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호 2012년 봄 [특집] 소, 牛여곡절

[ 여는 글 ]

'살처분'과 '아살'의 대상이 된 한국소

천규석

포유동물 짝발굽목(偶蹄目) 소과(牛科)에 속하는 소가 사람에 의해 가축화 된 지는 이미 8천여 년 전 부터다. 가축소는 아시아계와 유럽계로 크게 나눈다. 유럽계의 소는 유목민들이 젖과 고기를 먹고 유목생활의 짐 운반을 하기 위해 가축화시킨 소이고, 아시아계 소는 주로 농경을 위해 가축화시켰다. 고대 바빌론 시대와 이집트의 구왕조 시대에 이미 집소가 논밭에서 쟁기를 끌었고, 씨 뿌린 밭을 써래질과 소 발굽으로 밟아 씨를 땅속에 묻었다고 한다.

이 땅의 소도 고대 유목민족의 한반도 이주와 함께 들어와 유사 이전부터 사육함으로써 한국소(韓牛)로 토착화 되었다. 한국소는 소의 조상인 유럽 원우와 동남아시아 지방의 어깨에 혹 달린 혹소(角峰牛)가 북중국이나 외몽고에서 교잡된 혼혈종이다. 이 한국소가 언제부터 농사에 사역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기록을 최초로 싣고 있는 문헌이 신라의《우경법》이라고 하니 늦어도 신라 이전부터 일 것이다.

젖과 그 고기를 먹고 유목생활의 짐 운반용으로 소를 길렀던 유목민들과 그 후예인 유럽인들과는 달리 일찍부터 정착 농경문화를 이뤘던 동방의 농경인들은 소의 노역을 매우 중시하면서 소에 대한 특별한 정서를 가꿨다. 그래서 도살과 식용이 금기시 되었고 나중에는 종교적 신성시의 대상이 되기까지 했다.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와 그리스와 로마에서도 그랬고, 특히 인도의 힌두교에서는 지금까지도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전통시대의 이 땅 사람들이 소에 대해 어떤 신성한 정서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는지에 대해서 나는 미처 공부한 바 없다. 그러나 내가 젊은 시절이었던 60년대까지 내 집에서도 경험했던 소에 대한 한 가지 특별한 의식은 있었다. 그것은 정월대보름 아침에 구유에 여물죽 대신 오곡밥과 각종 나물 등을 사람이 먹는 보름 음식과 똑같이 함께 만들어 주며, 그 앞에서 소의 무병 무탈과 그 해의 풍년을 기원했던 일종의 아름다운 풍농의식이었다.

그러나 오로지 잡아먹기 위한 이 시대의 산업축산 소는 말 할 것도 없고, 한 식구와 같았던 지난날의 사역 농우에 관한 나의 정서도 아름다운 것보다는 무겁고 아린 것이 더 많다. 우리 전후(前後)의 세대들은 '국민학교'도 입학하기 전부터 꼴망태 매고, 소를 먹여야 하는 목동으로 자랐다. 그러나 내 어린 시절의 소 먹이기는 피리 부는 낭만의 그 목동이 아니었다. 천진무구로 세계와 합조를 이뤄야 할 그 시절을, 유식한 문자로, '세계 내 불안'으로 몰아넣는 단초였다. 신 새벽부터 일 나가시는 부모님의 재촉에 못 이겨 선잠을 깨고, 억지로 들로 나서야 하는 우리의 유년을 괴롭히던 잠 도둑 이었다. 그것은 등교 시간까지의 짧은 아침시간이라 소의 반 배도 채우지 못한 채 집에 끌고 가서 아버지의 호통을 맞게 하는 골통이었고, 그래서 지레 겁먹고 소꼴을 조금 더 뜯기다가는 등교 시간에 늦어 우리를 언제나 지각대장으로 만드는 원흉이었다. 또 조금만 방심하다가는 소 먹이기 금지구역이나 남의 논밭으로 소가 내달아 곡식질을 함으로써 땅 임자의 호통이나 심지어 매질까지 당하게 한 공포이기도 했다.

그러나 소는 우리가 철들기 전부터 이별의 아픔을 맛보게 한 첫사랑의 슬픈 연인이었다. 비록 타의에 의해서이지만 여러 해 동안 내가 직접 꼴 먹이고 쇠죽 끓여 먹이던 그 정든 소를 아버지가 팔려고 소 시장에 끌고 나간 뒤의 그 휑한 외양간은 내 유년이 최초로 경험한 이별의 공허였다. 젖먹이 송아지를 떼인 어미소의 여러 날에 걸친 몸부림과 울음소리도 참기 힘든 비애였다. 누님들의 혼사나 내 대학 학자금을 대기 위해 어미소를 팔고 남은 목매기송아지의 그 '음~메~' 소리는 지금도 내 귀청을 때리는 아픔이다.

나는 사역소를 먹이고 부리며 그 소와 이런저런 정서와 사연을 공유한 마지막 '워낭소리' 세대에 속 할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내 나이 마흔두 살에 소 먹이기를 조기 졸업했다. 1970년대부터 경운기가 널리 보급 되면서 그 쓰임새가 적어진 우리 집의 덩치 큰 부림소는 광작영농을 했던 동생에게 넘겨주고 그 암소가 낳은 암송아지를 키워 부림소로 길들여 먹이고 있었다. 그러다 이 암송아지가 자라 낳은 첫배와 두 번째 배의 황송아지까지 팔지 않고 그냥 기른 적이 있었다. 물론 그때의 내 소들은 돈 주고 사는 곡물 배합사료가 아니고 전적으로 집에서 나오는 자급조사료로 길렀다. 내 평생에 최초로 부림 목적 외에 시장에 팔기 위한 소 두 마리까지 모두 세 마리의 소를 기르던 1979년에 아내가 간암에 걸리는 날벼락을 맞았다.

석 달이 넘게 서울의 병원을 전전했지만, 결국은 아내를 죽여 돌아왔다. 무능해서 농사나 짓다가 아내를 혹사시켜 죽인 것 같은 온갖 회한과 죄책감 등으로 한 달 동안 몸져누었다가 겨우 털고 일어난 내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외양간의 저 '애물단지'를 어서 처분하는 일이었다. 아내를 먼저 보냈다는 회한도 감당하기 버거운데 홀로 세 마리의 소 식구까지 감당할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병원비에 보태려고 진작에 팔려고 했으나 그럴 겨를도 없었고 1979년 그때도 소 값 폭락 파동이 휩쓸 때라 팔기도 쉽지 않았다. 게다가 내외가 함께 석 달이 넘게 집을 비우고 어린 아이들에게 맡긴 농사와 살림꼴이 오죽했을까 마는 그 중에서도 세 마리 소의 꼴이 가장 목불인견이었다. 제대로 못 먹여 비쩍 마른데다 관리부실로 온 몸이 쇠똥 칠갑 투성이가 된 소 꼬라지는 아내 죽여 석달만에 집으로 돌아온 내 꼴보다 더 참혹했었다. 이런 소는 소값 폭락파동이 없었다 해도 제값 받고 팔 수가 없다. 그런데 폭락파동이 계속되는 그때에 누가 이런 소를 거들떠보기나 하겠는가? 그래서 친분이 있는 소 중개인에게 값은 살 사람이 주는 대로 받고서 팔아 달라고 억지로 떠맡겼다. 하루 종일 기다린 결과 폭락 이전의 어미소 한 마리 값도 안 되는 헐값에 세 마리의 소를 팔긴 했다. 쇠장수로부터 그 돈을 받아들고 돌아설 때 나는 아내의 손길로 길러진 아내의 분신마저 유기한다는 한스러움에 울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이제 내 평생에 다시 소는 안 먹일 것이라고. 다행히(?) 이 맹세만은 깨트리지 않아 그 뒤에도 연례행사처럼 되풀이 되는 소 파동으로부터 내 개인적으로는 한 발 떨어진 자유인이 될 수 있었다.

생명살상을 정당화하는 산업축산

그러나 이미 완강한 세계체제가 된 산업축산이 지속되고 있는 한 그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땅에도 닭, 오리 등의 가금류를 뺀 두 발굽의 우제류 가축 수만도 1천361만 두가 넘는다. 이들 가축들이 먹는 사료량은 사람들이 직접 먹는 식량과 거의 비슷한데 그로부터 얻는 열량은 소의 경우 투입 사료량의 17분의1이고, 평균 10분의1의 열량에 불과하다. 물과 토지의 오염은 물론이고 이 가축들의 똥오줌과 방귀 등에서 나오는 메탄가스량은 자동차 배기가스의 탄소량보다 더 많아 산업축산은 대기오염과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도 지목받고 있다.

농축수산물의 일상화된 가격파동 또한 그것의 산업(기업)화로 우리의 모든 삶을 시장체제에 예속시킨 업보다. 가격 폭락 파동은 생산을 줄이라는 시장의 경고음이고 반대로 폭등 파동은 소비를 줄이거나 자급소비로 돌아가라는 경고음인데도 아무도 자신의 업보는 돌아보지 않고 남을 원망만 한다. 2010년 말에 시작되어 2011년 4월까지 국내의 모든 매체들의 머리 뉴스로 등장했던 가축구제역 확산과 당국의 대량 살처분 매몰 조처는 바로 산업축산의 반생명성과 그런 축산은 더 이상 하지 말라는 마지막 경고였다.

두 발굽 동물의 전염병인 구제역은 백신 접종으로도 그 예방이 가능하고 설사 감염된 고기를 먹어도 사람에게는 전염되지 않는 병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그 병이 발병하자 당국은 구제역 발생초기에는 백신접종대신 감염축사의 반경 500미터 내외 모든 두 발굽 가축을 집단으로 살처분, 매몰하는 잔인한 방식을 택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이 방식은 확인 결과 구제역 확산 조기 차단과 이 전염병이 끝난 뒤에 수출을 위한 청정지역의 회복에 걸리는 기간을 몇 달 단축시키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런 이유로 무려 348만 마리의 가축이 살처분 매몰되었고, 살처분된 가축 보상비 1조9천억 원을 포함해 그 방제비로 3조 원 이상의 세금을 썼다고 한다. 구제역의 발병은 기업형 축산단지에서 시작되었고, 당시 시세대로 가축보상금(한우350kg기준440만원)을 받고 살처분 시킨 사람도 대부분 기업축산인이었다. 구제역 방제를 위해 설 명절에 자식들의 차례 참석도 못하게 했던 소규모 축산농민들은 구제역 원인 제공자도 그 방제의 수혜자도 아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처럼 큰 비용을 들인 구제역 살처분 정책도 기업축산가들의 출구 전략으로 유효했는지는 몰라도 축산물의 외국 수출은 고사하고 곧 뒤따른 지금의 소값 폭락으로부터 소규모 축산농민을 보호하는 데는 아무 소용없는 세금 낭비로 끝났다.

또 이런 식으로 면역력을 키운 인간의 생명천시 풍조는 다시 소값 폭락 파동이 재연되자 마침내 자기 집의 소를 굶겨 죽이는 미증유의 아살(餓殺) 사태로까지 이어졌다. 이번의 소값 폭락 파동 중에 20마리의 소를 굶겨 죽인 전북 순창의 축산농민 문동연씨는 2012년 1월 10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시세대로 소를 모두 팔아 축산업을 끝내고 싶었지만, 소를 계속 먹일 수 없는 현실과 당국의 축산 정책에 대한 항의 표시로 소를 굶겨 죽이고 있다"고 자신의 입장을 토로했다.  또 소 값의 안정을 위해 정부가 암소를 도태시키는 것도, 사료 값을 감당 못해 소를 일찍 파는 것도, 설사 제대로 다 길러 제때 판다해도 결과적으로는 도살장에서 소를 죽이는 것은 마찬가진데 왜 사료 값이 너무 올라 소를 굶겨 죽인 자신만 비난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항변했다. 그는 "소를 키우는 사람이 소를 굶겨 죽였다고 세상이 욕하지만 (중략) 이제는 소를 키울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는 원망을 거듭했다.

그 심정이야 이해할 수 있지만, 소를 키울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면 주는 값대로 소를 처분하고 축산업을 접는 것이 옳지, 말 못하는 짐승이라고 굶겨 죽이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결코 없다. 어차피 죽이는 것은 같을지라도 내가 안보는 도살장에서 죽이게 하는 것이 낫지 내 눈 앞에서 굶겨 죽이는 것은 사람으로서 할 짓이 아니지 않는가. 이런 이유들로 가축에 대한 대량 살처분 매몰과 아살까지 공공연하게 당연시되는 세상이라면 사람의 인권과 생명도 결코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말세가 된다. 하긴 이미 사람도 자본이 만들어 주는 시장 식품 즉 인간 사료로 직장이라는 우리 안에서 사육 당하는 자본의 말 못하는 가축이 된 지 오래다. 이처럼 오래전부터 사람을 자본(대기업)의 우리(동물원)에 갇힌 가축에 비유하며, 자급과 자치로 자주적인 인간 삶을 회복해야 한다고 역설해오던 내말에 반응하는 사람은 거의 없거나 소수였다. 그런데 IT 기업가로 크게 성공한 안철수교수의 '대기업 동물원 속의 중소기업'이란 비유에는 보수 골통이라는 <조선일보>까지 맞장구를 친다. 똑같은 말을 해도 돈이나 권력 있는 자가 말해야 예나 지금이나 진리가 된다.

그래서 1기 건설에 2조 원 이상의 돈이 들어간다는 핵발전소라는 '죽임의 우리'를 대기업들의 돈 잔치인 컨소시엄으로 계속 더 짓겠다는 데는 즉각 반응하면서도 그 반대 목소리는 듣지 않는다. 핵발전 과정에서 계속 나오는 저,고준위 방사성 폐기물들과 30년 내외의 수명을 다한 뒤의 폐핵발전소 등을 처리 보관하는 비용까지 계산하면 가장 비싼 발전이 핵발전이라고 한다. 이에 그치지 않고 반감기가 거의 영원인 폐발전소를 포함한 핵폐기물들의 방사능은 지하수, 지진, 해일, 지각운동 등의 자연현상에 의해 언제 누출 되어 주변을 초토화시킬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이처럼 대기업들의 독점 이익 외에 인간뿐만 아니라 만생명의 씨종자를 말릴 생명 살처분기인 핵발전소를 정부가 계속 건설하고 두바이에 수출까지 하겠다는 데도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동물원의 침묵들만 있고 이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늘 외롭다. 기업축산도 이 같은 자본체제와 분리할 수 없는 그 체제의 일부다. 파국의 그날까지 이 죽임의 체제에 순응하거나 이를 방관만 할 것인가?

산업축산문제, 식량위기문제의 대안은 농민기본소득제다

WTO, FTA 등 죽임의 무역개방 세계체제가 지역의 자급적 농, 축, 수산업의 폐업을 기정사실화 하고, 그 뒤치다꺼리만 하고 있는 이 세계체제 농정에 파열음을 내고 농민 뿐 아니라 만생명들이 더불어 함께 살 수 있는 새로운 활인 농정의 길은 정녕 없는 것일까? 자본에 포위되고 매수된 대중의 눈과 귀가 멀어서 그렇지 출구는 결코 먼 곳에 있지 않고 언제나 우리 가까이 있다. 그것은 자본에 불복종하고 자급자치 하는 삶이다. 하지만 일단 자본의 가축으로 길들여진 오늘날의 시장 안 사람들에게는 그게 불가능한 일이다. 기대할 것은 국가인데 국가를 움직이는 것도 자본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움직이는 자본주의도 그 한계와 종말은 있기 때문에 때로 스스로 살기위한 자구책을 내 놓기도 한다. 가까운 나라 일본 자본주의 국가도 최근에 그 자구책을 내놓고 있다.

일본은 우리에게 정서적으로도 먼 나라이지만 모든 면에서 우리보다 한발 멀리 가는 선진국인 것은 사실이다. 핵 발전소 사고조차도 우리보다 한발 앞서 저질렀다. 그래서 얻은 교훈인지 식량자급율은 우리보다 조금 높지만 우리처럼 무역 의존도가 매우 높은 시장국가 일본이 무역역조, 재정적자에 직면해서 농촌의 고령화와 공동화, 그리고 농지의 황폐화 등을 막고 식량자급율을 높이기 위해 농민에게 년간 2천만원 정도를 주는 농민연봉제를 시행 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조선일보>2012년 1월 27일)

생명을 살리는 절대가치인 식량을 생산하는 자급적 농민이 왜곡되고 모순된 시장체제를 통해 빼앗긴 자기 몫의 일부를 국가를 통해 시혜인냥 되돌려 받는 농민 월급제를 내 개인적으로는 받을 수 없는 치욕으로 거부한다. 그러나 불복종을 통한 자급자치의 꿈은 멀고 현실은 너무도 다급한 파국에 직면해 있기 때문에 이 제도라도 잠정적으로 지지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침 핵발전소의 점진적 폐기와 농민 1인당 월 1백만 원의 기본소득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정강 정책을 앞세운 녹색당의 창당이 지금 이 땅에서도 진행 중이다. 한국 녹색당의 그 정책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비되어 나올지 두고 봐야겠지만, 그 정책이 일본의 농민연봉제보다 늦게 나올 수밖에 없는만큼 일본의 농민연봉제의 한계를 크게 보완시켜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일본의 농민연봉제는 1인당 년간 150만엔(약 2,170만원)으로 녹색당의 년간 1천2백만 원보다 높긴 하다. 그러나 45세 미만의 농업 취업자에 국한하고 그나마 7년간의 시한제다. 이것은 우리 녹색당의 농민 기본소득제와는 많이 다른 말 그대로 연봉 개념인 것 같다. 농민기본소득보장제는 일단계로는 일정 면적(예컨대 1천평 이상 1만평 이하)의 식량작물 생산을 전업으로 하는 소농민(여성농민 포함)에게만 사망 때 까지 지급하는 사회보장적 기본소득이어야 한다.

오로지 토건재벌과 그 정부의 이해를 위해 강행되었으나 언젠가 생태적 문제 때문에 다시 폭파시키지 않으면 안 될 4대강 보와 준설 공사에 들어간 돈이 35조8천억이라고 한다. 이 재원이면 2010년 말 우리 농가호수 1백17만7천318호 당에(부부 2인 몫으로) 2천4백만원씩, 합계 23조5천463억6천만원을 나눠 주고도, 11조 이상의 돈이 남는다. 2011년 말 농민수는 2백96만5천명으로, 3백만대였던 농민인구가 이제 2백만대로, 그 가구당 소득 또한 1천103만원으로 계속 떨어지고 있다는 우울한 보도가 또 나왔다.(<경향신문>2012년 2월 10일) 그래서 이를 위해 굳이 증세가 필요할 것 같지도 않다. 지금 토건 권력들이 4대강을 비롯해 무슨 도시개발 길 닦기, 집터 닦기 등을 빌미로 온 강토를 파괴할 수 있는 것도 이미 받은 넘쳐나는 세금으로 가능했고, 또 그 세금을 계속 독점하기 위한 음모가 아니든가? 그래서 복지 확충 명목으로 민주통합당이 2013년부터 17년까지 조세부담률을 2% 더 올린 21.5%로 그 세수를 25조원이나 증가시키겠다는 증세정책은 그 뿌리 깊은 국가주의적 발상 때문에 나는 결코 찬성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의 세수를 토건재정 대신 모두 복지재정으로 돌려야 하기 때문에 농민기본소득 재정을 특정해서 증세가 불가피하다면 그 또한 한시적으로 지지할 수밖에 없다.

쇠고기 수입 개방에 저항하는 축산업자들을 달래기 위한 선심성 축산농정, 쥐꼬리 쌀소득보전변동직불금과 밭농사직불금 식의 작목별 전시용 지원농정으로는 행정비용만 낭비하는 '언 발에 오줌 누기'지, 우리의 농업을 근본적으로 살릴 수 없다. 종합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이미 이 땅의 농림부는 농업생산정책 대신 농업폐업과 그 뒤치다꺼리를 위한 농민복지 업무를 담당하는 부처가 된지 오래다. 그럴바엔 차라리 그 업무를 복지전문 부서인 보건복지부에 맡기고 스스로 해산함으로써 그 예산 15조를 농민기본소득제에 보태는 살신성인으로 이를 반드시 실현시키는 것이 진정으로 우리농업을 살릴 길이다. 농민기본소득제는 순박했던 농민을 잔인한 가축 살생자로, 해당 공무원을 살처분 기계로 만드는 반생명적 산업축산의 순조로운 탈출(전업)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의 농업과 농민멸종문제, 농촌초토화문제등 모든 농적 문제들을 동시에 해결하는 가장 빠른 실마리도 그 길뿐이다. 뿐만 아니라 고유가시대의 식량위기문제, 수도권과밀화문제, 빈부양극화문제 등까지, 이 신자유주의 세계시장 체제의 주변부가 만들어 낸 이 땅의 모든 모순까지 동시에 푸는 가장 경제적이고 가장 빠른 출구전략도 농민기본소득제 말고 다시없을 것이다.

글을 쓴 천규석님은 '땅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농사꾼으로, 소농을 기반으로 한 자급형 농촌공동체를 꿈꾸고 있다. 《이 땅덩이와 밥상》, 《쌀과 민주주의》 등의 책을 펴냈고 한살림대구 이사면서 <녹색평론> 자문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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