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호 2012년 봄 [특집] 소, 牛여곡절

[ 딸에게 들려주는 소 이야기 ]

소는 어떻게 소가 되었나

김선미

"어머니 암소는 여러 면에서 우리를 낳은 어머니보다 낫다. 우리의 어머니는 불과 몇 년 동안만 젖을 주면서 우리가 자라난 후에는 당신을 모시기를 기대하지만 어머니 암소는 우리에게 풀과 곡물 조금을 바랄 뿐 그 외에 바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의 어머니는 가끔 편찮으시기도 하고 그래서 우리가 당신을 간호하기를 바라지만 어머니 암소는 좀체 아픈 적이 없다. 우리의 어머니는 죽으면 매장을 하든지 화장을 하든지 그 처리를 위해 일정한 비용이 들지만 어머니 암소는 죽으면 그 또한 살아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유용하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가 한 말이란다. 딸아, 너희에게 몇 년도 아니고 겨우 일곱 달밖에 젖을 못 먹인 엄마는 이 글을 처음 읽고 불편했단다. 나는 과연 간디가 말한 암소만도 못한 어머니 또 그 어머니만도 못한 엄마일까. 하지만 주눅 들지 않는단다. '어머니 암소'는 정작 제가 낳은 송아지에게는 좋은 어미가 될 수 없는 운명이었으니까 말이야.

소를 숭배하는 나라 인도에서 암소만큼 정치적인 동물은 없단다. 우리는 소를 너무도 사랑해서 소고기를 먹지 않는 나라라고만 알고 있지만 사실 인도사람들은 역사적으로 어쩔 수 없이 소를 잡아먹지 않으려고 애쓴 거란다. 오늘 이 편지를 쓰는 것은 소를 소고기로만 아는 너희들에게 먹는다는 것이 얼마나 정치적인 행위인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란다.

그러고 보니 소머리국밥으로 유명했던 곤지암 부근에서 살던 너희들 어린 시절 일이 떠오르는구나. 등굣길 동네 어귀에서 도축장으로 실려 가는 트럭에 올라타는 소들을 만난 적이 있지. 기억하는지 모르겠네. 엄마 아빠는 마음이 '짠'해서 뒷좌석에 앉은 어린 너희들이 그 광경을 보지 않기를 바랬어. 그런데 갑자기 너희가 큰 소리로 이렇게 말했지.

"와! 소가 소고기 되러 간다!"

그때 엄마는 머릿속이 복잡했단다. 하지만 두고두고 생각해봐도 그건 아주 자연스런 말이었어. 소를 직접 보기도 전에 소고기를 맛보았던 너희들에게, 일하는 소는 이미 이 땅에서 사라진 지 오래니 사과나무에 사과 열리듯 당연한 것으로 보였을 거야. 만일 보신탕집으로 팔려가는 개를 보았다면 달랐을지도 모르지만.

얼마 전에는 유기동물보호운동을 하면서 채식 선언을 한 가수 이효리 씨에 대해 한우자조금협회에서 불편한 심경을 토로한 일도 있었지. 이전까지 한우 홍보대사를 맡았던 그녀가 육식을 거부한다는 말에 한우 농가가 타격을 입는다는 하소연이었지. 사람은 누구나 신념에 따라 자유롭게 말하고 행동할 권리가 있는데, 단지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취향과 식성이 바뀌었다고 비난받을 이유는 없는데 참 안타깝더구나. 오히려 한우농가가 처한 어려움에는 여러 사회 정치적인 원인들이 겹쳐 있는데, 홍보대사 한 사람이 채식으로 전향한 처사를 나무란다고 문제가 해결될 리도 만무한데, 농민들이 오죽 답답하면 그랬을까 싶기도 했어.

그러고 보니 네 친구 중에도 채식을 시작해서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닌다는 아이가 있다고 했지. 또 중학교 때 함께 광우병 반대 촛불 집회에 나갔던 그 명랑한 친구가 소고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도 새삼 궁금하구나. 이제 우리 사회에서 소고기를 먹는다는 것, 그리고 어떤 소고기를 먹느냐가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는 것만은 분명해.

네가 요즘 매일 먹는 음식을 휴대전화로 찍는 걸 보면서 "네가 먹는 게 바로 너!"라고 엄마가 했던 말 기억하지? 물론 엄마가 처음 한 말은 아니야. 포이에르 바하라고 독일 철학자가 한 이야기인데, 요즘 바른 먹거리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슬로건처럼 이 말을 자주 내세우지. 너도 철학시간에 한번이라도 이름은 들어본 사람일 거야. 엄마가 그 사람의 철학에 대해 아는 게 뭐 있겠냐만 관념론을 흔들기 시작한 유물론의 출발지점에 그가 있었다는 것 정도만 이해하고 있어. 아무튼 우리가 먹는 물질 그대로 우리의 피와 살과 뼈가 만들어진다는 거 너무 당연한 말 아니니? 하지만 꼭 먹는 대로 생각이나 품성이 결정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육식동물은 포악하고 초식동물은 유순하다는 것도 편견 아닐까.

모든 생명은 먹어야 목숨을 유지할 수 있고 또 저마다 다른 먹이를 먹게끔 되어 있기 때문에 생태계의 평형이 유지되잖아. 잡식동물인 사람은 골고루, 아니 가리지 않고 너무 많은 걸 먹어치워서 오히려 지구 전체로는 골칫거리가 되었지.

자, 다시 소를 생각해볼까. 소는 당연히 풀을 먹는 동물이야. 이 말을 포이에르 바하 아저씨 말대로라면 풀을 먹기 때문에 소라고 말할 수도 있지. 소는 위장이 4개인 반추위(反芻胃, ruminant stomach) 동물이야. 낙타, 사슴, 기린, 영양, 염소들이 소랑 같은 계통이라고 해. 소가 풀을 삼키면 먼저 식도를 통해 첫 번째 위장인 혹위로 가지. 여기 사는 미생물들이 풀의 거친 섬유질을 분해해 벌집위로 보내. 벌집모양 위에서는 풀을 뭉쳐서 다시 입으로 내보내는 거야. 그러면 한 번 더 잘근잘근 씹어서 삼키면 이번엔 겹주름위로 가서 수분을 흡수한 다음 마지막 주름위로 보낸대. 그러면 비로소 위액이 나와 소화를 시킨다는구나. 어쩌다 이렇게 복잡한 위장을 갖게 되었을까, 참 풀 뜯어먹고 살기 힘들겠다 싶지? 그런데 여기에도 다 살게끔 하려는 뜻이 담겨 있으니 생명이란 참 신비로운 거야. 초식동물들은 육식동물의 먹이가 되기 때문에 늘 불안에 떨면서 풀을 뜯어먹어야 해. 사방이 탁 트인 푸른 초원에서 풀을 뜯는 모습이 여유로워 보이겠지만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에게 노출되기 쉬운 조건이지. 그래서 늘 허겁지겁 한꺼번에 많은 양의 풀을 집어 삼킨 다음 나중에 안전한 곳에서 천천히 되새김질하며 꾸준히 몸 안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거래. 그 과정에서 미생물의 활동으로 거칠고 질긴 풀에서 더 많은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는구나.

인간은 소가 먹는 옥수수대나 콩깍지처럼 거친 풀들을 먹을 수 없지. 대신 풀보다 연한 열매나 곡식을 주로 먹지만 겨울이 되어 먹을 게 없어지면 자연스럽게 짐승도 잡아먹게 되었을 거야. 사실 사냥과 채취에 의존하던 옛날사람들에게는 육식이 지금의 우리들의 그것보다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거야. 신에게 동물을 잡아 바치면서 제사를 지낸 것도 제물로 쓴 동물이 모두 자기들이 먹고 싶어 하는 것들이었다고 해. 특히 몸집이 크고 맛있는 소는 옛사람들에게 가장 성스러운 제물이었지. 제사가 끝나면 모두가 맛있는 고기를 먹을 수 있어서 제사가 곧 즐거운 축제였어.

자, 다시 인도로 돌아가 볼까. 인도에는 카스트제도라는 독특한 신분제도가 고대로부터 유지돼 왔어. 가장 높은 계급인 제사장, 브라만들은 바로 암소를 신들에게 제물로 바치던 사람들이야. 그런데 유목민들이 갠지스 강 유역에 정착해 농사를 짓게 되자 많은 것이 달라졌어. 농업의 발달은 인류에게 커다란 혁명이었지. 강가에서 인더스문명이 꽃핀 거야. 사냥하고 열매 따러 이리저리 옮겨 다니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머물러 씨 뿌리고 알곡을 수확할 줄 알게 되면서 비로소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되었지. 먹을 게 풍족해지니까 놀이도 예술도 하게 된 거야. 한편으론 남는 걸 더 많이 차지하려는 사람들이 생기고 계급이 갈라지고 빈부차가 커지면서 인간들 사이에 점점 복잡한 사연이 많아진 거야.

아무튼 농사짓는 사람들에게 소는 정말 중요한 동물이야. 그중에서도 암소는 사람들의 젖줄이지. 간디가 말한 대로 젖 주지, 밭 갈아 주지, 무거운 짐 날라주지, 소똥은 또 좋은 퇴비가 되고 특히 인도 사람들에게 소똥은 오래 전부터 흔히 구할 수 있는 값싼 연료기도 했어. 물론 죽은 다음에도 고기며 소가죽, 뼈까지 버릴 것 하나 없이 쓸모가 참 많지. 그러니 당장 암소를 잡아먹는 것보다 오래 키우면서 젖과 소똥을 계속 받아내는 게 여러모로 더 유리했던 거야. 고기는 죽은 다음에 먹어도 되니까. 그 시기가 바로 살생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불교의 탄생 시점과 맞아떨어진 거야. 실제로 기원전 6세기경 소를 제물로 바치는 제사는 브라만에게만 유리하고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큰 피해를 주었단다. 고대 경전에는 황소 500마리, 수송아지 500마리, 암송아지 500마리, 양 500마리를 바치는 거대한 희생제를 치르려던 브라만을 부처가 설득해 살생을 중지시켰다는 이야기도 나와. 인도에 불교를 번성시킨 한 아쇼카 황제는 아예 새끼를 낳았거나 젖을 물리고 있는 암염소, 암양, 암퇘지는 잡지 못하게 법을 만들었지.

이거 소고기 얘기하다 세계사랑 철학 과외시키는 기분이다. 아무튼 계속 들어볼래?

그런데 인도는 힌두교의 나라 아니냐고? 뭘 좀 알긴 아는군. 그래, 불교가 태어난 곳이지만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나면서 힌두교를 믿는 인도와 이슬람교를 믿는 파키스탄으로 나뉘어 독립을 했어. 고대에 브라만을 중심으로 엄청난 동물들을 희생시켜 제사를 치르던 원시종교가 살생하지 말라는 불교 교리 등을 받아들이면서 인도의 종교로 자리 잡은 게 힌두교라고 해. 힌두교에서 암소를 살해하는 것은 신성모독이 되었어. 인도와 파키스탄의 골 깊은 싸움도 암소를 잡아먹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종교적 갈등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어. 이슬람교도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지만 소고기는 먹는단다. 이슬람에서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게 한 것도, 척박한 중동지역에서 잡식동물인 돼지는 인간과 먹을거리를 놓고 경쟁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런 교리가 생겨났다고 하는구나. 어때? 종교의 계율마저 우리가 먹고사는 형편에 따라 달라진다는 게 흥미롭지 않니?

아무튼 인도에서는 가장 부정한 일이라 여겨지는 소 도살이나 가죽 다루는 일을 카스트 체제에도 속하지 못하는 불가촉천민들이 맡고 있어. 대신 그들은 거리를 청소하며 소똥을 수거하는 독점적인 권리도 갖고 있단다. 소똥을 연료로 쓰는 일반 가정에 팔아 생계를 꾸려갈 수 있게 해주는 거지.

간디는 인도의 독립을 위해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면서 암소 보호운동을 펼치기도 했단다. 영국은 유럽인들 가운데 소고기를 가장 많이 먹는 나라였어. 귀족들이나 겨우 먹던 소고기를 노동자들에게까지 값싸게 공급하기 위해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의 울창한 숲을 베어 목초지를 만들고 소떼를 키우게 한 나라지. 그런 영국식 제국주의에 반대하면서 암소를 보호하는 일이 인도의 힌두교 전통과도 잘 맞아떨어졌지.

오늘날처럼 산업화된 축산을 시작한 게 영국이 식민지에 목장을 만들면서부터라고 해. 나중에는 신대륙으로 건너가 버팔로를 사냥해 살아가던 인디언들을 버팔로와 함께 몰아내고, 대신 소떼를 풀어놓았지. 미국 서부영화에 등장하는 카우보이들의 전성시대가 바로 미국인들이 값싼 소고기를 유럽에 공급하던 때야. 광활한 북미대륙의 서부 평원으로 철도가 놓인 것도 소고기를 빠르게 유럽으로 실어 나르기 위해 영국 자본이 투자한 것이라고 해. 재미있는 것은 소를 뜻하는 캐틀(cattle)이 자본(캐피털capital)과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야.

그런데 소고기 좋아하는 영국 사람들 입맛에 맞추어 보다 기름진 소고기를 만들기 위해 미국 축산농장에서 소에게 풀 대신 옥수수를 먹이기 시작했다고 해. 1830년대 오하이오 농부들이 과잉생산으로 남아돌던 옥수수를 도살장에 가기 직전에 소에게 마구 먹여서 살을 찌웠단다. 이때부터 소는 사람이 먹던 곡식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기 시작했어. 미국의 소들은 미국 사람들이 먹는 곡식의 두 배 이상을 먹고 있어. 문제는 옥수수를 먹고 살을 찌운 소고기를 먹은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성인병 늘었다는 점이야. 풀만 먹여 키운 소고기와 달리 옥수수를 먹고 자란 기름진 소고기는 비만, 심장병, 고혈압의 원인이 된다는구나.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곡물을 가축사료로 쓰지 않고 사람이 직접 먹는다면 10억 명 이상을 굶주림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고 해. 거친 풀을 잘 소화할 수 있게 되어 있는 반추위를 가지고 태어난 소에게 기름진 옥수수 사료를 먹이는 것도 모자라 그냥 버려지던 양의 내장과 뼈를 갈아 사료로 먹여서 뇌에 숭숭 구멍이 뚫리는 병을 소에게 옮겨놓기까지 했지. 광우병은 양모산업이 발달해 양 부산물이 많았던 영국에서 처음 생겼어. 미친 소가 태어난 것도 이 때문이고.

이제 인류, 아니 지구 전체 생태계의 평화를 위해서 소들이 제 자리를 찾아가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어. 우리 집 냉장고에 몇 년째 그대로 붙어 있는 메모지 너도 매일 보고 있지?

"우리가 고기라 부르며 먹는 소들의 살은 불에 타버린 열대우림과 침식된 방목지, 황폐해진 경작지, 말라붙은 강과 개울의 살아있는 흔적이며 수백만 톤의 이산화탄소 이산화질소, 메탄가스를 배출시킨 결과물들이다."

엄마가 냉장고 여닫을 때마다 고기 덜 먹자는 결심으로 써서 붙여놓은 건데, 네가 이 글 바로 밑에 “고기 사죠….”라고 댓글을 달아 놓았잖아. 엄마가 그걸 그대로 붙여놓은 것은 우리가 고기를 당장에 끊지는 않아도 늘 생각은 하면서 살아야겠다 싶었기 때문이야.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태양에너지로 살아가고 있어. 풀도, 풀을 먹은 동물도, 그 동물을 잡아먹는 또다른 동물도, 모두 형태가 달라졌을 뿐 태양의 기운을 섭취하는 것이지. 엄마의 이 지루한 편지가 우리가 왜 소를 먹게 되었는지를 이해하고, 먹더라도 어떤 소를 어떻게 먹어야 할지를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단다. 더 자주 소고기를 먹지 못해 불만이 많은 딸들아.

참고 자료 : 《인도 민족주의의 역사만들기, 성스러운 암소의 신화》 D. N. 자 지음, 푸른역사 펴냄. 《문화의 수수께끼》 마빈 해리스 지음, 한길사 펴냄. 《육식의 종말》 제레미 리프킨 지음, 시공사 펴냄. <살림의 밥상>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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