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호 2012년 가을 [특집] 마을, 마을사람들

[ 들어가는 글 : 우리가 꿈꾸는 마을 ]

마을에는 ‘마을사람들’이 산다

이호

우리가 생각하는 마을은 어떤 모습일까? 전통적인 공동체의 의미가 현대사회의 변화에 따라 바뀌어가고 있는 지금, 마을은 여전히 ‘지역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의 관계망이다. 그렇다면 사라졌던 마을을 다시 만든다는 것은 어떤 ‘마을공동체’를 만드느냐의 문제이다.

‘마을’은 일정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관계망이다

마을이란 무엇인가? ‘마을’의 어원에 정설은 없는 듯하다. 마을의 뜻을 찾아보면,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주로 시골에서, 여러 집이 모여 사는 곳’ 또는 ‘이웃에 놀러다니는 일’이라고 나와 있다. 《위키백과》에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말 또는 마실이라고 한다’고 나와 있다. 지금도 마을의 이웃에게 놀러 가는 것을 ‘마실 다닌다’고 한다. 또한, 예전에 벼슬아치들이 모여 나랏일을 처리하던 관아를 마을이라고 불렀는데 여기에서 유래된 말이라고도 한다. 이런 마을에 대한 설명들을 모아보면 ‘마을 다닐(놀러 다닐) 만한 거리의 촌락 단위’ 정도로 풀이된다. 그런데 ‘마을을 다닐 만한 거리’라는 설명은 단순히 공간적으로 가까운 거리의 지역이란 뜻만이 아니다. 마을을 다니는 것은 이웃과의 친밀한 관계망이 있어야 가능하다. 따라서 마을은 한 관아가 통솔하는 행정구역 등 공간과 인구수 등으로 구분되는 물리적 특성만으로 규정하기 어렵고, 사람들의 관계망을 중심으로 파악해야 한다. 즉, 마을은 지도에 표시하는 물리적·공간적 범주보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긴밀한 공동체적 관계망이 더 중요하다.

마을과 비슷한 말로 ‘공동체’를 떠올릴 수 있다. 사회학자 조지 힐러리는 수많은 공동체와 공동체라는 말을 사용하는 방식 등에 대해 연구하여 공통요소 세 가지를 추출해냈다. 세 요소는 지역성(locality), 사회적 상호작용(social interaction), 공동의 유대(common tie)이다. 마을은 이 세 가지 요소를 모두 갖고 있다.

공동체의 세 공통요소 가운데 ‘지역성’은 최근 들어 중요성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현대사회의 특성을 반영하는 변화인데, 같은 지역을 매개로 하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직장 내의 공동체, 온라인 공동체 등이다. 하지만 마을에는 공간적인 의미가 분명하게 들어 있다. 마을은 일정한 공간에 살고 있는 이웃들이 만들어가는 공동체이다.


사회부조 관계망, 공동선의 실현, 공동체적인 수단

그런데, 마을은 산업화된 현대 도시 특히 서울과 같은 거대도시에서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서울과 같은 도시들은 마을들을 해체하면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즉, 도시라는 공간은 기존의 공동체를 기반으로 유지·운영되던 마을을 시장에서의 무한경쟁을 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적 공간으로 대체하면서 생겨났다. 따라서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 마을은 다시 처음부터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무엇이다.

그렇다면 대도시에서 마을을 만든다는 것은 도시에 전통적인 촌락공동체를 다시 복원한다는 의미일까? 이는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일단 대도시에서는 촌락과 같은, 다른 마을과 눈에 보이게 구분되는 폐쇄적인 공간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 대도시는 익명성을 특징으로 하며 일과 주거의 분리가 심화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대도시의 고유한 속성 자체를 혁명적으로 개조하기 전에는 전통적인 촌락을 복원하기란 불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되살리려는 마을의 공동체적인 성격도 살펴보아야 한다. 전통적인 촌락은 공동체의 조건 가운데 구성원들의 사회관계망과 긴밀한 상호작용이라는 요소를 갖고 있다. 하지만 전통적인 촌락은 엄격한 위계질서와 이에 따른 비민주적인 의사 결정 등이 지배한다. 이런 점은 공동체의 요건에 어긋난다. 공동체에는 구성원 사이의 평등한 관계, 민주적인 의사결정 시스템이 핵심적인 가치로 포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도시에서 마을을 만든다면 기존의 공동체와 구별되는 새로운 형태가 필요하다. 오랫동안 공동체에 관련한 논의와 경험을 축적해온 공동체주의에서는 공동체의 핵심적인 가치로서 구성원 내부의 상호부조 관계망, 사회 공동선의 실현, 그리고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도 공동체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동체란 단지 현실에 존재하는 결과물만 보고 ‘이것은 공동체이고 저것은 공동체라 할 수 없다’는 구분의 잣대로 규정할 수 없다. 지속적으로 가치를 실현하고 심화시켜 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즉, 공동체는 공동체 ‘운동’으로서 실천적인 의미를 갖는다.

공동체를 실현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공동체운동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만큼 다양하고 새
로운 시도들이 현실 사회에서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1820년대 미국에서 시도된 오언의 뉴하모니 공동체 건설사업에서부터 노동자들이 생산수단을 공동체적으로 소유하고 운영하는 생산자협동조합, 가난한 소비자들에게 생필품을 저렴하게 공급하려는 목적으로 출발한 소비자협동조합, 고리대금으로부터 가난한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출발한 신용협동조합 등은 오늘날까지 우리 사회에서 공동체적인 대안을 실현하고 확대하기 위한 노력을 보여준다.

이와는 흐름이 다르지만, 한국의 지역사회에서는 농촌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공동체로서 마을을 새롭게 만들기 위한 다양한 운동들이 전개되어 왔다. 1990년대 초반 ‘마을만들기’라는 말이 들어와 사용되기 시작했지만, 마을만들기라는 지역사회운동의 흐름은 그 이전부터 계속되어온 것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마을만들기가 정부의 정책으로 채택되면서 우리 사회에 상당한 정도로 확산되는 효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확산 효과만큼 왜곡된 결과도 나타나고 있다.

마을만들기는 ‘마을사람들’을 만드는 과정

무엇보다도 가장 큰 왜곡은 마을만들기 운동을 몇 가지 물리적 시설을 만들거나 환경을 개선하는 데 주민이 참여하는 정도로 인식하는 문제이다. 마을만들기란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의미하고, 그 실천방법으로서 주민들이 공감대를 이루어 다양한 사업들을 전개하고 발전적으로 지속하는 것이다. 또한 정부 정책에 따라 재정이 지원되면서, 먼저 재정이 지원되느냐 아니냐에 따라 마을만들기 사업을 할지 말지 주민들이 취사선택하는 경향도 부정적인 영향 가운데 하나이다. 마을공동체는 사업으로 만들어지지 않으며 돈이 있어야만 만드는 것도 아니다.

마을공동체를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도 ‘마을사람들’을 만든다는 의미이다. 즉, 사람들 사이의 공동체적인 관계망을 형성하고, 이런 관계망을 보다 깊게 만들어 우리사회의 개방성을 확대해가는 것이다. 개방성이 우리사회를 움직이는 중요한 작동원리로서 작용하여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고 삶의 질을 높인다는 점을 서로 확인하며 사회로 확산시켜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마을을 만드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이 무언가 함께 실천하기 위한 사업이 필요하고, 사업을 위한 돈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은 공동체를 만드는 과정으로서만 의의가 있다. 자칫 돈을 들여 성공적으로 일군 하나의 사업이 마을만들기의 모범적인 사례로 언급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즉, 사업 그 자체가 마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사업을 통해 마을사람들이 형성되고 이들이 스스로 마을을 만들어가는 과정, 그 과정을 추동하고 지속하는 것이 마을만들기이다.


이호 님은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소장으로 시민자치와 풀뿌리운동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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