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호 2012년 봄 살림,살림

[ 말글살림⑥ ]

보리싹 움트고 죽순 돋아나며 애채가 자라는 계절

박남일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걸까. 아니면 꽃이 피어서 봄이 오는 걸까. 조금 어리석은 질문인 것 같다. 꽃은 사시사철 핀다. 장미는 여름에 피고, 국화는 가을에 핀다. 심지어 한겨울 눈보라 속에서 붉게 버티는 동백꽃도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꽃을 보면 봄기운을 느낀다. 혹독한 추위를 견디고 난 뒤에 마주하는 봄꽃의 느낌이 너무 강렬해서 인 듯하다.

남녘의 봄은 텃밭 귀퉁이에 핀 노란 '장다리꽃' 송이를 흔들며 찾아온다. 장다리꽃은 사람과 짐승의 먹이가 되지 않고 살아남은 배추나 무가 봄에 피우는 꽃이다. 장다리꽃을 피운 배추와 무는 뿌리에 바람이 들고 잎사귀가 노랗게 시들어간다. 번식을 위해 진액을 모두 쏟아 부은 까닭이다. 평생을 오롯이 자식들에게 내어주고 바람 든 뼈마디로 신음하는 늙은 어머니처럼.

한편 도시의 봄은 흐드러지게 핀 벚꽃 길을 따라 온다. 벚꽃 하나는 흔한 세상이다. 공원이든 길가든 벚꽃 천지다. 사람의 눈을 호사스럽게 하는 그 화려함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했다. 흐드러진 벚꽃도 열흘을 넘기기 어렵다. 무릇 아름다운 것들은 수명이 짧다. 사실은 그 생명이 짧아서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 얼굴에도 꽃이 핀다. 감정에 따라 얼굴에 드러나는 여러 가지 표정을 '낯꽃'이라 한다. 얼굴에 활짝 핀 '웃음꽃'도 낯꽃의 한 가지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노랫말이 있는 걸 보면 사람의 웃음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꽃이다. 그런데 우리말에 '울음꽃'이나 '눈물꽃'은 없다. 때로는 웃음보다 아름다운 눈물도 있을 터인데.

이밖에도 아름다운 것들 이름에 꽃이 붙는 수가 많다. 성에나 얼음 알갱이 따위가 아름답게 반짝거리는 것을 ‘얼음꽃’이라 한다. 또 한창 젊고 아름다운 청년기의 나이는 ‘꽃나이’, 새내기 가시버시가 처음으로 함께 자는 잠은 ‘꽃잠’이라 한다. 안타깝게도 꽃나이에 요절하여 흙으로 돌아간 사람의 무덤은 ‘꽃무덤’이다. 아름답지만, 절절한 슬픔이 묻어나는 이름이다.

꽃자리의 상처가 아물면 열매가 맺힌다
비바람과 함께 꽃이 진다. 바람이 불어 수많은 꽃잎이 흩날리는 것을 '꽃보라'라고 한다. 큰 잔치 때 축하의 뜻으로 뿌리는 색종이 조각들이나 하늘로 쏘아올린 불꽃이 번지는 모양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때가 되면 꽃잎은 고요히 떨어져 내린다. 비가 내리듯 꽃잎이 떨어져서 '꽃비'다. 또 진눈개비가 날리듯 떨어지는 꽃잎들은 '꽃눈개비'라고 한다. 꽃이 지는 건 한 가지여도 이를 눈보라에 빗대면 꽃보라, 비에 빗대면 꽃비, 진눈개비에 빗대면 꽃눈개비다. 우리말이 얼마나 섬세한지를 잘 보여준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꽃은 종자식물의 번식기관, 또는 생식기관이다. 꽃을 너무도 사랑하던 어떤 시인은 그토록 명쾌하고 노골적인 사전 풀이에 사람의 생식기를 떠올리다가 그만 마음의 상처를 받고 말았다고 한다. 그러나 꽃이 피고 지는 이유가 번식을 위한 과정임은 틀림이 없다. 그래서 꽃은 지면서 홀씨를 퍼뜨리거나, 씨앗을 품은 열매를 맺게 한다. 이때 꽃이 진 자리를 '꽃자리'라고 부른다. 마음이 옹졸한 사람일 일러 '꽃자리가 좁다'고 하는데, 마음이 좁으면 튼실한 열매를 맺기 어렵다는 뜻일 게다.

꽃이 떨어지면 나무는 아프다. 하지만 그 아픈 자리의 상처는 아물어 열매가 된다. 꽃자리에서 맺히는 열매를 부르는 말도 다채롭다. 꽃이 진 뒤에 바로 맺히는 열매는 ‘꽃맺이’라고 한다. 꽃맺이 가운데서도 오이나 가지 같은 한해살이 푸성귀의 열매는 '꽃다지'다.

한편 꽃다지는 지난 1980년대부터 널리 불린 민중가요 제목과 노래패 이름으로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그리워도 뒤돌아보지 말자 작업장 언덕길에 핀 꽃다지…'라는 애달픈 노랫말에 나오는 꽃다지는 땅에 착 달라붙은 모습으로 애간장을 태우듯 봄에 노란 꽃을 피우는 두해살이 들풀 이름이다.

열매나 과일이 제 맛을 내려면 잘 익어야 한다. 그런데 먹을 게 귀했던 옛적에는 설익어 푸른빛이 감도는 과일이나 열매에 손을 대곤 했다. 그런 과일을 '똘기'라고 한다. 똘기는 맛이 쓰거나 시다. 밤중에 남의 참외밭에서 실컷 서리를 해왔는데 나중에 보니 전부 똘기여서 먹지도 못하고 버렸던 황당한 일들이 옛적에는 심심찮게 있었다.

똘기와는 반대로 탐스럽게 잘 익은 과일은 '아람'이다. 햇살 좋은 늦가을에 저절로 익어 벌어진 밤송이 따위를 '아람 벌다'고 한다. 또 그런 아람이 곧 떨어질 듯 바람에 흔들리거나, 툭툭 떨어져 내리는 것은 '아람 불다'고 한다.

흔히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를 과일이라 부른다. 그러면 토마토도 과일일까? 굳이 따지자면 푸성귀에 맺힌 열매는 '채과(菜果)', 나무에서 열린 열매는 '실과(實果)'로 구별해서 부른다. 그러므로 한해살이풀의 열매인 토마토는 과일이 아니라 채과이다. 참고로 알아둘만한 상식이다. 하지만 토마토를 과일로 여긴다고 해서 경찰이 출동 안 한다. 위정자들과 행정기관의 우리말 죽이기에 비하면 이쯤은 애교다.

나무는 죽어 이름을 남긴다
모든 종자식물의 열매는 그 속에 씨앗을 품고 있거나, 아니면 그 자체가 씨앗이다. 그것이 열매가 존재하는 이유다. 물론 씨 없는 수박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오직 먹는 데만 편하도록 수박의 생식 원리에 장난질을 한 결과다. 통닭집 주인이 일일이 손작업을 한 '뼈 없는 닭튀김'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수박 본래의 존재 목적을 거세해버린 까닭이다. 굶어죽게 생겼어도 씨앗은 먹지 않는 우리의 전통과도 어긋난다.

죽지 않은 씨앗은 '싹'을 틔운다. 싹은 씨앗이나 줄기, 뿌리 따위에서 움터 오르는 여린 잎 따위를 말한다. 그래서 어린이를 새싹에 빗대기도 한다. 싹을 한자말로 순(筍)이라고 한다. 싹과 순은 비슷한 말이지만 실제 쓰임은 미묘하게 다르다. 씨앗에서 움트는 것에는 싹이 어울린다. 반면 나뭇가지나 뿌리, 또는 풀의 줄기에서 돋는 것은 '순'으로 불러야 매끄럽다. 보리에서는 싹이 트고, 대밭에서 죽순이 난다. 죽순을 '대싹'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 또한 우리말의 섬세함이다.

새싹과 새순이 탈 없이 잘 자라면 풀이 되거나 나무가 된다. 그리고 해마다 봄에는 나무의 줄기나 가지에서 새로운 가지 한 마디씩 새로 난다. 이를 우리말로 '애채'라고 한다. 순이 자라서 애채가 된다. 옛적에는 어느 정도 자란 소나무 애채를 꺾어 그 속껍질을 벗겨 먹기도 했다. 그것을 '송기(松肌)'라고 하는데, 맛이 제법 달착지근해서 먹을 만하다. 또 송기를 긁어 쌀가루와 함께 섞어서 죽을 쑤어 먹기도 했다. 가난한 시절에 오히려 '신선의 음식'을 먹고 살았던 것이다.

나무는 하늘을 향해 자란다. 어떤 나무는 더디 자라고, 어떤 나무는 쑥쑥 잘 자란다. 웬만큼 자란 나무의 위쪽을 뜻하는 말로 '우죽', '우듬지', '나무초리' 등이 있다. 다들 비슷비슷해서 갈음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그 쓰임에 섬세한 차이가 있다.

먼저 우듬지는 나무의 맨 꼭대기 줄기를 뜻한다. 이에 비하여 우죽은 나무 꼭대기의 가지를 말한다. 물론 이렇게 설명해도 미묘한 차이를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미루나무처럼 큰 나무 위쪽 줄기는 '우듬지', 싸리 따위처럼 작은 나무의 위쪽은 '우죽'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또 나무의 꼭대기 줄기나 가지의 끝부분이 뾰족한 모양을 가리켜 '나무초리'라고 한다. '초리'는 '회초리'나 '눈초리'같이 길고 가느다란 모양을 뜻한다. 짐승의 꼬리나 새의 꽁지도 초리와 한통속이다.

나무는 죽어서도 많은 이름을 남긴다. 살아있는 나무에 죽은 '삭정이'가 붙어 있기도 하고, 굵은 소나무 밑동에 조각조각 붙어 있는 두꺼운 껍질도 살아있다고 볼 수 없다. 그런 껍질을 우리말로 '보굿'이라 부른다. 드물긴 하지만, 말라죽은 뒤에 줄기만 서 있는 나무는 '강대'라 한다. '강'은 '강울음', '강술'처럼 마땅히 있어야 할 게 없는 상태에 붙는 말이다. 또 줄기가 잘려나간 뒤에 남아서 썩어가는 밑동은 '고주박'이라 한다. '등걸', '그루' 등도 고주박과 비슷한 말이다.

'모든 이론은 회색이며, 오직 영원한 것은 저 푸른 생명의 나무이다.'

어떤 철학책 앞 장에 나오는 말이다. 누가 한 말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분명한 건 영원히 푸를 것 같은 나무도 때가 되면 죽는다는 사실이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듯, 죽는 게 있어야 새로운 게 태어나는 법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변한다.

박남일 님은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말 풀이사전》등 우리말 관련 책을 썼습니다. 지금은 지리산 아래서 우리말글을 연구하며 인문 교양 분야의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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