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호 2012년 봄 [특집] 소, 牛여곡절

[ 대안에너지 ]

'퇴적사회' 일본, 탈핵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홍일표

'멜트 다운' 일본
지난 2월2일부터 3박4일간 일본을 방문했다. 10·26 서울시장 선거 과정과 결과, 그리고 '시민정치'의 전망에 대해 일본 시민단체 관계자들에게 설명하는 강연을 하기 위해 간 길이었지만, 일본 싱크탱크 관계자, 협동조합 연구자, 대학 교수들과도 만나 '후쿠시마 이후 일본 사회(운동)의 변화'에 관한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 역시 주요한 중요한 목적이었다. 그러나 막상 만나본 그들로부터 '변화'보다는 '변하지 않음'에 관한 얘기를 더 많이 들었고, 결국 나의 질문과 고민도 "그 엄청난 충격에도 일본 사회는 왜 잘 변하지 않는가?"로 모아졌다.

대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원전사고의 동시발생이 미친 충격과 피해가 후쿠시마현과 동일본 지역에 국한될 수는 없다. 피해 규모를 논하는 것 자체가 어렵고, 그것의 '끝'이 어디이며, 언제일지도 알기 어렵다. 국경도, 세대도 무의미하다. 하지만 이러한 미증유의 사태를 대하는 일본 민주당 정권의 상황인식과 문제해결능력은 심각한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다. 가히 '리더십 멜트 다운(melt down)' 상황이다. 지난 12월 16일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는 후쿠시마 원전의 원자로가 '냉온정지' 상태에 도달했기 때문에 원전 사고가 '수습'되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총리의 이러한 발표를 믿는 이들은 오히려 소수이다. 민주당 실력자인 오자와 이치로 전 간사장마저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아무것도 수습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2월 13일에는 후쿠시마 원전 2호기의 온도가 급상승하는 비상사태가 발생했으나, 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은 "계기가 잘못된 수치를 보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그 이틀 뒤인 2월 15일에는 민주당 에너지프로젝트팀 회의를 열고 멈춰선 원전 재가동 방향의 정책조정에 착수했다고 한다.

'도쿄전력'이라는 괴물
관료들 역시 허둥대고, 무능한 모습을 보였다. 거짓말이 반복되었고, 관료들의 자신감과 관료에 대한 신뢰도 빠르게 줄었다. 민주당 정부의 관료 개혁 후퇴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다가 1년 이상을 '대신관방부'라는 직함만 받고 정식업무를 하지 못하고 있는 코가 시게아키같은 이는 지금의 현실을 "일본 중추의 붕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번 사태의 원인과 해법을 도쿄전력에서 찾았다. 일본을 집어 삼키고 있는 도쿄전력이라는 괴물, 전력업계에 얽혀 있는 정계·관계·업계의 유착, 거기에 학계와 노동조합, 언론까지 뒤엉킨 유착 구조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발전과 송전 분리를 핵심으로 하는 장기적인 전력 규제 완화, 도쿄전력의 국유화 등도 주요한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처럼 도쿄전력과 그것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현재의 유착 구조를 그대로 두고는 일본이 '탈핵사회'로 전환하기 어렵다는 것이 만나 본 시민단체나 협동조합 관계자 대다수의 의견이었다. 카나가와생활클럽 생협을 중심으로, 일본 생협 운동의 역사와 평생을 함께 해 온 마루야마 시게키 선생 역시 두 시간 넘게 이어진 인터뷰에서 도쿄전력 문제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현재 일본이 "'원전에 의존하지 않는 사회'와 '보다 안전한 원전을 이용하는 사회'의 대결구도에 있다"고 했다. 후자의 입장을 지지하는 논리와 계획, 재원은 도쿄전력이 제공한다. 그에 따르면 후쿠시마 현에서는 도쿄전력을 비난하는 얘기를 오히려 하기 어렵다고 한다. 도쿄전력이 일찌감치 원전 주변 지역 전체를 사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너무나 역설적이게도, 후쿠시마 지역 주민들은 여전히 도쿄전력에 의지하여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발전과 배전, 송전을 도쿄전력이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주민들 스스로 재생에너지를 만들어 내더라도 송전을 할 수 없어, 도쿄전력의 지배는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이와 같은 구조를 바꾸지 못한다면, 국가정책과 지역사회에 대한 도쿄전력의 지배력은 결코 줄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원전 사고 직후 도쿄전력의 해체, 국유화 등 여러 방안들이 제기되었으나 이미 거의 무산된 상황이다.

'변화'를 외치다
물론 일본 시민들이 걱정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함께 모여 변화를 외치고,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일본 내 '반원전' 여론이 과거에 비해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작년 9월 오에 겐자부로 등이 주도한 원전반대 도쿄 집회에 주최 측 추산 6만여 명이 모였고, 올 2월 11일에도 1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집회에 참가했다. 마루야마 선생은 9월 집회 당시 집회 장소에 가까운 전철역 밖으로 아예 나오지 못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고 그때 상황을 전했다. 과거 대규모 집회들이 주로 정당이나 노동조합의 동원에 의존했던 것과 달리, 젊은 여성과 학부모 등 다양한 참가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것 역시 중요한 변화다. 최근까지 집계된 바에 따르면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1,500건 이상의 반원전 집회가 전국적으로 이루어졌고, 원전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조례 제정청구운동에 도쿄도민 30만 명 이상이 참여했다.

'아래로부터의 변화' 요구는 분명 강하게 존재하고 있고, 정치권과 언론에서도 변화를 위한 노력이 감지된다. 민주당과 자민당, 사민당 등 소속을 달리하는 의원들이 에너지 분권화와 반원전을 주장하며 의원단을 구성해 활동을 시작했다. 주니치신문과 도쿄신문 등 몇몇 지역 언론은 '반원전'을 자신의 논조로 내세운다. 그들은 특히 "전력회사에 지배되지 않는 일본"을 강조한다. 이러한 입장을 부담스러워 하는 대기업의 광고 철회가 늘자, 지역 중소기업들의 광고가 늘어나는 흥미로운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반원전'과 '탈핵'을 위해 일본 시민들은 힘겨운 싸움을 시작했고, 작지 않은 변화가 확인된다. 하지만 좀 더 냉정하게 상황을 살핀다면 이러한 변화가 여론과 정책에 실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하긴 아직 어렵다. 6만 명이 넘게 모인 원전반대 집회는 주요 언론에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고, 한국의 '촛불시위'처럼 몇 개월간 지속된 것도 아니다. 이 정도의 사회적 압력과 변화로 일본의 원자력 마피아, 도쿄전력, 정·관·언 유착구조가 깨지고, 탈핵사회로 전환하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역사의 침전물이 치워지지 않은 사회
더욱이 일본 사회 자체가 워낙 잘 변하지 않는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라는 전대미문의 위기 상황을 겪고도 일본 사회는 그다지 변한 것 같지 않다. IMF 경제위기 직후 한국 사회의 '급변'과 뚜렷이 비교된다. 이런 일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필자는 일본 방문 후 '퇴적사회(堆積社會)'라는 개념으로 일본을 설명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어쩌면 그 이전부터 쌓여 온 역사의 침전물들이 한 번도 제대로 치워지지 않은 사회가 일본이다. 가장 우선 변화되어야 될 것이 오히려 가장 깊숙한 곳에 묻혀 버렸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고, 단단하게 다져졌다. 땅이 지력을 회복하고, 농사에 접합한 토양이 되기 위해선 한 번씩 갈아엎어야 한다. 그러지 못할 경우 땅의 힘은 쇠해지고, 작물은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한다.

문제는 '땅의 힘'만이 아니다. 퇴적물 그 자체도 큰 골칫거리이다. 작년 3월 동일본 지역을 강타한 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를 만들어 냈다. 그 중 일부는 태평양을 떠다니며 해양오염과 선박충돌, 그리고 북미 서부 지역의 방사능 오염 위험성을 높이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전체 쓰레기의 일부에 불과하다. 후쿠시마 현의 쓰레기가 무려 300만 톤 가까이 되지만, 이를 전량 소각·매립으로 신속히 해결할 수 없어 후쿠시마에는 지금도 엄청난 쓰레기가 쌓여 있다. 도쿄를 비롯한 일본 전역에서 일부를 나눠 맡아 소각하겠다고 나섰지만, 이 전체를 어떻게 처리할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쓰레기의 광역처리 등을 담당하는 부흥청이 지난 2월 10일에서야 겨우 출범하였다. 방사능에 오염된 퇴적물이라 더욱 처리가 어렵다.

군국주의 파시즘, 기득권 유착 구조 깨져야
이런 일본이 과연 '탈핵사회'로 전환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선 후쿠시마 지역에 쌓여 있는 엄청난 양의 쓰레기보다 더 무겁고, 두껍게 쌓인 역사의 퇴적물들을 치워내야 한다. 도쿄전력을 중심으로 단단하게 얽힌 기득권의 유착구조는 깨질 기미가 아직 보이질 않는다. 그러다보니 이 모든 쓰레기들을 강력한 태풍이나 거대한 파도가 한꺼번에 치워버리길 기대할 수도 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탁월한 리더십의 출현을 열망한다. '하시즘(하시모토+파시즘)'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내며, 일본 정국을 뒤흔들고 있는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의 인기는 이를 반영한다. 그는 칸사이 전력을 맹비난하며, 기득권의 혁파를 시도하고 있다. 변화를 갈망하는 이들이,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시선으로 하시모토를 바라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핵보유를 주장한다. '탈핵사회'로의 전환을 그에게 기대할 수는 없다. 결국 '노다'도 '하시모토'도 아니다. 잘못된 리더십의 출현은 더 큰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객토(客土)가 필요한 '퇴적사회' 일본은 결국 수많은 보통 사람들의 손과 땀으로 바꿔가는 수밖에 없다. 도쿄 대지진 이후 일본이 걸어간 군국주의 파시즘이 아니라, 고베 대지진 이후 시민활동과 자원봉사가 활발하게 이어졌던 상황을 떠 올려 본다. '아래로부터의 변화'는 새로운 일본을 건설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 하지만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그 모든 것을 일본 시민들에게만 맡길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원전사고의 원인이 무엇이고 어디서 발발했든, 그 문제 앞에서는 '우리'와 '그들'의 경계마저 무의미하다. 오히려 탈핵을 위해 우리사회가 역동적으로 변화하면 그것이 그들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어쩔 수 없이 그 문제는 결국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글을 쓴 홍일표님은 사회학 박사이며 참여연대, 희망제작소 등에서 일했고 지금은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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