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호 2012년 가을 [특집] 마을, 마을사람들

[ 전체 전력 25%인 핵발전 비율 감소 노력 ]

핵발전소 52기를 멈춘 일본은 지금?

이헌석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많은 이들이 “대부분의 핵발전소가 가동을 멈춘 지금, 일본은 어떻게 전기를 쓰고 있나요?”라고 질문한다. 54기의 핵발전소를 모두 멈추었던 지난 5월, 전력 수급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이후 시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다 총리가 오오이 핵발전소 3·4호기를 재가동했지만, 여전히 일본은 52기의 핵발전소가 가동을 멈춘 상태다.

후쿠시마 핵사고가 생기기 전 일본은 핵발전 비중은 전체 전력의 약 25%를 핵발전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런데 급작스레 핵발전소를 멈춰도 큰 충격을 받고 있지 않다. 우리나라의 경우 31%의 전력을 핵발전에 의존하고 있다.


2011년 7월 도쿄 시내 아키하바라역의 절전 안내 표지판. 현재 사용률이 77%(예비율 23%)여서 전력이 부족하지 않다고 나타내고 있다.


|여름철 전력피크에도 남아도는 전력, 절전이 비법

현재 일본의 전력 상태를 한마디로 정리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나라에 비해 국토가 넓고 길쭉하게 생겨 일본은 우리와 전력공금 체계가 다르다. 일본에는 지역별로 모두 10개의 전력회사가 있으며, 심지어 동쪽과 서쪽은 전력 주파수가 달라 서로 전력공급을 하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모두 60Hz 전기를 사용하고 있으나, 일본은 서쪽은 60Hz, 동쪽은 50Hz 전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호환이 되지 않는다. 전력 설비 초창기에 각각 동서가 미국과 독일의 발전방식을 도입하면서 생긴 일이다.

그렇지만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일본 국민과 기업은 절전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지난 8월 21일 ‘절전으로 7월 1달간 전년 동월 대비 평균 6.3%의 전력판매량이 줄어들었다’는 기사를 신문 1면에서 대서특필했다. 여기서 전년은 후쿠시마 핵사고 직후인 2011년인데, 당시에도
대규모 절전캠페인이 벌어져 큰 효과를 봤으니, 정말 ‘마른 수건을 쥐어짜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특히 절전효과는 가정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 후쿠시마 핵사고를 일으킨 도쿄전력과 재가동된 오오이 핵발전소가 있는 관서지역에서 가정용 전력수요가 각각 14.5%와 16.9%의 감소했다.

한달 동안 전력판매량뿐만 아니라, 전력수요가 급증할 때 문제가 되는, 전력피크시 수요에서도 일본의 전력예비율은 넉넉하다. 8월 하계 피크가 발생했던 27일 도쿄전력의 전력예비율은 12.7%로 전력공급에 문제가 없었다. 다른 지역의 경우에도 대부분 10% 안팎의 전력예비율을 기록하면서 올 여름을 무사히 넘기는 상황이다.
 

일본 국민 89.6%가 탈핵 지지

이러한 절전의 근간에는 핵 없는 사회를 바라는 강력한 열망이 자리 잡고 있다. 현재 일본 정부는 향후 핵발전정책의 방향을 결정하기 위해 대국민 여론을 수렴하고 있다. 2030년 기준으로 일본의 핵발전 비중을 묻는 이 여론조사는 △0% △15% △ 20~25%를 선택하게 되어 있다. 여론조사방법은 크게 두 가지 방식이다. 인터넷·팩스·우편을 이용해 자신의 의견을 보내는 방식(의견공모)과 공청회 내용을 듣고 토론형으로 진행하는 방식이다.

그동안 진행된 의견공모에는 8만9,000건의 의견이 모였는데, 그중 81%가 당장 핵발전소 제로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고, 단계적으로 핵발전소 제로 정책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8.6%에 달했다. 1,542명이 참여한 공청회에서는 2030년 핵발전를 0%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68%에 달해 핵발전소 폐쇄를 향한 높은 열망을 알 수 있다.

앞으로 일본 정부는 이 결과를 바탕으로 전문가 회의를 열어 최종적으로 핵발전 정책을 결정할 예정이다. 후쿠시마 핵사고를 겪고 핵발전의 위험성을 절감한 일본 국민들은 늦었지만, 핵 없는 세상을 향한 강한 열망을 표명하면서 전력문제에 관심을 쏟고 있다.
 

화력발전과 자가발전설비로 전력 충당

절전은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일본 전력상황을 보여주는 좋은 지표이지만, 이것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25%에 달하던 핵발전 비중을 모두 절전으로 메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절전으로도 채우지 못한 부분을 LNG를 중심으로 한 화력발전, 각 기업체가 갖고 있는 자가발전설비로 충당하고 있다.

LNG 가스화력발전은 화석에너지를 사용한다는 점에서는 이산화탄소 발생 등 온실효과를 일으키기는 하지만, 석탄에 비해 발생량이 적고, 황화합물이나 질소화합물 등 이른바 공해물질 배출도 거의 없어 친환경적인 화석에너지로 일컬어진다. 또한 가스화력발전소는 핵발전소에 비해 위험도가 현격히 낮기 때문에 규제가 적어 빠르게 지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가스화력발전과 더불어 기업체별로 갖고 있었던 자가발전설비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대규모 기업은 정전에 대비해 비상발전기를 갖고 있는데, 평상시에는 잘 가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름철 낮 시간처럼 갑자기 급증하는 전력수요에 대비하기 위해 이들 발전기까지 모두 가동하고 있다. 이렇게 충족되는 양이 273만kW. 핵발전소 3개 분량의 발전소를 새로 건설한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재생에너지 비중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일본이 본격적으로 핵 없는 사회로 나아가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재생에너지를 이용해 생산한 전력을 의무구매하는 법안이 통과되면서 그동안 비중이 낮았던 재생에너지 비율이 비약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절전으로
전력사용량을 줄이고, LNG 화력발전 등 다른 에너지원을 선택하며, 점차 재생에너지로 전력시스템을 바꿔가는 노력. 누군가는 너무 이상적이고 교과서에나 나오는 방법이라고 비판했지만 이러한 방식이 일본에서는 현실로 진행되고 있다.


도쿄 시내 빌딩 1층 로비에 있는 전력 사용 현황. 매일 그날의 전력 소비 예상량을 기록하면서 절전을 강조하고 있다.


늘어나는 한국의 전력수요, 절전은 먼 이야기

한편 우리나라는 지난해 대규모 정전사태로 전력수요를 줄여야 한다는 이야기가 많았지만 실제로는 줄지 않고 있다. 2010년 한 해 동안 무려 10.1%의 전력수요가 늘어나는 등 우리나라는 대표적인 전력 다소비 국가이다.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인 2011년, 증가율이 약간 줄어 4.8%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높다. 우리에게 전력수요가 줄어드는 절전은 아직 먼 이야기에 불과하다.

특히 산업용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2011년 기준으로 산업용 전기는 전체 전력수요의 55.3%를 차지할 정도로 많고, 수요 증가율도 8.1%로 가장 높다. 반면 주택용 전력은 18%로 상대적으로 비중도 작고 근래 몇 년 만에 처음으로 0.9% 감소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진정한 절전을 위해서는 산업계에서 전력을 줄이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핵 없는 사회는 누군가가 선물처럼 주고 떠나는 것이 아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실천하고 노력해서 정책을 바꾸고 우리 사회를 바꿀 때만 가능하다. 이런 측면에서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일본이 보여준 모습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직 탈핵이라는 구체적인 결과로 맺어지지는 않았지만, 현재 일본 전역에서 보이는 변화의 흐름은 우리가 핵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참조해야 한다. 전력수요를 줄이고, 에너지 체제를 바꾸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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