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호 2012년 봄 살림,살림

[ 아이살림 ]

내 아이에게 엄마를 선물하자

신순화

첫아이 낳고 키울 땐, 뭐든지 처음이라 쉬운 게 하나도 없었지만 그만큼 감동도 컸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아이가 나를 보며 미소 비슷한 것을 지었을 때 얼마나 벅차고 행복했던가. 100일을 하루 앞두고 제 스스로 뒤집었을 땐 온 동네가 떠나갈 것처럼 소리를 질렀다. 처음으로 '엄마'라고 나를 부르고, 무려 16개월 만에 첫 발자국을 떼었을 땐 또 어떤가. 세상에 이보다 더 행복하고 뿌듯한 일은 없을 거라며 울먹였다.

아이를 낳은 엄마라면 누구나 이런 감동의 순간들을 기억한다. 세상에서 내 아이가 제일 특별한 것 같고, 이 순간의 행복을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것 같은 기분 말이다. 아이 키우는 매일이 이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감동도 행복도 잠깐이다. 엄마들은 이내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잘 키우는 걸까를 고민하기 시작하면 당장 뭐라도 사들이거나 무슨 프로그램이라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나날이 거대해지는 소비 사회에서 아이를 낳은 엄마들은 최고의 관심을 받는다. 기업들은 온갖 마케팅으로 당신의 아이를 더 건강하고 더 특별하게 키울 수 있는 물건과 방법들이 있다고 속삭인다. 여기에 이미 그 속으로 들어가 있는 이웃 엄마들이 있다. 아이를 데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이웃집에 놀러 갔다가 온 방을 꽉 채운 갖가지 교구와 유아 전용 전집들에 놀라게 되면 왠지 내가 뒤쳐지고 내 아이에게 제대로 된 관심을 못 주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기 쉽다. 시내에 외출이라도 하게 되면 사방에서 건네주는 무슨, 무슨 유아 프로그램이니 스쿨이니 하는 홍보물을 받게 된다. 읽어 보면 다 그럴 듯하다. 교육은 어린이집이나 가게 되었을 때부터 고민하면 될 줄 알았는데 돌 전부터 시작하는 것들도 너무나 많다. 어느 집 아이는 벌써부터 엄마와 함께 하는 오감자극 프로그램을 듣는다더라 하는 말을 들으면 조바심은 더 커진다. 많이는 못 해줘도 한두 가지라도, 프로그램이 어려우면 교구라도 몇 가지 들여놓아야 안심이 될 것 같다. 끝없이 이어지는 상품화된 교육 시장에 엄마들은 이렇게 발을 들이게 된다.

아이들에게 보다 일찍 더 많은 것을 가르치고 배우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엄마들이 많다. 그게 내 아이를 제대로 사랑하고 보살피는 일이라고 믿는 것이다. 말문도 채 트이지 않은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영어 수업을 듣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사회성 발달 프로그램, 창의력, 표현력, 오감을 자극하고 두뇌를 단련시키는 프로그램들. 오늘날의 배움이란 온통 이렇게 돈을 주고 사야하는 상품이 되어 버렸다.

아이들에게 배움이란 무엇일까. 우리 시절의 경험과 배움이란 재미란 몸으로 부딪혀 알아가고 느껴가는 것이었다. 놀이는 일상과 한데 어울려 있었고, 거기서 배움이 자라났다. 배운다는 것은 내 주위의 세상에 더 깊숙이 빠져드는 일이었다.

살림에 늘 바쁜 엄마가 우리와 놀아 주지 않아도 우리는 엄마가 하는 일을 보며 배웠고, 형제들과 투닥투닥 싸우고 놀면서 배웠다. 엄마 따라 시장에도 가고, 은행에도 가고, 버스 타고 멀리 친척집에 가는 일에도 배움은 넘치도록 많았다. 굳이 무엇인가를 배워야 한다는 생각 없이 나날의 삶이 다 배움이었다. 무엇보다도 우린 자연에서 놀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웅덩이에 고인 흙탕물과 진흙을 이겨 둑을 만들고 물길을 내느라 밥 때가 지난 줄도 모르고 있던 일이나, 또 친구들과 산과 들로 쏘다니다가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오던 어린 날은 남루했지만 온통 살아있는 체험으로 충만한 나날이었다. 칡뿌리 캐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냇가에서 송사리 잡느라 한나절을 다 보내고, 수수깡 꺾고 까마중 따느라 한참을 앉아 있던 어린 날은, 뒤돌아보면 갈피마다 빛나는 추억들이다. 친구들과 형제들과 동네와 들판을 누비며 온 몸으로 자연을 느끼며 자라났다. 그 속에서 사람과 사람이, 사람과 자연이 어떻게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지 배울 수 있었다.

오늘날의 아이들은 우리 시절보다 훨씬 더 많은 지식을 접하며 자란다. 그러나 대부분의 배움이 책과 디지털 기계 속의 동영상과 학원을 통해 전해진다. 나날의 일상과 동떨어진 배움은 박제처럼 생명이 없다. 머리로는 알지만 몸은 느껴보지 못하는 배움, 눈으로는 봤지만 손과 발은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이란 얼마나 공허한가. 아이들은 똑똑해지지만 몸과 맘이 같이 영글어 가지는 못한다. 공감 능력 개발 프로그램을 다니지만 제 옆에서 친구가 느끼는 소외감엔 무심한 아이들이 넘쳐 나는 세상이 두렵기까지 하다.

얼마 전에 세 아이를 데리고 전철을 탔을 때 본 풍경이다. 한 젊은 엄마가 어린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밀고 전철에 올랐다. 아이의 유모차엔 두꺼운 비닐 덮개가 내려져 있었다. 유모차에는 아이 눈높이에 맞추어 아이패드 화면이 고정되어 있었다. 화면에선 현란한 동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이의 엄마도 전철을 타자마자 자기 스마트폰을 켰다. 아이는 동영상을 보고 엄마는 게임을 즐겼다. 추운 바깥에서 더운 전철 안으로 들어왔지만 아이 유모차의 비닐 덮개는 그대로 내려져 있었고 수없이 많은 역을 지나는 동안 아이와 엄마는 서로 아무런 말이 없었다. 한 공간에 같이 있었지만 두 사람은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었다. 그 엄마는 아이가 자신을 귀찮게 하지 않고, 남에게 피해도 주지 않으니 얼마냐 좋으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겐 세상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광경이었다.

어린아이와 함께 전철을 타는 일은 쉽지 않다. 아이는 지루해하고, 칭얼거릴 수도 있고, 장난을 칠 수도 있다. 그런 아이에게 창밖의 풍경을 이야기해 주고, 우리가 무슨 역을 지나고 있는지 알려 주고 어르고 달래가며 엄마와 아이는 더 가까워 질 수 있다. 그런 시간을 위해 함께 외출하는 것이 아닌가. 더 많이 소통하고, 더 많이 경험하기 위해 우리는 아이와 나들이를 가는 것인데, 아이의 그 시간마저 디지털이 채워 버리게 되면 엄마와 아이 사이는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는 존재들이다. 어른들 눈에는 아무것도 아닌 길가에 떨어져 있는 나뭇잎에도 열광하고 만지고 싶어 손을 내미는 것이 아이들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보고 만져 보고 느껴가며 커야 할 아이들의 모든 호기심이 디지털 기계 하나에 고정되어 버린다면 너무나 무서운 일 아닐까. 모처럼 온 가족이 외식을 하러 나와서 음식이 나오는 그 짧은 시간조차도 각자의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흔하게 대할 때마다 염려가 된다. 다 큰 아이들은 물론이고 아주 어린아이들 손에도 핸드폰이 들려 있다. 아이가 어릴 때에는 엄마와 가장 많이 소통해야 한다. 아이를 가장 잘 알고, 가장 가까운 존재인 엄마와 충분히 살을 부비고, 이야기하고, 놀아야 다른 사람과 사물에게도 자연스런 관심과 감정을 가질 수 있다. 이 시기를 굳건히 다져 놓으면 아이가 집단생활에 들어가거나 사춘기를 맞게 되어도 수월하게 지나갈 수 있다. 지금 귀찮게 하지 않고, 지금 말썽을 부리지 않는 것이 너무 편하고 좋아서 가족과의 접촉 대신 기계에 의존한다면, 충분히 소통해야 할 시절을 그냥 보내고 나서 나중엔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될지도 모른다. 관계는 처음부터 제대로 정성을 들여 서로 함께 키우고 쌓아가는 것이지 한 번에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시내의 유명한 문화센터에 새로 생긴 사회성 프로그램을 등록했는데 내용이 너무나 좋다며 내게 자랑하는 이웃집의 아이는 엄마 친구인 나를 보고도 인사할 줄을 몰랐다. 도대체 그 아이가 배우고 있다는 사회성은 무엇일까. 차라리 동네 어른들에게 제대로 인사드리는 법을 깨우쳐 주는 것이 더 좋은 사회성을 길러줄 수 있다. 요리를 통한 창의력 개발 프로그램에 돈들이지 말고, 그냥 집에서 아이와 함께 수제비를 만들고 김밥을 만들어 보자. 오감자극 프로그램보다 휴일에 아이와 근처 약수터나 삼림욕장을 다녀오는 편이 훨씬 더 낫다.

온갖 교육과 프로그램에 아이를 데리고 다니느라 차를 운전하고, 시간에 맞춰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재빨리 가는 것보다 그냥 아이 손을 잡고 천천히 시내를 걸어 다니는 일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이 훨씬 많다. 인공적인 공간에서 만들어진 생명 없는 배움 말고 그냥 살아 있는 자연을, 가까운 이웃들을, 무엇보다 엄마인 우리 자신을 아이에게 제일 많이 주자.

배움은 상품이 아니다. 가장 좋은 배움은 사람들 속에, 자연 속에 있다. 그냥 자연 속에 풀어 놓고 제 스스로 재미난 것들을 찾아가며 놀게 해 보자. 박제처럼 가공된 창의력과 사회성, 지능 개발이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 발가락 사이를 지나가는 냇물의 느낌이란 그 속에 첨벙 들어가 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것들이다. 몸으로 경험한 것들은 진짜 지식과 체험이 되어 아이 속에 남는다. 그것들이 아이를 더 깊게 제 삶 속으로 이끄는 것이 된다.

그 모든 시작이 어린 시절에 있다. 지금 귀찮고 힘들어서 손쉽게 상품화된 프로그램이나 스마트폰에 의지한다면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서로를 나누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박물관도 좋고, 프로그램도 좋고, 스마트폰도 좋지만 무엇보다 내 아이에게 엄마를 선물하자.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아이의 눈을 바라보고, 아이와 함께 천천히 걸어 보자. 많이 안아 주고, 서로 많이 웃어 주고, 손잡아 주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조금 미루어지면 어떤가.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도 기나긴 인생에선 그리 길지 않다. 이 시간마저 내 맘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고 억울해 하기 전에 이 시간에만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에 마음을 모으자.

신순화 님은 필규, 윤정, 이룸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다. <한겨레>가 운영하는 육아 전문 사이트 ‘베이비 트리’와 네이버에 열어 둥 블로그를 통해 행복한 출산과 육아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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