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호 2011년 겨울 살림,살림

[ 살림의 현장② ]

지금 여기서, 왜 녹색당인가

하승수



'정당'이라는 단어와는 관계없이 살 것 같은 사람들이 정당을 만들겠다고 모이고 있습니다. 관심사도 다양합니다. 핵발전(원자력발전)에 반대하는 사람에서부터 농사를 짓는 농민, 먹거리에 관심 있는 주부, 동물보호운동을 하는 사람, 세상에 대한 답답함을 가진 청년, 녹색평론같은 책을 꼬박꼬박 읽는 사람, 지역에서 풀뿌리운동을 해 온 사람, 환경ㆍ평화ㆍ인권같은 단어에 관심을 가져온 사람….

오프라인에서도 모이고 온라인에서도 모이고 있습니다. 카페(http://cafe.daum.net/Kgreens)와 블로그(http://kgreens.org), 페이스북을 통해 활발한 소통을 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는 직업정치인이 되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없고, 권력을 쥐겠다는 사람도 없습니다. 오로지 관심 있는 것은 이 사회가 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제역,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4대강 사업을 보면서, 더 이상 사회가 이렇게 가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사람들입니다. OECD 국가 중에 청소년들의 행복도가 가장 낮고, 세계에서 가장 긴 노동시간을 유지하고 있으며, 자살률이 가장 높은 사회에서 우리는 행복하게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사회가 이제는 변해야 합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그동안 우리나라에 있었던 정당과는 다른 정당을 만들려고 합니다. 정당이 추구하는 가치도 다르고, 정책도 다르고, 운영되는 방식도 다른 그런 정당을 만들려고 합니다. 외국에는 비슷한 사례들이 있습니다. '녹색당'이라는 이름의 정당이 그런 것을 지향하며 세계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 30년 전입니다. 우리는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시작하려는 것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정당과 무관하게, 다만 시민운동, 지역풀뿌리운동에 참여해 왔을 뿐입니다. 그런데, 녹색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절박함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여러 가지 할 얘기가 많지만, 한 가지만으로도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3월 11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난 이후에 저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이미 그 사실을 잊어버린 듯 합니다. 그러나 후쿠시마에서 방사능은 계속 유출되고 있습니다. 일본 국민의 3분의1이 방사능으로 오염된 땅에 살고 있습니다. 유기농업을 짓던 농민들은 삶의 기반을 잃었고, 협동조합들도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방사능이 검출되는 농산물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정부가 관여된 원자력 관련 공청회에서 '후쿠시마를 도약의 기회로'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 21개가 가동중인 핵발전소를 34개 이상으로 늘리려고 추진하고 있습니다. 경주에 짓고 있는 방폐장에서는 지하수가 나와서 방사능 유출의 위험이 큰데도, 공사를 강행하고 있습니다. 이러다간 현 세대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고 미래 세대에게는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세계에서 500개 남짓 지은 핵발전소에서 스리마일, 체르노빌, 후쿠시마와 같은 대형 사고들이 발생했습니다. 핵발전소는 워낙 복잡한 존재이기 때문에 사소한 실수나 자연재해가 대형사고로 이어지기 쉬운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안전한 핵'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한나라당, 민주당같은 정당들은 핵발전을 확대하거나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보정당들도 수십 가지 정책의제 중에 하나 정도로만 취급하고 있습니다. 이래서는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유럽에서도 녹색당 같은 정당이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고 활동해 왔기 때문에 지금 핵발전을 중단하는 결정들이 내려지고 있습니다.

결국 이 문제는 정치에서 풀 수밖에 없는 문제입니다. 지금 행정을 담당하는 관료들은 핵발전을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발전소 건설에 이해관계를 가진 재벌기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 제동을 거는 일은 유권자들이 핵발전을 중단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정치권에 보내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핵발전을 단계적으로 중단하는 것을 핵심정책으로 내건 정당이 생기고, 그 정당이 선거에서 일정한 득표를 해야 합니다. 독일에서 핵발전 중단결정을 이끌어낼 당시에 녹색당이 얻은 득표율은 6.7%에 불과했습니다. 그렇지만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고 대안을 제시했기 때문에, 6.7%의 득표율을 얻은 정당이 핵발전 중단결정을 이끌어냈습니다.

그래서 녹색당이 필요합니다. 핵발전 문제 하나로 설명했지만, 먹거리, 농업, 청소년들의 행복 등을 생각하면 녹색당 같은 정당들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녹색당은 아직 창당도 안 되었지만, 아이를 키우는 여성들, 청년들, 청소년들의 관심이 많습니다. 본인들의 삶의 문제가 그동안 정치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난 10월 30일에는 녹색당 창당발기인대회를 했습니다. 선관위에 신고절차도 마쳤습니다. 정당을 만들기 위한 공식적인 발걸음을 내딛은 것입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입니다. 기존 정당들이 녹색당 같은 정당이 만들어지지 못하도록 장벽을 쳐 놓았습니다. 녹색당이 창당하기 위해서는 5개 이상 시ㆍ도에서 각각 1,000명 이상의 당원을 모아야 한다는 정당법의 요건을 채워야 합니다. 그래서 관심 있는 분들의 참여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다행히 생애 첫 당원이 되겠다는 분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녹색평론의 김종철 선생님 같은 분도 지금 녹색당을 만들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라며 참여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지금 삶이냐 절망이냐의 분수령에 서 있습니다. 그 절박함이 녹색당을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과정에서 우정과 즐거움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그게 '녹색'이기 때문입니다.

글을 쓴 하승수 님은 주민자치, 협동조합 등 대안사회를 만드는 일에 관심을 기울여왔으며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 제주대 교수 등을 지냈으며 지금은 녹색당창당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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