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호 2012년 봄 [특집] 소, 牛여곡절

[ 일소와 농사짓기 ]

"삼 월엔 감자골 내고 사 월엔 참깨골 타고..."

김세진

강창운 씨(76) 댁에는 군것이 없다. 뭐 하나 그냥 버려지는 것이 없다. 그냥 버려지는 음식도 없고 사람 먹기에는 너무 작다고, 혹은 얼어버렸다고 버려지는 것이 없다. 농사부산물도 그냥 내버리지 않는다. 방만 따스하게 하기 위해서 피우는 군불도 없다. 다 여차저차 여러모로 쓰임이 있다. 소 덕이다. 정확히 말하면 소에게 사료 대신 쇠죽을 끓여 먹이고, 여름엔 풀을 뜯게 해서 그렇다.

소를 키우는 일은 손이 많이 간다. 끼니를 챙겨 주고, 똥도 치워 줘야 한다. 낙엽을 긁어모아 놓았다가 우사 바닥에 깔아 주고, 소똥과 같이 긁어내 퇴비로 쌓아 놓는 일은 강창운 씨처럼 매일매일 하지 않더라도 소를 키우는 사람은 누구나 하는 일이다. 거기에 사료를 먹이지 않고, 쇠죽을 먹이려니 여간 품이 들지 않는다. 소를 풀밭에 내다 맬 수 있는 5월부터 10월까지는 그나마 좀 낫다. 내다 매면 소는 일광욕을 할 수 있어서도 좋고 농부는 둑의 잡초를 따로 정리하지 않아도 되니 좋다. 다만 훈련되지 않은 소는 조금 위험할 수 있다. 소를 매단 끈이 소 다리 사이에 걸려 버둥거리다가 죽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소가 곧 적응했다 해도 그 먹성을 감당할 목초지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강창운 씨네 집은 주위에 산이 있어 입지가 좋은 편인데도 결국 따로 꼴을 베어 줘야 한다. 한 경운기 가득 베어 와도 2~3일이면 소가 다 먹어치운다. 그런데 쇠꼴을 베어 줘야 하는 때가 한창 농번기라 일이 많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서 종일 농사일을 하는 틈틈이 짬을 내 쇠꼴을 마련해야 한다.

겨울에도 손이 많이 간다. 겨우 한가해졌다 싶은 계절이지만, 집을 비울 수 없다. 영락없이 붙박이다. 마을회관에 있다가도 밥 때가 되면 와야 한다. 사람 밥 때는 걸러도 소 밥 때는 못 거른다. 11월부터 4월까지는 그렇게 지내야 한다. 강 씨는 오후 3시 30분이면 으레 구들에 불을 피운다. 미리 패서 말려 놓은 나무더미를 한가득 넣고 쓸모없는 종이쪽으로 불을 붙인다. 구들 위 가마솥에는 쌀뜨물이며 나물 씻은 물이며 버리지 않고 모아 둔다. 물도 넉넉히 붓고 거기에 찌끄러기 콩과 콩깍지, 채소 껍질, 조무래기 감자와 고구마, 배추, 시래기, 무 등을 낫으로 뭉텅뭉텅 잘라 넣는다. 마치 국을 끓일 때 국물을 우려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아니, 소에게 무는 인삼이나 마찬가지라고 하니 한약을 달이는 정성이라는 게 맞겠다.

여기에 쇠죽의 주재료인 볏짚을, 충분히 듬뿍 넣고 팔팔 끓인다. 맛도 좋고 영양도 보충하게 쌀겨를 뿌려 휘휘 젓고 들썩들썩 잘 섞어 준다. 운이 좋으면 소들은 남은 간장과 된장 덩이들이 들어간 쇠죽을 먹기도 한다. 소들도 간간하게 간이 든 것을 좋아하니, 그런 날은 특별식을 먹는 셈. 이제 쇠죽이 푹 끓기까지 한 30분 정도 잠시 아랫목에 들어가 있어도 된다. 쇠죽솥이 걸려 있는 아궁이엔 구들방이 연결되어 있다. 불을 피워 쇠죽도 끓이고, 방도 덥히니 일석이조. 늘 따스한 구들방에 메주를 띄워 놓으면 잘 마르니 일석삼조.

쇠죽 끓는 구수한 냄새가 나면 때가 된 것. 이제 밥을 주러 간다. 강 씨는 이웃집에 사는 제자 농군 이선신 씨와 함께 소 세 마리를 키우는데, 한 명이 끓은 쇠죽을 퍼 주면 다른 한 명이 들것으로 나른다. 큰 소 한 마리가 한 끼에 먹는 쇠죽의 양이 30~40kg 정도 되니 손으로 옮기긴 버겁다. 그나마 사료 먹인 소처럼 물은 따로 안 먹여도 되니 다행이다. 쇠죽을 끓이고 아궁이에 아직 나무가 타고 있을 때, 연거푸 다음날 아침에 먹일 쇠죽을 미리 끓인다. 아궁이 문을 닫아 놓으면 아침까지 식지 않아 퍼 주기만 하면 된다. 그 과정을 거치고 나면 벌써 6시, 날이 어둑해진다. 두 마리는 아직 송아지라 그나마 일이 덜한 편이다. 내년엔 끓이는 쇠죽의 양도, 끓이는 횟수도 달라질 것이다.

한겨울에 따스한 것을, 그것도 정성스레 끓인 것을 먹으며 호강하는 이 집 소들에게는 이름도 있다. 주인을 알아보지 못하는 동물이어도 괘념치 않고 이름을 붙였다. 08년 12월에, 7개월이었던 암송아지 복동이는 군만두라는 애칭으로 더 잘 불린다. 처음에 왔을 때 군만두처럼 작다고 해서 그렇게 이름 붙였는데, 이제 세 살이 넘었고 강 씨네 소들 가운데는 가장 맏이다. 소는 무조건 먹성이 좋아야 하는데 군만두는 먹성 좋고, 온순해서 데리고 왔다. 군만두와 우사를 같이 쓰는 놈들은 몇 달 전부터 한 식구가 된, 채 1년이 안 된 암송아지, 보배와 보람이.

세 마리 모두 배가 불룩하게 나왔다. 얼핏 보면 임신한 것 같아 보인다. 사료를 먹여 키운 소는 전체적으로 통통하게 살이 올랐지만 배는 홀쭉하다. 반면, 쇠꼴을 먹고 쇠죽을 먹는 이들은 배가 통통하고 몸집이 더 크다. 쇠죽과 풀은 사료에 비해 부피가 더 크기에 그럴 것이다. 강 씨는 사료를 먹고 자란 소는 뿔이 오돌토돌하고 예쁘지 않다고 했다. 사료만 먹던 소는 입맛 바꾸기가 힘들어 처음에 송아지를 들여왔을 때 약 15일 간은 사료와 소죽을 병행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처럼 손쉽게 사료를 먹이면 편하겠지만 굳이 품이 몇 배로 드는 쇠죽과 쇠풀을 고집하는 이유는 그것이 소를 소답게 키우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사료가 나온 것은 불과 30여년 정도밖에 안 되었고 그전에는 모두 다 이렇게 전통식으로 소를 키웠고 대량 축산도 없었다. 어쩌다가 소가 풀을 안 먹고 사료만 먹게 되었을까? 강 할아버지는 이 점이 안타깝다.



코뚜레 꿰는 날, 송아지 어른 되는 날
보배와 보람이는 목에 줄을 매달고 있었다. 보배와 보람이는 코뚜레를 할 때쯤에야 '목매달이'라고 부르는 이 줄을 벗을 수 있다. 코뚜레는 송아지가 돌 무렵이 되면 하는데, 코뚜레를 해야만 사람이 소를 끌고 다니며 길을 들일 수 있다. 코뚜레를 한 후 일주일 정도는 아물기를 기다렸다가 소를 끌고 나가 걷기 연습을 시작한다. 코뚜레는 일종의 성인식과 같은 통과의례로 여겨진다. 코뚜레를 해야 비로소 우사 밖을 나와 세상 구경도 하고 사람에게 종속되는 것이다. 사람이 끌면 따라가야 한다는 것을 배우면, 반은 길들여진 것이다. 머지않아 날이 풀리면 보배와 보람이는 코뚜레를 꿰고 어른 소가 된다.

요즘은 소들을 코뚜레를 하지 않고 축사에 가둬 키운다. 고기로 팔기 위해 기르는 소에게는 코뚜레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오직 일소에게 코뚜레가 필요하다. 무게가 성인 남자의 열배, 600~700kg에 달하는 소를 움직이려면 다른 방법이 없다. 소는 덩치도 크고 힘도 세서, 코뚜레를 하지 않으면 장정이 달려들어도 한 발걸음조차 강제로 떼게 하기 힘들다. 코뚜레를 하기 위해 코를 뚫는 일은 숙련된 솜씨가 필요하다. 소의 코청을 나무로 만든 송곳으로 뚫은 후, 둥글게 생긴 코뚜레를 끼우는 데 그 일을 할 줄 아는 사람은 예전에도 마을에 한둘뿐이었다. 코의 옴팍하게 들어간 부분을 정확히 겨냥해서 뚫어야 하는데 그보다 밑에 뚫거나 그보다 위에 뚫으면 안 된다.

그는 코뚜레를 손수 만든다. 집 주위에 있는 노간주나무를 사용한다. 나뭇가지를 꺾어 놓았다가 쇠죽을 끓일 때 같이 넣어 끓인다. 그러면 껍질은 벗기기 쉬워지고, 딱딱했던 대는 잘 구부러진다. 강 씨는 한꺼번에 여러 개를 미리 만들어 놓는다. 부러질 때를 대비하는 것이기도 하고, 소 몸집에 따라 코뚜레를 바꿔 줄 것을 준비하는 것이기도 하다. 쇠에 고무를 입힌 코뚜레를 팔기도 하지만 그는 "그런 것이 오래가기는 하지만, 소의 몸에 좋지 않을 것 같아 꺼려진다"고 했다. 그래서 늘 이렇게 손수 만든다. 소의 코청을 뚫는 송곳도 나무를 뾰쪽하게 깎아 그가 직접 만든다.

소코뚜레를 하고 나면 고삐를 매고 멍에를 씌운다. 그것들을 씌우는 데도, 길들이는 데도, 부리는 데도 기술이 필요하다. 길들기 전에는 앞발을 뻗대고 서있거나 뒷발길질을 하기도 한다. 여러 번 시행착오를 거치고 나서야 소는 운명을 받아들인 듯 일을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처음에는 똑바로 골을 타게 하려면 무척이나 힘이 든다. 고랑이 길면 괜찮은데, 고랑이 짧아 여러 번 방향을 바꾸어야 하면 더 말을 안 듣는다. 길든 소도 겨울을 나고 나면 게을러져 일을 잘 안 하려고 한다. 그걸 어르고 달래며 농사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강창운 씨네 집으로 귀농운동본부 귀농학교 학생들이 일소 부리기를 배우러 오지만, 그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소 부리는 일은 경운기나 트랙터에 비해 효율이 떨어지고 시간이 많이 걸리고 힘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다만 아직 소가 기계보다 잘하는 게 있긴 하다. 비탈진 밭에서의 농사가 그렇다. 그의 밭도 약간 비탈진 곳에 있다. 경사가 심한 비탈밭에는 소만한 게 없다. 소 부리는 사람 찾기가 이젠 정말 힘들다고 하니 그가 말한다. 고랭지채소를 내는 태백의 매봉산과 삼동산 부근, 큰산 자락 비탈진 밭에서는 여전히 소를 부리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언 땅이 풀리면 그는 군만두를 데리고 밭에 나갈 것이다. "3월엔 감자골 내고, 4월엔 참깨골, 고추골 타고 좀 쉬다가 들깨골, 콩골 타야 혀. 그러다 7월엔 김장골, 10월 말엔 마늘골 타면 겨울이제." 그나저나 겨우내 쉬었던 군만두에게 일 시키려면 한동안 실랑이를 벌일 일이 걱정이다.


 


쇠죽 먹여 키운 소가 풍미와 영양이 좋다

 "맛이 달라. 쇠죽 먹여 키우면 향미가 있어. 느끼한 맛이 없고 시원하재. 구미가 싹 당겨."

강창운 씨는 풍미가 다르다고 했다. 쇠죽 먹은 소가 사료 먹은 소에 비해 얼마나 맛있는지는 설명하기 어렵고, "먹어 보면 안다"고 했다. 맛뿐 아니라 영양에서도 차이가 있다. SBS가 제작한 <옥수수의 습격>에서는 사료에는 옥수수가 많이 들어가는데, 여기에는 오메가6가 오메가3보다 많다고 했다. 때문에 사료를 먹인 소에서는 오메가6가 오메가3보다 많을 수밖에 없다. 소고기뿐 아니라 우유, 치즈에서도 마찬가지다. 오메가3는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하고 세포를 보호하는 성분이 있지만, 오메가6는 염증을 악화시켜 염증질환과 심장질환을 발생시킬 수 있는 성분이 있다. 박병성 교수(강원대 동물생명공학)는 '사료를 먹은 실험대상 소 중 75%에게서 심장질환을 발생시킬 수 있는 저밀도지질단백질 콜레스테롤이 21% 증가한 것'을 실험을 통해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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