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호 2012년 봄 살림,살림

[ 살림이 눈여겨 본 이 물건 ]

암수 서로 정답게 낳은 유정란

윤선주

이웃의 누군가 아파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거나 투정을 하면 엄마는 장독대 위 소금독 안에 잘 묻어두었던 비장의 달걀을 꺼내고는 하셨다. 마당에 놓아기르며 우리가 내놓는 음식 찌꺼기나 흩뿌려준 알곡, 혹은 땅위를 기어 다니는 지렁이나 풀, 벌레를 먹고 암탉이 하루나 이틀에 하나씩 낳을 때마다 소금독에 넣어 보관한 그 달걀을 이웃집에 건네거나 영양식으로 밥상에 올리곤 하셨다. 내 또래들의 기억에는 학기 말 종업식을 마칠 즈음 학교로 선생님을 찾아오시던 어머니의 손에 들린 달걀 두 줄이 있다. 한 줄은 부끄럽고 세 줄은 부담스러워 택했을 달걀 두 줄을 생각하면 가슴이 따스해진다. 그렇게 내 어린 시절의 달걀은 귀한 먹을거리이자 노약자의 보양식이며 섭섭지 않은 선물이었고 최고의 반찬이기도 했다. 살면서 우리 조상들의 지혜에 감탄할 때가 종종 있는데 중학교 가사 시간에 달걀의 영양 성분을 배우면서 달걀을 귀하게 여겼던 어머니를 떠올릴 때도 그랬다.

고문헌 《본조식감》에는 달걀이 마음을 진정시키고 경련을 멎게 하고 어린이의 신경증에 의한 설사를 멎게 한다고 되어 있다. 《동의보감》에도 마음을 진정시키고 오장을 편하게 하며 노른자는 이질을 치료하고 음과 혈을 보하고 흰자는 황달, 번열을 없애고 해산을 돕는다고 나와 있다.

현대 영양학에서도 달걀노른자의 레시틴은 필수지방산인 비타민F와 인, 콜린, 이노시톨이 결합된 불포화지방산으로 학습 능력과 기억력을 높여 주며 치매도 예방한다고 말한다. 달걀의 미덕은 이것만이 아니다. 혈관을 튼튼하게 해주는 HDL콜레스테롤을 강화하고 혈압을 낮춰 동맥경화와 지방간을 예방하며 항산화성분이 몸에 해로운 유해 산소를 없애 노화 방지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흰자에 많이 들어 있는 단백질은 라이신, 메티오닌, 트립토판 등의 필수아미노산을 포함하고 있으며 흰자의 알부민과 노른자의 비텔린 등은 세포 생성에 중요한 역할을 해 어린이 성장에 유익하다. 칼슘과 철분도 풍부해 뼈를 튼튼하게 하며 비타민A, B, B6, B12, E와 엽산은 혈중 호모시스테인의 농도를 낮춰 심장 질환을 예방한다. 비타민 E는 노화 원인인 과산화지질의 생성을 줄여준다고 한다. 다만 성인의 1일 콜레스테롤 섭취 권장량이 300mg라는 것을 감안하면 달걀노른자에 함유된 콜레스테롤이 200mg인 점을 생각해 성인병의 발병률이 높은 40대 이후나 폐경기 이후 여성은 1주에 1~2개 정도만 섭취하라는 권유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렇게 많은 영양소를 지닌 달걀은 모두가 아는 것처럼 개체 하나가 세포 하나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물을 보호해주는 단단한 겉껍질은 탄산칼슘이 주성분이며 그 두께가 약 0.3mm가 되고 1만 개 정도의 기공을 갖고 숨을 쉬고 있다. 껍질을 깨면 볼 수 있는 두 장의 얇은 막은 난각막이라고 불리는데, 공기구멍인 기실 부분은 껍질에서 떨어져 있다. 흰자는 배아가 자라기 위한 요람이며 충격을 흡수해 노른자를 보호한다. 노른자는 배아가 병아리로 자라는 과정에서 영양분을 제공하고 실지로 병아리를 키우는 역할을 담당하며 움직이지 않도록 알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유정란을 품으면 병아리가 돼
유정란과 무정란은 겉으로 보기엔 똑같지만 실은 다르다. 앞에서 얘기한 계란에 있는 세심한 보호장치는 유정란의 경우에만 작동한다. 암탉이 자신의 날개 아래 알을 품으면서 알을 정성스레 굴린다. 골고루 온기가 가고 흰자가 분리되어 노른자가 뜨는 현상도 막기 위한 것이다. 그렇게 자리를 지킨 지 21일 째가 되면 병아리가 나온다. 달걀은 암탉과 수탉이 함께 어울려 자라면서 수정을 해서 낳은 수정란과 암탉 혼자 낳은 무정란으로 나누는데 우리가 유정란이고 부르는 것은 이 수정란을 말한다.

암탉은 수정 없이도 일생 동안 알을 낳을 수는 있지만 그 알에서는 병아리가 나올 수 없다. 산란계라 부르는 외국종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그 닭들은 병아리 때 암탉과 수탉으로 나누는 감별사의 손에서 생사를 달리해 오로지 알을 낳는 암병아리만 살아남고 수컷은 버려진다. 산란계들은 빨리 키워 사육 비용을 줄이고 많은 달걀을 낳게 하기 위해 대개 비참한 환경에서 사육하는 게 일반적이다. 케이지라는 좁은 공간에 갇힌 채 항생제, 성장촉진제, 산란촉진제, 호르몬이 섞인 수입 사료와 살충제를 뒤집어 쓴 채 밤에도 불을 환히 밝힌 계사에서 3.3㎡당 50~80마리씩 살고 있다. 또 닭의 습성 상 부리로 헤집으며 모이를 먹는데 분말사료를 그렇게 먹을 경우 사료가 흩어져 손실이 나는 것을 막으려고 부리를 자르기도 한다.

그에 비해 한살림 등에 나오는 유정란을 낳는 닭들이 사는 환경은 많이 다르다. 암수 비율 15:1로 섞어서 키우고, 3.3㎡당 15~17마리가 햇빛, 온도, 습도, 환기를 충분히 고려하여 햇빛이 계사 모든 곳에 골고루 닿도록 제작한 동남향 계사에서 살게 한 점도 다르다. 모이는 곡물, 풀, 풀김치 등을 만들어 먹이는 한편, 첨가물을 빼도록 특별 주문한 사료를 먹이고 있다. 자유롭게 바닥을 헤집으며 모이를 찾도록 바닥에 왕겨와 볏짚을 20cm쯤 깔아 부드럽게 했다. 그 볏짚은 계분과 섞여 일정기간 발효를 거친 뒤에는 밭의 퇴비로 쓰인다. 닭의 똥은 밭의 거름으로 쓰이고 밭의 풀은 닭의 모이가 되어 순환이 되니 버려지는 것이 없어 환경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 닭장 안에는 45cm높이에 횃대를 만들어 닭이 본성대로 살도록 배려하고 있다. 그래서 미생물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는 계사에서는 여느 계사들처럼 악취가 나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고 바닥도 늘 보송보송하다.

한살림이 이제 막 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하던 1990년 초반 무렵 "정말 유정란을 품으면 병아리가 깬다고?" 하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어느 조합원이 자기 아이와 함께 한살림 유정란 10알을 부화 상자에 넣고 그 부화 과정을 관찰해 소식지에 실은 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 모두는 마치 자기가 병아리를 부화시킨 것처럼 가슴 내밀며 "보셨지요? 한살림 유정란은 이렇답니다!" 하고 목에 힘주며 조합원 늘이기에 열 올렸던 일도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 영양학적으로는 유정란관 무정란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중요한 차이는 공장에서 공산품 만들듯 효율성만 따져 싼값에 만들어 최대의 이익을 남기려는 것인지, 닭의 본성을 잘 살려 쾌적하고 건강하게 자라게 한 것인지, 암수탉이 정답게 어울려 난 생명이 깃든 것인지가 다를 뿐이다. 영양성분에서는 별로 차이가 없다지만 달걀의 자연적인 성분 외에 우리 몸에 들어오는 온갖 첨가물과 독성 물질, 그리고 계란에 서려있을 닭들의 비탄은 어찌할 것인가?



뽀죡한 부분을 밑으로, 냉장고 안쪽에 보관해야
상온에서는 1주일, 냉장보관할 경우는 3~4주 정도까지 신선도가 유지된다. 둥근 부분에 숨을 쉬는 기실이 있으므로 뾰족한 부분을 밑으로 해서 세워 두는 것이 좋으며 냉장고 문에 두면 문을 여닫을 때마다 충격을 가해 신선도가 떨어질 수 있으니 안쪽에 보관하는 것이 좋다.

옛날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많이 쓰는 요리 재료 중의 하나가 계란이다. 간단한 프라이를 비롯해 여행 필수품이었던 삶은 계란, 뚝딱 만드는 영양 반찬 계란말이에 5분 만에 끓여 내는 계란국이며 온갖 요리에 고명으로 올리는 지단까지 종류는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서양요리의 기본양념 중의 하나인 마요네즈의 주재료이기도 하고 모든 빵, 과자, 케이크에도 두루 쓰인다. 반찬이 하나도 없을 때에는 밥에 비벼 간장과 김치만으로도 맛있게 밥 한 공기를 먹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 토종닭은 더디 자라고 알도 적게 낳아 집에서 한두 마리 씩 키우는 게 전부였다. 씨암탉은 남겨 두고 복날 보양식으로 먹곤 했는데 백년손님이라는 사위라도 오면 아끼던 씨암탉을 잡아 최고의 대접을 했다.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로 일제강점기에 토종닭은 도태시키고 외래종을 들여왔으나 전쟁 통에 씨가 마르다가 휴전 후 미국에서 40만 마리를 원조 받아 농가에 분양하면서 점차 늘어났다. 70년대 케이지 설치 농가가 늘면서 사육수가 늘기 시작, 현재 5천700만 마리 정도가 사육되고 있다. 닭은 단기간에 투입한 사료에 비해 체중이 크게 늘어나므로 서민의 단백질 공급원의 일등 공신으로 자리 잡았으며 전통보양식인 삼계탕은 외국에서도 널리 알려져 일부러 찾아와 먹고 가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울안에 키우던 닭에 얽힌 이야기도 많은데 새끼를 낳는 다른 가축과 달리 알에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것을 부활의 의미로 읽어 내고 서로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하고 선물하는 부활절 달걀이 있다. 달걀의 끝을 조금 깨뜨려 세운 후 발상을 전환하면 신대륙의 발견도 가능하다고 외친 콜럼부스가 있는가 하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은 변하고 성장하려면 병아리가 세상으로 나오기 위해 안온한 알을 포기하듯이, 새가 날기 위해 알을 깨듯이, 나비가 되기 위해 고치를 벗듯이 자기의 틀을 깨고 나와야한다고 말한다.

이렇듯 달걀에 얽힌 이야기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이고 틀을 깨는 용기이며 이웃과 함께하는 나눔이다. 달걀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의 결단과 노력, 나오자마자 마주하는 새로운 세계에 겁 없이 발 내밀어 한 발자국씩 떼면서 서로의 체온에 의지하는 언젠가 본 상자 속 병아리의 모습이 오래 마음에 남아있는 이유이다.

글을 쓴 윤선주님은 도시살이가 농촌과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믿음으로 초창기부터 한살림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지금은 한살림연합 이사로 일하며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이웃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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