멸된다는 뜻이다. 또한 마을의 소멸은 획일화된 도시경관으로 탈바꿈한다는 의미여서 도시의 주택이나 건축물의 생태적 다양성조차 멸종시킨다. 물론 살고 있던 마을사람들을 해체시켜 이주하게끔 하기 때문에 공동체(커뮤니티)의 소멸도 폭력적으로 이루어진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서울에서 그 많던 마을들이 이렇게 사라졌다.

 

소수 개발업자들만 이익을 챙긴 문제투성이 뉴타운사업

서울시민들에게 ‘뉴타운사업’은 꿈의 사업이자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그러나 한때였다. 부동산가격 안정과 도심지 주거환경개선이라는 목적을 내세운 뉴타운사업은 오래지 않아 본래의 목적과 다른 문제점들이 속속 드러났다. 김황식 국무총리도 인정했듯이 이미 실패한 정책으로 판명됐다.
2008년 8월, 리만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전 세계는 경제위기로 떨어진다. 그동안 과잉유동성을 기반으로 턱도 없이 부풀어 오른 부동산 거품이 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 영국, 아일랜드, 스페인, 호주, 아이슬랜드 등 그동안 경제가 잘 나간다고 자랑하면서 집값이 올랐던 나라들에서 부동산 가격이 폭락했다. 한국에서도 미분양 주택이 쌓이고 건설경기가 급락한다. 황금알을 낳을 거라고 믿었던 뉴타운사업이 계륵(鷄肋)이 되고 말았다.
뉴타운사업의 가장 큰 문제는 오세훈 시장 재직 당시 ‘서울시 주거환경개선정책 자문위원회’가 밝혔듯이 원주민의 재입주율이 20%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또한 주거약자인 세입자들이 훨씬 많은데도 공공임대주택의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다. 서울시에는 1~2인 가구가 40% 이상인데도 80%를 중대형 주택으로 건설하기 때문에 사업이 시행되면 인근의 전세가격이 폭등하여 사회갈등의 주범이 된다. 이런 문제는 부동산경기의 호·불황 때문이 아니라, 애초 민간기업의 수익성 위주 프로그램으로 사업성이 없는 지역들을 개발하려 한 데 따른 필연적인 결과일 뿐이다.
현행 뉴타운사업은 소수의 개발업자들은 대박을 얻고, 다수의 주민들은 쪽박을 차는 1박2일식 복불복 게임일 뿐이다. 뉴타운사업 열풍의 피해는 고스란히 영세가옥주와 저소득 세입자들의 몫으로 돌아온다. 주민들은 개발의 가장 부정적인 측면인 철거, 도시 외곽으로 이주, 보금자리 상실 등을 당할 수밖에 없다.

 

 

서울시 마을공동체 사업은 마을의 재발견

압축성장의 응급도시였던 서울은 2000년대를 맞이하면서 재구조화의 도전에 직면한다. 시민들이 이제 서울이 정상도시가 되기를 요구했다. 시민들의 욕구가 양적 성장에서 삶의 질로 전환을 요구하는 시점이었다. 이때부터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게 폭력적이던 도시계획시설인 육교와 고가도로가 철거되고, 녹지 공원들이 늘어나는 등 삶의 질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도시계획이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비록 뉴타운사업이라는 광풍에 휩쓸리기는 했지만, 도시기능의 정상화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는 지속적으로 서울시 행정에 압력을 행사한다. 그리하여 마을공동체 사업이 서울시의 핵심 정책 사업으로 전면에 등장했다. 서울시 도시행정은 도시정상화에 대한 시민들의 압력에 조응하여 ‘마을을 재발견’하는 마을공동체 정책을 비전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 중심에 바로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 있다. 박원순 시장은 변화한 사회·경제 환경과 도시공간을 조화시키는 도시재생 및 재구조화(restructuring) 과제를 장기적인 안목으로 풀어가야 하는 시대적 과제에 직면했다. 앞에 놓인 과제는 만만치 않다. 오세훈 전 시장 때부터 시민들이 시대적 과제로 요구했던 뉴타운·재개발 문제를 해결할 출구전략을 내놓아야 한다. 뉴타운 출구전략은 개발이익에 종속된 도시인 서울을 공공성이 회복되는 정상도시로 만드는 중요한 과제이다.
뉴타운, 한강르네상스 등 전임 시장들의 개발정책 때문에 잊혔던 ‘마을’이 박원순 시장의 취임 이래 다시 조명 받고 있다. ‘마을’이라는 시민들의 생활공간이 시정의 중심에 놓였다는 것은 공공성을 회복하려는 패러다임의 대전환으로 보인다. 그러나 마을만들기 사업이 제2의 새마을운동이 되지 않으려면 마을사람들의 창조적인 자발성이 발현되도록 행정은 지원하고 마을사람들이 앞장서야 한다. 만약 마을만들기 사업에서 서울시가 성급하게 성과를 내려고 한다면, 마을사람들의 자발성은 급격히 위축되고 행정 주도의 사업으로 전락할 것이다. 서울시는 명심해야 한다. 마을공동체를 만드는 일은 마을사람들과 지역활동가, 전문가에게 전적으로 맡겨두고, 행정은 뒤에서 도움이 될 만한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서 지원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행정이 시어머니가 되어서 시시콜콜하게 개입한다면 마을사람들의 자발성을 방해하고 사업을 왜곡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마을을 회복하는 과정에는 정답이 없다

마을만들기에 정답은 없다. 마을마다 각각의 다른 환경과 여건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마을마다 입지와 환경, 인구구성, 경제수준, 공동체 문화 등이 서로 다르다. 따라서 마을을 복원하고 되살리려면 마을이 처해 있는 특성에 맞게 사람과 재정과 행정이 어우러져야 한다.
하지만 크게 나눠 보면 자원을 집중돼야 하는 ‘집중형 마을’과 자원의 집중이 필요 없는 ‘일반형 마을’로 구분된다. 집중형 마을은 노후된 지역이기 때문에 기반시설, 편의시설, 주택개량, 공동체프로그램, 주민자치역량 강화, 마을의 사회경제적 주체 육성 등 공공자원을 포괄한 지역사회의 자원이 집중적으로 투입돼야 하는 곳이다. 이에 비해 일반형 마을은 경제적 자생력이 있고 기반시설과 편의시설 등이 양호한 곳으로 마을사람들의 자치역량을 강화시켜 자발적인 마을을 되살려 가면 된다.
‘마을’은 공동체(커뮤니티)가 형성될 수 있는 장소를 말한다. ‘만들기’는 사람 사이의 소통을 이어주는 것을 뜻한다. 우리에게 이웃이 사라진 지는 오래 되었다. 앞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 원래부터 그렇지는 않았다. 정이 많았다. 상부상조의 미덕이 있었다. 마을에는 어른이 있었고, 질서가 있었다. 사람들의 관계망이 살아 있는 마을을 회복하는 것이 ‘마을만들기’의 목적임을 공유해야만 한다.

 

 

↘ 이주원 님은 사회적기업 (주)두꺼비하우징 대표이사입니다. 노후한 주택을 고치고 관리하여 따뜻한 집, 골목마다 웃음과 행복이 넘치는 정감 있는 마을을 만들고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지역사회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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