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호 2012년 봄 살림,살림

[ 시골 살림 길잡이⑤ ]

사람도 작물도 제힘으로 자라게 해야 한다

전희식

어릴 때 시골에서 자라 어깨 너머로 농사를 구경해 본 사람도 막상 직접 농사를 짓게 되면 부산을 떨기 마련이다. 어떤 씨앗을 언제, 어떻게 심어야 하는지 만날 옆집 할아버지에게 물어 보거나 옆 논밭에 심어진 작물들이 싹이 난 뒤에야 한발 늦게 뭘 심느라고 야단이다. 더구나 농사일 한 번 안 해 본 사람이 귀농하려면 가장 막막한 게 바로 농사를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 일 것이다.

작물과 땅, 작물과 작물의 '궁합 보기'
쉽게 하는 말로 "하다 안 되면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짓지"라고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언제 뭘 심는지가 첫째 과제라면 심는 작물에 따라 간격이나 깊이를 맞추는 것이 둘째 과제다. 밭이랑을 만드는 방법은 작물에 따라 다 다르기 때문이다. 여기서 잘못되면 키우는 과정에서 애를 먹는다. 북주기나 풀매기 등에서 힘들다. 셋째 과제는 뭘까? 궁합이다. 작물과 땅과의 궁합이다. 고구마를 심는 땅과 땅콩을 심는 땅은 전혀 다르다. 초여름에 마늘이나 양파를 캐내고 난 후에 뭘 심어야 하는지 작물끼리의 궁합도 있다. 철에 따라 작물을 고르고, 심을 땅을 정해서 적당한 방법으로 심는 것이 농사법이다. 또 이어짓기(연작)를 피해야 하는 작물이 있고 섞어 지으면(혼작) 좋은 작물들이 있다. 이렇게 파종과 관련된 것 외에도 땅 관리, 병충해 관리, 잡초 관리가 농사법의 큰 줄기다.

글만 보고 농사가 어려울 것 같다고 걱정하지는 말기 바란다. 모든 일은 기술과 정성.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하나를 고르라면 단연코 정성이다. 농사와 생태적인 삶에 대한 극진한 정성과 사랑이 있으면 누구나 농사를 할 수 있다.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빚어진다 해도 삶의 귀한 깨달음으로 연결될 것이다.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귀농 교육을 할 때 생태 농업 철학을 비중 있게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실을 외면한 개념 위주의 접근도 문제지만, 농사 기술만의 접근은 자칫 방편과 목적을 뒤바뀌게 할 수 있어서다. 나도 시행착오를 겪었다. 귀농해서 첫해 농사를 지을 때가 떠오른다. 밭에서 호미로 맨 풀을 어쩌지 못해 결국 밭둑에 다 옮겨 심었다. 풀을 매긴 맸는데 뿌리 흙을 털어 땡볕 아래 뒤집어 놓으려니, 풀을 죽이는 것에 스스로 납득할 수가 없었다. 덕분에 첫해뿐 아니라 몇 해 농사를 망쳤지만, 이게 귀농을 후회하지 않고 지금까지 여기에 나를 있게 한 원동력이지 않을까 싶다.

콩 농사를 이야기해 보자. 먼저 콩은 언제 심어야 할까? 옆집 할아버지가 심을 때? 옆집에 할아버지가 없으면? 콩 종자에 표기되어 있는 때? 남부지방 언제, 중부지방 언제라고들 말하지만 그 시기가 꼭 맞는 건 아니다. 위도상으로는 같은 남부지방이지만 지대의 높낮이가 다르면 심는 시기도 다르다. 지금 내가 사는 곳은 남부지방이지만 해발 600m나 되다 보니 거의 북부지방 기온이다.

그럼 언제? 다른 식물의 꽃 피는 때나 그들의 생장과 맞추면 틀림없다. 양력은 물론이고 음력도 해에 따라 절기가 다르다. 찔레꽃이 피기 시작할 때 메주콩을 심는다. 이때가 모내기철이다. 모내고 논두렁에 심는 게 바로 메주콩, 즉 흰콩이다. 이것은 산에 사는 사람의 기준이다. 감나무가 많은 지방에서는 감꽃 필 때 올콩인 완두콩을 심고, 감꽃 질 때 늦은 콩인 서리태를 심는다. 이처럼 비교하는 식생이 다 다르다.

나는 언젠가부터 콩 싹을 틔워 심는다. 떡잎이 나고 본잎까지 나는데 보통 보름 걸린다. 싹을 틔워 심으면 직파 때, 싹이 안 터 생기는 빈자리가 없다. 무엇보다 풀 관리가 편하다. 콩을 텃밭 모래땅에 배게 뿌려 놓았다가 한 치 정도 자랐을 때 옮겨 심는데, 심기 전에 풀을 싹 매면 풀보다 콩이 자라는 속도가 빨라 풀 관리에 좋다. 그루갈이(이모작)로 마늘을 캐내고 콩을 심을 경우, 콩 모종을 키울 동안 마늘을 실하게 만들 수 있는 기간을 확보할 수 있다. 옮겨심기의 장점이다. 줄을 치고 골을 타서 심으면 풀매기할 때 편하다. 심을 당시에 두둑 위에서 2/3 지점 아래쪽에 심고, 첫 풀매기 할 때는 북주기를 겸하면 된다. 옆쪽 두둑의 흙을 끌어다 북을 주면 풀매기가 저절로 된다.

자연농을 하는 사람들은 풀매기를 힘들어 한다. 나는 '자연을 닮은 사람들'이라는 자연농법연구회에서 배운 대로 호밀을 이용해 콩 농사를 했었다. 농사 규모가 제법 커진 때라 당시에 인기를 끌고 있던 다용도 파종기를 사 이것으로 콩도 심고 호밀도 심었다. 콩은 40cm 간격으로 꽤 널찍널찍하게 심고 골 간격은 거의 1m로 했다. 콩을 심기 훨씬 전에 골 사이에 호밀을 심어 뒀고, 콩이 좀 자랐을 때쯤에는 예취기로 한 자쯤 자란 호밀을 쳐 줬다. 화본과 작물이자 월동작물인 호밀은 일찍부터 자라 주변 잡초를 제압했다가 장마철이 올 때쯤이면 생을 마감하는데 이때면 콩이 왕성하게 자라 있다. 콩을 배게 심거나 순따주기를 못하면 넝쿨이 뻗어 나면서 콩 한 톨 못 건진다.

병균도 벌레도 풀도 함께
병균과 벌레도 풀과 같다. 함께 가는 것이 자연농법의 원리다. 온갖 벌레가 밭에 있는 게 정상이다. 병균도 마찬가지다. 온갖 것들이 다 섞여서 길항관계를 형성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배추를 포토에 키워 옮겨 심을 때에는 모기장을 쳐 준다. 연한 잎을 벌레가 댕강댕강 잘라 먹기 때문이다. 배추가 좀 자라고 나면 벌레들이 설쳐 봐야 배추의 생명력만 왕성하게 할 뿐이다. 배추가 자란 정도에 따라 목초액을 20배액에서 200배액까지 뿌려 주면 효과가 있다. 한 해는 하도 벌레가 심해서 매일같이 잡아도 배춧잎이 잠자리 날개처럼 되곤 했다. 오운육기(五運六氣)에 따라 벌레가 극성인 해가 있다. 아예 배추농사를 포기했다. 그런데 며칠 뒤에 밭에 갔더니 배추 속잎이 감나무잎처럼 싱싱하고 단단하게 새로 자라 있었다. 끝내 벌레를 물리쳤던 것이다. 배추를 쪽파와 같이 심어서 제법 효과를 본 적도 있다. 김장할 때 동무가 되는 것이라 심을 때도 나란히 한 줄씩 심었다. 파 냄새가 배추벌레를 쫒지 않았을까 싶다. 과학 이치에 딱 맞는지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농부가 그렇게 믿고 해 보면 효과는 믿는 것과 비례한다는 게 17년 농사의 체험이다.

농법 중에 최고는 ‘하늘빛 감사 농법’이다. 이것은 류인학 선생께서 강조하시는 농법이다. 지극한 하늘빛이 농작물에 가득 차 있는 것을 늘 의념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믿고 행동하는 농법이다. 양자역학 원리처럼 숨겨져 있는 다차원 공간을 염두에 둔다면, 이것이 대단한 과학이라 해도 절대 무리가 아니다.

내 고추 농사는 좀 색다르다. 1m가 넘게 넓게 심고 그 사이에 해묵은 상추씨 등을 빼곡하게 뿌려 잡초가 못 자라게 한다. 상추는 뽑아 먹기도 했고 절로 녹아 없어지기도 했지만, 풀은 이미 고추 그늘에 가려 맥을 못 추게 되었다. 모종은 꼭 노지에서 키운 것을 심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것들은 뿌리가 튼튼해서 건강하게 자란다. 사람에게 인간성이 중요하다면 식물은 뿌리가 중요하다. 아주심기 이후 한 달 이상 지주 대에 묶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쌀농사는 우렁이로만 지었다. 현미식초나 미싱유 등을 가끔 뿌려준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같은 벼과 식물인 갈대나 대나무를 꽂아서 힘을 북돋아 줬다. 루돌프 슈타이너의 생명역동농법에 나오는 원리다. 이것 역시 농부의 믿음이 더 크게 작용했으리라 본다. 한마디로 열악한 조건에서 제힘으로 자라게 하는 게 중요하다. 사람이나 작물이나 많은 영양을 주려고 옆에서 계속 먹여 주면 약해진다. 병도 많다. 열매를 많이 맺지만 한순간에 탄저병으로 싹쓸이된다.

좋은 농사법의 핵심은 뭘까? 농사하는 모든 과정은 물론 마음가짐까지 자연 조건에 가깝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현대 인류는 할 건 다 해 본 셈이다. 종자를 마음껏 쪼개고 붙이고 했고, 땅도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주물렀다. 기계를 사용하고 화학물질도 넣어 봤다. 그리고 그게 답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배웠다. 그리고 대가를 치르고서야 하늘 무서운 줄 알았고 스스로 돕는 자를 하늘이 돕는다는 결론으로 되돌아왔다. 해답은 끝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정신 차리고 해야 하는 농사는 일찍이 우리 선조들이 했던 농사법이다. 과학기술이 부족하고 사물의 이치를 몰라서 선조들이 그렇게 농사지은 것이 아니다. 그게 순리고 천리였다. 핵발전소처럼 더 큰 재앙을 뒤에 감추고 눈속임을 하거나, 겉치레 농사로는 오래 못 간다.

귀농운동본부 공동대표이기도 한 전희식 님은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존엄성을 지켜드리자는 생각에 전라북도 장수의 산골에 내려가 함께 살며 그 일상을 《똥꽃》, 《엄마하고 나하고》에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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