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호 2012년 봄 [특집] 소, 牛여곡절

[ 소와 우리 민족 ]

살아서도 죽어서도 아낌없이 바친대서 나온 희생이라는 말

천진기

토우소

소는 농경민족이던 우리에게 단순한 가축의 의미를 넘어 마치 한 식구처럼 여겨지던 가축이다. 소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노동력일 뿐 아니라 운송의 역할도 담당했고, 급한 일이 생겼을 때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비상금고의 역할까지 했다. 1970~80년대 대학은 소를 팔아 등록금을 마련했다 하여, 우골탑이라고 불렸다. 또 소는 가장 친숙한 동물이기도 했다. 소는 우직하나 성실 온순하고, 끈질기며 힘이 세나 사납지 않고 순종한다. 이러한 소의 속성이 한국인의 정서 속에 녹아들어 여러 가지 관념과 풍속을 만들어 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소가 말이 없어도 열두 가지 덕이 있다"고 했다.

예로부터 길러 온 큰 집짐승은 소와 말이고, 작은 집짐승은 돼지와 개, 날짐승 등이 있다. 북한에서는 신석기시대의 유적에 해당하는 궁산 유적에서 물소의 뿔이 출토되었다. 소뼈가 함경북도 무산 범의 구석기 유적과 회령 오동 유적의 청동기시대 집자리에서 나온 것으로 보아, 이미 이른 시기에 여러 지방에서 소를 집짐승으로 길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소는 전쟁을 일으킬 것인가를 점치는 제천의식의 제의용이나 순장용으로 사용되었다.

고구려의 벽화고분에서는 소가 달구지를 끌고 있는 모습, 외양간에서 여물을 먹는 모습, 견우직녀 이야기, 농사신 등의 다양한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특히 쌍영총(5세기말) 연도 동쪽 벽화에도 화려한 우차를 끌고 있는 늠름한 소가 등장한다. 풍경을 단 큰 지붕을 씌우고 내외를 채견(두껍고 무늬가 없는 여러 가지 고운 빛깔의 비단)으로 장식한 호화로운 승용 가마다. 가마 앞에는 갑옷을 입고 개마(갑옷을 입힌 말)를 탄 창기병이 말안장 후미에 단 깃발 장식을 휘날리며 달리고 있고, 아래에는 여인 세 명과 그들 쪽을 향한 남자가 우측에 보인다. 일견 임금님이 타는 최고급 마차임을 느끼게 한다.

소의 성격은 순박하고 근면하고 우직하고 충직하다. '소같이 일한다', '소같이 벌어서', '드문드문 걸어도 황소걸음'이라는 말은 꾸준히 일하는 소의 근면성을 칭찬한 말로써 근면함을 들어 인간에게 성실함을 일깨워 주는 속담이다. 소는 비록 느리지만 인내력과 성실성이 돋보이는 근면한 동물이다. '소에게 한 말은 안 나도, 아내에게 한 말은 난다'는 소의 신중함을 들어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말을 조심하라는 뜻이다.

우리 민족은 소를 한 가족처럼 여겼기에 그 배려 또한 각별했다. 날씨가 추워지면 짚으로 짠 덕석을 입혀 주고, 봄이 오면 외양간을 먼저 깨끗이 치웠으며, 겨울이 올 때까지 보름마다 청소를 해 주었다. 이슬 묻은 풀은 먹이지 않고 늘 솔로 빗겨 신진대사를 도왔으며, 먼 길을 갈 때에는 짚으로 짠 소신을 신겨 발굽이 닳는 것을 방지하였다.

농경민족이던 우리에게 소는 농사일을 돕는 일하는 짐승으로, 부와 재산, 힘을 상징한다. 제주도 삼성혈 신화, 고구려 고분벽화 등에서는 소가 농사신으로 인식되고 있다. 새해에는 풍년을 기원하며, 가을에는 한 해 동안 고된 농사일에 대한 위로와 감사로 소에 대한 각종 풍속과 민속놀이가 행해졌다. 소는 풍요를 부르는 동물로, 농가의 가장 중요한 자산으로, 농사의 주역으로 풍부한 노동력, 힘을 의미한다.

<목동귀가>, 김홍도소를 생구라고 할 만큼 소중히 여겼던 우리 조상들이 소를 사람처럼 대했다던 이야기가 많이 전해 오고 있다. 황희 정승이 젊은 시절에 길을 가다가 어떤 농부가 두 마리 소로 밭을 가는 것을 보고 "어느 소가 더 잘 가느냐?"고 물었더니, 농부가 귀엣말로 답하며 "비록 짐승일지라도 사람의 마음과 다를 바가 없어 질투하지 않겠느냐?"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황희, 김시습, 맹사성 등은 소와 관련된 많은 일화를 남긴 현인들이다. 특히 조선 초기의 맹사성이 소를 타고 고향인 온양을 오르내린 이야기는 유명하다.

선비들은 속세를 떠나 은일자적 할 수 있는 선계를 동경하면서 소를 그렸다. 우직하고 순박하여 여유로운 천성으로 인해 소는 옛 지식인들의 취향에 각별한 영물로 인식되었다. 현실적으로 효용성이 높은 동물임에도 불구하고 선비들의 시문, 그림, 고사에 자주 등장한다. 조선시대의 선비들은 전반적으로 도가적 성향에 공감하며 동경하였다. 이들은 기우행(소를 타고 다님)을 즐겨하고 그러한 분위기를 시나 그림으로 표현했다.

소를 탄다는 것은 우리 옛 선조들에게 있어 세상사나 권력에 민감하게 굴거나 졸속하지 않는다는 정신적인 의미가 있다. 또한 소를 탄다는 것은 권세를 버리고 초야에 묻혀 글과 시, 술, 경치와 방랑으로 산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이처럼 소를 탄다는 것은 한국인의 질박한 낭만과 직결된 정서적인 표현이다. 옛 그림 속에서 선비, 목동, 은자가 소를 타고 언덕을 돌아 나오는 모습은 주변을 흐르는 잔잔한 물결과 함께 어울려, 도가적인 은일의 세계를 그대로 느끼게 하고 있다. 평화스럽게 누워 있는 소의 모습, 어미 소가 어린 송아지에게 젖을 빨리는 광경은 한국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던 풍경으로서 소가 창출해 내는 분위기는 유유자적의 여유, 한가함, 평화로움의 정서이다.

소는 의(義)를 상징한다. 주인의 생명을 구하고자 호랑이와 격투 끝에 죽은 소를 그린 <삼강행실도>의 의우도(義牛圖), 의우총(義牛塚) 이야기나, 눈먼 고아에게 꼬리를 쥐어 주고 이끌고 다니면서 구걸을 시켜 살린 우답동 이야기는 소의 우직하고 충직하고 의로운 성품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런 이야기들은 유교적 배경 속에서 전승되어온 것이다.

불교에서는 사람의 진면목을 소에 비유한다. <십우도(十牛圖)>, <심우도(尋牛圖)>는 선을 닦아 마음을 수련하는 순서를 표현한 것이다. 이는 소를 찾고 얻는 순서와 이를 얻은 뒤에 주의할 점과 회향(자신의 공덕을 다른 중생이나 자기 자신에게 돌린다는 뜻의 불교 용어)할 것을 이르고 있다. 고려 때의 보조국사 지눌은 호(號)가 목우자(牧牛子)이다. 소를 기르는 이, 즉 참다운 마음을 장양(長養)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만해 한용운도 만년에 그의 자택을 심우장(尋牛莊)라고 하여 스스로의 진면목을 찾기에 전념하였다.

소는 희생 동물이며, 귀신을 쫓는 힘이 있다. 희생에서 희犧와 생牲은 약간 다르다. 희犧는 소牛의 기운羲이라는 뜻이다. 제사를 지낼 때 소를 바침으로써 신으로 하여금 소의 기운을 누리게 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같은 소일지라도 얼룩소는 금물이었다. 곧 희는 털에 잡색이 섞이지 않은 소를 뜻한다. 한편 생牲은 소 중에서도 살아 있는 소生를 뜻한다. 그것은 소를 잡아 고기를 바친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소를 바쳤다는 뜻이다.

가정 단위에서는 소삼신과 소뼈, 고삐를 문 앞에 달아 귀신 쫓는 풍속이 있다. 소삼신은 소가 새끼를 낳는 데 조력하는 신이다. 소가 새끼를 낳으면 왼새끼 줄에 백지를 매달아 1~3일간 대문이나 외양간 앞에 놓는다. 이는 금줄로써 상갓집을 다녀온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금하는 것이다. 경남 하동 지방에서는 이사를 하면 방문 위에 소고삐를 매달아 두는 풍속이 있다. 이것은 소를 붙잡아 두는 것처럼 복이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 뜻과 함께 소처럼 억센 짐승도 고삐 하나에 꼼짝하지 못하듯 나쁜 악귀도 잡히면 혼이 나니 어서 물러가라는 뜻이다. 장사를 하는 집에서도 대문에 소고삐를 걸어 놓는데, 소를 잡아먹었다는 표시로 악귀가 침입하다가 이를 보고 도망간다고 생각했다. 마을 공동체 의례로 해마다 거행되는 장승제인 거리제를 지내고 나서 장승의 목에 소의 턱뼈를 걸어 놓아 마을 안으로 잡귀의 침입을 막았다.

소꿈은 조상, 산소, 자식, 재물, 협조자, 사업체, 부동산을 상징한다. "꿈에 황소가 자기 집으로 들어오면 부자가 된다"라는 속신어나, "소의 형국에 묏자리를 쓰면 자손이 부자가 된다"는 풍수지리설 등을 통해서 볼 때 분명 소는 풍요를 가져다주는 부의 상징으로 인식되었다. '황소 주식 장세'란 말도 있는데, 증권가에서 영어로 장세가 좋은 강장세(强場勢)를 '불 마켓(Bull Market, 황소 장세)'이라 한다. 황소의 맹렬한 돌진력과 밑에서 위로 떠받치는 소의 힘이 증권가의 오름 장세에 비유된다.

어진 눈, 엄숙한 뿔, 슬기롭고 부지런한 힘, 유순, 성실, 근면, 인내 등 소의 덕성이 우리 시대의 덕목이다.

천진기 님은 '민속학이야말로 지금을 성찰하고 미래를 내다보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오랫동안 민속학을 연구했습니다. 국립민속박물관장으로 《한국동물민속론》, 《운명을 읽는 코드 열두 동물》 등의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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