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호 2012년 봄 살림,살림

[ 살림의 현장② 협동조합 ]

자본과 시장 넘어서기, 협동조합에 희망 있다

김성오

2012년은 유엔이 정한 협동조합의 해다. 유엔은 2008년 뉴욕에서 시작된 금융위기 이후 협동조합에서 무언가 해답을 찾아보고 싶다는 선정 취지를 밝혔다. 한국에서는 작년 말 국회에 제출된 '협동조합기본법'이 올해 통과됐다. 이로써 5인 이상의 조합원만 모이면 협동조합법인을 설립하고 어떠한 사업이라도 협동조합방식으로 벌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최근 정치권에서는 '경제민주화' 바람이 불고 있다. 여야, 진보보수 할 것 없이 모두 경제독재자들을 규탄하고 경제에서 민주적 정의를 세워야 한다고 외친다. 아는 사람은 알다시피 협동조합은 지난 200여 년 동안 경제민주화의 첨병이었다. 도대체 올해 들어 왜 이토록 협동조합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일까? 왜 새삼스럽게 사람들은 협동조합에 주목하는 것일까? 그들은 협동조합에 무엇을 기대하는 것일까?

이윤 창출 아닌 '고용 확대'가 목표
산업혁명기 유아노동으로 상징되는 짐승 같은 노동 환경, 노동자 가정의 부족한 생필품, 그리고 악덕 고리대금업자들과 중간 상인들을 극복하기 위해 노동자, 가난한 소비자, 저(低) 신용자, 가난한 농민들이 모여 노동자협동조합, 소비자 협동조합, 신용협동조합, 농업협동조합을 구성하여 자신의 경제생활을 개척해 왔다. 협동조합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200여 년이 흐르는 동안 협동조합은 경제 활동을 통해 지구상의 많은 사람들을 절대적 빈곤으로부터 구하고, 교육 활동을 통해 수많은 '까막눈'을 교양 있는 민주주의자로 변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1980년 즈음에 이미 범세계적인 현상으로 정착된 협동조합에 대해 반성적으로 성찰하면서 레이드로 박사를 비롯한 협동조합주의자들은 한술 더 떴다. 이들은 협동조합이 더 이상 조합원들만의 이익에 복무하지 말고 범지구적인 문제 해결에서도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지구생태계보전의 문제와 실업문제의 해결을 중요한 화두로 제시했다. 이후 일본과 한국에서 유기농 먹거리 유통과 생태주의를 표방하는 생활협동조합운동이 꽃을 피우게 되었고 3만5천 여 노동자조합원들이 '이윤 창출'이 아닌 '고용 확대'를 기업 목표로 하여 5만 여 명의 정규직 일자리를 만들어낸 몬드라곤 운동이 새삼 주목을 받게 되었다.

지구 온난화가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그리고 실업률이 높아지고 불안정한 비정규직 고용 비중이 높아질수록 협동조합은 점점 더 주목을 받게 될 것이다. 그에 따라 협동조합주의자들의 어깨는 점점 더 무거워질 것이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되는 횟수 또한 늘어날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운명이라면 받아들이는 수밖에 다른 도리는 없다.

시장의 야만성, 자본의 몰인격성 배격
협동조합주의자들은 시장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아니 엄밀히 이야기 하면 '시장을 대체할 수 있는 어떤 시스템'을 호모 사피엔스들이 아직 찾아내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아마도 우리 다음 세대나 그 다음 세대 혹은 더 지나서 '시장'은 무언가로 대체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렇다고 마냥 그때까지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우리는 지금부터 앞으로 계속 시장이 가진 야만성을 길들이고 거기에 사람 냄새를 심기 위해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협동조합은 이러한 일을 하는데 적격이다. 생활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은 필요한 만큼만 주문하고 생산자들의 처지를 고려한다. 신용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의 경제 사정을 고려하면서 이자율을 책정한다. 사회적 협동조합이나 노동자협동조합에서는 일반 시장에서 팔리지 않은 한계 노동력 담지자들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이고 그들에게 일감을 준다. 이러한 실천이 깊어지고 확대될수록 시장이 가진 야만성은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협동조합주의자들이 자본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단지 자본이 이윤 창출을 거듭하면서 자기 증식하는 어떤 몰인격적 주체라는 점을 부정할 뿐이다. 협동조합주의자들은 언제나 자본은 더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살고 생활하기 위한 수단이자 방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협동조합의 중요한 원칙으로 자리 잡은 것이기도 하다. 이윤 창출을 거듭하면서 증식되는 자본의 소유자들이 질 좋은 일자리, 질 좋은 고용을 확대하지 않는다면, 그런 자본은 괴물에 불과하다. 한국경제는 지난 15년 동안 고용 없는 성장, 고용 축소 성장을 거듭해 왔다. 그 과정을 통해 대기업과 몇몇 재벌가문들은 세계적인 지위를 차지했지만, 사람들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고용 불안과 비정규직 봉급과 그리고 점점 줄어드는 중소기업과 골목 상권이다. 협동조합주의자들은 이들 대기업 소유 가문들에게 경고 사이렌을 울리게 될 것이다. "만일 그대들이 앞으로도 계속 그런 식이라면 제1대 주주의 지위를 박탈당하게 될 것이고 결국 기업의 경영권을 잃게 될 것이다!" 이것은 몬드라곤의 평범한 노동자조합원들이 전 세계의 대기업 지배주주들에게 보내는 경고 서한이기도 하다.

생태계 보전을 위한 협동조합의 순기능은 앞으로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것이고 이러한 노력은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는 한국에서 중단기적으로 보다 시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과제는 실업 문제다. 양극화라는 것이 결국 '질 좋은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분간 협동조합주의자들을 비롯해서 한국의 많은 활동가들은 이 문제의 해결을 지상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한마디로 이것은 어떻게 질 좋은 고용을 확대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조합원의 이익, 시대의 과제에 충실히 복무
필자는 최근에 출간한 《몬드라곤의 기적》이라는 책에서 몬드라곤과 현대자동차를 비교 분석했다. 두 회사는 약 50조원의 자산과 30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이다. 물론 여러 가지 조건이 상이하기는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몬드라곤이 약 8만5천 여 개의 정규직 일자리(조합원이든 아니든)를 보장하는 반면 현대자동차는 5만여 개의 정규직 일자리와 정규직 월급의 절반이 채 되지 않는 1만여 개의 비정규직 일자리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참고로 2010년 기준 현대자동차는 약 5조 원의 이익을, 몬드라곤은 약 3천억 원의 잉여금을 만들어 냈다.

잘나가는 한국의 대기업들에 몇 년간은 무조건 고용 확대를 하도록 압박하는 일이 필요하다. 협동조합운동은 해당기업의 노동자들과 연대하여 이에 응하지 않는 대주주들을 몰아내는 일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겨야 할 것이다. 노동자들의 경영참여수준을 높여 경영투명성을 높이고 이를 통해 불필요하게 새나가는 돈들을 묶어 이를 고용확대에 돌리도록 해야 한다. 더 나아가 제도적으로 노동자 인수를 추진하는 일도 진행해야 한다. 몬드라곤의 사례는 평범한 노동자들이 전문경영자들을 선임하고 감독하여 노동자 기업을 유지 발전시킬 수 있는 '현재 수준의 한계 규모'를 입증한 것이다. 자산 50조 정도 되는 회사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 준 것이다. 물론 앞으로 몬드라곤의 규모가 더 커질수록 한계 규모는 더 커질 것이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대부분 이정도 규모다. 2세를 넘어 3세들에까지 경영권을 승계하고, 고용 없는 성장을 지속하려는 대주주 가문의 한심한 작태에 분노하는 사람들이 늘어갈 것이기 때문에 사실 시간은 우리의 편이다.

질 좋은 고용의 확대는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한국의 협동조합들에서도 운영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한국의 농협, 수협, 신협, 새마을금고뿐 아니라 이미 1년 사업고가 수천억 원 대에 이른 생협들은 소비자 조합원들이나 생산자 조합원들의 이익뿐 아니라 미래의(아직은 입사하지 않은) 협동조합 실무인력들의 이익까지를 아우르는 사업계획을 작성해야 한다. 동일한 사업고에서 더 많은,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내기 위하여 밤새워 고민하는 협동조합경영자들의 수척한 얼굴을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협동조합의 진정한 성공은 기존 조합원들의 이익에 충실히 복무하는데서 더 나아가 시대의 과제에 제대로 복무할 때 얻어지는 것이 아닐까.

협동조합에 희망과 미래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김성오 님은 《몬드라곤에서 배우자》를 번역하고 《몬드라곤의 기적》을 펴냈습니다. 협동조합기업인 IRC의 대표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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