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호 2011년 겨울 살림,살림

[ 살림의 현장③ ]

한미FTA '경이로운' 주권의 양도

이태호



지난 10월 12일 미국 의회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행법안이 통과되었을 때, 이 협정의 한국 국회 비준 역시 시간문제로 여겨졌었다. 그러나 지난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여론은 급반전되어 왔다. 트위터와 같은 SNS공간은 한미 FTA의 독소조항에 대한 새로운 논란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한미 FTA 비준에 반대하는 촛불집회에 중고등학생, 20-30대 여성이 대거 참여하는 등 시민저항의 수위가 2008년 미 쇠고기 수입조건 완화 밀실합의에 반대하는 촛불집회 양상으로 발전해가고 있다. 망설이던 야당의원들도 외교통상위원회 회의실을 점거해 강행처리를 저지하는가 하면, 여당 내에서조차 한미 FTA 강행처리를 시도하는 당지도부에 공공연히 반대하는 의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급기야 지난 11월 15일 대통령이 국회를 직접 방문하여 좌고우면하고 있는 여야 국회의원들에게 동의안 처리를 설득하고자 했다. 국회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조차 국회에서 비준안을 처리해주면 3개월 이내에 투자자국가제소(ISD, Investor-State Dispute) 조항을 재협상해 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통령의 이 제안은 비준안을 강행처리하기에 앞서 "정부로서는 야당을 설득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명분으로 활용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제안으로 정부와 여당은 더욱 곤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대통령 스스로 한미 FTA 협정문에 국민이 동의하기 힘든 독소조항이 있음을 인정한 셈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재협상의 필요성이 분명해졌는데 왜 비준부터 해야 하는지 국민을 설득하기 쉽지 않을 터이다.

ISD에는 주권침해적 요소가 들어 있어 논란이 되어왔다. ISD는 정부의 정책으로 인해 외국 투자자가 차별을 받았거나 기대하는 이익을 얻지 못했을 때, 혹은 그러한 손해가 예상될 때, 해당 정부를 국제투자분쟁중재기구(ICSID, International Centre for Settlement of Investment Disputes)에 제소하여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한미 FTA에서는 일단 미국 투자자가 한국정부 정책을 국제중재기구에 회부하면 한국정부는 꼼짝 없이 끌려 나가서 중재를 받아야 한다. 이 경우 한국정부는 한국법정에서 시비를 가리자고 주장할 수 없다. 자동동의 조항 때문이다.

여기서 몇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우선 국내 법률에 의한 합법적 정부조치라 할지라도 국제통상전문가들로 구성된 3명의 국제투자분쟁기구의 중재자들이 투자자의 이익을 침해한다고 판단하면 꼼짝없이 부당한 것으로 간주된다는 점이다. 이 경우 정부는 미국투자자에게 배상하여야 한다. 입법주권과 사법주권이 침해되는 것이다. 둘째, ISD제도는 한국투자자와 미국투자자를 차별한다. 미국 투자자들은 투자와 관련된 분쟁이 발생했을 때, 한국법정에 호소할 수도 있고 국제분쟁기구에 제소할 수도 있다. 자신에게 유리한 분쟁해결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투자자들은 자국 법률에 반하여 정부의 조치에 대해 국제투자분쟁기구에 제소할 수 없는 것이다. 셋째, 모든 한국투자자들이 차별을 당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투자자와 함께 투자한 한국투자자들은 미국 투자자들과 함께 국제분쟁기구에 제소할 길이 열리게 되므로 한국 투자자간에도 차별이 발생하게 된다. 아마도 한국의 재벌은 자신들에 대한 규제정책을 무력화하기 위해 미국 투자자들을 동원하려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ISD와 관련된 한미 FTA 협정문의 백미는 미국에 투자한 한국투자자들은 미국법정에서 한미 FTA 협정문을 근거로 소송을 진행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회를 통과한 한미 FTA 이행법 102조에 따르면, 협정과 미국 법령이 충돌할 경우 미국법령이 우선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협정문에 반하는 정부조치가 취해지더라도 미국 연방 법령과 주법령에 저촉되지 않는 한 한국의 투자자들은 ISD를 이용하지 않고서는 미 사법부에 의해 구제를 받을 길이 없다. 반면, 한국에서 FTA 협정문은 한국 헌법에 따라 조약의 지위, 즉 특별법의 지위를 가지게 된다. 특별법은 일반법령보다 우선 적용되므로 한미 FTA협정이 발효하는 즉시 이 협정에 반하는 국내법조항은 사실상 자동으로 무효화된 것으로 간주된다.

외교통상부는 ISD는 투자자들을 위한 불가피한 보호조치로서 한국투자자들도 해외에서 그 혜택을 보는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ISD는 진행 중인 세계무역기구(WTO) 협상(DDA)에서도 그 채택이 거부되고 있다. 이 제도는 미국이 주도하는 양자투자협정(BIT)을 통해 보급되어 왔고 한국이 무비판적으로 따르고 있다. 특히 미국 투자자들은 ISD를 이용하는데 매우 익숙하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국제투자분쟁기구가 다룬 전체 390건 가운데 123건(미국기업 제소 108건, 미국정부 피소 15건)에 당사자가 됐다.

정부는 보건, 안전, 환경, 부동산 가격 안정화 정책 등 공공복리 목적의 조치에 대해서는 ISD 적용의 예외를 인정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예외는 부분적이며 여기에도 많은 제한들이 따른다. 예를 들면, 공공질서 유지를 위한 조치는 "사회의 근본적 이익에 대하여 진정하고 충분히 심각한 위협을 가져오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그 판단은 누가하는가? 3명의 통상전문가로 구성된 중재판정부다.

외통부와는 달리 ISD에 대한 법무부의 판단은 한층 복잡한 것 같다. 법무부가 2010년에 낸 <알기 쉬운 국제투자분쟁 가이드>와 <알기 쉬운 정책유형별 투자분쟁 사례>를 보면 다음과 같은 정책들이 국제중재에 회부된 사례로 예시되고 있다.(송기호, 《한미 FTA 핸드북》 2011년 녹색평론사에서 재인용) 가스요금 인상요청 거부, 공항 운영 계약의 일방적 해지, 금융기관 민영화 약속 위반, 환율 등 금융정책 변경, 환경보전을 위한 공장설립 취소, 생태보전을 위한 토지수용, 세법 개정으로 인한 특별소비세 미환급,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세금 부과, 무관세 수출입 협정 갱신 거부, 가스요금 인상요청 거부, 특정 상품의 수입금지로 인한 사실상의 영업중단, 자국민에 유리한 법원조처, 사업부지 용도변경,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비자 갱신 처리지연, 외국인 고용회사에 대한 차별적 보조금 정책 등이다.

이 정도면 사실상 부동산 정책, 환경정책, 금융안정화 정책, 에너지 정책, 조세정책 등 예상 가능한 공공정책이 모두 투자분쟁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셈이다.

이런 방식으로 외국투자자에게 공공정책 선택의 주권을 양도하는 것을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강변하는 이들이 말하는 '글로벌'은 어디이며 누구의 '스탠다드' 인가? 이런 '경이로운 주권의 양도'(주한미군사령관을 역임했던 리차드 스틸웰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두고 ' 전 세계에서 가장 경이로운 주권의 양도'라고 표현했다. 전작전통제권 환수를 추구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공공정책 전반에서 헌법적 권한을 양도하는 협정도 동시에 추진했고 그 과정에서 전혀 국민의 의사를 묻지 않았다는 것은 아이러니다.)를 하루라도 더 빨리 완수하기 위해 날치기도 불사하려는 국회의원들의 금빼지는 과연 누구로부터 주어진 것인가?

이태호 님은 참여연대 사무처장으로, 현재 한미 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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