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호 2012년 봄 살림,살림

[ 식담 ]

"너는 시려라, 나는 갯것 할란다"

박형진



오랜만에 바다에 나갔습니다. 한 달만인가 봅니다. 마음이 설레어서 새벽잠까지 설쳤습니다. 물때를 보니 바닷물이 가장 많이 빠지는 간조 시간은 오전 10시, 아무리 늦어도 9시까지는 바다에 가 있어야 합니다. 집에서 바다까지 가는 시간은 30분. 그렇다면 아침은 8시에는 먹어야 합니다. 그전에 바다에 들고 나갈 그릇이며 호미, 장갑 따위는 챙겨 놔야겠지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느라 새벽잠을 놓친 것입니다. 제가 바다에 나간다고 하니까 배를 타고 멀리 그물질을 하러 가나 보다고 생각하시겠지요? 그게 아닙니다. 저는 배를 타고 나가 그물질을 하는 어부는 아닙니다. 전라도 변산의 바닷가에 살지만 유기농 농사를 짓는 농민입니다. 하지만 바닷물이 많이 빠지는 때에는 꼭 바다에 나가서 게며 고둥, 살조개, 바지락 따위를 잡아다가 반찬을 만듭니다. 그것이 큰 취미인 사람입니다. 그러니 한 달에 한 번 혹은 두 달에 한 번 그런 날이 오기를 무척이나 기다립니다. 특히 이번 바다 나들이는 더 기다렸습니다. 물이 여느 때보다도 많이 빠져서 잡을 것들이 더 풍성하겠다는 기대 때문이며 봄 들어서는 처음 나가는 바다이기 때문입니다. 거기다가 멀리서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온다고 하네요. 그러니 바다에서 주워온 것들을 벌려 놓고 술잔을 나누면 얼마나 즐거울까요? 또 그것들을 잘 손질하여 오래 두고 먹을 반찬을 만드는 재미는 은근하겠지요.

기대한 대로 봄은 바다에 먼저 와 있었습니다. 육지에 봄이 오려면 저 멀리 남쪽에서부터 부는 바람이 바다를 건너와야 합니다. 그러니 봄은 항상 바닷가에 먼저 와 있겠지요. 육지의 봄나물이 달래와 냉이라면 그보다 먼저 우리의 입맛을 사로잡는, 이곳 변산의 바다 나물들은 지충이와 꼬시래기입니다. 달래가 땅에서 마악 솟아나려 할 때 이것들은 이미 겨울 찬바람에 뒤섞인 남풍을 맞으며 어느 만큼 자라나서 뜯기 좋게 손에 잡힙니다. 이번 바다 나들이에서 제가 해 가려고 하는 것들입니다. 이것 말고도 톳과 파래들이 있지만 아직 철이 이릅니다. 똑같은 바다 나물이면서도 뜯는 때가 다른 것이지요. 이 바다나물들은 물이 많이 빠지지 않아도 뜯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물이 가장 많이 빠져야 잡을 수 있는 게나 해삼, 살조개들을 먼저 잡고 이것들은 물이 다시 차오르기 시작해서 집에 돌아갈 때 해도 됩니다.

저는 물이 빠지는 대로 따라가며 갯것들을 합니다. 엎드려서 바위 속을 들여다보며 뭐 주워 담을 게 있나 살핍니다. 그러다가 적당한 돌맹이들을 들춰보기도 합니다. 그러면 그곳에 살조개가 있고 박하지라고도 하는 민꽃게가 뻘 속에 몸을 감추고 숨어 있습니다. 이곳저곳 자세히 들여다보면 해삼도 간간히 눈에 뜨입니다. 어쩌다 어른 팔뚝만한 해삼을 발견하면 횡재한 것처럼 기쁩니다. 그러나 갯것할 때 처음에는 아직 물이 많이 빠지지 않은 때이므로 이런 것들이 쉬이 눈에 띄지 않고 손만 시립니다. 손이 시리다 못해 뼛속까지 저립니다. 하지만 그 순간을 참아내야 합니다. 시리다고 장갑을 벗고 주머니에 손을 넣어서 덮히고 덮히고 하면 그 손 시린 것을 넘어설 수가 없더군요 '너는 시려라 나는 갯것 할란다' 하며 으그대고 이겨 먹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때가 지나면 그제는 손이 빠알갛게 돼서 화끈화끈 뜨거워집니다. 몸이 알아서 손으로 피를 많이 보내는, 그 적응이라는 게 되는 거지요. 그러면서 물도 많이 빠져서 주워 담을 게 여기저기 바쁘게 눈에 뜁니다. 이제는 신이 납니다. 간밤에 바람이 셌는지 밀려나가는 물결이 화내듯 가끔씩 큰 파도를 만들어서 달려들지만 옷을 버리는 것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바위틈 모래뻘이 모여 있는 곳을 어쩌다 보니 좀체 몸을 드러내지 않은 키조개가 두 개나 보입니다. 이 또한 횡재입니다. 주먹만큼 커다란 살조개가 파도에 드러나서 눈에 뜨입니다. 이곳 변산에서는 백합조개와 함께 가장 맛난 조개입니다. 며칠을 그대로 두어도 입을 헤 벌리고 죽는 일은 결코 없는, 속살이 단단하기 그지없는 놈입니다. 목이 아린 듯한 맛을 내는 녀석인데 저희들은 그 맛을 좋아한답니다.

이렇게 정신 놓고 홀린 듯 바다에서 노는데 갑자기 물이 바뀝니다. 이제 들물이 시작된 것입니다. 집에 갈 때 입니다. 몸은 어느새 더워져서 땀이 날 지경입니다. 캐고 줍고 잡은 것들을 망에 담아서 물에 씻어 놓고 잠깐 서서 먼 수평선을 바라봅니다. 갈매기 한가롭게 나는 것도 보이는군요. 때가 떨려 나가서 마음속이 저 수평선처럼 가지런하고 평화롭습니다. 멀리서 온 손님들이 저를 찾아서 바다에까지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마지막으로 나물을 뜯어야 합니다. 이일은 아까처럼 무릎을 꿇고 자세를 낮추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저절로 몸이 낮아집니다. 많은 생령들을 품에 안고 키우다가 우리에게 풀어준 바다가 고마워서입니다. 바다는 우리에게 대지와 함께 어머니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작고 어린 것들은 줍지 않습니다. 어쩌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영혼이 말라가는 게 보여 편치 않습니다. 옛날 우리 어머니들 보면요, 갯것 하시고 집에 돌아오는 맨 나중에 종다래끼 둥근 바구니 한켠에 나물을 서너 줌씩만 뜯어오셨습니다. 겨울을 갓 지난 때라 이런 '풀' 보다는'살'이 먹고 싶은 게지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충이나 꼬시래기 나물은 아무 때 와도 해 갈 수 있으니까 조금만 뜯습니다. 그리고는 손님들과 함께 서둘러 집에 왔지요.

자! 이제부터 잔치입니다. 마지막으로 지충이 꼬시래기 뜯은 저를 기다리느라 추위에 몸이 얼었을 손들을 위해 저는 따뜻한 아랫목 방으로 안내하기보다는 잡아온 해삼 서너 마리를 얼른 썰어서 소주와 함께 내놓습니다. 그냥 마루에서입니다. 추울 때는 속을 먼저 뜨겁게 해야지 겉만 뜨겁게 해서는 소용없는 일입니다. 이 해삼에 소주 한두 잔이면 그게 음식이기 전에 속 덮히는 약입니다. 그런 다음 저는 게를 손질합니다. 박하지 혹은 독게라고도 하는 이 민꽃게는 꽃게와는 달리 뚜껑 양쪽에 뾰족한 뿔이 없습니다. 그래서 민꽃게인데요, 사납기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체온 조절을 못하는 놈들이라 찬물 속에서는 죽은 듯 엎드려 있다가도 날이 따뜻해지면 행동이 민첩해져서 양손(큰집게발)을 벌리고 달려들면 도시 사람들은 질겁을 합니다. 민꽃게 중에서도 노란색을 띤 수게가 더 사나워서 이곳 사람들은 성질 급하고 나뿐 사람들을 일러 '노랑박하지같다'고 하지요 하지만 저한테는 꼼짝 못합니다. 좀 미안하기는 하지만 저는 이놈들을 잡아서 망설임 없이 뚜껑을 땁니다. 그리고 먹지 못할 것들을 재빨리 제거하고 발도 가지런하니 가위로 자르지요. 큰 것은 토막을 칩니다. 맨 나중엔 떼어놨던 뚜껑 속에 든 빠알간 알들을 긁어내서 함께 그릇에 담습니다. 이 뚜껑들은 보리 누름철쯤 되면 그야말로 알로만 꽉 차서 긁어내지 않고 뚜껑까지 함께 무젓을 담지요. 제가 지금 게를 손질해서 만드는 것은 '게 무젓'이란 겁니다. 이 무젓은 간장 게장과는 달리 벌겋게 무쳐서 생으로 바로 먹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번 손질된 토막친 게는 물에 다시 씻으면 안 됩니다. 비리거든요. 무치는 것은 이렇습니다. 우선 매운 고춧가루를 넣습니다. 마늘을 다져 넣고요. 파는 쪽파 송송 썰어 넣는 게 외대파보다 좋습니다. 단것 조금 넣어야 되는데 매실 효소면 더없이 좋고요. 없으면 설탕을 넣으면 됩니다. 어떤 분은 사이다를 넣어서 단맛과 톡 쏘는 탄산 맛을 즐기던데 가능하면 화학 양념을 쓰지 않아야겠지요. 간은 소금으로 해도 좋지만 소금밑간 ⅔, 집간장 ⅓정도로 하면 더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잊지 말아야 될게 초 넣는 것입니다. 게무젓은 게 회무침인 셈이라 감식초 같은걸 넣으면 더 달고 비리지 않고 좋습니다. 게무젓은 어쩌든지 메워서 호호 소리가 나야 제맛인데요. 제가 해 보이려는 것은 실은 게무젓 한 그릇에 달걀 두 개정도 풀어서 뒤섞은 다음 찜솥에 찌는 요리입니다. 이렇게 하면 누구나 먹울수 있는 희안한 맛이 되지요. 그냥 달걀만 섞어서 찌면 됩니다. 이름 하여 '게무젓달걀찜'.



제가 이걸 만드는 동안 손님들은 불을 좀 쪼이라고 아궁이에 장작을 지폈습니다. 금방 정지가 따뜻해졌습니다. 이 잉걸 대는 불에 캐온 살조개 구워서 또 소주 한잔씩 합니다. 누구나 다 좋아하는 게 조개 구이인데요, 아마도 아궁이 장작불에 굽는 살조개는 그러나 아무나 먹을 수는 없을 겝니다. 그런 다음 만든 게 '지충이 된장덖음'입니다. 지충이는 물에 깨끗이 씻어서 끓는 물에 대칩니다. 텔레비전에 매생이나 미역, 감태, 다시마, 파래, 김, 톳 따위는 나오는데 아무리 보아도 이것은 나오지 않더군요. 생김생김이 까만 벌레 같아서 일까요? 그러나 새파랗게 대쳐서 된장에 파, 마늘 양념하여 덖으면 최고의 나물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통깨 조금 뿌리면 더 좋고요. 몇 가지 주의할 것은 지충이를 물에 씻을 때 너무 세게 문대서 씻지 말 것. 그러면 지충이의 비늘 같은 줄기들이 떨어집니다. 파랗게 대쳐서 찬물에 씻을 때도 가볍게 한 번 정도만 얼른 씻어내야 됩니다. 어차피 된장에 덖는 것이라 막 건져서 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파란색이 유지되기 어려우니까요. 이 지충이 나물은 최고의 소화제이며 건위제이기도 합니다. 엤날에는 위병이 있는 사람은 이것을 뜯어 말려서 볶아서 가루로 장만하여두고 끼니때마다 한 수저씩 먹어서 병을 다스렸습니다. 지충이 된장덖음과 밥을 먹으면 과반하여도 탈이 없고 금방 소화가 돼서 푸욱 꺼지며 제일로 똥이 숭숭 잘도 나온답니다.



제 봄바다 코스 요리의 마지막은 '꼬시래기'입니다. 이것은 꼬실꼬실하대서 꼬시래기인데 씻어서 살짝 데치는 게 요령입니다. 많이 대치면 사각사각 씹히는 식감이 없지요 끓는 물에 넣어 조금 뒤적이면 금세 파래지는데 이때 얼른 건져서 찬물에 여러 번 식히면서 씻어야 됩니다. 물기 뺀 이것을 소스(지금부터는 찍음장이라 부르겠습니다)에 찍어 먹는데 찍음장은 양조간장과 감식초 반반에 매운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 많이 넣어서 걸쭉하니 갠 다음 단 것, 통깨. 와사비 조금씩 넣어서 만듭니다. 그런 다음 꼬시래기를 손에 감아들고 찍음장 묻혀서 잡숴 보세요. 이글 읽는 분들에게 그 맛 못 뵈 드려서 죄송합니다. 저희 집에 온 손님이 이런 말씀을 하더군요. 3월 안으로 또 온다고요 그럼 다음에는 산에서 나오는 음식으로 또 뵈요. 《살림이야기》 독자 여러분!



박형진 님은 농사짓고, 갯것을 하며 난 것으로 맛깔난 음식을 만들어 손님을 맞이하기 좋아합니다. 변산에서 8대째 지내니, 그 지역 음식에 대해서는 전문가입니다. 손수 지은 흙집에서 시를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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